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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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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1 10: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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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우수공산당원 왕청현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김춘섭 주임 ‘홍색전승'을 말하다
중국공산당 탄생 101주년을 맞는 7월 1일, 전국우수공산당원이며 왕청현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인 김춘섭은 왕청현중의원당위에서 조직한 “홍색력사를 명기하고 홍색유전자를 전승하자”는 주제로 된 혁명전통교양활동의 해설원으로 되여 대흥구진 하서촌 량성룡렬사의 고향마을에 왔다.
의무해설원의 사명
왕청현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 김춘섭은 여느 단체나 여느 한사람을 위한 해설일지라도 동만항일렬사들의 사적에 대해 이야기할라 치면 그토록 생동하고 감동적이다. 그만큼 그는 동만항일렬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구를 이어왔고 그들의 사적에 감동되여 그들의 정신을 대대로 이어가기 위한 분투를 지속해 왔던 것이다.
왕청현 대흥구진 하서촌에서 혁명전통교양활동에 참가한 젊은이들에게 량성룡의 영웅사적을 들려주며
하서촌의 량성룡렬사의 옛 고향집은 그가 올 6월까지 정성을 몰부어 수건을 마무리한 또 하나의 혁명전통교양기지이다. 량성룡렬사는 1906년 3월 15일 하서촌에서 태여났다. 그가 열다섯살을 잡던 해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독립운동에 참가했다는 리유로 일제놈들에게 살해되였다. 어린 시절부터 복수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 살아오던 량성룡은 30년대 초 맑스주의사상을 접수하고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왕청항일유격대대 대대장、중공동만특위 위원으로 성장한다. 량성룡은 2021년 건당 100주년 기념 연변조선족자치주 100명 우수공산당원의 일원으로 되였다.
그는 항일유격근거지의 군민을 이끌고 전략작전을 펼치면서 일제침략자들의 수차례 되는 토벌을 분쇄하고 항일유격구를 보위하였다. 1933년 겨울, 가야하항일근거지의 부녀간부로 활약하던 그의 안해와 부모형제 8명이 적들의 대토벌에서 무참히 살해되였다. 참상앞 량성룡은 적개심을 불태웠고 하루 빨리 이 땅에서 일제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인민대중을 해방하고 자유와 복된 나날을 찾아주려고 필사적으로 싸웠다.
량성룡 기념비
1935년 10월, 적들의 삼엄한 봉쇄와 토벌로 요영구항일유격구의 군민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을 때 량성룡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라자구에서 식량을 구해 운송해 가다가 계관령일대에서 일본군 토벌대의 총에 맞아 29세를 일기로 희생되였다.
김춘섭은 량성룡렬사의 사적을 깊이 발굴하고 그의 옛집을 수건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떻게 하면 혁명렬사를 후세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혁명정신을 본받게 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 량성룡의 고향마을에 새로 부설한 다리를 ‘성룡교’라 이름하고 거리명을 ‘량성룡거리’로, 소학교에 ‘량성룡중대’를 두면 영웅렬사를 오랜도록 기억할 수 있고 또 교육적 의의도 클 것이라 확신하였다.
하서촌 향촌건설에서 새로 부설된 가야하다리를 ‘성룡대교’라 명명
그러나 자금이 난제가 되여 골머리를 앓고 있을 무렵 2021년 6월의 하루, 장춘시 남관구 광명촌의 왕경(王庚) 서기가 낯선 두 사장들과 함께 그를 찾아왔다. 왕경 서기는 ‘검은 무리를 타격하고 악세력을 제거’하는 사업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둔 전국모범인물이였다. 그와 함께 동행한 두 사장은 왕서기덕분에 악세력과의 투쟁에서 승리하여 정당한 리익을 돌려 받은 기업인으로서 현금을 마련해 갖고 왕서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왔던 사람들이다.
왕경서기는 신화일보에 실린 〈한 로인과 109건의 기념비〉(김진수 작)라는 김춘섭의 사적을 읽고 감동된 나머지 인사차 찾아 온 두 사장에게 자기는 돈이 필요없으니 가장 필요한 분에게 돌리자며 그들과 함께 김춘섭을 찾아 온 것이다. 그들은 김춘섭을 만나 좋은 일에 쓰라며 현금 20만원을 꺼내놓았다. 역시 하나의 초심이 불러온 또 다른 감동릴레이였다.
김춘섭은 언제나 처럼 그 자금을 쪼개가며 량성룡렬사의 고향옛집이며 사적관을 일떠세웠고 량성룡렬사를 기리는 기지건설을 마무리지었던 것이다. 자신의 두손으로 건설해 낸 또 하나의 혁명전통교양기지에서 당의 101돐 생일을 맞으며 신세대들에게 당년의 한 공산당원이며 왕청현항일유격대대 대대장이였던 량성룡의 사적을 들려주는 김춘섭의 심정은 여전히 격동되였다.
보고문학 단행본 《진달래 붉게 물든 언덕》 을 전통교양활동에 참가한 청년들에게 기증하는 김춘섭 주임(오른쪽)
그는 최근 중공중앙선전부의 포치로 전국에 출판발행되고 있는 ‘시대의 본보기’(时代楷模)인물사적 단행본 《진달래 붉게 물든 언덕》(정봉숙 작, 金达莱映红山岗)을 전통교양활동에 참가한 젊은이들에게 기증하면서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주었다.
《진달래 붉게 물든 언덕》의 주인공
김춘섭 주임은 2005년 4월 왕청현인대 상무 부주임으로부터 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으로 일터를 옮긴 뒤 오로지 후대교양을 위한 목표를 향해 과감히 도전하고 혁신하며 헌신적으로 사업하였다.
새일대관심사업은 종국적으로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홍색교양을 진행하여 홍색유전자자를 전수하는 일이다. 김춘섭 주임은 “연변지구 특히 왕청현은 항전시기 동만지역의 주전장으로서 105차례의 전투가 벌어지고 603명의 혁명렬사가 용솟음쳐나왔으며 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에서 1772명의 영웅아들딸이 귀중한 생명을 바쳤다.”고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들 속에는 이런 혁명력사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안타깝기만 했다고 한다. 왜냐 하면 지금 젊은이들의 가치추향이 미래사회를 결정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우리 세대에 와서 이 력사가 끊어지면 그 후과는 감당하기 어렵고 우리 세대는 결국 력사의 죄인이 되고 만다.”며 “최저한 왕청이라는 이 땅에서 피를 흘린 영웅렬사들을 절대 ‘무명영웅’이 되거나 ‘무주고혼’이 되게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것이다.
‘시대의 본보기’ 영예를 지닌 김춘섭은 보다 큰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그는 공산당원의 자각과 초심을 안고 영웅렬사들의 자료를 찾아 읽고 혈육들을 찾아 방문하고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풍부한 자료보물고를 만들었으며 기념비를 세워 렬사의 령혼을 위로하기 시작하였다.
왕청현 동광진 묘구촌(庙沟村)에서 동장영의 무덤을 만났을 때의 그 처절함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1907년 안휘성 종양현에서 나서 자란 동장영이 1925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혁명의 리상을 수립하고 당의 양성을 받으며 여러 지역에서 성당위 서기로 사업하다가 1931년 11월 당조직의 배치로 중공동만특위 서기로 이곳 소왕청항일유격구로 오게 된다. 동만혁명투쟁의 총지휘자로 치렬한 투쟁을 벌이던 1934년 유격구의 인민군중을 엄호하며 싸우다가 그는 영용하게 희생된다. 그해 그는 27세였다!
타향 만리의 차고 습한 수풀 속에 낮다란 무덤으로 외롭게 누워있는 27세의 동장영과 마주한 이 퇴역군인의 가슴에는 이름할 수 없는 괴로움이 솟구쳐 오르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1935년 당중앙에서 발포한 ‘8.1선언’에 ‘민족영웅’으로 추대되고 2014년 9월 1일 중국인민정부에서 공포한 제1기 저명한 항일영웅렬사명록에 제8순위로 기입된 동장영렬사, 김춘섭은 다년간의 심혈을 기울려 동장영렬사릉원을 건설하고 동장영을 응당한 례우로 모셨다.
또한 동장영을 호위하며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피 흘려 싸웠던 녀전사 최금숙, 일제놈들이 작두로 목을 베고 머리를 느티나무에 달아매여 현시했던, 가장 잔혹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당의 비밀을 고수한 왕청현위 제2임 서기 김상화, 12세 어린 나이에 적들의 눈을 피해가며 비밀문건을 나르다 적들의 군화발에 채이고 짓밟혀 죽은 노래 잘하는 꾀꼬리 김금녀, 전장에서 열자식을 잃으면서도 항일물자를 머리에 이어 날랐던 강금자 어머니, 일제놈들의 야만적 침략행위를 저주하며 자동차에 실은 10만 발의 탄약을 아군에게 넘겨 해주고 자결로 목숨을 끊은 일본공산당원 이다스께오, 중국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태평령을 넘으며 일제와 결전을 벌렸던 쏘련 국제주의전사들…그들을 빠짐없이 기념비에 새겨 높이 높이 추대했던 것이다.
홍색자원 홍색문화 홍색경제
왕청현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사업일군들은 김춘섭 주임과 함께 17년간 자금난이며 인력, 물력 각종 난관을 이겨가며 항전영웅렬사기념비, 유적지기념비, 사적지기념비 109건을 세웠다. 홍색교육기념관 5개, 3갈래 홍색교육선로, 동만항일력사주랑, 홍색교육선전영상물, 홍색교육향토교재 및 어린이그림책을 출판하였으며 《왕청영웅렬사넷》을 개설하여 영향력을 높이면서 풍부한 홍색문화관광 브랜드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들은 2018년 3월 초 가야하의 얼음판에서 아름드리 청석돌 31개를 들어내여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에 운반해다가 ‘동만항일력사주랑’을 만들었다. 영원히 1931년을 기억하자는 상징적 의미를 담았고 1945년 항전승리를 표시하는 청석돌에는 항전승리 70돐 기념대회에서 습근평 총서기께서 하신 연설 한 구절을 새겨넣었다.
“정의 필승! 평화 필승! 인민 필승!”
2019년 6월 왕청현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에서 직접 설계하여 세운 ‘동만특위 3대 서기’ 한백옥 전신 조각군
소왕청항일근거지유적지에 우람차게 우뚝 솟아있는 ‘동만특위 3대서기’ 한백옥조각군은 또 티없는 순결과 비범한 기백으로 눈부시다. 중공동만특위 제2임서기이며 민족영웅인 동장영, 동만특위군사위원회 제1임서기이며 홍군장령인 양림, 동만특위 제3임서기 위증민 그들은 각기 한족, 조선족, 만족이다. 동만특위3대서기 본신이 민족단결의 상징으로 되여 있다.
항전시기 항일에 너 나가 따로 없고 모든 단결할 수 있는 력량을 단결하여 일치하게 일제침략자와의 결전을 벌린 그 뿌리 깊은 전통으로 하여 오늘날 전국 30개 소수민족자치주 중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유일하게 련속 5년째 전국민족단결모범자치주로 선정되였다.
왕청현 대흥구진 홍일촌에는 또 “중국의 소수민족 현위서기중 가장 잔혹하게 피살된” 김상화렬사의 릉원이 있다. 그리고 혁명에 참가하여 일제놈들에게 피살된 아버지와 오빠의 뒤를 계승하여 14살 어린 나이에 동북항일련군에 참가했던 김백문(동북항일련군 장령 리조린의 부인)의 옛 고향집도 복원되여 있다.
왕청현 현위와 정부에서 100여만원의 자금을 들여 규모있고 차원 높게 건설한 이 홍색기지 홍일촌은 제2기‘전국향촌관광중점촌’으로 평의되였고 ‘전국홍색관광발전전형’에 입선되여 국가대상자금 1200만원을 지원받게 되였다. 동시에 중앙조직부, 재정부로부터 길림성에 9개 뿐인 “홍색마을건설시점촌”에 편입되면서 마을건설에 지대한 지지와 지원을 받게 된다.
김춘섭 주임은 말한다. 홍색유전자는 중국공산당원의 정신적 핵심이며 중화민족의 정식적 뉴대라고, 홍색자원은 또한 홍색보물고이고 홍색문화이며 홍색경제라고.
인민대회당에서 네번 표창받다
명예란 어쩌면 명리를 따지지 않고 앞만 보고 실제일을 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2015년 7월, 세계반파쑈전쟁승리 70돐이 되는 해는 마침 중국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성립 25돐이 되는 해였다. 이해에 김춘섭 주임은 전국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선진사업자로 인민대회당에서 표창을 받게 되였다.
그해 8월 27일, 그는 또 “시대의 본보기”(全国时代楷模)로 되여 중앙텔레비죤방송국스튜디어에서 거행된 ‘시대의 본보기’ 반포현장에 들어섰다. 사회자는 중공중앙선전부의 “시대의 본보기 김춘섭에 관한 표창결정”을 선독하였다.
“김춘섭, 현임 길림성왕청현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 재직 10년간 새일대를 관심하는 책임을 짊어지고 영웅렬사들의 유족을 방문하고 대량의 자료를 찾아 읽으며 영웅렬사들의 사적을 써내고 자금을 모아 서적을 집필, 출판하였으며 항전정신을 널리 선전하였다… 고희에 이른 그는 공산당원의 본색을 잊지 않고 추구를 멈추지 않았으며 무사봉헌하기에 여력을 발휘하였으므로 시대의 본보기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2019년9월 또 중앙선전부와 9개 부위로부터 전국 ‘가장 아름다운 분투자'(最美奋斗者)의 영예를 받아 안게 된 그는 뢰봉, 초유록, 원륭평, 종남산, 장해적, 곽란영 등 자신이 몇 십 년 간 우러러 숭배하던 영웅인물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되였다.
2020년 11월 그는 재차 중국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선진사업자로 당선되면서 또 다시 인민대회당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 감동과 감격, 감은의 마음은 여전히 온 가슴에 벅차 올랐던 것이다.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탄생 100돐 기념일에는 중공중앙으로부터 ‘전국우수공산당원’으로 선정되여 네번째로 인민대회당에서 표창을 받게 되였다. 습근평 총서기를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고 천안문광장관례대에 올랐던 그 감격의 순간을 되새기며 “한 평범한 로당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 같은 아름찬 영광을 안겨 주니 조직이 수요하고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체를 바쳐 계속 사업할 것”이라 감개에 젖어 말한다.
이 산골벽지 왕청의 한 평범한 로당원의 평범치 않은 사적은 2018년 중국작가기관지 《인민문학》에 〈진달래 붉게 물든 언덕〉이라는 보고문학으로 올랐다. 2022년에는 또 중국외국문출판발행사업국에서 발행하는 《오늘의 중국》이라는 대형잡지에 실려 세계 150여개 나라에 전파되였다.
김춘섭 주임은 지금까지의 나날들을 돌이켜 보면서 “필경 당과 영웅렬사들의 품이 오늘의 내가 있도록 받들어 주었다.”고 말한다. 그는 또 “ 기념비는 초심의 상징이고 초심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영웅렬사들의 령혼에 대한 위안이며 초심을 실천한다는 것은 당에 대한 가장 큰 충성”이라고 격정어린 토로를 한다.
/본사기자 김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