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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의 장수비결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4-04-10 11:40:40 ] 클릭: [ ]

올해 87세인 나의 어머니는 매일 일정한 걷기운동을 하고 때로는 부엌에 내려가 불도 지피고 밥도 짓고 간단한 손빨래도 하군 하면서 건강하게 지내신다.

옛날 가난때문에 학교문앞도 못 가보신 어머니는 해방후 야학에서 셈정도를 배웠지만 기억력이 좋아 내가 뒤늦은 귀가라도 할 때면 꼭꼭 11개나 되는 이동전화번호를 눌러 내가 무사함을 확인하군 한다. 그때마다 나는 참 이런 어머니가 계심으로 하여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2년전 나는 퇴직을 하고 한국 로무현장에 가 일을 하게 되면서 어머님을 연길에 살고있는 녀동생네 집에 부탁하였다. 7층에 살고있는 딸집에 살게 된 어머니는 적당한 운동이라도 하려면 딸한테 부담을 주는것이 싫어 아예 모든 운동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어머니는 머리병, 허리병이 도지고 약을 떨굴새 없었으며 걷지를 않으니 다리심줄이 줄어들면서 기여다니다싶이하였다.

내가 한국에서 일하면서 저녁이면 어머니가 걱정되여 문안전화라도 드리면 어머니는 《사람이 좀 땅을 딛고 살자》며 7층아빠트생활에 하루가 극난스러워하시였다. 하루 빨리 농촌집에 돌아가 땅을 딛고 살겠다고 하소연을 끝도 없이 하시는것이였다.

마침 집안에 사정이 생겨 귀국하게 된 나는 이튿날로 어머님 모시러 갔다. 어머니는 다리맥이 풀려 걷지를 못하셨다. 나는 어머니를 업고 증계를 내려 겨우 택시에 모시고 60리 길을 달려 의란 농촌마을에 당도하였다. 다음날 나는 당장 시장에 가 밀차를 사다 어머니앞에 놓아드렸다. 한국에서 80이 넘은 로인들은 밀차를 밀고다니며 적당한 운동을 하는것을 많이 보아왔던 차라 어머니더러 집안에서 밀고다니며 적당히 움직이도록 하였다. 그렇게 조금씩 걷기 시작한 어머니를 또 밖에서 지팽이를 짚고 걷도록 부축해드렸다. 그랬더니 지금은 아예 지팽이 없이도 동네마실을 다니시군 한다.

어머니는 지금 그 년세에 돋보기도 없이 구멍난 장갑을 바느실로 꿰매기도 하고 귀도 밝아서 시집간 딸들과 손자손녀들한테서 안부전화라도 오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제법 말씀도 잘하신다. 어머니는 또 며느리복까지 있으셔서 아량 넓은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다툼 한번 하지 않다보니 어머니는 우선 안정된 생활을 하신다.

거기에다 본인이 쉽게 화를 내지 않고 남들한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며 식사를 고르게 하고 가리는 음식이 따로 없다. 저녁이 되면 꼭꼭 따뜻한 물에 발을 씻고 주무신다. 혹 각별히 기분이 좋으실 때는 와인도 몇잔씩 마신다. 어머니는 날이 어두워져 집안 식구들이 다 들어서면 꼭꼭 바깥 출입문을 잠그고 시름놓고 주무신다.

지난해 설에도 천진에서 아들며느리, 딸사위가 자식들을 거느리고 로인앞에 와 큰절 올리며 설을 쇠노라니 4대가 모인 우리 집안은 말그대로 잔치집이였다. 60이 넘은 안해는 주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볶고 지지면서도 힘든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니 집안에서는 웃음소리 떠날줄 몰랐다.

/장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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