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단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길시5중 교사 력임
현재 광동성 혜주시에서 무역회사에 근무
나는 고향을 떠나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부평초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 두차례의 이사짐을 정리하면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은 과감히 버려왔다. 그러나 유독 고중 3학년 때의 일본어 복습제강만은 지금도 집 서재를 지키고 있다.
고중 3학년 때 일본어선생님은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직접 정성 들여 준비한 복습제강을 나누어주셨다. 당시만 해도 인쇄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않아 선생님은 직접 한장 한장 유묵으로 프린트하셨다. 나는 그 소중한 자료들을 한장도 버리지 않고 송곳으로 두군데에 구멍을 뚫어 하나의 파일로 묶어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 복습제강에는 선생님의 열정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10리가 넘는 통학 길에 그날 배운 내용들을 머리속에 되새기며 복습했고 복습제강을 수없이 반복하여 공부한 덕분에 나는 대학입시에서 일본어 92점(총점 100점)이라는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종이가 누렇게 변하고 모서리엔 보풀이 일었지만 그 복습제강에는 대학입시를 위해 준비했던 일본어 단어와 문법의 모든 지식이 살아숨쉬고 있다. 고중 3학년부터 지금까지 꼬박 30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와 함께해온 일본어 복습제강은 나를 가장 오래 동반한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사실 나의 일본어 사랑은 그보다 더 거슬러올라간다. 중학교 3학년 때, 전교에서 열린 일본어 경연대회에서 나는 10등이라는 마지막 등수를 차지했다. 비록 훌륭한 성적은 아니였지만 그 성적은 일본어에 대한 나의 뜨거운 흥미와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였다.
고중 1학년부터 나는 일본에 사는 친구 ‘구니야스 아키코(国安明子)’와 펜팔을 시작했고 일본어에 대해 더욱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되였다.
일본 친구는 내 편지에 답장을 보낼 때면 항상 내가 써서 보낸 편지를 복사한 후 틀린 부분을 빨간 펜으로 꼼꼼히 수정하여 함께 보내주었고 때로는 일본어로 된 소설책도 선물로 보내주었다. 그 세심한 배려와 정성이 얼마나 큰 힘이 되였는지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복사’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나는 펜팔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되였고 일본어로 주고받는 편지 왕래는 다소 단조롭기만 했던 고중생활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또한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공부한 덕분에 나와 구니야스 아키코는 모두 첫해에 대학에 진학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1990년대초, 동북지역에서 처음으로 일본어능력시험이 실시되였다. 길림성의 시험 장소는 장춘에 있는 동북사범대학 한곳뿐이였다. 당시 나는 연변대학 조문학부 4학년에 재학중이였고 대학에서 2년 밖에 일본어를 배우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일본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일본어능력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였다.
연변대학에서는 일본어학부 6명, 기타 학부 6명에게 시험 기회가 주어졌는데 일본어가 전공이 아니였던 나는 3급 시험 자격을 가졌다.
약 1년 동안 일본어를 잊고 지냈지만 다행히 고중 때의 그 복습제강이 큰 도움이 되였다. 다시 복습제강을 펼쳐놓고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단어와 문법 부분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청력 부분이 걱정되여 일본어학부에 청강 신청을 하고 틈틈이 청력 공부를 했다. 일본어 사전을 달달 외울 정도로 공부에 몰입하였기에 꿈속에서조차 일본어로 말할 정도였다. 그때 연변대학을 대표하여 일본어능력시험에 참가한 12명 학생 모두가 시험에 합격하였다. 합격 통지서를 받던 날, 나의 노력과 정성이 좋은 결실을 맺어 너무나도 기뻤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일본어는 내게 단순한 외국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청춘과 열정,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의 기록이였다.
얼마전 딸이 서재에서 꺼내놓은 그 복습제강을 발견했다. “엄마, 이게 뭐예요?”라고 묻는 딸에게 나는 고중 때 일본어 선생님의 열정, 대학입시의 치렬함, 펜팔 친구와의 추억, 그리고 일본어능력시험을 준비하던 날들의 이야기까지 복습제강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흥미진진하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딸을 보면서 누렇게 바랜 복습제강이 단순한 학습자료를 넘어 딸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노력과 열정으로 가득 채워주는 소중한 유산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서재 한편에 자리한 누렇게 바랜 복습제강을 볼 때마다 마음은 10여리 길을 통학하던 나의 10대와 20대, 30대로 되돌아간다. 그 시절의 간절함과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일본어 복습제강을 들여다볼 때면 그 종이장 사이에서 땀과 노력으로 얼룩진, 나의 열정으로 가득찼던 불타는 청춘을 다시 떠올려보며 내심의 미소를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