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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백인71]《꿈은 나의 삶의 원동력》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4-02-18 07:52:36 ] 클릭: [ ]

—흑룡강성 목단강시 금약그룹 김춘학회장

흑룡강성 인대회의에 참석한 목단강시 금약그룹 김춘학회장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꿈은 내 삶의 원동력>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인류는 꿈이 있기에 위대하고 인간은 분투로 하여 멋집니다.》

지난 9월 23일, 한국에서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국립 전남대 경영대학 강당, 초롱초롱한 눈빛의 대학생들이 키가 조그마한 사나이의 강연을 열심히 듣고있었다. 누구인걸가?

무슨 그룹의 회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이 아니라 중국의 무슨 그룹이고 게다가 조선족출신이라 한다.

이처럼 큰 파워(능력이나 재능)가 있는 조선족도 있는걸가?

흑룡강성 목단강시 금약그룹 김춘학(50세)회장이다.

꿈을 사랑하며 꿈을 좇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설파하는 그, 그가 설립한 금약그룹은 현재 1000여명 임직원에 10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고있다. 전국 범위의 신용기업이자 흑룡강성 우수기업이기도 하다. 그자신도 흑룡강성 인민대표대회 대표이며 대회 주석단 성원이기도 하다. 금약그룹의 매년 매출액은 12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어느 대기업의 투자나 스폰서(찬조, 협찬)에 의존하거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이 성과는 그가 오로지 꿈을 좇아 열심히 뛰여온 덕분이다.

꿈을 향한 매진, 보따리장수에서 거부로

김춘학회장의 어린시절은 당시 중국의 대다수 서민들과 마찬가지로 가난에 찌들린 삶이였다. 그때 갓 한국문이 열려 많은 사람들이 친척방문을 나갔지만 김춘학회장의 어머니만은 많은 사람들과는 반대로 한국친척들의 도움을 바라지 말라고 어린 그에게 못박았다. 항상 자식에게 자강자립의 꿈을 키워준 뜻이 높은 어머니였다.

1980년 김춘학은 어머니를 이어 연료회사의 하역부로 취직해 일했다. 왜소한 체구의 그였지만 잡일을 가리지 않고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일해왔다. 그때 그는 매일 몇십톤의 매탄을 차에 실어 운반하고 또 목적지에 부려놓았다. 항상 주어진 할당량을 초과완성하여 월급은 물론 보너스를 받았다. 돈을 벌어 어머니를 잘 모시겠다는 꿈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가 한창 작은 돈벌이에 도취되여있을 때 어머니는 그에게 학업을 완성하라 독촉했다. 그의 어머니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지식이 있어야 하고 꿈이 있어야 한다, 지식이 없으면 큰 일을 할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경력과 년륜으로 충분히 더 좋은 삶을 살수 있었지만 지식이 없는 탓으로 인생의 좋은 기회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때로부터 김춘학은 현장에서 일하는 한편 열심히 복습하여 3년 뒤 드디여 대학응시의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어머니가 병환으로 앓아눕게 되였다. 2개월 동안의 입원치료기간 그는 밤낮으로 간병을 하면서 또 짬을 타 열심히 복습하였다. 당시 어머니는 《꼭 완쾌하여 네 대학공부 뒤바라지를 하겠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병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가슴에 새긴 그는 장례식 이튿날부터 꼬박 열흘간을 밤낮으로 복습하여 종내 2등의 성적으로 목단강시물자간부관리학교에 붙어 기업운영관리를 전공하게 되였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들이겠다는 꿈을 실현한것이다.

목단강시물자간부관리학교를 졸업한후 그는 원래 회사로 돌아가 통계원으로 취직했다. 더 이상 현장직을 하지 않아도 되였고 월급과 대우도 많이 좋아졌으며 평생 해고당할 걱정없이 국가공무원과 다름없이 살아갈수 있었다.

하지만 3년후 개혁개방정책이 실시되면서 많은 기관과 국유기업 인원들이 상업에 종사하기 시작하였으며 김춘학도 상업에 마음이 끌리여 사직서를 제출하고 녕안시 국경수출입사무소 주임신분으로 홀로 중국-로씨야 변경무역을 시작했다. 이때로부터 창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사투가 시작되였다.

그 시기의 로씨야는 물자가 상당히 부족하였는데 그가 한 장사는 바로 중국에서 옷, 장갑 등 의류와 생활용품을 가져다 로씨야 울라디보스또크쪽에 넘기는것이였는데 수익이 많이 남는 장사였다. 당시 그와 같은 보따리상들이 중국과 로씨야쪽에 수천명이 있었는데 90%가 조선족이 였다. 다들 컨테이너에서 살며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나들었다. 갖은 고생을 했지만 조선족의 생활력은 그 어느 민족보다 강했다고 말하는 김춘학, 그자신에게도 조선족의 그러한 피가 흐르고있었다고 말한다.

이때 사업가로서의 그의 수완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무거운 보따리를 메고 힘들게 다닐것이 아니라 보따리상들의 물건을 배달해주면 돈이 되겠다싶었던것이다. 통관, 배달 업무를 대행해주는 일종의 해외 택배, 물류회사인셈이다. 온갖 불법과 뒤거래가 활개를 치는 아수라장속에서 동업을 하던 사업파트너가 로씨야 마피아(黑社会)의 총에 죽기도 했다.

하지만 겁없이 제집 드나들듯 국경을 넘나든 덕분에 10년간 물류사업과 무역으로 그는 거금을 벌어들였다. 당시 그는 중국산 주철을 로씨야에 팔고 구리, 목재, 자동차 등을 들여오는 통큰 무역도 함께 했다. 그가 로씨야에서 어려움 없이 사업할수 있었던것은 로씨야 조선족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말이 통한다는것이 큰 힘이 되였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말도 하나, 문화도 하나, 조선족은 하나라는것을요. 씨비리에 갔을 때였습니다. 김치가 너무 먹고싶어서 시장을 헤매고 다니다보니 조선족할머니가 길에 앉아 김치를 팔더라구요. 너무 반가와했더니 할머니가 자기 집에 데려가서 밥상을 차려줬어요. 마치 가족을 만난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생각도 나고 <이것이 한 피줄이구나>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때 우리 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느 정도 자본이 마련되자 그는 만족하지 않고 사업을 더 크게 성장시킬 꿈을 꾸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중국에 부동산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는 발빠르게 변경무역으로 얻은 수익을 부동산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해 그는 금약그룹을 설립하였고 직원을 100여명까지 확장하였으며 경력이 있는 전문인재를 받아들여 건축인증자격도 1급수준에 달했다. 스타트로 목단강시 중심지역에 12만평방메터 되는, 그 당시 목단강지역 최초의 현대화 주거단지 세기가원(世纪家园)을 건설하였다. 그 뒤로 몇년을 이어서 17만평방메터의 강변 고급주거단지인 려수람천(丽水蓝天)단지와 금수만(金水湾)단지, 5.8만평방메터의 이색적컨셉인 금지빌딩(金地大厦), 상업밀집지역에 15만평방메터의 지하상가 그리고 1만평방메터의 금약그룹 본사 빌딩을 구축하였다. 동시에 목단강시 주변지역 및 지방에 여러개의 부동산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현재 기획 및 건축중인 프로젝트로는 10만평방메터의 금저공관단지(金邸公馆小区), 8만평방메터의 재부빌딩(财富大厦), 북태평로에 100여만평방메터의 도시개발 종합단지 프로젝트 등이 있다. 부동산개발로 금약그룹은 일약 목단강시 20대 민영납세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그는 이때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바로 금약그룹의 전국진출이였다. 그때로부터 그는 기업다원화 발전목표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금약그룹은 고신기술, 신에너지 령역에 발을 들여놓았고 흑룡강성에서 처음으로 10MW급의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했다. 이어 한국 셀루온주식회사를 인수하여 글로벨 레벨의 고신기술제품 레이저키보드(激光键盘)를 개발하였고 애플사 아이폰과 접목했다.

또 대련, 상해, 광주 등 메인 도시에 컨테이너산업 프로젝트 및 지능형 주거단지를 개발, 구축하였다.외지 부동산개발 프로젝트만 준공하여도 금약그룹은 수억원의 수입을 창출할것이며 전국 전 지역 영향력을 월등하게 향상시킬수 있게 된다.

현재 그는 중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있다. 금약그룹은 이미 서울 및 미국 실리콘밸리에 신제품 연구개발기지를 구축하였고 한국에 주식회사 레테크태양광발전시공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주식회사 다애테크에 75% 이상의 유상증자를 진행하였다. 또한 계속하여 한국에 확장투자할 계획을 가지고있다.

이 사이 김춘학회장은 목단강시공상련합회 부회장, 흑룡강성공상련합회 제8기 집행위원회 위원, 목단강시 기업신용협회 상무리사, 목단강시청년련합회 부주석, 흑룡강성조선민족상공회 부회장, 목단강시조선민족기업가협회 부회장, 목단강시조선민족사업촉진회 부회장을 력임하였으며 련속 5년간 목단강시 로력모범으로 평선되였고 련속 2년간 《흑룡강성 경제풍운인물》로 평선되였다.

근본을 잊지 않고 사회공익사업에 투신

관련 부문으로부터 표창을 받고있는 김춘학회장

《리수성 한국 전 총리께서 중국을 방문하여 목단강시조선족중학교에서 강의할 때 <자네들은 자네들을 낳고 보듬어준 중국대지에 감사해야 하고 조국을 사랑하여야 합니다>고 했습니다.》 그에게서 현대정치가의 드넓은 흉금을 보았다고 하는 김춘학회장 역시 근본을 잊지 않고 사회공익사업에 적극 투신하여 2007년에는 《흑룡강성 도덕모범》으로 평선되기도 했다.

몇년래 금약그룹은 루계로 3000명이 취업할수 있도록 안치하였고 100여명의 퇴직직원 및 그 가족을 위해 300여명의 양로보험을 해결하였다. 근년래 그는 약소군체를 위해 총 1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기부하여 목단강시의 사회안정을 도모했다는 정부의 평가를 받고있다.

2009년에만 해도 금약그룹은 5000만원을 투자하여 목단강시 강남고신기술원구에 고신기술 전자제품과 IT산업이 일체화된 고신기술생산연구개발쎈터를 설립해 원구내의 공백을 메웠다. 또한 목단강시 동안구의 낡은 도로 개조공사에 100만원을 기부, 동안구 판자집개조를 위해 200만원을 출자, 목단강시 원통강사(圆通讲寺) 수건을 위해 100만원을 기부하고 목단강시 평안교회당 건설에 1000여만원의 자금을 댔다.

2010년에는 목단강문화국에 150만원을 기부했으며 목단강정부를 도와 실업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000만원을 출자해 파산에 직면한 목단강 제1선반공장과 목단강 오금기자재공장을 인수해 들였으며 그중에서도 3400만원을 내놓아 실업로동자들을 안치함으로써 사회안정에 큰 기여를 했다. 2011년에는 목단강시위의 활동에 2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였다. 교육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0년 목단강시조선족중학교에서 3000평방메터의 예술체육관을 건설하는데 300만원을 대주었으며 2011년에는 흑룡강성유아사범전문학교에 100만원 되는 장학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그는 또 정부에서 호소하는 《사랑의 손길 보내기》 활동에도 적극 참가, 2010년 목단강 시위, 시정부의 호소에 따라 100만원을 애심기금으로 내놓았으며 2011년에는 적십자회에 40만원을 기부했다.

중국 새농촌건설의 호소에 호응해 2009년에 100만원을 찬조하여 녕안시 발해진 조선족촌인 폭포촌의 도로건설을 추진했으며 2010년에는 또 300만원을 투자하여 폭포촌 발전참 개조와 설비 보수를 추진했다.

어찌 이뿐이랴. 로약자만 살고있는 파가이주호에 무료로 주택을 제공한 일, 2008년 사천지진에 기업명의로 기부하고 또 개인명의로 기부금을 낸 일...

중한 교류 위해 공헌

2012년 2월 8일, 주한 중국대사관과 21세기 한중교류협회가 공동 주최한 신년인사회가 한국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렸다.이날 주한 중국대사관과 21세기 한중교류협회는 중한교류에 특수 공헌을 한 사람에게 공로패를 수여하였는데 김춘학회장이 《자랑스런 한중인》 공로패를 수여받았다.

그가 이같은 공로패를 수여받은것은 중한 교류에서의 그 공로가 인정받은것이다. 김춘학회장은 자신의 기업을 부단히 발전장대시키는 동시에 지방경제발전을 위한 큰 국면에도 주목했다. 그는 조사연구를 거쳐 여러번이나 시정부에 가치가 있는 건의를 제기했으며 그가 제출한 의안들은 흑룡강성 및 목단강시 정부에 채납되였다.

그는 또 한국 기업계의 인맥을 리용하여 한국에 목단강을 선전하고 민간교류를 활성화시켰으며 교육, 서화, 민간, 문화 등 면의 교류를 진행하였다. 또한 목단강시 서장안가 70여개 료식업체와 한국상품상점들의 설립 및 개축을 적극 도와나서 목단강시가 《조선민족풍정거리》를 일떠세우는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그가 린근의 소수민족 향진을 위해 유치한 외부자금은 루계로 5억여원이나 되며 여러 한국 독자 혹은 합자 기업이 목단강시에 발을 붙이도록 도와주었다.

에필로그

김춘학회장은 개개인의 꿈과 국가와 사회의 꿈은 서로 보완되여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의 창업의 꿈은 역시 국가와 사회의 꿈을 실현함에 있어서 중요한 한부분이 된다. 기업을 이끌어 국민에게 보답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것이 기업가의 책임이라고 하는 그, 《김씨가 일어난다》, 나아가서 《조선족이 도약한다》는 뜻에서 그가 직접 이름 지었다는 금약그룹, 김춘학회장의 꿈은 바야흐로 이루어질것이다.

/흑룡강신문 채복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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