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정신적 계보 18] 유인우주비행정신―망망한 우주로 향하는 우리의 대장정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新华网 ] 발표시간: [ 2021-11-22 14:20:57 ] 클릭: [ ]

 
임무 완수 후 신주 12호 3명 우주비행사는 3개월의 우주비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그들은 서북 고비사막에 위치한 동풍착륙장에 무사히 착륙했다.

돌아오는 길의 우주는 여전히 그 우주였지만 중국인들은 또 한번 새로운 기록을 이곳에 세워놓았다―신주우주선은 최초로 쾌속 도킹을 실현하였고 최초로 자체로 만든 우주정거장에 들어섰으며 가장 오랜 시간 우주에 머물고 가장 오랜 시간 선실 밖에서 활동하고…

사진은 8월 20일 북경우주비행통제쎈터 대형 스크린에서 찍은, 신주 12호 우주비행사 섭해승, 류백명이 선실 밖 활동 임무를 완성한 후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는 장면이다.

이는 중국 우주비행의 새로운 경지와 중화민족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중국이 정식 우주정거장 시대에 들어선 시간축에 서서 중국 우주인들이 29년 동안 걸어온 평범하지 않은 길을 돌이켜보면 중화민족을 한번 또 한번 일떠세운 것은 바로 민족 존엄과 자호감이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정신이 바로 유인우주비행정신이다.  ‘분투, 난관돌파, 공헌’의 유인우주비행정신은 민족정신의 귀중한 재부로서 한세대 또 한세대 우주인들이 초심을 잊지 않고 앞으로 계속 전진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1)

1992년 9월 21일, 당중앙은 중국 유인우주비행 프로젝트를 실시할 것을 정식 비준했다. 그 날부터 중국 유인우주비행 사업은 극히 힘들고 어려운 조건하에서 조용히 첫걸음을 뗐다.

이 시기에 쏘련은 이미 제3세대 우주비행선을 발사하였고  ‘살류트’호와  ‘평화’호 우주정거장을 건설했다. 미국은 비행선에서 우주비행선으로의 도약을 실현했다.

2018년 5월 17일, 우주비행사 섭해승(우3), 류왕(좌1)과 장효광(우1)이 사업일군의 호송하에 사막으로 야외 생존 훈련을 떠나고 있다.

외국보다 뒤떨어진 상황에서 수많은 과학연구일군들은 밤낮없이 난관을 헤쳐나갔고 자연환경이 악렬한 고비사막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 모래바람을 맞으며 유인우주비행 발사장을 건설했으며 2,000여일 동안 전국을 돌며 조사연구를 진행해 완전히 새로운 시험 발사 절차를 설계해냈다.

어떠한 어려움도 중국인들을 움츠러들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려움을 영광과 기쁨으로 생각하면서 사업에 몰두하고 곤난을 이겨나가며 극한에 도전했다.

1998년 1월 5일, 1,500여명의 우수한 공군 비행원중에서 선발된 14명이 북경 우주비행성에 모였으며 중국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되였다.

쏘련 우주비행사 레오노브는 우주를  ‘하늘로 향하는 계단’이라고 하면서 그 곳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된 훈련을 견뎌내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은 고속 회전 원심분리기에서 3G 내지 4G의 중력가속도 밖에 견디지 못하지만 우주비행사들은 40초에 8G의 중력가속도를 견뎌내야 한다.

훈련중 그들의 오관은 눌리워 변형되고 눈물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휘뿌려졌으며 흉부에는 극도의 압력이 가해져 호흡이 곤난해지고 팔은 들 수조차 없었다. 이런 훈련을 진행할 때 우주비행사의 옆에는 훈련 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빨간색 버튼이 있었는데 오늘날까지 그 누구도 이 버튼을 누른 적이 없다.

이런 정신은 유인우주비행 령역의 특별한 사업 환경이 만들어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의 격려하에 연구 제작, 건설, 시험에 참여한 중국 우주비행사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곤난을 이겨내며 중화민족 천년의 우주비행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인생의 려정에서 제일 큰 격려의 힘은 무엇인가? 중국 유인우주비행 연구, 시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 발전을 조국의 우주비행 사업에 깊이 융합시켰다.

2008년 9월 27일, 신주 7호 유인우주비행 선실 밖 활동 임무 집행에 나선 우주비행사 적지강이 금방 선실 밖을 나선 후 중국 국기를 흔들고 있다(북경우주비행통제쎈터 대형 스크린에서 찍음).

2008년 9월 27일, 검은색 하늘과 파란색 지구의 배경 아래 신주 7호 우주비행사 적지강은 한없이 넓은 우주에 중국인의 첫발자국을 남겼다. 아름다운 오성붉은기가 천천히 펼쳐지는 장면에는 중국인들의 영원한 기억이 응집되였다.

하지만 이 력사적 시각의 리면에는 생사의 시련도 있었다. 적지강이 우주선에서 막 나오려 할 때 우주선에서는 화재 경보음이 계속 울렸다. 가장 무서운 사고와 마주하였지만 적지강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주선을 나섰다.

그는  “어떠한 상황이 발생해도 우리는 반드시 임무를 수행해 오성붉은기를 우주에 꽂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 우주비행인들의 공통된 마음의 소리이기도 하다.

2003년 10월 15일 9시, 주천위성발사중심에서 장정 2호 F형 로케트가 신주 5호 우주비행선을 싣고 우주로 향했다. 우주비행선이 발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양리위는 공진(共振)이라는 문제에 부딪치게 되였다. 양리위는 한번도 이런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2003년 10월 15일, 중국 최초 유인우주비행 임무 집행에 나선 양리위가 출발전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그는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주비행선이 발사되기전부터 이미 희생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양리위는 그의 희생으로 인해 남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서 우주비행의 꿈이 실현되지 못할가봐 두려웠다. 공진은 26초 동안 지속되였다.

그 후 사람들은 “그 26초는 중국 우주비행사들의 용감함과 조국을 위해 희생하는 우주비행사들의 충성심을 증명하였다.”고 평가했다.

18년 후  ‘시대정신 향강(香江)을 비추네’  활동이 북경과 향향 두곳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되였다. 한 향항 청년이 양리위에게 “우주비행사라는 직업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될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양리위는 “우주에서 세계로 향해 중국 국기를 보여줄 때 가장 멋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개인의 리상과 조국의 운명, 개인의 선택과 당의 수요, 개인의 리익과 인민의 리익을 긴밀히 련결시켜야 한다. 이는 중국 우주비행사들이 분투할 수 있었던 원천이였고 끊임없이 비범한 업적을 창조할 수 있었던 근본적 원인이였다.

(3)

유인우주비행은 한 나라의 종합 국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표징이다.

첫 시작이 좀 늦긴 하였지만 중국 우주비행사들은 시종일관 높은 기점에서 발전을 견지하였고 자주혁신하며 힘써 난제를 풀어나갔고 일련의 핵심 기술을 돌파하고 장악하여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에 중국특색이 있는 유인우주 프로젝트 발전의 길을 개척했다.

신주우주선은 연구 제조 시기부터 국제 제3세대 유인우주선 수준을 겨냥하여 3명 우주비행사, 3개 선실 설계 방안을 직접 채용했다. 신주를 발사할 운반체를 개발하기 위해 운반로케트 설계 제조 일군들은 거의 1,000가지 기술 난제를 해결해 장정 2호 F형 로케트를 세계적 수준의 ‘금메달 로케트’로 개발했다. 또한 유인우주선 발사장을 건설하고 수직 종합적 조립, 수직 테스트, 수직 운수, 원격 발사 테스트 등 중국특색의 총체적 기술 방안을 채용해 세계 선진 행렬에 들어섰다. 일련의 새로운 기술, 새로운 창조, 새로운 성과 모두 중국 우주비행사들이 혁신적으로 난관을 돌파한 지혜의 결정체였다.

1999년 11월 20일 새벽, 서북의 깊은 사막에서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살을 파고드는 찬바람을 무릅쓰고 흥분 속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1999년 11월 20일, 신주 1호 무인우주선이 주천위성발사중심에서 발사되여 하늘에 올랐다.

6시 30분, 장정로케트가 중국에서 자체로 연구 제조한 신주 1호 무인우주선을 창공으로 쏘아올렸다. 이튿날 새벽 무인우주선은 정확하게 예정된 회수 구역에 착륙했다.

이는 중국 우주 사업이 짧디짧은 7년 동안에 선진국들이 30년 내지 40년을 걸쳐 걸어온 길을 완수하였다는 것을 의미했다.

제일 걷기 힘든 진창길을 걸어야 제일 깊은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종 정신은 폭풍과 폭우의 세례를 받아보고 좌절과 실패의 단련을 겪어봐야 뼈저리게 명기할 수 있는 것이다.

2021년 5월 19일 저녁, 천주 2호 화물우주선이 발사까지 3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장정 7호 요3형 운반로케트의 압력치 계수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 부득불 발사를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 로케트의 성공적인 발사 여부는 중국이 우주정거장까지의 운수 통로를 순조롭게 구축할 수 있을지와 관계되였고 더우기 후속적인 유인우주비행의 순조로운 실시 여부와도 관계되였다.

다음번 발사까지 9일 밖에 남지 않았다. 사고 재발을 철저히 막기 위해 연구일군들은 옷을 바꿔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후 번마다 50평방센치메터 되는 선실문을 드나들며 로케트 선체를 자세히 검사했다. 5월의 해남은 실외 온도가 섭씨 30여도에 달하고 습도가 90% 이상에 달했으나 로케트 선체 속의 온도는 섭씨 령하 183도에 달했다. 막대한 온도 차이는 장정 7호에 대한 도전이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연구일군들에 대한 도전이였다. 하지만 그들은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한가지 생각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5월 25일, 모든 테스트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5월 29일 20시 55분, 로케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였다! 숭고한 사명은 난제를 잘 해결해나가는 중국 우주비행사들의 정신을 분발시켰고 이런 정신은 또 중국 우주비행사들을 고무격려해 어려움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높은 봉우리를 톺아오르게 했다. 짧디짧은 29년 동안 우리 나라는 무인비행으로부터 유인비행으로, 1인 1일 비행으로부터 여러 명, 여러 날 비행으로, 선실내 실험으로부터 우주 유영으로, 우주선 단일체로부터 조합체로의 안전 운행에 이르기까지 우주비행에서의 기적을 창조했다.

(4)

6월 17일 9시 22분, 신주 12호 유인우주선을 탑재한 장정 2호 F형 요12 운반로케트가 주천위성발사중심에서 제시간에 점화 발사되여 섭해승, 류백명, 탕홍파 등 3명 우주비행사를 우주로 보냈다.

2021년 6월 17일 9시 22분, 장정 2호 F형 요12 운반로케트가 주천위성발사중심에서 하늘공중으로 치솟아올랐다. 약 573초 후 우주선이 로케트와 성공적으로 분리되여 예정 궤도에 들어섰고 우주비행사 3명을 순조롭게 우주로 보냈다.

사진은 6월 17일 북경우주비행통제쎈터에서 찍은, 천화 핵심창에 진주한 섭해승, 류백명, 탕홍파가 전국 인민들에게 경례를 올리고 있는 화면이다.

우주로 떠나기전 3명 우주비행사들은 발사장과 수키로메터 떨어진 곳에 있는 동풍혁명렬사릉원을 찾아갔다. 원수, 장군으로부터 일반 병사, 과학기술사업자에 이르기까지 조국의 우주 사업을 위해 생명을 바친 760여명이 이곳에 고이 잠들고 있었다.

반인근은 그중의 한사람이다. 1998년 4월 18일, 신주 1호 우주선이 긴장하게 작업을 준비하던중 유인우주선 발사장 전자자기 사업 책임자 반인근은 피로가 쌓여 일터에서 쓰러졌다. 남편의 사업을 지지하기 위해 반인근은 상해의 사업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사막으로 와서 과학연구실험 제일선에서 분투했다. 테스트 작업은 대부분 야외에서 진행되였다. 반인근은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일터를 굳게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밤 반인근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우주선이 하늘로 날아오르면 꼭 알려달라고 남편과 약속했다.

영웅은 명리를 따지지 않으며 오직 우주 사업의 성공을 바랄 뿐이다. 오늘날 렬사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은 12척의 신주우주선이 그녀가 고이 잠들고 있는 곳에서 하늘로 날아올랐고 중국인의 우주정거장도 건설되였다는 것이다.

중국의 우주비행 력사에서 규모가 방대한, 세기를 뛰여넘는 프로젝트인 유인우주비행 프로젝트는 실시된이래 전국 수천개 단위가 합류하였고 수십만명이 참여했다. 그들은 전방이거나 후방이거나를 막론하고 명예와 리익을 따지지 않았으며 하나의 공동한 목표를 위해 강대한 단결력을 형성했다. 우주비행사이며 시스템 총설계사인 황위분은 이렇게 말한다.  “유인우주비행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루어낸 평범하지 않은 업적이였고 이름없는 사람들이 이룩해낸 세상을 놀래우는 성과였다.”

정신은 무형적이지만 무궁한 힘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사람들을 고무격려해 중임을 짊어지고 앞으로 전진하면서 꿈을 이루도록 한다. 유인우주비행정신은 중국의 우주사업일군들이 과학기술 강국을 건설하는 행정에서 세운 정신적 금자탑이며 시대적 특징이 선명한 귀중한 정신적 재부로서 분발진취하고 시대를 뛰여넘어 용감히 전진하도록 중화민족을 영원히 고무격려할 것이다.

/신화사

0

관련기사 :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