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어금
"절 찾는 일 없으면 좋겠습니다." 오래전 들은 이야기지만 잊을수 없는 말이다.
어느덧 나도 예순 살을 훌쩍 넘겼다. 허리띠 구멍은 하나씩 늘어 가지만 8년 전 그날의 기억만큼은 뼈아프게 또렷하다. 맹장염, 그 끔찍한 이름과 함께 찾아온 고통과 공포, 그리고 그 속에서도 피여난 작은 온기—그 모든 것은 이제 내 가슴에 지울 수 없는 따뜻한 이야기로 자리 잡았다.
2019년 늦가을, 출장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돌아온 금요일 밤이였다. 처음엔 위장이 탈이 났나 싶었다. 배꼽 주위가 쓰리고 묵직했다. 소화제를 먹고 이불 속으로 기여들었지만 통증은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의 중심은 오른쪽 아래배로 내려앉았고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참을수 없는 진한 고통으로 변해갔다.
새벽 세 시,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비명을 질렀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었고 이를 악물어도 신음은 새여 나왔다. 남편의 부축으로 연변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내장이 썩어가는 끔찍한 상상에 숨이 막힐 듯했다.
응급실의 차갑고 음산한 공기는 아직도 뇌리에 선하다. 새하얀 형광등 아래, 바쁘게 오가는 의료진과 환자들의 신음이 섞여 공포를 자아냈다. 의사가 내 배를 누르더니 갑자기 손을 뗐다. 그 순간 지옥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반발통이 심하네요. 급성 맹장염입니다.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수술실로 옮겨지는 들것 우에서 나는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차가운 금속 기구들이 내뿜는 섬뜩한 기운에 온몸을 떨었다. 수술대우에서 천장의 둥근 조명을 바라보니 마치 내 령혼을 빨아들일 듯 아득했다. "심호흡 하세요."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의식을 잃었다.
눈을 뜨니 회복실이였다. 배 오른쪽에서 불덩이가 이는 듯 욱신거렸고, 코에는 산소 마스크, 팔에는 수액이 꽂혀 있었다. 살아있다는 안도감보다는 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먼저였다.
그리고 가장 끔찍했던 '걷기'가 나를 기다렸다. 수술 다음 날, 간호사는 장 유착을 막기 위해 걷기를 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배가 찢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 허리를 굽히고 복도를 기여다니듯 걸었던 그 순간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기적같은 걸음의 련속이였다.
하지만 그 차갑고 끔찍한 병원 생활 속에서도, 내게 한 줄기 빛 같은 사람이 있었다. 실습 나온 어린 학생 선생님이였다. 모두가 바빠 환자 곁을 스쳐 지나갈 때, 그 친구는 수술에 겁먹은 내게 유독 다정하게 다가와 보살펴주었다. 아픈 배를 움켜쥐고 복도를 비틀거릴 때면 항상 곁에서 부축해 주었고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 힘있는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아니였다면, 나는 그 음산한 병원의 공기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퇴원하던 날, 그 학생은 내게 깊이 인사하며 묵직한 울림이 있는 말을 남겼다.
"선생님, 제가 나중에 암병과를 전공해서 큰 의사가 될게요. 그러니까 나중에 절 찾아오는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찾아오면 그건 암 환자가 됐다는 뜻이니까요. 무조건 건강하세요!"
그 후로 적잖은 세월이 흘렀다. 배꼽 옆의 흉터는 점점 하얗게 아물었고 나는 다시 일상의 무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얼마 전, 그토록 차가운 병원의 밤을 나와 함께 견뎌주었던 그 학생이 어엿한 의사가 되여 한국으로 박사과정을 배우러 떠났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다.
가끔씩 도착하는 그 친구의 안부는 지금도 내게 한 줄기 봄바람 같다.
"선생님, 건강하시죠? 저 한국에서 박사 과정 잘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아직 절 찾아올 일 없으시죠?"
그 역설적인 인사를 받을 때마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배를 칼로 도려내던 그날 밤의 고통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병원 복도에서 내 손을 꼭 쥐여주던 그 힘있고 따스한 온기이다. 고통은 희미해져도 온기는 여전히 손바닥 속에 살아 숨 쉬는것 같다.
'절 찾는 일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그것은 그때 나를 살려준 작은 인연에 갚을 수 있는 가장 큰 감사이자,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따뜻한 인사이다. 나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내 몸을 쓰다듬으며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바람을 느끼며—그 모든 평범한 순간들이 그녀에게 보내는 나의 답신이다.
지금도 가끔, 깊은 밤 혼자 배를 쓰다듬으며 그날의 온기를 더듬을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찬란한 것도, 거창한 것도 아니지만—그 미소는 진짜다. 고통 속에서 피여난 위로는, 한 번 받으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 고마움과 위안임을 알것 같다.

최어금 프로필
연변재정학교 공업회계 졸업
연변농학원 축목수의 수료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녀성문인협회 회원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