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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백인95]료녕성 조선족사회의《기적을 창출하는 사나이》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01-21 15:56:18 ] 클릭: [ ]

대형계렬기획보도《중국조선족 백년백인》(95)

-료녕은덕기계공정설치유한회사 박성태총경리의 창업, 인생 이야기

 

료녕은덕기계공정설치유한회사 박성태총경리.

박성태(朴成太) 프로필

1964년 료녕성 무순시 전툰(田屯) 출생

1983년 료녕성 무순시조선족제1중학교 졸업

1988년 료녕조선족사범학교 졸업

1989년이래 창업에 나서 선후로 식당업, 기계가공업에 종사

현재 료녕은덕기계공정설치유한회사 총경리

 

주요 사회직무

료녕성 무순시 제10기 인대대표

료녕성 제11기, 제12기 인대대표

료녕성인대 주석단 성원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부회장

료녕성교육기금회 리사

료녕성조선족교육리사회 부회장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리사회 명예리사장

료녕성 무순시공상련 부주석

료녕성 무순시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 설립식에서 100만원을 쾌척하고있는 박성태(오른쪽).

지난 1월 10일, 심양시 남풍대극장에서 개최된 료녕성한마음(同舟)애심기금회 설립식에서 조선족기업가 박성태는 기타 7명 기업가들과 함께 인당 100만원을 기금회에 쾌척했다.

한마음애심기금회의 초대회장 박성관은 2012년 8월에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회를 발족해서부터 짧디짧은 2년여동안에 료녕성 조선족 각계와 한국기업가 등 2만 6000여명으로부터 무려 1400여만원의 성금을 모금하여 중국조선족 력사상 처음으로 독립법인 애심단체를 설립하는 《기적》을 이룩했다.

각계 유지인사들은 이를 《조선족 백년이주사에 큰 획을 긋는 하나의 쾌거》라고 높이 칭송하였고 민족언론들은 이 《특대희사》를 앞다투어 《대서특필》했다.

박성관과 박성태는 친형제 사이이며 동생 박성태는 두번이나 암판정을 받은 형 박성관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냈다. 그가 형 박성관의 병치료에 투입한 치료비는 도합 800만원이나 되는 천문학적수자이다.

현재 형님 박성관은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 초대회장을 맡고 공익사업에 심혈을 몰붓고있으며 동생 박성태는 형님이 리사장을 맡고있는 료녕은덕공정기계설치유한회사(이하 《은덕회사》로 략함)에서 총경리를 맡고 줄곧 회사의 실제경영을 책임지고있다.

은덕회사는 설립된 10여년래 줄곧 사회 공익사업에 앞장서왔는바 빈곤가정, 빈곤학생, 무순지역 조선족활동, 조선족학교, 료녕성민들레작문콩클, 료녕성교육기금회,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 문천대지진, 무순지역 특대홍수 등에 600여만원의 성금을 후원해왔다.

불우이웃, 빈곤학생 돕기에는 항상 솔선수범하는 박성태총경리(오른쪽).

형님의 간암선고와 동생의 《뜻밖》의 대성공

젊은 나이에 심양에서 사업성공을 이룬 박성관은 지난 세기 90년대중반에 북경에 진출하여 《백두산그룹》을 창립하고 무역, 음식, 오락업 등 다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청운의 꿈을 펼쳐나갔다. 그러던중, 본세기초에 들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사업좌절을 맞으며 북경에서의 사업을 철수하게 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느날 갑자기 맥이 없고 쓰러질것만 같아서 북경의 모 대형병원에 찾아갔더니 간암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판정을 받게 된다.

그때 가족성원들에게 돈이 별로 없을때였고 동생 박성태도 운영하던 기업을 형님의 회사와 합병하였다가 형님의 사업실패와 더불어 큰 진통을 겪고있었다.

하지만 박성태는 가족들의 돈을 다 거두어들이고나서 친구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너무나 큰 모험》이라며 말리는 친구들의 권고를 귀등으로 한채 수십만원에 달하는 수술비가 모아지자 박성태는 한화로 환전하고 형 박성관을 모시고 한국으로 떠난다. 한국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후 박성관은 수술을 받았고 대성공을 이루었다.

《의리남》 박성태의 지극정성에 하늘이 감동이라도 한것일가?

형님 박성관이 지난 90년대중반에 회사진로를 위해 로심초사하던중 우연한 계기로 조선 함경북도 은덕군으로부터 인입한 가스발생로생산사업이 2000년대에 들어서며 중국시장에서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동류제품중에서 성능이나 품질이 가장 월등해 강한 경쟁력을 과시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사이, 은덕회사는 력사상 최대의 고난기를 겪는다.

박성태총경리에 따르면 《당시 회사는 매일 오전 출근하면 당일 점심밥을 먹을 돈을 구하러 나설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2001년, 은덕회사는 강서성 경덕진코스코화(焦化)총공장의 1만립방메터짜리 소형 가스발생로 2대 주문을 계기로 《기사회생》하여 회사의 업무가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은덕회사는 경덕진코스코화총공장에 일군들을 파견해 수개월간에 거쳐 가스발생로 《처녀작》을 알심들여 정성껏 설치해주었다. 이 설비는 그후 은덕회사에 구매의향을 밝혀오는 국내 고객들의 참관대상으로 되었고 이 첫 주문은 은덕회사의 성장에 《감로수》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으며 회사의 비약적발전의 《발판》으로 된다.

은덕회사의 제품을 사용하여 《단맛》을 본 경덕진코스코화총공장에서는 2006년과 2007년에 4만립방메터짜리 대형 가스발생로를 두대 더 구입하면서 은덕회사의 단골로, 주요고객으로 거듭났다.

회사의 조선 기술일군들과 함께 있는 박성태총경리.

조선의 선진기술로 중국 가스발생로업계의 선두에 서다

형 박성관이 리사장을 맡고 동생 박성태가 총경리를 맡고있는 《은덕회사》의 회사명은 박씨형제가 협력측인 조선 함경북도 은덕군의 지명을 본따서 지은것이다.

은덕회사는 지난 세기 90년대 중반에 수백평방메터의 공장건물을 임대하여 생산을 시작했는데 2000년대 중반과 후반에 들어서면서 업무의 부단한 확대로 인해 무순경제개발구에 두차례에 거쳐 4만여평방메터에 달하는 부지를 구매하여 4만평방메터에 달하는 공장건물과 사무실건물을 지어 본격적인 생산체계를 구축한다.

회사의 주요제품은 저질분탄을 연소해 생성된 가스를 도시가스, 공업가스, 합성가스로 사용할수 있는 가스발생로인데 시간당 생산능력이 각각 4만, 2만, 1만 립방메터에 달하는 대, 중, 소형으로 나뉘며 소형기계의 단가가 무려 1300만원, 대형기계는 3000만원의 높은 가격임에도 해당 업체에 《불티나게》 팔리고있다.

하여 현재 은덕회사에서 생산하는 가스발생로 등 수십가지 제품은 동북3성을 벗어나 화북, 화중, 화남, 서북 등 전국 전역의 석유, 화공, 야금, 정유, 가스 등 분야의 수십개 업종 기업들에서 다투어 찾는 제품으로 그 인기를 자랑하고있다.

회사를 찾은 전국 각지의 고객들을 안내해 공장을 돌아보고있는 박성태총경리(왼쪽 세번째사람).

질과 가격으로 승부하여 동업종 최고가 되다

년매출 1억여원 창출, 세금 1000여만원 납부

박성태총경리에 따르면 은덕회사에서는 10여년간 줄곧 《량질》과 《착한 가격》으로 동일업종 경쟁업체들과 승부하여왔다.

대형 가스발생로의 경우, 생산 판매와 설치가 완성되기까지 70-80명의 기술일군이 거래처에 가서 장장 10개월씩 매달려있다 싶이 해야 한다.

40여명 직원으로 수백평방메터의 건물로 창업한 은덕회사는 10여년의 발전을 거쳐 전국 각지의 수십개에 달하는 강철공장, 탄소공장, 비료공장, 화공기업들에 제품이 납품하면서 10여년간 독보적인 존재로 되었다.

하지만 근년래 국내 여러 곳에서 동류제품들이 쏟아져나오며 불꽃튀는 경쟁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박성태총경리에 따르면 현재 해당 업종은 화란, 독일 등 외국 유명브랜드와 국내 해당 업체의 8개 브랜드가 《춘추전국시기》못지 않은 백열화된 치렬한 전쟁을 재현하고있는데 은덕회사는 10여년간 축적된 기술과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아직 비교적 강한 경쟁력을 확보하고있다.

은덕회사 기술개발팀에는 현재 10명의 조선 기술일군이 주력으로 열심히 기술개발에 몰두하고있다. 중조합작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래 선후로 여러 기의 기술일군들이 다녀갔는데 불철주야 사업열정과 높은 품질을 추구하는 정신은 은덕회사의 확고한 경쟁력을 키웠다. 그들은 자녀들도 무순 당지 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등 가족과 함께 거주하면서 기술개발에 전념하고있다.

현재 200여명의 각종 전문 기술일군에 4만여평방메터의 부지와 4만여평방메터의 공장건물에 고정자산 6000여만원, 년매출 1억여원, 1천만원의 세금을 납부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은덕회사는 선후로 《료녕성우수신용기업》, 《전국소비자만족기업》 등 영예를 받아안았다.

무순시조선족기업가협회 초대회장 김영남(앞줄 가운데사람) 등과 함께.

무순시 조선족경제인들의 선줄군

박성태는 2001년에 무순시조선족기업가협회의 창립맴버(성원)로 상무부회장을 맡아 김영남 초대회장을 받들어 무순지역의 조선족활동을 꾸준히 진행해오다가 2009년에 제3기 회장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박성태회장에 따르면 현재 협회의 성원기업은 50여개로서 주로 제조, 무역, 음식업이 위주이며 회사규모가 큰편이 아니다.

회장을 맡은후 박성태는 협회의 기업가들로부터 일인당 수만원, 수십만원씩 모금하여 30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협회 음식점을 개업하였다. 70-80만원에 달하는 음식점의 년리윤중 절반은 투자자들에게 갚고 남은 절반은 협회의 명의로 각 조선족 사회단체의 활동에 지원한다.

박성태는 2012년 8월에 형 박성관이 발족한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회 설립식에서 20만원의 성금을 기부했을뿐만아니라 무순지역의 조선족기업인들을 적극 동원하여 김영남, 리영준, 김일선, 김월창 등 20여명의 기업가들이 동참해 90여만원의 성금을 모아 전 성적으로 가장 앞장에 섰다. 지난해의 애심회설립 1주년 기념식에서도 박성태를 비롯한 무순지역 조선족경제인들은 100여만원의 성금을 기증했으며 현재까지 도합 600-7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기부했다.

지난 1월 10일,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회는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로 탈바꿈하면서 애심기금 1400만원을 모금하며 독립법인을 설립했다. 이는 애심기금회가 장기적으로 존속될수 있음을 표명한다. 즉 노벨상 운영모식으로 기금원금은 은행에 장기예금하고 그 리자로 전 성 조선족 독거로인, 빈곤가정, 빈곤학생을 상대로 애심활동을 펼칠수 있게 된것이다.

료녕성 제11기, 제12기 인대대표로 선거된 박성태총경리.

성인대대표로서 한점 부끄러움 없이(왼쪽 첫번째).

민족의 애로해결에 발벗고나서는 성인대대표

일찍 무순시공상련 부주석으로 추대된 박성태는 2003년에 무순시 인대대표로, 2008년에 료녕성 인대대표로 추대되였다.

《거수기계》가 아닌 진정한 인대대표 자격을 잘 수행하기 위해 그는 민의와 본 민족의 합법적리익을 수호하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 2010년 무순시신화조선족소학교에서는 력사적으로 내려온 문제로 법원에 의해 건물이 침점당하는 상황이 발생, 조선족사회에서 반향이 컸다. 협회에서는 무순지역 조선족유지들과 적극 련대해 시당위, 시정부에 반영해 법원의 집행을 중지시켰다.

조선족간부가 대가 끊기는 현상을 두고 조선족유지들과 힘을 모아 무순시 당위서기에게 직접 건의편지를 올려 시인대에 조선족 정국급간부 1명, 시당위판공실에 부국급간부 1명, 무순현에 부현장 1명이 제발되도록 하였으며 시정협위원은 전번기에 비해 2명 증가되였다.

박성태가 무순시인대대표, 료녕성인대대표로 추대된후 인대에 제출한 건의들은 50여건에 달했는데 경제, 민생 문제외 본 민족에 관한 건의만 해도 조선족간부를 증가시켜줄데 관한 건의, 조선족교육경비를 증가해줄데 관한 건의, 조선족학생들의 평균 공용경비기준을 높여줄데 관한 건의, 소수민족보장조례를 수개해줄데 관한 건의 등 10여건에 달했다.

매번 인대회의에 참석하러 갈때마다 그는 사전에 충분한 현지조사를 거쳐 준비한 의안들을 내놓군 해 인기를 끌고 중시를 받았다.

지난해 6월,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 설립 3주년행사에 축하차 참가한 료녕성 조선족기업가들과 함께.

(왼쪽 두번째가 박성태, 오른쪽 세번째가 박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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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간암, 페암 수술을 두차례나 받고도 저 세상에 〈호적〉을 붙이지 않고 오늘까지 건재하여 필생의 노력을 경주해 애심사업을 펼칠수 있는것은 전적으로 제 아우 성태덕이지요. 믿고 의지할수 있는 든든한 아우가 있기에 저는 뒤걱정없이 모든 정력을 제가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하고있는 애심사업에 쏟아부을수가 있었지요.》

두번이나 암판정을 받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박성관과 《의리남》, 《기적을 만드는 사나이》 박성태. 그들 형제가 민족을 위한 공익사업에서 더욱 많은 《기적》들을 이룩하기를 기원해본다.

조선 평양에서 료녕성조선족기업가들과 함께(오른쪽 세번째).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회 설립 1주년행사에서 감사패를 받아안은 박성태총경리(왼쪽 두번째).

조선유람시 료녕성 조선족기업가들과 함께(왼쪽 네번째).

/유경봉 홍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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