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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기 동지 서거

안상근      발표시간: 2026-08-13 13:52       출처: 新华社 选择字号【

중공중앙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정협 부고

주용기 동지 서거

주용기 동지의 일생은 혁명의 일생이고 분투의 일생이며 빛나는 일생이고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공산주의 사업을 위해 헌신한 일생이였다.

[북경 8월 12일발 신화통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는 비통한 심정으로 선고한다.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며 오랜 시련을 겪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이며 걸출한 무산계급 혁명가이며 정치가이며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이며 중국공산당 14기, 15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며 국무원 전임 총리인 주용기 동지가 병환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2026년 8월 12일 11시 6분 북경에서 9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주용기 동지는 1928년 10월 호남성 장사시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8년 12월에 혁명사업에 참가했고 1949년 10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는 청소년시절부터 조국을 열애하고 열심히 학습하며 진보를 추구하고 나라에 보답하려는 굳은 의지를 품었다. 1947년부터 1951년까지 청화대학 전기공학및전자응용기술학부 전기기계제조전업에서 학습했고 ‘신민주주의청년련맹’에 가입했다. 1951년부터 1952년까지 동북공업부 계획처 생산계획실 부주임 직무를 담임했다. 1952년부터 1958년까지 국가계획위원회 연료동력국, 종합국 조장, 국가계획위원회 주임판공실 부처장, 국가계획위원회 기계국 종합처 부처장을 력임했다. 1958년부터 1969년까지 국가계획위원회 간부업여학교 교원, 국민경제종합국 공정사를 력임했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 국가계획위원회 ‘5.7’ 간부학교에 하방되여 로동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석유공업부 배관국 전력통신공정회사 판공실 부주임, 부주임 공정사, 중국사회과학원 공업경제연구소 주임을 력임했다. 1979년부터 1983년까지 국가경제위원회 연료동력국 처장, 종합국 부국장, 기술개조국 국장,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을 력임했다. 1983년부터 1987년까지 국가경제위원회 부주임, 당조 성원, 국가경제위원회 부주임, 당조 부서기를 력임했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상해시 당위 부서기, 시장, 시당위 서기를 력임했다. 그는 상해시는 공업구조를 조정하고 새로운 발전우세를 재구축하며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외향형 경제 발전의 길을 걸어나가야 한다고 제기했으며 포동의 개발개방을 실질적인 가동 단계로 이끌어 상해의 가일층 개혁개방과 발전을 위해 견실한 기반을 마련했다. 1991년 주용기 동지는 국무원 부총리 겸 국무원 생산판공실 주임, 당조 서기를 맡고 국무원 경제무역판공실 주임, 당조 서기를 겸임했으며 전기기계에너지, 철도 교통, 야금 화학공업, 경공업 방직 등 사업을 분관했다. 1992년 10월 주용기 동지는 중국공산당 제14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에서 중앙정치국 위원, 상무위원으로 당선되여 국무원 상무 사업을 책임졌다. 1993년 6월 중국인민은행 행장을 겸임했다. 그는 등소평 동지의 남방담화정신을 적극적으로 선전, 관철하고 14차 당대회 정신을 관철, 시달했으며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을 힘써 추동했다. ‘삼각채무’ 정리를 조직 및 전개하고 근본과 근원을 함께 바로잡는 데 립각하여 기업의 경영 활력을 증강시켰다. 거시적 조정을 강화하고 개선하는 사로와 조치를 연구 제정하고 인식을 가일층 통일시켜 경제 과열을 바로잡고 통화팽창을 억제했으며 ‘연착륙’을 실현하기 위해 성과가 탁월한 많은 사업을 펼쳤다. 재정세무 질서를 힘써 정돈하고 재경 규률을 엄격히 했으며 세수 징수 관리를 강화하고 재정세무 개혁을 다그쳤으며 금융 조정 체계를 보완했다. 량곡 가격과 구매 및 판매 체제 개혁을 추동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 요구에 부합되는 량곡 구매 및 판매 체제를 구축했으며 농민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대규모 재배호 도급제를 실행하고 적절한 규모 경영을 발전시켰다. 1997년 9월, 주용기 동지는 중국공산당 15기 중앙위원회 1차 전원회의에서 중앙정치국 위원, 상무위원으로 재차 당선되였다. 1998년 3월, 9기 전국인대 1차 회의에서 그는 국무원 총리로 임명되였고 후에 국무원 당조 서기를 담임했다. 아시아 금융위기의 충격과 국내 특대 홍수재해에 직면하여 그는 당중앙의 포치에 따라 적절한 긴축성 재정 및 통화 정책을 시행하던 방식에서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온건한 통화 정책을 시행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국내 수요 확대에 힘을 쏟고 중점분야의 개혁을 심화시켜 경제의 안정적이고 쾌속적인 성장을 유지했다. 산업 구조, 지역 구조, 도농 구조를 전면적으로 조정하고 첨단기술산업 특히 정보산업을 적극 발전시켰으며 현대 봉사업의 신속한 발전을 적극 지원하여 경제 성장의 질과 효익을 힘써 향상시켰다. ‘3농’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두드러진 위치에 올려놓고 지역 실정에 맞게 농업 구조조정을 추진했으며 농촌의 빈곤층 방조부축과 개발을 강화하고 도시와 농촌의 조화로운 발전을 촉진했다. 대외개방을 확대하고 수출을 격려하는 일련의 정책조치를 취해 인민페의 평가절하를 방지하고 시장 다원화 전략과 품질로 승리를 거두는 전략을 실시했으며 외자를 적극 유치하고 국내와 국제 두 시장, 두 자원을 더 잘 활용하고 향항국제금융쎈터의 번영과 안정을 견결히 수호했다. 생태환경 보호와 건설 강도를 높이고 토지, 광산 등 자원에 대한 관리를 강화했으며 힘을 모아 중점 류역 및 지역 등의 오염을 치리했다. 국유기업 정리실업종업원의 기본생활보장, 실업보험, 도시 주민 최저생활보장 제도를 구축하고 종업원 로임 체불 및 정리실업종업원의 재취업 등 문제 해결을 위해 큰 공을 들였다. 정부 직능을 지속적으로 전환시키고 정부 기구의 개혁을 추진했으며 정부 자체건설을 힘써 강화했다. 국무원 총리 직무를 담임한 후 주용기 동지는 선후로 중앙전문위원회 주임, 국가경제체제개혁위원회 주임, 국가과학기술교육지도소조 조장, 국무원 삼협공사건설위원회 주임, 국가국방동원위원회 주임, 국무원 서부지역개발지도소조 조장 등 직무를 겸임했고 경제체제 개혁, 과학기술, 교육, 서부대개발, 국방공업 등 분야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주용기 동지가 국무원 부총리와 국무원 총리 직무를 담임하던 기간 우리 나라는 계획경제 체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관건적인 시기에 처해있었다. 강택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확고한 령도하에 그는 재정세무체제 개혁을 주도해 마무리하고 공평한 세금부담과 간편화된 세금제도를 핵심으로 하는 중대한 세무제도 개혁을 전면적으로 실시했으며 중앙과 지방의 사무권한을 합리하게 획분하는 전제하에 분세제(分税制) 재정체제를 실행하고 농촌 세금비용개혁 시험점을 진행했다. 그는 금융체제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중앙은행의 직능을 가일층 규범화했으며 상업은행, 외환제도, 증권선물시장 등 개혁을 심화하고 전국적으로 통일되고 개방되며 질서 있게 경쟁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는 금융시장체계의 구축을 추동했다. 그는 국유기업 개혁을 경제체제 개혁의 중심으로 삼고 ‘재산권이 분명하고 권력과 책임이 명확하며 정부와 기업이 분리되고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요구에 따라 현대 기업제도 건설을 다그쳤으며 전략적으로 국유경제의 배치를 조정하고 국유기업을 구조 조정했으며 백방으로 실업일군들의 재취업을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사회보장체계 건설을 강화했다. 그는 주택제도 개혁을 추진하여 주택분배 화페화를 단계별로 실행했으며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주택을 주체로 하는 다차원 도시주택 공급체계를 건립하고 보완했다. 그는 량식류통체제 개혁을 지속적으로 심화하고 보호가격으로 농민들의 여분 량곡을 수매하며 국유량곡 구매, 판매 기업들이 매입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량곡 수매자금의 페쇄운행을 실행하며 주요판매지역의 량곡수매 시장과 가격을 점차적으로 개방하도록 했다. 또한 그는 사회보장체제, 의약위생체제, 투자융자체제 등 일련의 중대 개혁들을 주도하여 실시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기본구도의 건립을 추동했으며 우리 나라가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는 간고한 담판을 주도하고 대외개방의 범위와 깊이가 확장되도록 촉진했다. 주용기 동지는 인민대중에 대해 깊은 정을 품고 있으며 정부의 사업일군들은 자신이 인민의 공복임을 명기하고 진실을 과감히 말하며 미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특수화를 부리지 않으며 강렬한 책임담당으로 중임을 주동적으로 떠메고 어려운 난제를 과감히 해결함으로써 인민대중들을 위해 실질적인 일을 하는 것을 전력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3년 3월 주용기 동지는 더 이상 국무원 총리 직무를 담임하지 않았다. 지도일터에서 물러난 후 주용기 동지는 호금도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중앙을 확고하게 옹호하고 지지했고 습근평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을 확고하게 옹호하고 지지하였으며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사업을 줄곧 관심하였고 당풍, 렴정 건설과 부패척결 투쟁을 확고하게 지지했다.

주용기 동지의 일생은 혁명의 일생이고 분투의 일생이며 빛나는 일생이고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공산주의 사업을 위해 헌신한 일생이였다. 그의 서거는 당과 국가의 중대한 손실이다. 우리는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그의 혁명정신과 숭고한 품덕, 우량한 작풍을 학습하고 습근평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하며 ‘두가지 확립’의 결정적 의의를 깊이있게 터득하고 ‘네가지 의식’을 증강하며 ‘네가지 자신감’을 확고히 하고 ‘두가지 수호’를 실행하며 신심을 확고히 하고 일심협력하여 중국식 현대화로 강국건설, 민족부흥의 위업을 전면 추진하기 위해 단결 분투해야 한다.

주용기 동지는 영생불멸하리라! 

编辑: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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