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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인민》을 선률로 전국에 알린 작곡가 김봉호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4-04-16 17:05:54 ] 클릭: [ ]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에 당선된 영광을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켜주는 조선족인민들에게 돌리는 김봉호작곡가.

프로필

1937년 조선함경남도함흥시 출생

1941년 부모님들 따라 화룡현에 이주

1857년 화룡문공단에 입사. 배우, 부단장으로 사업

1963년 중국음악가협회 연변분회 회원

1974년 길림성문화국 부국장

1978년 길림성음악가협회 부주석 겸 길림성문화예술련합회 위원.

1984년 북경에 전근 중국인민무장경찰부대 정치부 문공단예술지도, 창작원으로 사업, 중국음악가협회 제4기 상무리사

대표작:

무용음악작품《홍매송》, 《적비춤》, 가요《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 《붉은해 변강 비추네》、《당의 빛발 연변을 비추네》, 《금실북과 은실북》,《쫭족처녀》 (壮家妹)、《국기와 병사》、《장고야 울려라》、합창《장성의 노래》(长城畅想曲)등100여수의 작품이 국가급 및 성급상을 수상.

1980년 《아름다운 마음》(美丽的心灵)유엔아세아태평양지구음악교재에 편입, 장백산문예상(1985년) 수상

1986년《친선의 꽃》(리재린사)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년감상 수상,

1999년중국방송신가요금상 수상

2003년 정신문명건설 《5개1프로젝트》입선작품,

2005년장백산문예상 수상

2013년 12월 《붉은해 변강 비추네---김봉호음악회》가 연변에서 개최되였으며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에 당선

저작:  《당의 빛발 연변 비추네-김봉호가요집》(인민음악출판사 1982년), 《김봉호가곡선》(연변인민출판사 1989년), 《김봉호성악작품집(장춘출판사 1997년)》, 《아름다운 마음—저명한 작곡가 김봉호작품전집》(CD,민족출판사 1999년)

 

국가1급작곡가이며 조선족대표작곡가의 일원인 김봉호선생은 《연변인민》을 격졍의 선률로 전국 나아가 세계로 알린 저명한 작곡가이다.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에 당선되여 모처럼 연변땅을 찾은 그이는 조선족인민들의 변함없는 사랑에 못내 감격을 금치 못하였다.그만큼 그 역시 다함없는 사랑으로 고향과 고향인민을 노래하는 가요를 창작하면서 일평생 충직하게 살아온 조선족인민들의 자랑스런 《아들》이기에 손색이 없었다.     

충성의 노래-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

사상감정이 없이는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지을수도 부를수도 없다. 1965년 김봉호선생이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한윤호 작사)라는 곡을 창작할 때는 전국적으로 모주석을 노래하고 공산당을 노래하는 열조가 끓어번지는 시대였다. 당시 화룡현문공단 손풍금수로 활약하는 그의 충성심 역시 남 못지 않았다.

 

70년대초 조선족마을에 내려가 농민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생활체험을 하고있는 김봉호작곡가(가운데).

1941년 그는 다섯살나는 해 조선함경남도 함흥으로부터 어머니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너왔다. 화룡지역에 정착하면서 동네이웃들의 동정속에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성장한 그는 해방을 맞아 이 나라 이 땅의 어엿한 주인으로 되였으며 1957년 화룡현문공단에 입단하였다. 그는 자신의 재능과 정열을 다바쳐 열심히 사업하면서 부단장직무까지 짊어지게 된다.

당시 한윤호선생으로부터 《붉은태양 모주석》이라는 가사를 받아들고 훑어보던 그는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우리 민족의 가장 아름다운 선률로 모주석을 노래해야겠다고 작심하면서 가야금으로 착상을 무르익혔다. 20분만에 그의 마음을 담은 선률이 완성되였다.

이 노래는 어느덧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라는 제목으로 연변의 곳곳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얼마 못가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는 또 이 노래때문에 검문을 받게 된다. 전문검사조에서 별다른  부정이나 표절이나 없음을 확인한 뒤 1968년 중앙인민방송에 발표되면서 이 노래는 대뜸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민간문예가들로부터 민간음악을 청취하고있는 장면.

《…장백산아래 사과배 열리고 해란강반 벼꽃 피》는 연변은 대뜸 전국인민들이 한번쯤 와보고싶은 고장으로 떠오른다. 뒤이어 그가 창작한 《붉은해 변강 비추네》라는 노래 역시 《험산을 파헤쳐 보물을 캐고 강물을 가로막아 산에 올리는 》연변인민의 기개를 전국에 홍보하였다.

잇달아 김봉호선생도 유명작곡가로 전국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는 인민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의 사상감정을 깊이 수립한 기초상에서 시대적인 환경과 결합하여야만 창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당년 1년치고 8개월은 조선족농촌에 내려가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정감세계를 료해했고 보다 많은 민간음악과 접하면서 민족음악에 깊은 정취를 느꼈다. 그의 음악작품은 분명 짙은 민족특색을 띠고있고있으면서도 시대적분위기를 잘 살린데서 일종 신선한 매력으로 전국에 전파되였던것이다. 

정열의 노래- 《금실북과 은실북》

충성심 하나로 들끓던 시대는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적조류가 서서히 밀려오는 그때 1974년 김봉호선생은 길림성문화국 부국장으로 일터를 옮기게 된다. 창작대상이 달라졌고 창작폭이 넓어졌으며 관리대상이 생소하였다.

여러 소수민족들이 공통으로 접수할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기에는 우선 타민족에 대한 료해부터 앞서야 했다. 그들과 널리 교류하면서 깊은 감정을 쌓아야 했고 따라서 여러 민족의 음악특징을 깊이 연구하면서 자기 민족음악에다 타민족의 우수한 음악특징을 결합하여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기에 그는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다.

개혁개방초기에 첫 작품으로 청결공을 노래한 《아름다운 마음》을 창작하여 보편적인 호평을 받게 된다. 그뒤로 《금실북과 은실북》(1980년)이라는 가사를 접하면서 참신하다는 느낌으로 정열의 펜을 날렸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청춘들이 매래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안고 활기차고 씩씩하게 분발노력하는 이미지를 선률속에 그려냈던것이다. 이 노래는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설맞이공연무대에 오르면서 전국의 방방곡곡에 울려퍼졌고 나아가 기악곡과 합창곡으로 편곡되여 외국공연무대에까지 올랐다.

김봉호작곡가는 소수민족인민들의 생활과 정감세계를 료해하기 위해 변강산구로 자주 내려가 생활체험을 하였다.  

이 작품을 그의 풍격전환의 대표작이라고도 한다. 그 시기 그가 창작한 《쫭족처녀》(壮家妹), 《우리들의 집》(我们共同的家),《아름다운 마음》등 가요들은 전국적인 공명을 일으켰다. 그중 《아름다운 마음》(美丽的心灵)은 유엔아세아태평양지구음악교재에 편입되였고 장백산문예상(1985년)도 수상하게 된다. 이런 노래들은 또 중앙음악학원 민족음악교육 교학용으로 지금도 응용되고있다.

그가 쓴 론문《조선족음악과 이웃민족음악과의 상호영향과 융합》은 1991년 향항 제14기아세아예술절에 채용되였고 《나의 가요창작》등 12편의 문장은 련속《음악주보》《인민일보》 등 신문에 실렸다.

1984년 김봉호선생은 중국인민무장경찰부대 정치부 문공단예술지도 겸, 창작원으로 북경에서 생활하고 사업하게 된다. 그 시기 그는 중국음악가협회 제4기 상무리사로 활약하면서 일관하게 자신의 창작원칙을 견지하였다. 《음악창작에서 자기 민족 음악특징을 구비하면서 여러 민족 음악의 많은 형태를 장악하고 또 그것을 결합할줄 아는 그런 기질을 갖춰야만 수요에 따라 발휘를 잘할수 있다.》

그의 이런 음악원칙에 비롯되여 탄생한 음악들은 지역을 불문하고 보다 많은 대중들의 환영을 받게 되였으며 세월의 변천속에서도 갈수록 깊은 향기와 향수를 동반하게 되였다. 최근에도 장강이남 기업들에서는 공장의 이미지를 수립하고 로동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기업의 노래를 특별 부탁해오군 하는데 이로 하여 김봉호선생의 창작일정은 벅차기만 하다.

사랑의 노래-《장고야 울려라》

200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50돐에 즈음하여 음악가의 심정은 경건해졌다. 몸은 비록 북경에 가있지만 마음은 하냥 고향 연변으로 향해있던 김봉호선작곡가는 뜻깊은 명절에 고향인민들에게 훌륭한 작품을 선물하고싶었다.

 

고향의 사과배꽃 사이길을 걸으며.

마침 조선족대중들이 가장 애용하는 전통악기인 장고에 관한 가사를 접하게 되였다. 장고는 힘을 싣고 흥을 돋우며 인심을 뭉치게 하는 《음악무기》이기도 하다. 그는 울렁이는 심정으로 펜을 잡고 《경쾌로운 우리 민족 음악 리듬과 음형에 현대통속음악의 요소를 결합하여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창작하려고 밤에 낮을 이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50돌을 맞는 경축행사장에서 《장고야 울려라》는 선률이 울려퍼지자 장내는 완연 격정과 환희로 들썽하였다. 절주가 생신하고 음악이 아름다우며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특징으로 이 노래는 재빨리 대중들속으로 파급되였고 향항, 싱가폴에까지도 전파되다.

중앙예술학원에서는 한국방문시에도 이 노래를 중요프로으로 선곡하여 공연무대에 올림으로써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2003년 중앙선전부 정신문명건설 《5가지 1 프로젝트》입선작품으로도 당선되였으며 1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하냥 조선족인민들이 즐겨부르는 애창곡으로 곳곳에서 메아리치고있다.

작곡가에게는 퇴직이 따로 없다. 1996년 직장에서 퇴직한 몸이지만 작곡을 생명으로 간주하는 김봉호선생은 쉴줄 모르는 열정으로 1,000여수의 작곡창작을 이어오면서 《중국가요계 휘황 20년》(1996년) 작곡성과상을 수상하였다.

지난해말, 그는 연변주당위와 화룡시당위에서 주최한 《붉은해 변강 비추네-김봉호작품음악회》에 고향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으로 엮은 17편의 대표작을 묶어 고향인민들앞에 선물하였다. 이어 그는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의 일원으로 선정되면서 고향인민들의 사랑에 목메도록 감격해마지 않았다.

그에 대한 보답이런듯 그가 연변에 머무는 동안 여러 현시 과외창작들이 고향을 노래하는 가사를 지어갖고 겨끔내기로 찾아와 작곡을 부탁하자 고래희를 넘어선 그로서는 기력이 딸릴만도 하건만 고향을 위한 일이라면 아무때건 무엇이든 달가왔다. 그는 그냥 밤을 패며 《화룡노래》《훈춘노래》《룡정노래》들을 지어냈다.

50여년의 창작생애에서 고향과 고향인민에 대한 사랑은 곧 그의 창작의 원동력이였고 대중생활과 생활실천은 곧 그의 창작원천이였으며 본민족 음악과 타민족 음악을 결합하고 전통과 현대를 아우름은 그의 성공비결이라고 일괄해본다. 그의 음악이 감미롭고 생활정취가 넘치며 심금을 울리는 감동과 시공을 넘나드는 생명력을 공유함은 이를 떠나 달리 리유를 찾을 길이 없다.

《중국예술가사전》(현대 제1분책), 《중국대백과전서》(음악권), 《중국당대문예예술명인사전》,《음악감상》,《중국공산당원명인사전》,《중국소수민족예술사전》등을 펼쳐보면 김봉호선생의 이름 석자와 함께 그가 이룩한 성과들을 한눈에 찾아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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