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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규 타계 73주기 한식제 룡정서 엄수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04-06 12:21:39 ] 클릭: [ ]

초헌에 이어 축문을 올리고있는 리광평회장(앞사람).

4월 5일 오후, 김하규 타계 73주기 한식가정제사가 룡정시 토성포남산에 자리잡은 김하규묘지에서 엄수되였다. 장춘에 살면서 20여년간 증조할아버지 묘소를 찾던 김하규의 증손자 김윤동부부와 자녀들이 참가한 이번 한식제는 룡정 3.13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룡정시조선족민속박물관과 룡정시문화관에서 협조하였다.

묘소를 찾아가는 가족들과 《3.13》기념사업회 회원들.

1899년 2월 김약연 등과 함께 명동촌에 입주하고 대룡동에 소암재를 꾸려 육영사업에 헌신하였으며 1908년 4월 27일 김약연 등과 함께 소암재, 규암재와 오룡재를 합쳐 명동서숙을 창립한 김하규(1862.11.3ㅡ1942.4.21)옹은 조기 명동지역 저명한 조선민족교육자이며 교육구국의 기치를 높이 든 반일지도자의 한 사람이다. 룡정《3.13》기념사업회 리광평회장은 김하규를 추모하는것은 룡정지역 특히는 명동촌의 교육과 반일투쟁력사를 회억하고 그 정신을 고양하고 후세를 교양함에도 아주 유익한 일이라고 소개하였다.

이날 아침 6시에 장춘에서 떠난 김윤동씨 일가는 12시에 룡정에 도착, 룡정《3.13》기념사업회의 안내하에 룡정시가지 서쪽에 위치한 공농촌(토성포)남산으로 향발하였다. 산밑에서부터 묘소가 있는 곳까지 약 1리가량은 도보로 움직였다. 무성한 이깔나무밭속에 1945년 6월 4일에 세운 《김하규선생추모비》와 1946년 4월 21일에 세운 《화음김선생지묘》비가 무상한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고 수십년간 묘소를 지키고 있었다. 가족과 동행한 일군들이 함께 묘소와 그 주위의 풀을 꺾고 흙을 떠서 묘소에 가토하고 제사상을 차렸다.

가족들과 함께 풀을 꺾고있는 참가자들.

이날 한식가정제사는 리광평회장이 집사를 맡고 진행하였는데 상주에 김윤동, 주부에 옥부자(김윤동부인), 그리고 복인으로 김윤동씨의 자녀들이 참여하였다.

군례를 올리고있는 김윤동씨.

룡정시를 한눈에 굽어볼수 있는 김하규묘소에서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진행된 한식가정제사는 후토제를 지내고 설주, 강신, 진찬, 초헌, 아헌, 종헌, 우식, 사신, 음복 순으로 약 한시간가량 진행되였다.

김하규의 증손자인 김윤동은 《항일운동가 김하규를 기념하여》라는 제목으로 추모발언을 하였다. 그는 김하규의 큰 아들 김성진의 손자이며 증조할아버지묘소를 찾기 위하여 20여년간 길림성 각지를 돌며 발품을 팔았었다. 그는 이렇게 증조할아버지의 묘소를 찾게끔 도움을 준 해란강닷컴 주성화총편, 길림신문사 홍길남사장, 룡정《3.13》기념사업회 리광평회장을 비롯한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고 룡정시정부와 인민들이 문화대혁명시기를 포함한 지난 73년간 묘소를 완정하게 보존해준데 대해23년간 군인으로 있은 김윤동씨는 군례로 감사를 드렸다.

한식제가 끝난후 가족과 참가자들이 70여년전 장례식 사진을 본따 합영을 남겼다.

김하규선생의 생평을 보여주는 《화음김선생지묘》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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