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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촌간부들로 활기찾은 경산도마을

편집/기자: [ 리창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3-10-19 09:59:09 ] 클릭: [ ]

《해룡현 현지》에는 청나라 강희황제가 성경(지금의 심양시)에 와서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소봉촌(지금의 매하구시 산성진)을 찾았다고 기재되여 있다.

강희황제가 소봉천 남문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니 황금벼파도가 설레이는것을 목격하고 당지의 관리에게 《농호들이 1년에 량식을 얼마나 생산할수 있느냐?》고 묻자 지방관리는 《매년 석팔두를 생산할수 있습니다》고 아뢰였다. 강희황제는 《매 골짜기에 10호의 농호가 농사를 지으면 팔석(八石)의 량식을 생산할수 있겠구나》 고 말했다.

그때로부터 이곳의 지명은 두팔석(头八石)이라 불리기 시작했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입쌀은 공물로 지목되여 《황량어미》로 되였다.

화봉촌 마을 일각

매하구시 산성진 두팔석에는 조선족마을인 화봉촌이 위치하여 있다. 1976년까지 두팔석(조)으로 불리우다가 1976년말에 촌 이름을 지금의 화봉촌으로 개칭하였다.

원적이 경상도인 사람이 대부분인 화봉촌은 대부분 청장년들이 한국과 도시로 진출하다나니 촌간부를 선출할수 없어 몇해전에는 산성진에서 촌간부를 파견하기도 하였고 2년간은 촌당지부서기가 공백으로 되여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일부 사람들이 한국과 도시에서 귀향하였기에 올해 3월 촌간부선거에서 귀향인들이 촌간부로 선거되면서 촌의 활기를 되찼았다.

귀향인,로간부 《삼두마차》가 이끄는 화봉촌

매하구시 산성진으로부터 남쪽으로 2킬로메터 가면 조선족마을인 화봉촌이 있다.

올봄 화봉촌 촌간부선거에서 한국에도 여러해 가있었고 또 상해에서 려행사와 려행상품판매사업을 하던 최영명(58세)이 화봉촌의 당지부서기 겸 촌민위원회 주임으로 당선되였고 10년전에 한국에 갔다가 지난해말에 돌아온 김석대가 촌회계로 당선되였다.

화봉촌의 삼두마차(좌로부터 리여삼회장, 최영명서기, 김석대회계)

최영명은 1979년부터 촌회계사업을 4년간 하였고 1995년부터 2년간은 촌민위원회 주임사업을 하였었다. 1990년부터 한국친척방문을 다니기 시작한 그는 그후에 상해에 자리를 잡고 아들과 함께 려행사운영과 려행상품판매를 하면서 재미를 보고있었다. 그러던 그가 촌민들의 만류와 집에 90세 되는 로모가 있기에 촌에 남아 촌의 사업을 책임지기로 하였다.

김석대회계 역시 1998년부터 2년간 촌당지부서기를 하다가 한국에 가서 10년간 로무에 종사한후 돌아왔다. 아직 한국에 가서 몇해 더 일할수 있지만 촌민들이 촌의 사업을 맡아줄것을 권하자 남아서 촌의 회계사업을 책임지게 되였다.

올해 화봉촌에는 한국으로부터 귀향한 촌민이 6명이 되는데 그들은 도시로 이사가지 않고 촌에 남아있을 예정이다.

화봉촌에는 원래 조선족이 없었는데 1956년 해룡저수지가 건설되고 관개수로가 생기면서 이곳의 밭을 논으로 개답하고 강변의 버들판을 개간하게 되여 조선족들이 각 곳에서 모여들어 조선족마을이 생기게 되였다.

처음에는 조선족 2호가 한족촌인 두팔석촌에 거주하였는데 1960년에 조선족호가 20호로 늘어나 두팔석촌 조선족사로 되였다. 1962년에 조선족독립촌으로 되여 두팔석(조)라고 명칭하고 초대서기는 박병주가 담임하였다.

1963년에 길림과 료녕성 청원으로부터 호수를 대량으로 받아들여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1976년말에 화봉촌으로 촌이름을 개칭하였다.

현재 화봉촌의 호적호수는 87호이지만 집에 남아있는 농호는 20호다. 호적인구는 343명이지만 집에 남아있는 인구는 60명이며 200여명이 한국에 장기적으로 나가있다. 또  심양,북경,상해,천진 등 대도시에 나가있는 사람이 90여명 된다.

화봉촌의 로인협회는 전임 촌민위원회 주임인 리여삼이 회장과 촌경제감독위원장을 맡고 있다. 화봉촌은 귀향한 최영명서기와 김석대회계, 리여삼회장 이렇게 《삼두마차》가 이끌고 있다.

토지양도,주택판매 질서정연하게

화봉촌에는 851무의 경작지가 있다. 화봉촌 촌민들의 원적이 대부분 한국 경상도여서 한국에 친척이 많아 한국행이 일찍 시작되였다. 따라서 지금도 200여명의 촌민이 한국에 나가있다.

2002년부터 촌에서 촌민 사사로이 양도된 토지를 촌에서 집체로 양도하기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매하구시 9성미업과 3명의 대면적 재배호에 전 촌의 토지가 집단양도되여 경작되고 있다.

무당(667평방메터) 양도금은 330원, 국가에서 지불하는 각종 보조비는 촌민이 향수하며 촌의 모든 경영비는 임대호가 지불하며 양도금을 선불한다. 처음에는 7년 계약이였는데 래년이 만기이다.

촌간부의 임기가 3년이기에 다음부터는 양도기한을 양도기한을 3년으로 정해야 한다는것이 화봉촌 리여삼회장의 주장이다.

화봉촌에서는 개혁개방의 초창기인 1985년에 촌민들이 사사로이 집을 팔수 없고 집을 팔 때는 반드시 주택지를 받아와야 한다는 규정을 촌민대회에서 결정하였다. 만약 사사로이 집을 팔면 집을 판 호에 5000원의 벌금을 부가하고 책임전을 회수하기로 결정하고 지금까지 착실히 집행하고 있기에 한치의 땅도 류실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2호가 집을 팔았는데 집터를 받아왔다.

살림집을 허물어 복구한 옥수수밭

화봉촌에서는 2005년에 촌민들이 장기적으로 거주하지 않는 살림집 11채를 허물고 8무의 옥수수밭을 만들었다. 촌민들이 한국에 나가있고 돌보는 사람이 없어 11채의 살림집이 페허로 되였다.

당시 촌민위원회 주임인 리여삼은 고려끝에 촌민대회를 소집하고 촌민들이 돌아와서 집을 지으려 하면 집터를 새로 주기로 하고 페허된 집을 허물어 옥수수를 심기로 하였는데 지금 8무의 땅에 옥수수를 심어 화봉촌로인협회 활동비로 사용하고 있다.

90세 할머니 지금도 산나물하러 다닌다

매하구시 화봉촌에는 70세로인이 14명 있고 80세이상 로인 2명이 있으며 마을의 최고령로인은 올해 90세되는 장룡녀할머니이다.

화봉촌의 장수로인 장룡녀할머니

조선 평안북도 태천군 덕산리에서 출생한 장룡녀할머니는 90세의 고령이지만 자신의 고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장룡녀할머니는 11세 되는 해에 부모를 따라 오빠들이 먼저 와 있는 길림성 반석현의 푸태하란 중국인 동네로 이사오게 되였다. 처음에 오니 오빠들이 내놓은 음식이 삶은 통옥수수였고 오빠들이 그때 한족두루마기를 입고있어서 완전한 중국인으로 보였다고 이야기한다.

장룡녀할머니는 올해 90세이지만 올봄에도 5킬로메터 상거한 산에 고사리 뜯어려 3차례 갔었고 가을에는 주위의 들판에 나가 달랭이를 캤다. 지금 매일 하루에 마을을 3바퀴씩 걸으며 돈다. 기자가 취재하던 날, 촌로인협회에 장룡녀할머니가 손수 담군 막걸리를 가져와서 직접 맛을 보게 되였다.

장룡녀할머니는 슬하에 아들 둘과 딸 셋을 두고 있다. 모두 도시와 한국에 나가있어 몇해간은 혼자서 생활했지만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자체로 모든것을 해결했으며 간혹 로인협회에 나와 마당의 풀까지 뽑는다고 화봉촌로인협회에서 소개하였다.

장룡녀할머니의 장수비결은 특별한것이 없고 그저 부지런하고 선량하며 남을 돕기 즐긴다는것이다. 아들인 현임 화봉촌당지부서기 최영명의 소개에 따르면 60세후부터 매일 약간의 소주를 드시는것외 소식을 위주하는것이란다.

로인들의 집ㅡ로인협회

화봉촌로인협회는 1998년에 건립되였는데 지금 회장은 리여삼로인이 회장 겸 촌경제감독위원장을 맡고있다.촌과 함께 사무실을 사용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로인협회 회원들은 매일 케이트뽈시합을 하고 있다.

화봉촌로인협회 로인들이 장만한 점심상

지금 촌에 제일 젊은 사람이 56세인데 한국에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는다. 전체 촌민이 로인협회 회원이다. 로인협회에서 식당을 꾸려 활동할 때 자체로 음식을 장만하여 함께 즐긴다. 기자가 취재를 갔을 때도 로인협회에서 회원들이 직접 가꾼 야채와 거리에서 사온 가물치회로 점심상을 차렸다.

로인협회에는 여러가지 도서들이 구전하고 로인들은 시간이 있으면 독서도 즐기는데 아쉬운것은 도서가 많지만 우리 말로 된 도서가 한권도 보이지 않았다.

화봉촌로인협회는 촌에서 일부의 자금을 지원하는외에 촌의 옥수수밭을 양도받아 그곳에서 나오는 수입 6000원, 그리고 촌의 2개 량식가공기업으로부터 해마다 협찬을 받아 활동비로 충당하고 있다.

화봉촌로인협회에서는 해마다 로인들을 모시고 외지 관광을 간다. 이미 길림시 송화호, 집안시, 료녕성의 천산, 본계, 흑룡강성의 경박호를 관광하였으며 북경, 심양, 대련도 관광하였다.

관광할 때는 로인들의 건강을 고려하여 의사를 대동시키고 나이 젊은 60세좌우 로인들이 년로한 로인들을 책임지기에 지금까지 아무 사고없이 관광이 유쾌로왔고 촌민들이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취재하는 날, 마침 매하구시문화체육국 일군들이 와서 로인협회에 운동기구들을 설치하고 있었다. 화봉촌로인협회 리여삼회장이 매하구시문화체육국에 여러차례 반영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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