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선애

1970년 가을, 소학교때 소꿈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앞줄 왼쪽이 필자)
나에게는 50여 년째 소중히 간직해 온 사진 한 장이 있다.
1970년 가을, 연길에서 찍은 이 사진은 1960년대 룡정에서 소학교 4년을 함께 다녔던 소꿉친구들과의 우연한 만남을 기록한 기념물이다. 그날의 만남이 있었기에 우리의 인연은 이어질 수 있었다.
1955년 왕청에서 태여나 연길에서 첫돌을 맞은 나는 1961년 겨울, 룡정으로 이사했고 이듬해 룡정중심소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우리 집은 중심소학교와 담 하나를 사이둔 지금의 미식거리에 있었고 같은 동네에 사는 김영자, 윤향란, 차옥련과 한 반이였다. 우리는 함께 등교하고 방과 후에는 집집마다 돌면서 숙제를 하고 뜨개질도 배우면서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1966년 5월 말, 연길로 다시 이사 오면서 룡정을 떠나게 된 나는 4년간 정든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에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이 얼굴도 그리워할 수 없었고 친척도 없는 룡정에 놀러 가자고 떼쓸 수도 없어 몇 년 동안 속앓이만 했다.
그러던 1970년 8월, 연길시2중 체육관에서 전주 중학생 배구경기가 열렸다. 경기라면 빠지지 않고 보러 다니던 나는 그날도 오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경기 전 훈련에 땀흘리고 있는 연길현(지금의 룡정시) 팀 선수들 사이에서 낯익은 차옥련의 얼굴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간 나는 혹시 알아보지 못할까 봐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혹시 차옥련 아니에요?"
그런데 상대방이 나를 단번에 알아보고는 "너 선애구나!"라며 반색하며 말했다.
"나 좀 전에 향란이랑 영자도 봤어. 걔네도 배구구경 왔더라. 우리 나중에 만나자!"
이렇게 룡정2중에 다니는 영자와 옥련, 팔도에 내려간 향란이까지 우리 넷은 4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너무 반가워 손을 놓지 못했고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날의 뜻깊은 만남을 계기로 우리의 인연은 끊겼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60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어져 내려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연길현 팔도공사 오봉대대에서 집체호생활을 하던 시절, 나는 공사마을에 갈 때마다 향란이네 집에 드나들었다. 1978년 룡정의 연변사범학교에 다닐 때는 영자의 신세를 톡톡히 졌다. 당시 룡정진은 자주 정전이 되고 수도물도 나오지 않아 불편이 많았는데 아침에 마실 물조차 없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침 일찍 이미 결혼한 영자네 집으로 달려갔고 영자는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내가 가져간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주었다. 때로는 맛있는 반찬도 챙겨주기도 했다.
졸업 후 로두구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연길로 전근해오고 결혼하여 두 아들을 키우면서 룡정 친구들과의 련락이 여러 해 끊긴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길 서시장 화장품 매대 앞을 혼자 지나가는데 뒤에서 "아줌마, 아줌마" 하는 녀자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아는 사람이 없는데, 설마 나를 부르는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화장품 매대 주인이 환성을 질렀다.
"선애야, 맞구나! 혹시 잘못 부를까 봐 이름을 못 부르고 있었어..."
"어머나, 영자야, 너 어떻게 여기에 있어?"
알고 보니 룡정의 식당에서 일하던 영자가 하해하고 연길 서시장에 화장품 매대를 낸 것이였다. 그 뒤로 나는 서시장에 갈 때마다 영자네 매대에 들러 한참씩 수다를 떨군 했다. 그러나 영자가 그후 매대를 정리하고 이사를 가면서 다시 련락이 끊겼고 나도 해외 출장과 가정사로 바쁘게 지내며 친구들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2005년 여름, 룡정 취재길에서 우연히 한 녀성기업가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였다. 그런데 그분이 나와 같은 중심소학교 동기임을 알게 되였고 서로 학급 이야기를 나누면서 옛 친구 차옥련, 윤향란, 김영자 등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게 되였다. 그 인연으로 며칠 후에는 차옥련네 가게에서 40년 만에 김월순, 전애란, 백향숙, 박선숙, 차영옥, 박금순 등 여러 동창들과 다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동창 모임, 들놀이, 자녀들의 결혼식, 손주들의 돌잔치에 함께하고, 때로는 모여서 고추순대와 입쌀만두 등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소꿉친구들과의 인연을 본격적으로 이어가기 시작했다. 1970년에 찍은 흑백사진이 너무 고맙고 소중해서 네 사람이 다시 함께 사진을 찍어 영원한 기념을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좀처럼 모두 함께 모이기 어려워 아쉽게도 향란이와 옥련이까지 셋이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소꿉친구 셋이서 어른이 되고나서 남긴 기념사진(뒤줄 왼쪽이 필자)
그때 찍은 사진도 벌써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언 우리 모두 70고개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위챗방에서 안부를 나누고 해마다 3.8절, 아버지날, 로인절을 함께 보내며 황혼을 즐기고 있다.
돌아보면, 그 한 장의 흑백사진은 단순한 추억의 조각이 아니였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뛰여넘어 우리를 다시 이어준 인연의 실마리였고 흩어졌던 우정을 하나로 묶은 마법의 끈이였다. 얼굴에 주름이 지고 머리카락이 희여졌어도,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와 웃음은 그 시절 그대로다. 인연은 기억하는 자의 몫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잊지 않았기에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지금도 함께 할 수 있다. 앞으로 남은 날들이 얼마든, 그 옛날처럼 함께 웃고 기뻐하며 이 소중한 인연을 마지막 한순간까지 놓지 않으리라.
사진 한 장이 준 선물, 그걸로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다.

채선애 프로필
1955년생
1980년부터 《연변일보》, 《연변라지오텔레비죤신문》, 연변 《로인의 벗》신문 등에서 교정원, 편집, 기자로 근무
2010년 정년퇴직
연변작가협회 수필분과 회원, 연변녀성문인협회 회원, 연변가사협회 회원.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