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삼민
과거를 생각하면 지난세기 60년대 초 우리 집 이웃이였던 류병룡 로지서의 얼굴이 떠오른다.
1961년 봄, 산동성 조현에서 수백 명의 이주민을 우리가 살고있는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로 집단 이주시켰다. 당시 공사 지도부에서는 이주민들의 식사와 숙소를 비롯한 구체적인 업무를 류병룡 로지서에게 맡겼다. 그는 늘 책임감이 강하고 지혜롭게 처신하는 사람이였다. 그는 30여 명의 녀성들을 조직해 대형 트럭에서 내린 200여 명 이주민들의 짐을 풀게 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두부국을 대접했으며 빈집들에 림시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이튿날부터 길가 아무 데나 대소변을 보는 일과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했다. 사원들이 찡그린 얼굴로 류지서에게 불만을 토로하자 그는 이주민들을 찾아가 꾸짖기보다는 오히려 사원들을 조직해 길가에 공동 변소 열 개를 짓고 이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이를 리용하도록 유도했다.
그해 여름, 아침밥을 먹고 학교로 가는 길이였는데 류지서네 집 뒤뜰에서 시끄러운 다툼 소리가 들렸다. 사연은 이러했다. 류지서네 집과 산동에서 갓 이주한 왕씨 집은 수수대로 엮은 울타리로 경계를 나누고 있었는데 왕씨 집 녀인이 울타리를 뜯고 넘어와 탐스러운 오이를 훔친 것이 발단이였다. 류지서의 안해가 목청을 높이며 “왜 우리집 오이를 훔쳤어!”라고 소리쳤고 왕씨집 녀인은 “당신이 내가 훔치는 걸 봤소?”라며 발뺌했다. 소란이 커지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나서서 말리는 이는 없었다.
바로 그때,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온 류지서가 사연을 듣고는 오이를 한 바가지 가득 따다가 왕씨집 녀인에게 건네며 “이걸 가져다 먹게”라고 말했다. 그 순간, 왕씨집 녀인은 얼굴이 붉어져 어쩔 줄 몰라 했다. 이튿날 아침, 그녀는 따뜻한 물만두를 빚어 류지서 집을 찾아와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다. 그 뒤로 두 집은 명절마다 조선족 찰떡과 한족 물만두를 서로 나누며 정겹게 지냈다.
1964년 사회주의 교육운동이 한창일 때, 한 농민이 없는 죄를 날조해 류지서가 집체 공금을 횡령했다고 공작대에 고발했다. 공작대 지도원이 류지서에게 사실 여부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공산당원으로서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발한 사람을 꾸짖지 말아 주십시오. 있을 법한 일이면 고치고 아니라면 군중의 의견을 거울로 삼으면 됩니다.”
2년 후, 류지서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 날, 50여 명의 산동 이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그의 상여를 메고 공동묘지까지 옮겼다. 무덤을 파고 하관을 마치고 마지막 제사를 지낼 때, 전에 오이를 훔쳤던 왕씨 녀인이 류지서의 령전에 술을 올리며 절을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류지서,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였어요. 하늘나라에 가서도 편히 잘 계세요.”
류지서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언 60여 년 세월이 흘렀다. 내 팔십 인생의 기억 속에 묻힌 많은 추억들이 하나둘 희미해져 가지만 하늘보다 넓은 마음으로 백성을 품고 갈등 앞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며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모범으로 사람을 감화시킨 류지서의 지혜로운 처신은 지금까지도 깊은 울림을 주면서 잊혀지지 않는다.

리삼민 프로필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 출생
동녕현조선족중학교와 삼차구조선족진정부에서 사업하다가 2006년에 퇴직
현재 대련시에 거주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