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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한호 반, 한족 한호 반 남은 마을

편집/기자: [ 차영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9-06 09:12:46 ] 클릭: [ ]

-강밀봉진 조선족마을 병가툰 4사를 찾아서

우리 동네에 지금 조선족 한호 반, 한족 한호 반이 남았답니다.” 그게 웬 말씀이냐고 의아해하는 기자의 눈길에 구본덕씨가 허허웃으며 이렇게 해석한다.

지금 우리 동네에 남은 세집중 우리가 한집 차지하고 저기 앞줄 사는 한족 류씨네 그리고 중간줄에 사는 저집은 남편이 조선족이고 마누라가 한족이니 조선족 한호 반, 한족 한호 반인셈이지요.”

 
시골생활이 즐거운 구본덕, 리순금 부부
 
구본덕씨(67) 부인 리순금(67)씨가 살고있는 강밀봉진 금강촌 병가툰 4사는 단독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자연마을이다. 동네앞으로 망뉴하가 흐르고 멀리 탁 트인 벌판에는 가을이면 황금물결 출렁이는 풍경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하지만 28세대가 오붓이 살았던 동네 얘기는 이미 흘러간 과거사가 되여버렸다.

60년대에 심양에서 동네로 이사온 구본덕일가, 벌써 50여년 세월이 흘렀다. 자연지리조건이 탁월한 이곳은 수전농사에 적합해 지금까지 벼농사는 흉년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벼농사를 짓는 조선족은 한호도 없고 왕년에 수전을 일구어놓았던 조선족들이 어디론가 다들 이사들을 가버려 마을길에는 수풀만 무성하다.

사실 우리도 자식들의 권유에 길림시 강북에 아빠트 한채를 장만해놓은지가 수년이 돼. 그래도 시내생활은 왠지 정이 가지 않아서 여직껏 자리를 지키고있는거지요.구본덕, 리순금씨 부부는 슬하에 , 아들 하나씩 두었는데 딸은 일본에, 아들은 한국에서 생활하고있다.

 
70년대에 지은 구본덕부부의 집은 동네 첫 기와집이였다.

덕분에 구본덕씨는 일본구경도 다녀왔고 금년에 난생처음 한국땅도 밟아보았다. 두달여간 한국에 가있는 동안 자식들의 극진한 대접에 구경 하나 했노라고 한다.

강밀봉진 금강촌은 동광자, 병가툰, 고산툰 세개 툰으로 이루어졌으며 과거에는 도합 5 조선족소대가 있었다. 금강촌은 전성기에 촌의 가구수가 150여세대에 이르렀으며 금강소학교에는 재교생만 200명이 있었다고 한다.

구본덕씨 소속인 병가툰은 3대와 4대로 구성되엿는데 4대에는 지금 구본덕씨를 포함해 3 남았고 3대에는 6호가 남았다는데 그나마 모두 60세 이상의 고령자들뿐이란다.

 
수풀에 뒤덮인 동네길

다들 시내로 올라갈 형편이 못되여서 남은 못난 사람들이 아니랍니다. 마냥 공기 좋고 너른 고향집이 좋아서 고향지킴이를 선택한 사람들이죠. 자식들이 효도한다며 시내로 가자고 등을 떠밀어도 이렇게 고집들을 부리고있어요.”

구본덕일가가 배분받은 수전 1쌍에서 일년에 세를 놓아 나오는 돈이 만원 가깝다. 시골에서는 별로 지출이 없기에 자식들한테 손을 내밀지 않아도 충분히 돈으로 먹고 살만하단다.

 
정든 이웃 서씨네 량주도 아들 서창덕씨가 심양으로 모셔갔다.

시내 가면 일일이 채소들을 사먹어야지만 시골에선 내 손으로 채소를 가꾸면 좋아서요.가을철을 맞아 겨울나이로 가지며 오이들도 말리우고 팥과 녹두도 가을걷이를 하고있다. 까놓은 녹두며 팥이 여물어 해볕아래 반짝반짝 빛이 난다.

마을입구 길에는 부인 리순금씨가 심어놓은 꽃이 활짝 피여 길이 환하다.

시내는 공기가 탁하고 시끄러워서 더더욱 싫다는 구본덕씨, 그의 여가생활의 취미는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시골장을 도는 일이다. 장마다 어김없이 찾아다니는것이 그의 소일거리다.

 
병가툰 3사 금강촌 촌장 김동주댁   

그런 구본덕씨의 마음속에 걸리는게 있었으니 다름아니라 바로 갈수록 인기척이 드물어가는 동네때문이다.

앞마당에 잡초만 무성한 빈집들, 너무 오래 비워놓아 허물어져가는 집들, 머지 않아 동네가 사라질것은 뻔한 일일것만 같아 안타깝다.

이젠 동네 집값이 똥값이 되다싶이했어요. 만원에 삼간기와집 한채 산답니다.” 동네를 살리 일에는 답이 없다며 구본덕씨는 고개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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