창닫기

의지가지할데 없는 애들을 한품에 안아키운 위대한 “어머니”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8 13:16:56 ] 클릭: [ ]

26년동안 3명의 애들을 키워 시집장가까지 보낸 한영자녀성

1985년도에 한영자녀성이 사랑스러운 “자식”들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연길시 건공가 장림사회구역에는 자신이 낳은 자식들이 아니지만 26년동안 3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제자식 못지 않게 정성스레 키워 시집장가까지 보낸 한영자(61세)녀성의 사적이 미담으로 전해지고있다.

한영자녀성은 26살 나던 해인 1980년도에 지인의 소개로 왕청현 춘양진병원의 의사 리영일과 백년가약을 맺고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한차례의 류산이 된후부터는 운명의 조화인지 여러해가 되도록 다시는 임신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친오빠가 의외의 화재로 아까운 38살 나이에 생을 마감했고 설상가상으로 올케마저 36살 되던 해 암병으로 저세상에 갔다. 이렇게 되다보니 오빠네 6살 나는 딸 한봉선과 4살 나는 아들 한충렬은 의지가지할데 없는 고아로 되였다. 애들의 외가집로인들이 계시기는 했지만 70세가 넘은 고령이고 병환에 계시다보니 애들을 돌볼 형편이 못되였다.

너무나도 가슴아픈 오빠네 집 사연에 한영자녀성은 조금도 망설이지않고 오빠네 두 자식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남편이 어린 애들을 장춘에 있는 고아원에 보내려고 신청까지 할줄이야… 집에 돌아와서야 안해가 애들 둘을 입양하기로 마음먹은줄 알게 된 남편은 왜 고생을 사서하는가 하면서 성을 냈다. 그러나 불쌍한 조카애들을 뒤바라지하기로 마음먹은 한영자녀성은 남편과 리혼할지언정 애들을 키우겠다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남편도 안해의 강경한 태도에 결국은 수그러들고 말았다.

거의 때를 같이하여 한마을에 사는 곽씨성 한족집에서 아들을 보려고 3번째 애까지 낳았는데 또 딸을 낳게 되자 부양을 포기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멋 모르고 태여난 아이한테야 무슨 죄가 있으랴… 한영자녀성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애를 안아다 우유를 먹이면서 애지중지 키웠다.

그때 한영자녀성의 가정 경제래원이라야 고작 남편의 38원밖에 안되는 월급이 다였다. 한영자녀성은 애들의 공부뒤바라지와 남부럽잖게 먹이고 입히려는 욕심때문에 닥치는대로 계절공 일도 해보았고 돈잎이 될만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않고 찾아했다. 늘어난 식구들때문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병아리를 사서 닭치기도 해보았고 돼지도 치면서 살림을 어렵게 꾸려나갔다.

그때 사회적으로 사교무풍이 세차게 몰아치면서 동년배들은 고운 옷차림으로 무도장에 드나들면서 생활을 향수하였지만 한영자녀성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오직 애들의 뒤바라지와 가정살림을 위하여 여름이면 들에 나가 돼지풀을 캐서는 이고지고 돌아왔으며 가을이면 벼이삭 옥수수이삭이며를 산과 들을 누비며 주어오군 했다.

자기들을 위해 애쓰고 힘들어하는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 두 조카 역시 초중공부를 마치고는 일찍 대리석을 생산하는 한국기업에 출근하면서 가정부담을 덜어주었다.

1990년 남편이 연길시 건공가두병원에 전근이 되였고 셈평이 좀 나아지면서 조카애들도 하나 둘 시집장가를 들었다. 큰 조카 한봉선이는 한국에 시집을 갔고 작은 조카 한충렬도 결혼하고 시장에서 정육점을 경영하면서 남부럽잖게 잘 살고있다.

데려다 키웠던 막내딸 리흥복도 28살 나던 해 시집가게 되여 한영자녀성은 시집가는 딸을 앞에 불러놓고 수양하게 된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었다. 딸애한테 너의 본성은 곽씨이고 부모와 자매들도 아무곳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난후 막내딸 흥복이는 서럽게 울면서 내 일생에서 어머니는 단 한분이며 키워준 엄마가 영원한 어머니라고 말하면서 한영자녀성의 두손을 꼭 쥐고 놓지않았다.

2011년에 한국에 시집간 막내딸 리홍복은 지금 료녕성 영구에 있는 한국기업에서 일하고있는데 한영자녀성의 키워준 은정을 잊지못해 계절마다 옷가지와 신발들은 물론 따뜻한 안부를 보내주고있다. 한국에 시집간 큰조카 한봉선이도 동생들과 어머니의 키워준 은공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달마다 한국돈 30만원씩 보내주어 한영자녀성은 만년을 근심걱정없이 보내고있다.

그런데 가석한것은 애들도 다 키워놓고 한창 살만하니 남편이 4년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것이다. 남편을 잃은 외로움으로 울고있을 때 사회구역의 따뜻한 관심과 도움이 힘이 되여 한영자녀성은 어린 애들을 키울 때 그 신심과 열정으로 지난해부터 사회구역 로인협회 회장사업을 맡아 여생을 불태우고있다.

한영자녀성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자식사랑은 현재 주변사람들의 본보기로 되여 사회구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에너지를 주고있다. 지난해 한영자녀성은 연길시 부련회에서 수여한 《가장 훌륭한 어머니》 칭호를 수여받았다.

/장명길 특약기자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