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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이야기] 낚시터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 문정

문정 프로필:

본명 문광수,

출생지 길림성 매하구시.

연변제1사범학교, 길림성교육학원 졸업.

교원,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시인협회 회원.

‘나와 조선어’ 수기 공모 금상, 조선어문교원 명제 글짓기 금상, 동포 수기 응모 우수상, 세계 조선족 문학작품 응모 자유시 대상 등 수상.

나는 교원인 동시에 낚시군이였다. 30여년간 교편을 잡았지만 교원으로 살아온 시간보다 낚시 경력이 더 길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해 어릴 적부터 낚시를 배웠는데 낚시터에서 훌륭한 스승님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999년 10월 1일, 국경절 련휴 첫날이였다. 나는 자전거에 도시락과 낚시 가방을 싣고 ‘쌍신’이라는 시골 마을의 낚시터로 향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낚시터는 명절이라 그런지 아주 조용했다. 멀지 않은 곳에 나보다 훨씬 년세가 많아보이는 로인 한분이 홀로 낚시대 두개를 펴고 앉아계셨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그는 연길시에서 교육사업에 종사하다 퇴직한 장씨 성(65세)의 로교원이셨다. 작년에 안해가 병으로 돌아간 후 두주전에 아들 집으로 오셨다고 했다. 같은 교원이라 무척 반가웠고 선생님은 세상을 떠난 부인도 나와 같은 문씨라며 기뻐하셨다.

수인사를 나눈 후 나는 낚시터를 둘러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과배나무를 발견했다. 마침 목이 말라 한개 따먹으려고 다가갔다. 탐스러운 사과배는 많이 열렸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높은 곳에 달려있어 큰 돌멩이를 주어 나무를 쾅쾅 두드렸다. 생각대로 사과배 몇개가 떨어졌지만 그 순간 나는 “앗!”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순간 눈이 퉁퉁 붓고 입안에 단맛이 돌며 입술이 뻣뻣하게 마비되였다. 수액을 빨아먹던 벌들에게 쏘인 것이였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장선생님은 나를 부축해 차에 태우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말로는 일찍 왔기에 천만다행이지 시간이 지체되였더라면 기도가 막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장선생님은 나의 생명을 구해준 구명은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급히 서두르다 보니 낚시 도구를 챙기지 못해 몽땅 잃어버렸다. 내가 마음 아파하자 장선생님은 아무 내색 없이 새 낚시대를 장만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는 888원짜리(그 당시 내 월급과 맞먹는 큰돈) 낚시대를 선물하며 익살스럽게 말씀하셨다.

“문선생 덕분에 낡은 낚시대를 버리고 새 낚시대로 새 손맛을 보게 됐소. 하하하~”

내가 그럴 수 없다며 돈을 드리려 하자 장선생님은 “나는 교사요. 게다가 당신 선배이자 고급교사라 월급이 당신보다 훨씬 많소. 그리고 내가 너무 데면데면했던 탓에 이런 일이 생긴 만큼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오. 부담 가질 필요 없소.”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반성하시는 모습에 송구스러웠고 어찌 그리 마음이 너그러우실가 감탄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나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시냐고 묻자 장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에도 교사였고 지금도 교사이며 앞으로도 교사라고 생각하오. 교사라면 누구에게나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소?”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이였다. 그 말에 나는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였고 문득 내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자주 만났다. 장선생님은 나보다 스무살 가까이 많았지만 같은 교직에 있었고 말이 통한다며 가까운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자고 하셨다.

우리는 함께 낚시를 다녔고 색다른 음식이나 집에 좋은 술이 생기면 서로를 초대하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장선생님이 하신 수많은 말씀중 한마디는 지금도 내 좌우명이 되여 가슴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왼손잡이는 원래부터 왼손잡이가 아니야. 알게 모르게 오른손보다 왼손을 더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지. 같은 리치로 사람은 좋은 생각을 많이 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생각을 많이 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거야.”

선생님은 내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으셨다. 10년전, 내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에도 나를 살리겠다고 닷새 동안이나 뛰여다니며 귀한 사향을 구해오셨다.

그런데 사람의 생사화복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하더니 그렇게 건강해보이던 장선생님께서 2020년 마지막 날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져 8일간 혼수상태에 계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되돌아보면 1999년 국경절에 벌에 쏘여 죽을 고생을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화가 복이 된 셈이다. 그 일로 나는 평생의 스승을 만났고 단순한 은혜를 넘어선 인생의 진리를 배웠다.

장선생님은 나에게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가르쳐주셨다. 타인의 어려움이나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돕는 법, 원망하는 자리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법, 남을 위해 베풀면서도 결코 베푼 티를 내지 않는 마음 등 많은 삶의 도리와 지혜들을 말이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장선생님이 내게 물려준 진짜 유산은 낚시대도, 사향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스승이라는 이름의 무게’였다. 그 무게를 나는 이제 제자들 앞에서, 후배들 앞에서,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 앞에서 묵묵히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가끔 혼자 낚시터에 앉아있으면 바람소리 사이로 장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문선생, 오늘은 손맛 좀 볼가?”

그리운 장선생님의 목소리는 오늘도 내 가슴속에서 살아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