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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 > 로인녀성

105세 아버지 곁을 지키는 65세 막내아들의 효심

정현관      발표시간: 2026-08-14 11:56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온 4년여의 간병 ... 아버지의 사랑을 이어가는 따뜻한 울림

지난 12일, “105세 부친을 극진히 보살피는 65세 효자가 있다.”는 시민 제보를 받고 기자 일행이 찾아간 장춘시 남관구의 한 아빠트 9층.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해빛이 환하게 비쳐드는 남향 침실 병상에 105세 김훈봉옹(1921년 2월생)이 조용히 누워있었다. 그 곁에서 65세 막내아들 김희용이 아버지의 수발을 들고 있었다.

로인이 4년 넘게 병상에 누워있는 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집안에는 불쾌한 냄새가 전혀 없었다.

“아직도 아버지를 따라가지 못합니다”라는 효자

2022년 부인 전옥순녀사가 92세로 세상을 떠난 후 알츠하이머로 여러해 동안 고생하던 김훈봉옹은 같은 해 7월부터 병상에 누웠다. 부부는 슬하에 3남 3녀, 모두 여섯 자녀를 두었다. 형님과 누나들도 년로하고 잔병이 많아 여건상 아버지를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여서 막내인 자신이 줄곧 아버지의 병간호를 도맡고 있다고 김희용은 말했다.

김희용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아침식사를 준비한 뒤 6시 반에 출근하는 안해를 뻐스역까지 배웅하고 7시 쯤 아빠트단지로 돌아와 조깅을 한다. 10키로메터가량 달리고 오전 8시 쯤 집에 돌아오면 곧바로 아버지의 몸을 깨끗이 닦아드리고 뇨관을 소독한 뒤 아침식사를 챙긴다.

잘게 으깬 만두소와 계란 노란자위를 입쌀죽에 섞어 한술 한술 천천히 아버지의 입에 넣어드린다. 오전 11시 반 쯤 자신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면 12시 반부터는 다시 아버지의 식사를 챙긴다. 우유와 바나나를 기본으로 황도복숭아 등 제철 과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1985년 교사절 기념사진(앞줄 왼쪽 세번째가 김순봉)

한시간가량 낮잠을 자고 나서는 시장에 나가 신선한 채소와 질 좋은 고기를 골라 장을 본다. 오후 3시 반이면 아홉살 난 손주를 마중해 집에서 함께 놀아주다가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오후 5시 쯤 며느리가 퇴근할 때면 손주를 근처에 사는 아들 집에 데려다주고 오후 6시에 다시 아버지의 저녁식사를 챙긴다. 메뉴는 아침식사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매일 계란 두개는 기본이다.

밤 10시 쯤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2시께 일어나 아버지의 수면 자세를 바꿔드린다. 평균 4시간에 한번씩 왼쪽, 바로, 오른쪽으로 자세를 바꿔드리고 일회용 기저귀도 하루 네개 정도 교체한다. 이틀에 한번씩 뇨관을 뽑고 배변을 받아낸 뒤 물티슈로 아버지의 몸을 깨끗이 닦아드린다.

1980년, 교육사업 참가 30돐 기념사진(뒤줄 왼쪽 첫번째가 김순봉)

평소 아무 말 없이 누워있다가도 막내아들이 자세를 바꿔드릴 때면 아버지는 간혹 “으윽, 아프다!”라고 짧게 한두마디 남긴다.

김희용이 간혹 동창모임으로 두어 시간 자리를 비우면 안해가 묵묵히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대신한다.

김희용은 2009년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왔다. 부모님을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그의 ‘주방장’ 경력도 어느덧 18년째다. 그의 음식 솜씨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해마다 대여섯차례 열리는 가족 모임에서도 온 가족의 한결같은 칭찬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열여섯살에 압록강을 건넌 105세 리직간부

1937년, 열여섯살 소년 김훈봉은 부모와 두 녀동생을 데리고 고향인 조선 평안도 영천군에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왔다. 이통현국립고중을 졸업한 그는 1948년 토지개혁 시기 이통현정부에서 문서(文书) 업무를 맡으며 정식으로 사업에 참가했다.

이후 이통현 신립성향(新立城乡, 현재의 장춘시 남관구 신립가두) 선봉소학교에서 30여년간 근무했으며 1981년 교도주임으로 정년리직했다.

김훈봉옹의 구순잔치 가족사진

김훈봉옹의 구순잔치 가족사진

“항렬에서 맏이인 아버지는 교육자로서 동생과 자식들의 문화와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자식들에게도 늘 사람은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자녀를 모두 장춘시조선족중학교에 보내 우리글을 숙련하도록 하셨습니다.”

김희용이 어린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버지는 저희 형제자매가 공부에 게을리하면 버드나무가지로 만든 회초리로 종아리를 사정없이 후려치셨습니다.”

당시에는 왜 아버지가 그렇게 엄격한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도 부모가 되고 나니 그 마음을 조금씩 리해하게 됐다.

“아버지가 가장 자랑스러워하신 것은 자식들이 잘살아가는 것이였습니다.”

김훈봉옹은 여섯 자녀가 모두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다하며 살아가는 것을 가장 큰 자랑으로 여겼다고 한다.

젊은 시절 김훈봉과 전옥순녀사

자식들의 기억 속 부모님은 ‘잉꼬부부’

막내아들이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고 따르는 데는 특별한 리유가 있다. 바로 어머니를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정말 잘하셨습니다.”

김훈봉옹은 퇴직한 후부터 부인 전옥순녀사가 2022년 9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여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저녁 따뜻한 물을 떠다가 안해의 발을 씻겨주고 마사지를 해주었다고 한다.

평소 자녀들에게는 엄격했던 아버지였지만 한평생 농사를 지으며 고생한 안해에게 만큼은 깊은 사랑을 보여주었다.

이 기억은 지금 막내아들이 아버지를 돌보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김훈봉, 전옥순 로부부와 막내아들 김희용

“비록 제가 지금 아버지를 돌보고 있지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신 것 만큼은 따라가지 못합니다.”

김희용은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손재주도 좋으셨습니다. 어머니가 필요하다고 하면 발마사지 기계도 직접 만들어주셨습니다.”

김훈봉옹을 향한 가족의 사랑은 다음 세대로도 이어지고 있다. 김희용의 아들은 현재 한국에서 일하면서 매년 설이면 할아버지에게 새옷과 새 신발을 준비해 보내고 있다. 증손자 역시 할아버지를 따르며 가족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김훈봉, 전옥순 부부

김훈봉옹이 평생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족과 교육의 가치는 자녀와 손자 세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105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온 김훈봉옹은 이제 많은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막내아들 김희용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배움의 대상이다. 가족을 책임지는 마음, 배우자를 아끼는 마음, 자녀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마음. 이 모든 것을 아버지는 말이 아니라 평생의 삶으로 보여주었고, 아들에게 전해주었다.

건강관리를 철칙으로 지켜온 장수 로인

“1981년에 리직하신 후 아버지는 우리말 잡지를 즐겨 주문해 읽으셨으며, 특히 1985년 《길림신문》이 발간된 후부터는 편찮으시기 전까지 수십년 동안 꾸준히 주문해 보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건강정보와 관련된 유용한 내용은 가위로 오려 고이 보관해놓고 열심히 따라 하셨습니다.”

큰딸 김애실은 40여 년 전의 아버지를 이렇게 회고했다.

김훈봉옹과 전옥순 녀사 그리고 6명의 자녀들

식사 때 과식하지 않았고 과일과 채소를 골고루 섭취했으며 한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따뜻한 물로 어머니의 발을 씻겨주는 일도 신문을 읽고부터 시작되였지요.”

김애실은 아버지가 평소 건강관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설명했다.

“90대 후반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조금 높게 나왔지만 입원할 정도는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진해 난생처음 입원치료를 받으셨다가 불과 이틀 만에 ‘로친이 보고 싶어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김애실은 아버지에게 강한 장수 유전자가 있는지는 딱히 모르겠지만 건강관리를 잘한 덕분에 101세에 쓰러지기 전까지 줄곧 건강했다고 말했다.

사회에 긍정에너지를 전하는 가족의 귀감

김애실은 막내동생이 그동안 부모님을 잘 돌봐온 덕분에 해마다 형제자매들이 아버지의 생신과 중요한 명절을 맞아 대여섯차례씩 모이지만 가족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가 젊은 시절 자녀들에게 엄격하게 요구했던 가르침 덕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최근 몇년간 100세 리직간부 김훈봉로인에 대한 장춘시 관련 부문의 관심과 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시와 구 조직부문에서는 종종 위문금을 보내오고 안부를 묻고 있으며 그가 몸담았던 학교에서도 꾸준히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구역 식당에서 90세 이상 로인들에게 무료로 점심식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수발을 들고 있는 막내 아들 김희용

김학철씨는 김희용과 몇년간 직장 동료로 지낸 것을 시작으로 수십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막역한 사이다. 그리고 이번 ‘시민 제보자’이기도 하다.

김학철씨는 료리라고는 할 줄 모르던 김희용이 18년째 부모님을 모시면서 ‘주방장’이 되여 부모님의 식사를 책임지고 특히 100세가 넘은 아버지를 지난 몇년 동안 전업 간병인 못지 않게 지극정성으로 돌봐온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수천년 동안 전해내려온 중화민족의 효도 문화를 실천으로 몸소 이어가면서 사회에 긍정에너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김희용의 효행을 높이 평가하며 이런 미풍량속이 세세대대로 이어져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길림신문 유경봉, 정현관, 김명준 기자


编辑:유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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