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작은 촌마을에서 올린 제안 중남해에 "들어가다"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新华网 ] 발표시간: [ 2022-01-05 15:00:31 ] 클릭: [ ]

촌민들을 거느리고 농가락을 건설하고 향촌관광전문합작사도 세우고 영화스탭도 유치하여 촬영도 하고… 내몽골자치구 얼둬스시 다라터기 은거베이진 포거복촌 사람들은 촌서기 리전파라 하면 엄지손가락부터 치켜들고 자랑을 늘어 놓는다. 최근 년간 촌민들에게 있어서 리전파의 제안이 중남해에 채납되여 당의 ‘14.5'계획에 들었다는 것이 아주 신나는 화제로 되였다.

1983년생인 리전파는 섬서성 단풍현 사람이다. 그는 내몽고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생촌관리에 합격되여 2009년도부터 포거복촌에 와 사업하게 되였다. 그가 사업에 참가하여 가장 많이 접촉한 사람들은 마을의 년세가 많은 분들이였다.

리전파가 촌주임 조리로 갓 마을에 들어 섰을 때는 마침 나라에서 신형농촌합작의료를 보급하는 시기였는데 매일 하는 일이 촌의 중로년들과 관련되는 일이였다. 다년간 포거복촌의 60세이상 로인들 비례가 75%이상이였다. 어떻게 하면 로인들의 실제문제를 잘 처리할 것인가가 리전파의 일관한 관심사였다.

“지난날 촌의 부녀들이나 아동들 그리고 로인들은 모두 홀로 집에 남아 있었습니다. 생활수준이 높아 지면서 점차 부녀들이나 아동들은 대부분 청장년들을 따라 도시에 들어가 일자리를 찾거나 학교에 다니고 로인들만 촌에 남아 생활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니 농촌지역의 양로문제는 반드시 실제적으로 해결되여야 했습니다. ” 리전파의 소개였다.

집에 남아 있는 로인들 일을 말할라치면 리전파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부모들을 생각하게 되였다. “외지에 나와 사업하면서 제일 걱정스러운 일이 집에 계시는 부모님들 이였습니다. ”

그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서부터 해마다 음력설과 같은 큰 휴가때에야 섬서성에 있는 고향집으로 한번 갈 수 있었는데 사업을 하면서는 더구나 집에 가 부모님들을 만나는 차수가 줄어들게 되였다고 한다.

“부모님들은 세월이 갈수록 년세는 높아지고 형제자매들은 모두가 외지에 나가 일하다 보니 일단 부모님들에게 일이 생기면 자연 마을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층사업을 하면서 겪는 현실문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고향의 부모님들이 당면한 양로문제를 두고 리전파는 ‘농촌호조양로'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갖기 시작하였고 또 많은 고안을 하였다.

2020년 8월, 5개년 계획 편찬사의 첫 ‘인터넷 질문과 계획'은 네티즌들로부터 수백만 개의 의견과 제안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운번'(云帆)이라는 닉네임으로 된 ‘호조양로'에 대한 리전파의 제안이 들어있었다.

리전파가 제기한 ‘농촌호조양로’란 바로 농촌 로인들이 집거한 지역에서는 정부가 재정투입을 하여 공동식당과 공동숙사를 건설하고 의향이 있는 로인들이 면비로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년세가 적고 능력이 있는 로인들이 년세가 많고 자립하기 힘든 로인들을 돌보면서 “오늘은 내가, 래일은 네가 하는 식으로 서로를 돌보는” 상호양로모식을 말한다.

“정부재정에서는 기초시설건설을 책임지고 동시에 자선기금도 흡수하면서 로인들 절로 자기 관리를 하고 자기 서비스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소득원이 없는 로인들의 생활도 개선하고 로인들 가정의 토지도 촌에서 통합관리를 하면서 토지자원을 활성화하고 생산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향촌진흥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리전파는 자신의 생각을 낱낱이 소개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제안이 과연  ‘14.5'계회에 채납되리라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질문과 계획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고 더우기는 민주를 발양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설레는 심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최근년간 포거복촌의 촌민들이 촌의 대소사에 참여하는 적극성이 대단히 높아져 촌의 위챗그룹도 건언헌책하는 중요한 경로로 되였다. “나라의 대정방침이나 우리 촌의 기층사무나 하나의 정책이 제정될 때면 그 배후에는 군중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따르는 것입니다.”

2021년 11월, 20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로인활동중심이 포거복촌에 일떠섰고 사용에 교부되였다. 그때로부터 매일 60여명의 로인들이 여기에 모여 활동하면서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것은 우리 촌의 농촌호조양로문제를 탐색하는 첫 걸음입니다. 저는 우리 마을 로인들이 어디까지나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만년을 보 낼 수 있도록 할 자신이 있습니다. ” 리전파는 신심가득히 말하였다.

0

관련기사 :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