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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민간료법으로 일본에서 인정 받은 사나이

편집/기자: [ 차영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4-02-12 15:33:32 ] 클릭: [ ]

중국민간부항료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특수경혈료법을 개발해 일본에서 환자들의 고통을 해소해주어 이름을 떨친 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길림출신 최영환씨다.

2000년대초 일본에서 최씨의 치료를 받고 효험을 본 환자가 적은 체험담이 인터넷에서 퍼지면서 일본 전국 각지로부터 환자들이 찾아왔다.《항생제를 포함한 약물치료는 근본적인 치료가 어렵다는 점과 부작용 또한 홀시 못하겠지요.우리들의 인체는 분명히 생명활동을 유지시켜주는 자동조절기능장치가 있답니다. 그 자동조절기능을 관장하는 인체의 자률신경 즉 식물신경이 혼란을 일으켜 인체에 각종 질병이 찾아온다고 볼수 있어요. 본 료법은 인체의 특수경혈(생명황금혈)에 대한 흡각치료(부항)를 통해 자률신경을 정상화시킴으로써 내장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혈액순환을 개선시키며 내분비 조절하고 체온과 협압을 정상으로 되돌린답니다. 현대의학에서 원인불명인 잘 고쳐지지 않는 병에 대해 저의 특수료법으로 도움줍니다.》 최영환씨가 자기의 흡각료법에 대한 그 나름의 정의다.

시골출생의 청년-최영환 치료의 길을 묻다

1959년 길림시 반석 명성의 어느 시골에서 출생한 최영환씨는 장춘생물제품연구소학원(개칭후:길림성병원위생학교)을 졸업하고 길림시철도병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철도병원 검사과에서 일하게 되였는데 최영환씨는 오히려 침구안마에 관심을 가졌다. 하여 천진 중화침구진수학원을 3년간 독학한 끝에 결국 본 병원의 침구안마과에서 일하게 되였다.

《저희 집안에 환자가 많았어요. 부모님들도 농사일을 하시다보니 팔다리 관절염이 심했을뿐더러 심장병까지 앓고있었죠. 그때 그 시절에는 농촌에서 출세하는 길이 대학가는 길뿐이라 저 역시 대학입시에 골을 싸매고 몰입하면서 엄중한 수면장애증에, 신경쇠약에 몹시 시달렸죠. 그리고 만성위염에 발목관절뼈증생으로 나중엔 걸음걸이마저 절름거릴 정도였으니 내 몸건강을 위해 침구치료의학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하지만 90년대초 하해열풍은 최영환씨의 마음도 흔들었다. 1993년 그는 무급여휴직을 결정했고 로씨야 출국길에 올랐으며 또 1997년에는 일본으로

중국민간료법 토대 생명황금경혈 흡각료법 독창

《일본말 한마디 할줄 모르는 주제에 초창기 일본에서 고생 좀 했답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온천료양원으로 일자리를 옮겨서 맛사지를 하게 되였는데 차츰 그의 독특한 안마법은 손님들한테 인정을 받게 되여 예약손님이 줄을 지을 정도였다.

일본의 한 라지오 방송에 출연중인 최영환(좌1)

경추병이며 팔다리관절병, 천식병, 과도피로증후증을 앓는 일본인들이 주위에 상당수였다. 최영환씨는 이들의 치료에 도움을 줄수 있는 방법이 없을가 고민하던차 자신만의 특수치료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최씨는 스스로에 실험을 했다. 자신을 괴롭히고있던 귀울림현상이 치료를 통해 사라지고 숙면을 취할수 있게 되였고 발목관절이 갈수록 악화되여 인공관절을 해야 된다는 주위의 권고가 나올 정도였는데 수개월의 특수료법 흡각치료로 그의 건강은 눈에 띄게 호전을 안아왔다. 그는 자신만의 료법을 특수경혈 즉 생명황금경혈에 대한 흡각치료법이라고 이름지었다.

자신감이 생긴 최영환씨는 온천료양원 근무 일년만에 사표를 내고 미엔갱 현소재지에《특수혈위치료원(特殊穴位治疗院)》을 개업했다.온천료양원시절 단골의 소개로 급성허리접질림으로 누워서 들어온 환자가 그의 흡각치료를 받아 당장에 서서 걸어나가는 일이 벌어져 최영환씨는 돌파구라도 찾은 느낌이였다. 하지만 기타 병에는 크게 령험한 효과를 보지 못해 그는 탐구와 실험을 계속해나갔다.고심히 연구를 거듭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황금경혈 흡각료법은 차츰 완성도를 높여갔다.

어느날 지인의 소개로 무릅관절 수술예약까지 한 환자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래기 잡는 심정으로 그를 찾아왔다. 3차 치료를 통해 환자는 지팽이를 버렸고 수개월 치료후엔 수술예약을 취소했다.

일본사회는 빠른 생활의 절주와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는 환자가 많았다. 지인의 부탁으로 찾아온 환자는 나젊은 아가씨였는데 대학졸업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고있었다. 최영환씨는 우선 환자의 불면증을 해소시켜 잠을 잘 재우도록 하는것부터 시도해보자고 생각했다. 몇번의 치료후 약물도움 없이 잠을 잘 자게 되였다는 아가씨, 수개월의 치료를 거쳐 환자는 다시 본직장으로 복귀하게 되였다.

최영환과 그가 중국민간료법을 토대로 독창한 생명황금경혈 흡각료법은 일본 환자들에게 신비한 중국민간료법으로 인정 받게 되였다.

귀국후 《백통경락당》 창업,고향에 보답

불과 수년만에 일본에서 성공가도에 오른 최영환씨, 하지만 일본에 장기정착할 생각은 없었다. 2007년 최영환씨는 일본생활을 접고 귀국을 선택했는데 이는 그의 일본생활 10년째였다.

환자를 진료하고있는 최영환

그리고 귀국 6년만인 2014년 1월 1일 새해벽두에 길림시에 《백통경락당》을 개업하게 된 최영환씨, 그 동안 직장 출퇴근문제도 걸려있고 했었다며 좀 늦었지만 이제부터는 일본에서의 영광을 길림고향사람들에게 돌려 보답할 때라고 하는 그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린다.

백통경락당 련락전화:159-4425-3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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