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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이야기39] 어린 심령의 전쟁 기억

안상근      발표시간: 2026-06-29 12:04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량철수

지난세기 50년대초, 조선전쟁 당시 우리집은 도문에 있었다. 시내에는 남북으로 뻗은 세 가닥의 대통로가 있었는데 그중 가운데 대통로가 도문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고 우리 집은 그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 잡고있었다.

당시 미국 비행기가 수시로 령공을 침범하여 도발했기에 방공경보가 자주 울렸다. 경보가 울릴 때마다 어머니는 부엌 널판자를 들어 나를 그 밑에 들여보내고 이불장에서 이불을 여러 채 꺼내 겹겹이 덮어 주었다. 내가 어머니도 빨리 들어오라 재촉하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걱정은 말아라. 총탄은 딱딱한 것은 뚫어도 솜처럼 부드러운 것은 뚫지 못한단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그 뜨거운 모성애의 가슴으로 어떤 총알도 막아내겠다는 각오로 나를 지키고 계셨던 것이다.

하루는 어른들이 모두 외출하고 나 혼자 집에 남아 있었는데 공습경보가 울렸다. 집 안에 앉아 있자니 저벅저벅하는 발걸음 소리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철없는 호기심에 나는 살며시 문밖으로 나섰다. 대통로에는 교통통제가 실시되여 사람들은 감히 얼씬하지 못했고 행인들은 모두 길 량쪽에 붙어있었다. 장총을 멘 사람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틈새를 요리조리 빠져나가 해방탑 쪽으로 다가갔다. 해방탑까지 이르렀을 때, 하늘에서 웅웅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쳐다보아도 보이지 않던 차에 갑자기 꾸르륵, 꾸르륵 하는 굉음이 터졌다.  잠시 후 역전 쪽에서 흰 위생복을 입은 두 사람이 들것에 한 사람을 싣고 달려오고 있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미국 비행기가 도문철도 역전에서 작업 중이던 로동자들을 향해 기총소사를 감행해 한 로동자가 다리에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조선전쟁이 정전되고 조선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였으니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조선에 가서 지원군으로 복무 중인 형님을 보고 오라고 하시는 것이였다.

당시 조선 쪽의 교통 여건이 좋지 않아 우리 모자는 조선 남양으로 출국하지 않고 중국에서 기차를 타고 안동(현재 단동)으로 향했다. 당시 중국에서 조선으로 입국할 때 민간인들은 다리로 건너지 못하고 나루배로 압록강을 건너야 했다. 압록강의 물살은 거세고 나루배는 크게 흔들리며 물보라를 일으켜 내가 무서워하자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조선 대안에 도착하니 전신 무장한 방역 요원들이 분무기로 사람들에게 일일이 소독을 진행하고있었다. 나에게도 약을 뿌리려는 방역 요원을 어머니께서 막아서며 사정사정하여 독한 소독약을 면할 수 있었다.

신의주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달렸다. 기차는 허술했고 창문 유리도 여기저기 빠져 있었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기차는 몹시 흔들렸다. 내가 차창 밖을 내다보니 철길 옆에는 자로 잰 듯 촘촘히 웅덩이가 파여 있었다. 너무 이상하여 옆에 계신 할아버지께 여쭈었다.

"할아버지, 기차길 옆에 왜 저렇게 많은 웅덩이가 있나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대답하셨다.

"얘야, 그것은 일부러 판 것이 아니라 미국놈들의 비행기가 던진 폭탄 구덩이란다."

"미국 비행기가 이렇게 많은 폭탄을 떨어뜨렸나요?"

"미국 놈들이 이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폭탄을 퍼부어 철길은 물론이고 많은 시설들을 파괴했단다."

기차가 한 작은 정거장에 도착했고 우리는 그곳에서 내렸다. 기차역 건물은 없었고 주변은 황량하고 적막하기만 했다. 우리가 기차에서 내리자 형님이 나이 지긋한 지원군 전사가 모는 수레를 가지고 마중 나왔다. 우리는 수레에 몸을 싣고 한참을 달려 한 마을에 도착했다. 무너지고 불에 탄 초가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웅덩이가 있었고 그곳에는 시퍼런 물이 반쯤 고여 있었다. 지원군 단부의 지도자분들이 우리를 영접했는데, 단장 아저씨는 나를 번쩍 들어 안아주셨다. 단장 아저씨는 기골이 장대하고 입과 코가 크며 목소리가 우렁찬 분이셨고 얼굴에는 자그마한 얽은 자국이 있었다. 정위는 철색의 건강한 피부였는데 매우 인자하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그날 우리는 한 조선 농가의 웃방에 묵게 되였다. 취사원이 밥을 가져왔는데 쌀이 섞인 고량밥이였고 반찬은 배추볶음이였다. 다른 두세 가지 반찬은 기억나지 않는다.  밥을 먹으려는데 반찬에서 평소 맡아보지 못한 이상한 약 냄새가 났다. 그래서 밥을 못 먹겠다고 떼를 썼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그건 중국 사람들이 반찬에 넣는 향료(팔각, 산초)란다."

그래도 내가 여전히 그 반찬을 못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그 반찬을 못 먹겠으면 이걸로 밥을 먹어라." 하시며 김치를 한 사발 내주셨다. 그 김치는 새하얗게 아무 양념없이 소금물에 절인 배추김치였다.  짧은 조선 방문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인차 돌아왔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전쟁 후의 참상은 너무나 처참했다. 미제는 조선반도에 전례 없는 파괴를 감행했다. 그러나 영웅적인 조선인민과 중국인민지원군은 용맹무쌍한 투지와 희생정신으로 미제를 물리치고 위대한 조국의 위엄과 존엄을 지켜냈다.

항미원조전쟁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은 시종일관 조국과 인민의 리익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민족의 존엄을 위해 헌신적으로 분투하는 애국주의 정신, 영웅적이고 완강하게 목숨을 바치는 혁명적 영웅주의 정신, 조국과 인민이 부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기여하는 혁명적 충성 정신, 인류의 평화와 정의로운 사업을 위해 분투하는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을 높이 수립하였다.

이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계승되여야 하며 우리는 대대손손 이를 발양하여 민족 부흥의 위대한 사업에 새롭고 더욱 큰 기여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량철수 프로필

1947년생 

모 국영기업에서 사업하다가 정년퇴직

현재 연길시에서 거주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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