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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이야기41]둘째 형수님

안상근      발표시간: 2026-07-07 13:16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최장춘

얼마 전 해외에 있는 딸집에 가 계신 둘째 형수님이 위챗을 통해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병환으로 앓고 계신다더니 무척 쇠잔한 모습이였다. 눈빛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나 머리는 하얗게 세여 버리고 피기 없는 얼굴이 아주 창백했다.

둘째 형수님이 최씨 가문에 시집온 건 지난 70년대 중반이였다. 겨울철에 첫날 치마저고리를 입고 꽃너울까지 쓴 둘째 형수님은 눈꽃처럼 하얗게 아름다웠다. 곤색 중산복 차림새를 갖춘 형님(최건)은 그저 기뻐서 싱글벙글 웃었다. 저녁에 이르러 25평짜리 비좁은 집안에서 형님의 동창들이 오락판을 벌렸다. 형수님은 일부러 형님이 지은 노래를 불렀다. "장백산 기슭을 굽이치는 해란강 물은 산줄기를 타고 넘어 대채전을 감도네..." 부드럽고 순후한 목소리에 곡조를 잘 넘겨 모두가 가수 못지않다고 박수치며 한 곡 더 요청했다. 형님은 "얼씨구, 절씨구" 추임새에 맞춰 흥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나는 처음에 미인 용모를 갖춘 형수님이 매끄럽고 까다로울 줄 알았다. 그러다 점차 시집쪽 일을 두루 요량있게 처리하는 걸 보고 아주 사리 밝고 인정이 많음을 느꼈다. 간혹 형님네 집을 찾아가면 형수님은 늘 술안주 삼아 물만두를 잘 빚었다.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고 당기며, 가끔 삐져나온 변두리를 손 안쪽으로 감싸 쥐고 살짝살짝 추스르면 어느새 둥근 만두피가 완성되였다. 솥에 넣어 설설 끓는 족족 꺼내여 찬물에 금방 식힌 물만두는 별미였다. 형님 한 잔, 나 한 잔... 가난을 참고 견뎌 낸 가족 칠남매의 추억담을 위주로 형제 간의 술상은 늘 길었지만 형수님은 곁에 앉아 흥미롭게 들어주며 기분 좋게 롱담도 건넸다. 그리고 떠날 때는 꼭 물만두를 넣은 도시락을 내게 챙겨 주며 이튿날 데워 먹으라고 당부했다.

형수님에 대한 고마움은 한 차례 닥친 큰 풍파를 겪고 난 뒤였다. 내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여 우리 집에 예쁜 아들이 태여났다. 그런데 태여난 지 며칠 안 되여 아이가 불시에 앓을 줄이야! 야들야들하던 두 볼이 피기를 잃고 이따금 심상찮은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했다. 첫날은 의사의 분부대로 문병하러 온 형수님과 함께 밤새껏 아이 얼굴에 시선을 집중하면서 살폈다. 하루는 의사가 진찰하고 나서, 현재 아이의 무릎 아래 혈액순환 장애가 온 상태가 심각하여 유일한 방법은 수혈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산모의 피가 적절치 않으니 아이 혈형과 맞는 O형을 찾아야 한다는 의사의 당부를 듣고 정작 병원문을 나서긴 했으나 어떻게 집식구들한테 말할 것인지 막연해 형수님을 찾아갔다. 마침 공장 문앞에서 형수님과 마주쳐 주저주저하다 끝내 찾아온 사연을 털어놓았다.

"아니, 그럼 얼른 말해야지요." 형수님은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에 달려가 의사 앞에서 선뜻 자신의 수혈 의향을 밝혔다. 의무일군들이 검사 결과 형수님의 혈액이 수혈에 합당하다고 인정해 즉시 수혈을 시작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 전반 수혈 과정을 지켜볼 엄두를 못 내고 복도에 나와 서성거렸다. 형수님의 피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효과는 이튿날 곧바로 나타났다. 의사는 아침 진찰을 마친 후 얼굴에 희색을 띠며 굳었던 다리 살이 몽땅 풀렸다고, 진짜 기적이라며 못내 기뻐했다. 나는 꽉 막혔던 숨이 확 트이는 듯한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이어서 의사가 완전한 효과를 보기 위해 두 번째 수혈을 제안하는 바람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일을 어쩌나? 납덩이 같은 무거운 압박감이 가슴을 죄였다. 한 번도 아니고 어찌 두 번씩이나 형수님의 수혈을 바라겠는가? 아무리 욕심이 굴뚝같아도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아 망설이고 있을 때, 병실문이 활짝 열리더니 둘째 형수님이 기적같이 나타났다. 밤새 어쩐지 걱정스러워 왔다며 의사의 상황 설명을 주의깊게 듣고 나서 "그럼 빨리 서둘러야죠." 하고 형수님은 추호의 망설임 없이 두 번째 수혈에 팔을 걷어올렸다. 가느다란 주사침을 통해 아이의 전신으로 형수님의 뜨거운 피가 또다시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들었다. 이윽고 아기 얼굴이 발그레해지더니 꼼지락거리며 배고픈지 울며 보챘다. 

드디어 병이 완쾌되여 퇴원하는 날, 형수님은 그윽한 눈빛으로 손수 아이를 꼭 보듬어 안고 "우리집 보배둥이, 앞으로 건강하고 멋지게 자라야 해!" 하며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우리 부부에게 미래와 행복의 상징인 귀중한 어린 생명을 살려 준 형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한낱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었다.

형수님 덕분에 한때 팽팽했던 가족분위기는 항구로 돌아온 배처럼 포근한 평화가 깃들어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당분간일 뿐, 또 다른 가족의 중임이 형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슬픔에 잠긴 아버지도 끝내 몸져누웠다. 아버지의 신병이 걱정되여 모셔 갈 의향을 내비치면 어느 아들집이든 절대 안 간다고 우겼다. 그 와중에 어느 날 문득 형수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내용인즉 아버지를 억지로 자신의 집에 모셔 왔다는 것이였다. 앓는 로인을 내버려 두고 모른 체한다고 동네에서 소문나면 안 된다며, 형수님이 겨우 아버지를 설득시켰던 것이다.

년로한 시아버지 모시는 일은 단지 음식을 대접하고 빨래를 씻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였다. 손발을 후들후들 떠는 어버지를 부축하는 힘든 일상 속에서 곁에서 "잘했소", "못했소" 하고 뒤공론을 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형수님은 그걸 탓하는 대신 "차라리 칭찬받자고 모시는 것도 아닌데" 하고 오히려 차분하게 자세를 낮췄다. 한 번은 아버지가 밤중에 갑자기 숨쉬기가 가빠져 근처 병원으로 달려가 당직 의사에게 사정사정해 힘들게 모셔 와 간신히 위기를 넘겼으나, 두 번, 세 번 약시중을 겪다 보니 날이 샐 녘까지 허둥지둥했다. 

더 지겨운 것은 로쇠해진 아버지가 누운 자리에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금방 내의와 잠자리를 갈아줬는데 또 적시는 바람에 형수님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때론 억이 막혀 신경이 바늘끝처럼 곤두서기도 했다. 그리고는 즉시 후회되여 혼자 눈시울을 붉혔던 그 힘든 나날들이였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모두 가슴 시린 추억으로 남았다고 털어놓는 형수님의 솔직한 고백 앞에 나는 스스로 머리를 숙였다.

인생의 노트에는 분명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가 적혀 있건만, 형수님과는 별도로 숨박곡질하듯 심술궂게 엇박자를 쳤다. 함께 고생한 형님이 시나브로 위가 쓰리고 아파 병원을 찾아 검진한 결과, 청천벽력같이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딸자식 둘을 곱게 키워 시집보내고 이제 좀 시름놓고 편히 살자니 별안간 눈앞에 불행이 떨어졌다. 매일 극심한 통증을 참느라 애쓰는 시한부 암환자에게 불필요한 충격을 줄가 봐 형수님은 혼자 눈물을 삼키며 병시중을 들었다. 그런데 웬걸, 가장 요긴한 때에 설상가상으로 형수님마저 완전히 드러누웠다. 밤잠을 설치며 고생한 탓에 고질병인 요추간판 질환이 심하게 도져 꼼짝 못 했던 것이다. 당분간 어쩔 수 없이 환자를 간병인에게 맡기고 형수님은 따로 연변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기막힌 처지에 놓였다. 

단독 치료를 받는 동안 형수님은 걱정이 태산 같아 하루를 버티는 일이 백날맞잡이처럼 힘들었다. 그렇게 열흘 만에 형님이 운명하던 날, 얼굴색이 몹시 수척해진 형수님이 겨우 휠체어에 실려 병실을 찾아왔다. 누워 있는 형님은 두 눈을 멀거니 뜬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보, 이렇게 영 떠나가는 거예요? 흐흑..." 형수님은 싸늘히 식어 가는 형님의 손을 어루만지며 목놓아 슬피 울고 또 울었다. 완강히 머리를 저으며 몸부림쳐도, 이승을 떠나 점점 어둡고 차가운 정적 속으로 멀어져 가는 형님을 붙잡기엔 너무나 역부족이였다. 병마는 그처럼 모질고 무정했다.

돌이켜보면 형수님은 여직 생활 속 바쁜 일을 먼저 발 벗고 나서며 가족에게 많은 정을 베풀어 왔다. 남을 배려해 가슴 아픈 기억을 지워 버리고 그저 밝고 따스한 미소를 짓는 형수님의 반듯한 삶의 그 무게와 깊이는 고마움의 차원을 넘어 흠모의 경지에 이른다. 어쩌면 한생을 오직 한 가정의 주부로, 며느리로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형수님이였기에, 오늘따라 둥글고 진한 이야기들이 마음속 별처럼 떠올라 세찬 감격의 물결을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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