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습근평 백년 대정당 이끌고 새 정도에로 분발 전진

편집/기자: [ 최화 ] 원고래원: [ 新华网 ] 발표시간: [ 2021-11-08 10:33:19 ] 클릭: [ ]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립 100돐 경축대회가 북경 천안문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되였다. 대회에서 습근평이 중요한 연설을 발표했다.

2021년은 습근평이 중공중앙 총서기를 맡은 지 9년이 되는 해이다. 이 한해에 세계 최대 집정당은 백세 생신을 맞이 했다.

습근평의 일정은 예나 다름없이 빽빽이 안배되여있다.

그는 중국공산당 창립 100돐 경축대회에서 중요한 연설을 발표했으며 북경에서 2000키로메터 밖에 있는 청장고원에 고찰을 다녀왔다. 우주정류장에 가 있는 비행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유엔의 ‘클로드’회의에 참석하고 여러 나라 지도자들과 영상 회견을 했다…

이어 그는 또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에 출석하게 된다. 이 회의에서 심의하게 될 〈당의 백년분투의 중대한 성과와 력사경험에 관한 중공중앙의 결정〉에는 특히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건립 시간이 이토록 길고 집정 기간이 이렇게 오래된 정당은 참으로 보기 드물다. 2012년 11월 습근평이 중공중앙 총서기로 당선되기 전에 중국공산당은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 호금도를 주요 대표로 하는 중앙 령도 집단이 있었다.

습근평은 중국공산당을 인솔해 새 시대에 들어섰으며 첫 백년 분투목표를 실현했다. 즉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실현했다. 게다가 웅심으로 넘치는 새로운 현대화 건설 요강을 실시하기 시작했으며 민족 전면 부흥의 두번째 백년 분투목표라는 새 정도에 올라섰다.

의심할 나위 없이 습근평은 력사의 흐름을 조종하는 핵심인물이다. 그가 어떻게 당을 인솔해 기회와 도전 속에서 중임을 완수하며 어떻게 중국을 이끌고 세계무대의 중앙에 되돌아오며 또한 이로써 어떤 영향을 몰아올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가 9년 전 중공중앙 총서기에 갓 취임했을 때처럼 주목받고 있다.

해내외 여론은 습근평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그는 신념이 확고하면서도 행동이 과감한 사람, 사상이 심오하면서도 정이 두터운 사람, 계승을 잘하면서도 용감히 혁신하는 사람, 전반 국면을 장악하면서도 비상사태를 민첩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 분투를 계속하면서도 강대한 자제력이 있는 사람, 겸손하고 온화하면서도 두려운 것이 없는 사람이다.

“2012년 취임 시 습근평의 희망이란 바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였다. 그는 이를 하나의 력사사명으로 간주했다.” 스위스 《일간 데일리 뉴스》가 한 말이다. 싱가포르 아시아뉴스방송은 이렇게 말했다. 습근평의 령도 아래 중국은 하나의 강국으로 되여가고 있다, 중국은 또 하나의 성세에 들어서고 있다.

‘부모를 사랑하듯 백성을 사랑’하는 당의 총서기

9월에 습근평은 섬서 고서구촌에 가서 현지고찰을 하며 조사연구를 했다. 가는 길에 그는 중도에서 림시로 차에서 내려 밭에 들어가 조, 기장, 옥수수의 자람새를 살펴보았으며 밭에서 일하고 있는 촌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제날 고서구촌은 빈곤촌이였다. 오늘날 황페하던 두메산골 고서구촌은 “작은 강남”으로 변했으며 농민들도 부유해졌다. 고서구촌은 수천수만의 중국 농촌이 개혁개방을 통해 새 모습으로 탈바꿈한 축도이다.

 2021년 9월 13일, 습근평은 섬서성 유림시에서 고찰하며 조사연구를 진행했다. 사진은 미지현 은주가두 서구촌에서 고찰 중인 습근평.

습근평은 바로 이 고서구촌과 150키로메터 떨어진 다른 한 촌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때로부터 중공중앙 총서기로 되기까지 그는 38년을 거쳐왔다.

1969년 16세가 채 안되는 그는 섬서 량가하촌에 지식청년으로 내려갔다. 습근평은 후날 이렇게 회억했다. 그는 촌민들과 함께 토굴집에서 살면서 껄껄한 잡곡으로 끼니를 에웠으며 잠자리는 벼룩이가 살판을 쳤다. 농민들 생활은 정말 간고했다. 당시 그의 념원이라면 “촌민들이 고기를 한끼 배불리 먹도록 하는 것”이였다.

습근평은 1974년에 입당했으며 얼마 후 량가하대대 당지부 서기로 되였다. 당시 그와 함께 일했던 촌간부에 따르면 습근평의 “진보”는 그가 “착실하게 일하고 견해가 있으며 군중을 단결하고 대대간부를 단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고 한다.

습근평 서기는 촌민들을 이끌고 우물을 파고 언제를 쌓고 다락밭을 만들고 메탄가스탱크를 건설했다. 1년이 지나자 기근으로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사람이 없어졌다.

습근평은 홍색가정에서 태여났다. 부친 습중훈은 중국공산당 제1차 대표대회 중앙령도집단 성원이다. 습근평은 부친이 몸소 언행으로 보여주던 가르침과 자신의 소년 시절 성장 환경을 이렇게 회억했다.

“중학교 때 내가 배운 정치 교과서의 이름은 《혁명의 후계자가 되자》였다. 책에는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생산로동을 열애하고 간고분투하며 자기의 두손으로 부강한 사회주의 조국을 건설하자’, ‘웅대한 리상과 포부를 지니고 혁명의 계승자가 되자’” 습근평이 한 말이다.

습근평은 지식청년 시절에 입당 신청서를 10번 바쳤었다. 그는 토굴 속 석유등 아래에서 《자본론》을 세번 통독했으며 독서필기는 18책이나 되였다.

량가하대대 당지부 서기 일터를 고별한 후 그는 북경에 돌아가 대학공부를 했다. 졸업 후에는 중앙군위 판공청에서 근무하다가 후에 하북성에 가서 정정현 현위 부서기, 서기를 맡았다.

그는 이때를 이렇게 회억했다. “1982년 나는 주동적으로 요구해 중앙기관에서 다시 기층에 내려갔으며 군중들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부모를 사랑하듯이 백성을 사랑하련다고 말했다.” 당시 가장 심각한 체득이라면 어려울 때일수록 인민군중이야말로 가장 큰 뒤심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첫째, 부정불의에 굴복하지 않으며 누가 절박히 수요할 때면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 둘째, 사람이 되고 일을 하면서 견식을 넓히도록 가르쳐준다. 셋째, 견인불발하고 고생과 어려움을 참고 견뎌낸다.

이후에 그는 연해의 복건성에 가서 하문시 부시장을 담임, 복건성의 한 빈곤지역인 녕덕에 가서 지위서기를 맡았으며 계속해 복주시위 서기, 복건성 성장 등을 담임했다. 이후 절강성에 가서 근 5년간 성위서기로 있었으며 또 중국에서 가장 현대화한 도시인 상해의 시위서기로 전근되였었다.

현재 절강 포강현의 한 학교에는 그가 “하방”했던 현장이 보류되여 있다. 2003년 습근평은 동료를 이끌고 여기서 군중들을 접대했다. 당시 교실 한칸을 림시 수건해 만든 접대실에서 촌민들은 길을 수건해줄 것을 여러번 제기했지만 지금껏 소식이 없다고 반영했다. 교통부문의 의견을 들어본 후 습근평은 당장에서 결정을 내려 성급 도로 개조공사를 재빨리 착공하도록 했다.

한 회억 문장은 그가 정과 도의를 중히 여김을 기재하고 있다. 작가 친구인 가대산이 아프자 그는 급히 정정현에 돌아가 병문안했으며 당년의 동료 려옥란이 세상뜨자 글을 써 추모했다. 또 량가하의 촌민 려후생이 큰병에 걸리자 습근평은 복주에 데려다 치료해줬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로임과 집식구들 돈으로 려후생의 모든 로비, 의약비를 부담했다. “후생이, 자네의 병치료라면 돈이 얼마 들어도 달갑다네.”라고 습근평은 말했다.

어떤 직위에서든 습근평은 쉽게 군중과 어우러 지군 한다. 그는 촌간부들과 어떻게 하면 토산물 배갈을 잘 팔아 농민들 수입을 증가할 것인가를 담론하고 온라인 쇼핑몰을 도와 “홍보대사”가 되여주기도 하며 비속에서 로동자들과 사진도 찍고 골목에서 만난 택배 아저씨에게 설인사도 전하고 동네 쓰레기 분류에도 로심초사하며 어떻게 하면 중소학교 근시률을 내리울가에도 방법을 강구한다.

2019년 2월 1일, 습근평은 음력설 전야에 북경 전문 석두골목에 있는 택배 봉사점에 나와 여전히 일에 바쁜 ‘택배아저씨’들을 위문했다.

절강의 동료 장홍명은 습근평은 당시 아주 큰 품을 들여 태풍 방비를 포치했는데 그가 한 몇마디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며 이렇게 말한다. “하나는 ‘열번의 예방에서 9번이 무효로 되더라도 만에 하나의 실수도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욕소리를 들을지언정 곡성은 듣고 싶지 않다’이며 또 다른 하나는 ‘질서있게 철수하고 타당하게 안치하라’이다.”

“이런 심경이 바로 그가 코로나 19 역병이 습격해 올 때 그 어떤 대가도 아끼지 말고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최저 론리를 가장 빠른 시간으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중국 포동 간부학원 부원장 류정북이 한 말이다.

습근평은 가는 곳마다에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시정 강령을 내놓군 했다. 이를테면 ‘88전략’과 “‘등롱환조, 봉황열반’이다. 녕파 주산항은 오늘날 지구적으로 화물 물동량이 가장 큰 항구로 되였다. “그는 20년 전에 벌써 이 추세를 보아내고 건설계획을 내린 것이다.” 항구의 관리일군 도성파가 회억하는 말이다.

2007년에 습근평은 중앙으로 왔다.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국가부주석 직을 맡고 당건설, 조직사업, 향항 오문, 북경올림픽대회 준비 등 령역을 책임졌다.

2012년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에서 59세의 습근평은 중공중앙 총서기로 당선되였다.

총서기에 취임한 지 한달 남짓해서 그는 섭씨 령하 십몇도가 되는 추위를 무릅쓰고 차를 타고 300여키로메터를 달려 태항산 깊숙한 곳에 있는 빈곤현 부평현을 찾아갔다. 그는 농가에 들어가 구들 우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 촌민의 손을 잡고 그들의 생활상을 알아보았다. 혁명 로구역에 사는 어떤 촌민들 생활이 아직도 어려운 편임을 보고 난 그는 “참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2012년 12월 30일, 습근평은 하북성 부평현 룡천관진 락타만촌에 가서 생활이 어려운 군중들을 위문했다.

습근평은 인민에 봉사하고 청렴결백한 것은 공산주의자의 본색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이 본색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늘 자신이 솔선적으로 행동에 옮겼다. 녕덕에서 근무할 때 습근평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당에서 줄을 서서 밥을 탔고 집식구들이 오면 집에서 때식을 끓였다. 부인 팽려원이 그를 보러 녕덕에 와서도 자기가 직접 시장에 가서 남새를 사들였다. 그는 한번도 차를 안배하여 팽려원을 마중하고 바랜 적이 없다.

그는 민중의 리익을 침해하는 사람과 일에 대해서는 원쑤처럼 미워했다. 녕덕지위 서기로 갓 부임된 그는 간부가 땅을 차지하여 자기 주택을 짓는 것을 엄하게 조사했다. 녕덕은 빈곤지역인데 간부가 규률을 위반하고 법을 어기고 땅을 차지하여 자기 주택을 짓는 것이 풍기로 되여 있었다. 주택 조사처리는 사람들 미움을 살 수 있었다.

이에 습근평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는 누가 누구의 미움을 사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누가 규률을 위반하고 법을 어기고 땅을 차지해 집을 지었다면 이는 자기의 사욕을 위해 당의 권위과 형상을 파괴한 것으로서 당의 미움을 산 것이고 인민의 미움을 산 것이며 당 규률과 국법의 미움을 산 것이지 당과 인민의 리익을 대표해 그를 조사처리하는 간부가 그의 미움을 사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바라는 령도핵심

2021년 습근평이 조직령도하는 반부패투쟁이 9번째 해에 들어섰다. 국경절련휴에 중앙규률검사위원회, 국가감찰위원회는 정법계통 부장급 관원 2명을 조사할 데 대한 소식을 발표했다. 그리고 금융계통은 올해 20명 이상의 부패한 고위관리들을 제거했다.

9년 전 습근평이 중국공산당의 계주봉을 이어받았을 때 중국은 세계 2번째 경제체로 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 당은 내부로부터 오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였다. 습근평은 위험을 명확히 인식하고 경고했다. “많은 사실들이 우리를 알려주고 있는바 부패문제가 점점 심각해진다면 나중에는 필연코 당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다.”

당의 령도핵심 지위를 어떻게 강화하고 당으로 하여금 집정을 잘하고 장기적으로 집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습근평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이였다. 중공중앙총서기에 취임한 지 20일도 안돼서 습근평은 한가지 정책을 제정했는데 후에 ‘8가지 규정’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공금으로 먹고 떠벌려 랑비하는 등 과거 근절하기 힘들었던 문제를 타격했다.

9년 동안 부패한 공무원들이 잇달아 락마했는데 그중 성부급 이상 공무원이 약 400명이 된다. 이 가운데는 정법을 담당했던 중앙정치국 전임 상무위원 한명과 2명의 중앙군사위원회 전임 부주석 그리고 중공중앙판공청 전임 주임 1명도 들어있다.

외국으로 도망간 탐관들은 이전에는 가장 안전한 ‘피난처’를 찾았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2014년부터 2020년까지 8,300명이 넘게 세계 120여개 국가와 지구에서 체포되여 국내로 송환됐다.

“관건적인 순간에 습근평은 큰 힘을 들여 위험한 국면을 만회하였다.” 프랑스국제방송은 이렇게 평론을 했다.

습근평은 “권력을 제도의 박스 안에 넣어야 한다”고 제출했다. 그는 국가감찰위원회를 창설하고 모든 공직자들을 감독대상에 포함시켰다.

“자아혁명에 용감한 것은 우리 당의 가장 뚜렷한 품격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총서기를 담임한 이래 습근평은 약 200개의 당내법규를 제정하고 수정하여 ‘국법보다 엄격한 당의 규정'을 전면 실행했다. 그는 당내 집중학습교육을 5번 조직하여 당원들로 하여금 리상신념의 견정함과 행동의 통일을 유지하도록 했다.

당내민주를 발양하는 것도 그가 중요하게 고려하는 한가지 일이다. 당의 전국대표대회 보고와 당의 전원회의 문건, 당의 중요한 문건과 중대한 결책, 중대한 개혁발전조치 등과 관련해 모두 당내의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때로는 반복적으로 의견을 청취하였다.

습근평은 중국공산당 홍색유적지를 자주 방문하였는바 그중에는 쏘베트구역, 장정연선과 연안의 혁명유적지도 있다. 그는 상해와 절강 가흥의 당 탄생지를 10여번 방문했다. 2017년 그는 상무위원 동료들을 이끌고 중국공산당 1차 대회 유적지에서 ‘당과 인민을 위하여 수시로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을 선서했다.

2021년에 이르러 중국공산당은 9,500만명이 넘는 당원을 보유하고 있는바 이는 독일 인구보다 1,000만명 더 많다. 하버드대학 케네디정부대학원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민이 당 주도하에 있는 중국정부에 대한 만족도가 93%에 달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컨설팅회사인 에드먼이 2020년에 발표한 신뢰도 조사보고에 따르면 중국인민이 중국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95%에 달하여 조사대상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세계 일부 정당조직이 해이해진 것과는 달리 중국공산당의 486만여개 기층조직은 규률이 엄격하며 부단히 발전 장대해지고 있다. 이러한 '세포'를 통해 습근평은 당과 국가를 령도하여 하나 또 하나의 장거를 완성했다. 빈곤퇴치공략전에서 승리하고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였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인프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충분한 취업을 촉진하였으며 코로나19 역경을 억제하고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실현하였으며 사회의 조화와 안정을 유지하였다.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정부대학원을 졸업한 정치학자 닐 토마스는 “습근평은 당내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2016년 중국공산당 18기 6중 전회는 습근평의 당중앙 핵심, 전당의 핵심 지위를 명확히 하였다.

당내 권위인사는 중국공산당과 같은 큰 당이 대국을 다스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많은 어려움과 위험에 직면하는데 견강한 령도핵심이 없다면 전당의 의지통일을 형성하기 어렵고 전국 각 민족 인민의 단합과 통일을 실현하기 어려우며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더 나아가 인간의 기적을 창조할 수 없으며 ‘많은 새로운 력사적 특징을 가진 위대한 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17년 중국공산당 19차 대회에서 습근평 새시대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이 정식으로 확립되였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새시대에 나라를 정확한 길로 인도하여 현대화를 실현하는 사상로선과 정치로선이다. 습근평은 중국공산당 19기 1중 전회에서 재차 중공중앙 총서기로 당선됐다.

“봉페되고 경직된 낡은 길도 가지 않고 기치를 버리는 사악한 길도 가지 않을 것이다.” 습근평은 새시대중국특색사회주의 길을 이렇게 묘사했다.

 2017년 10월 25일, 습근평은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19차 당대회에 출석한 대표, 특약대표와 렬석인원들을 친절히 접견했다.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이 당장과 헌법에 기록되였다. 이 사상은 개혁발전과 안정, 내정, 외교, 국방, 당과 국가, 군대의 관리 등 전반을 총괄하며 맑스주의 철학, 정치경제학, 과학적 사회주의를 관통하고 있는바 ‘맑스주의 중국화의 최신 성과, 21세기 맑스주의, 현대중국의 맑스주의'라고 평가받고 있다.

19차 당대회 이래 습근평 강군사상, 습근평 경제사상, 습근평 생태문명사상, 습근평 외교사상, 습근평 법제사상이 잇달아 확립되여 습근평 새시대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의 중요한 조성부분으로 되였다.

중앙당학교(국가행정학원) 교수 신명은 모택동과 등소평처럼 습근평은 다시 한번 맑스주의 중국화시대를 성공적으로 추동하였는바 이는 곧 중국공산당이 백년 이래 성공할 수 있었던 기본경험이라고 말했다.

중앙당사문헌연구원 연구원 류영강은 ‘두가지 견지'는 새 시대, 새 로정에서 중국특색사회주의를 견지하고 발전하는 정치적 보장이라고 말했다.

국가를 강대하게 하는 전략가 실천가

1921년 중국공산당의 설립은 바로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점차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로 전락되고 긴 시간동안 루적된 가난과 쇠약함, 온갖 수모를 받아온 중국의 상황을 개변하기 위해서였다.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습근평은 “얼마나 굴욕적인가! 얼마나 부끄러운가! 그때의 중국은 도살을 기다리는 살찐 양이였다”고 개탄해서 말했다.

중앙당학교(국가행정학원) 교수 한경상은 이렇게 말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에는 4가지 리정비 혹은 4가지 력사적 표지가 있다. 첫번째 리정비는 1921년 중국공산당의 탄생, 두번째 리정비는 1949년 새 중국의 설립, 세번째 리정비는 1978년에 시작된 개혁개방 새 시기, 네번째 리정비는 2012년 중국공산당 18차 대회 이후 중국특색사회주의가 새로운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우리가 걸어온 이 로정은 모두 어떻게 하면 중화민족을 일떠서게 하고 부유하게 하며 강대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습근평은 2012년 중공중앙 총서기로 당선된 지 불과 2주 만에 ‘중국꿈'을 제출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할 것을 호소했다. 올해 10월에 열린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대회에서 그는 부흥을 25번 언급했다. 이는 당일 연설에서 가장 많이 출현한 단어 중 하나이다.

습근평은 민족부흥에 있어서 전략적 설계도가 있어야 하며 또한 일에 몰두하는 정신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솔선수범을 보여주었다. 2019년 한해에 언론이 보도한 습근평의 중요한 행사가 500회 이상에 달했다. 그중 토요일과 일요일에 보도된 날자가 약 30주를 차지한다. 중대한 개혁방안의 매 한부의 원고에 대해 그는 한글자 한구절씩 내려가면서 친히 수정하였다.

습근평은 중국 고대의 <근라가(勤懒歌)>의 말을 인용하여 “근면한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위한 시간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시간을 짜내 수영으로 신체를 단련하고 있으며 거기에 젊었을 때 장기적인 육체로동으로 다져진 기초를 바탕으로 뛰여난 정력으로 당과 정부, 군대의 중요한 사무를 처리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명감으로서 그는 “모든 행복은 분투해서 이룩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습근평은 기층 조사연구를 필수 과목으로 삼고 있다. 그는 경상적으로 전야와 어촌, 백성가정, 작은 음식점, 슈퍼, 중장비제조작업반, 민영기업, 과학실험실, 대중소학교와 유치원 심지어 농민의 돼지우리와 화장실까지 찾아나섰다. 그는 당일에 중경의 한 투쟈족빈곤촌에 가기 위해 비행기, 기차와 자동차를 련속 갈아탔다. 그는 “세번 교통도구를 바꿔가면서 이곳에 온 것은 다름아니라 현장에서 ‘2가지가 걱정 없고 3가지가 보장된' 정책이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지를 료해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

2020년 4월 21일, 습근평이 섬서성 안강시 평리현 로현진 중심소학교에서 빈곤 해탈, 난관 공략 정황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습근평 총서기는 평소에 장악하고 있는 것이 비교적 많다. 그에게 업무를 보고하려면 반드시 실사구시적이여야 한다. 거짓말, 큰말, 빈말을 해서는 안된다. 이런 것들은 그의 앞에서 얼렁뚱땅 넘어가지 못한다.” 그와 함께 일했던 장맹진은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허위를 날조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한 조사연구에서 그는 “형식주의는 사람을 죽인다! 현재 겉치레를 배우고, 겉치레만 하고, 허위적인 행위를 하는 동지들이 있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이미 만들어진 필사본, 학습 일기를 구매하여 복사하면 바로 자신의 마음가짐으로 생각하는 동지들도 있다.”라고 비판했다.

2020년 새해벽두, 중앙규률검사위원회 국가감찰위원회가 발표한 중앙8항 규정 정신 위반 문제 조사처리 월례보고에서는 처음으로 형식주의, 관료주의 문제 조사처리수치를 발표하여 명확한 신호를 보냈다.

9년간 습근평은 많은 위기일발의 순간을 겪었다. 2015년초, 예멘의 안보상황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600명 이상의 중국 국민이 곤경에 처했다. 습근평은 해군 호위 편대에게 즉시 교민을 철수시키라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미국은 대 중국 무단호하게 역전쟁, 과학기술 전쟁을 잇달아 도발하고 있다. 습근평이 직접 배치한 가운데 중국은 ‘싸움을 원하지 않고,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필요하면 부득불 싸운다’는 원칙과 자세로 이 중대한 마찰에 적절히 대응하여 국가 리익을 수호했다. 습근평은 중미 관계는 “꽃은 많이 심고 가시는 적게 심어야 한다.”며“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량국의 유일한 올바른 선택”이라며 “넓은 태평양은 중미 두 대국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조어도 해역 순항 정상화의 실현에서부터 이른바 ‘남해 중재’를 격파하기까지 중국-인도 국경 분쟁 해결 추진에서부터 불법 구금된 중국 공민 귀환까지 습근평은 모두 친히 전략전술 배치를 진행하고 나아가 본인이 나서서 사업을 했다.

2019년 향항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습근평은 “중국 정부는 국가 주권, 안전, 발전 리익을 수호하는 결심은 확고부동하고 ‘일국량제’ 방침을 관철하는 결심은 확고부동하며 어떠한 외부 세력도 향항 사무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결심은 확고부동하다”고 했다. 그는 ‘일국량제’ 수호 사업을 지휘하면서 중국을 반대하고 향항을 혼란하게 하는 세력들의 색갈 혁명’ 획책을 분쇄했다.

코로나19 역정 발생 후, 음력설 그믐날 습근평은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그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사회하고 대책을 연구했다. 앞서 그는 호북성과 무한시의 인적 이동과 대외 통로에 대해 엄격한 페쇄적인 교통 통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일부 서방 정치인들과 언론은 이것을 비난했다. 사실 이것은 유일하고 실현 가능한 선택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2020년 3월 10일, 습근평은 전문적으로 호북성 무한시를 찾아 코로나19 역정 예방통제 사업에 대해 고찰했다. 습근평은 화신산병원 지휘중심에서 영상으로 병실을 련결해 병실내 환자 및 의료인원들과 친근하게 교류했다.

습근평은 ‘검은 백조'와 ‘회색 코뿔소'를 중국공산당 사전에 올렸다. 각 분야의 중대한 위험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특징과 돌출점으로 되였다.

“이렇게 큰 나라의 책임은 아주 무겁고 사업은 아주 막중하다. 나는 무아로 인민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아'의 상태를 이루어 중국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바칠 것이다.”습근평은 외국 정요들의 질문에 이처럼 답했다.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대의 변혁자

새시대에 들어서서 형세는 이왕과 달라졌다. 세상은 점점 더 불안정하고 불확실해졌다. 일부 국가의 경제 회복은 부진하고 포퓰리즘(民粹主义), 보호주의 등 ‘역글로벌화’ 사조가 머리를 쳐들고 있으며 지연정치, 중대한 위험과 도전이 복잡하고 심각해지고 있다. 중국은 30여년의 개혁개방을 거쳐 국력이 증대되였지만 경제 하행압력, 빈부격차, 생태파괴, 사회모순의 축척 등 심층적인 난제에 직면했다. 개혁도 약간의 저항에 부딪혔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과학적인 최상급 설계와 보다 대담한 실제 행동들이 수요된다. 습근평은 중국식 현대화를 위해 혁신, 조화, 록색, 개방, 공유의 진로를 계획했다. 이러한 새로운 발전방식은 수백년간 지속돼 온 서방 현대화의 모식과 구별되며 사회주의 중국이 거칠고 비효률적이며 생태가 파손되는 성장구간에서 벗어나 고품질의 발전궤도에 진입하고 부자일수록 더 부자가 되고 빈곤한자일수록 더 빈곤해지는 자본주의의 페단을 피하는 발전 방식으로 인정되였다.

2018년 12월 18일, 개혁개방 40돐 경축대회가 북경인민대회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였다. 습근평은 대회에서 중요한 연설을 했다.

습근평이 표창을 받은 사람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습근평은 개혁개방을 ‘위대한 혁명'이라고 부르며 당대 중국의 운명과 민족의 부흥을 결정하는‘관건적인 한 수'라고 여겼다. 그가 일으킨 새로운 한차례 개혁은 등소평의 개혁을 계승한 것이며 또한 새로운 돌파가 있다.

2013년에 소집된 중국공산당 18기 3중 전회는 개혁을 전면적으로 심화하는 일련의 방안을 내놓아 새시대 중국개혁이 ‘심수구’를 통과하는데 기본적인 근거를 제공했다. 2013년말, 습근평은 개혁의 전면적인 심화하를 책임지는 중앙지도소조 조장을 맡았다. 이 소조는 나중에 중앙전면심화개혁위원회로 바뀌였다.

개혁은 매우 광범위하다. 농촌의 신토지 정책 시행에서 국영기업의 당건설 강화까지, 당과 국가 기관의 보다 과학적이고 효률적인 운영에서 사법과정에서 인위적인 개입의 방지에 이르기까지, 은발 물결(银发浪潮)에 대응하는 것에서 더 혜민적이고 더 시장 발전에 유리한 재정과 세무 정책을 추진하는 것까지, 로동교화제도의 페지에서 출산 최적화 정책까지, 더 공평한 교육 체계를 구축하여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에서 “집은 살기 위한 것이지, 투기하는 것이 아니다.”의 확립까지, 도시와 농촌의 호구 등록 제도를 통일하는 것에서 과학자들이 안심하고 발명창조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 체제를 혁신하는 것까지, 더 많은 도시에 지방 립법권을 부여하는 것에서 반독점 기제를 구축하여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을 방지하는 것까지…

주목을 받는 많은 중대한 개혁은 장기간의 안정과 관계되는 제도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이며 핵심은 중국특색사회주의제도를 견지하고 보완하며 국가처리체계와 처리능력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업, 농업, 국방, 과학 기술의 ‘네가지 현대화’에 이은‘다섯번째 현대화’라고 불린다.

개혁은 난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때로는 습근평이 직접 결단을 내려서 논란을 없애고 저항을 돌파해야 했다.

습근평은 중공 18기 3중 전회 문건 초안조 조장을 맡았다. 문건초안과 정책론증에 참가한 당정 요원들, 전문가 학자들은 습근평이 직접 연구하고 결단을 내리면서 여러 해 동안 의논이 많아 앞으로 추진하지 못했던 심층개혁의 얼음을 부쉬고 새롭게 가동하였다고 회상했다.

한 관련인사는 “시장이 자원 배치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에 관한 새로운 표현은 최종 습근평이 결론을 내려 중대한 리론적 돌파를 실현했으며 “습근평 총서기의 결심이 없었다면 많은 중대한 개혁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고 회상했다.

생태환경의 악화추세를 되돌리기 위해 습근평은 안목이 짧은 각종 리익 저항을 과감하게 타파했다. 그는 오염 공장에 정돈을 명령을 내리면서 정돈하지 않을 경우 페쇄한다고 하였다. 그는 장강연선은 환경보호를 최우선으로 할 것을 요구했고 세인을 놀래울 10년 금어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그림 같은 진령산구에 건설된 불법 별장을 철거하라는 지시를 여섯번이나 내렸다.

개혁은 중국의 국문을 더욱 크게 열도록 했다. 2013년, 중국은 상해에 첫 자유무역시험구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중국에는 21개의 자유무역시험구가 있다. 습근평은 유럽의 작은 나라와 맞먹는 면적의 해남도 전체를 자유무역지대와 자유무역항으로 건설하여 그곳에서 무역, 투자, 국경간 자금류동, 인원의 출입, 운송왕래 등 자유와 편리를 추진하게 했다.

외국인 투자 진입허가부정목록 조목이 대폭 축소되였다. 일부 국가들이 무역 보루를 쌓을 때 중국은 일련의 국제 무역 및 투자 전시회의 홈그라운드(主场)로 되였다. 습근평 본인은 중국국제수입박람회 설립을 제의하고 또한 중국국제수입박람회, 중국(북경)국제무역봉사교역회, 중국국제소비품박람회와 중국수출입상품교역회를 포함한 국가급 ‘회의와 전시 행렬'의 형성을 추진했다.

중국은 남보다 먼저 구역 전면 경제 동반자 관계 협정을 비준했다. 이것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규모가 방대하고 의의가 중대한 자유무역협정이다. 2021년까지 중국의 총관세 수준은 7.4%로 낮아졌고 이는 세계무역기구에 진출하면서 했던 9.8%의 약속보다 낮으며 다른 주요 신흥 경제체보다 낮다.

경제사회의 전환을 추진하기 위해 습근평은 ‘경제 새로운 상태’, ‘공급측 구조성 개혁’, ‘새로운 발전구도’ 등 일련의 혁신 리론을 제기했다.

9년간 습근평은 77차례의 정치국 집체학습을 사회했고 거의 매번 전문가에게 강의를 부탁했다. 습근평은 ‘장자’의 말을 인용해 “나의 삶은 끝이 있지만, 지식은 끝이 없다”고 했다. 학습 내용은 당이 새시대에 직면한 중점, 난점 문제와 관련되며 글로벌 처리구도에서 경략해양(经略海洋)까지, 금융 안전에서 인구 로령화까지, 지적 재산권 보호에서 국제 전파까지, 량자 과학기술에서 블록체인(区块链)에 이르기까지 등 내용들이다.

2020년말, 습근평은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7년이 넘는 동안 모두 2,485개의 개혁방안을 내놓았고 중공 18기 3중 전회에서 제기한 개혁목표와 임무를 총체적으로 기한대로 완수했다.

사실은 개혁의 약속이 지켜졌음을 증명한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경제는 년평균 약 6.4% 성장했고 2021년 전 3분기 GDP는 지난해 동기 대비 9.8% 성장해 련속 다년간 세계경제 성장에 대한 평균 기여률이 30%를 넘었다. 2020년, 중국의 경제 총량은 100만억원을 돌파했고 주민 1인당 가처분소득은 3만2,189원으로 지정목표인 2배 성장을 실현했다.

류영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시대가 이미 지나온 로정중에서 가장 큰 하이라이트(亮点)는 첫 100년의 분투목표를 실현하고 중화대지에서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실현한 것이다.

소강(小康)이란 말은 <시경>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쓰고 있다. “백성이 고생이 너무 많으니 잠시나마 안락을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民亦劳止,汔可小康)” 이것은 수천년래 중화민족이 계속 추구해온 소박한 리상이다. 전면적인 초요사회 실현은 경제, 정치, 과학교육, 문화, 사회, 인민생활, 생태환경 등 분야를 포함하고 있으며 목표는 2020년 국내 생산총액과 도농 주민 인구당 수입이 2010년의 두배로 되게 하는 것을 포괄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이미 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했고 규모가 가장 큰 중등 소득 집단을 형성했으며 력사적으로 절대 빈곤을 소멸했다.

2021년, 전세계 혁신지수에서 중국의 순위는 일약 12위에 오르며 일본, 이스라엘, 카나다 등 발달 경제체를 초월했다. ‘북두’ ‘신위’ ‘천공’ ‘천안’ 등 과학기술성과들은 세인의 주목을 끈다. 중국의 중등소득자는 4억명을 넘어섰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외자 류입국으로서 중국은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큰 소비시장으로 되였다. 코로나19 전염병 발생후 중국은 제일 먼저 생산과 생활을 회복하였고 또한 많은 국가들에 주요 방역 물자와 생산 생활 필수품들을 제공했다.

2020년 7월 31일, 북두 3호 글로벌위성항법시스템 준공 및 개통식이 북경에서 펼쳐졌다. 습근평이 의식에 참석해 북두3호 글로벌위성항법시스템의 정식 개통을 선포했다.

사람들은 일생생활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생태환경의 변화다. 2020년, 중국의 지구급 및 그 이상 도시 평균 공기 질 우수 일수 비례는 87.0%에 달했다. PM2.5표준 미달 지구급 및 그 이상 도시 평균 농도 비례는 2015년보다 28.8% 하락했다. 지표수 수질 우수 비례는 83.4%에 달했다. 생태 환경 질에 대한 중국의 대중들이 만족도는 89.5%로 향상되였다.

습근평이 제출한 정확한 빈곤 부축 리념과 방안은 절대빈곤을 소멸하는데 결정적 의의를 갖고 있다. 그는 각급 당원 간부들은 직접 촌에 주재하며 ‘일대일’로 빈곤 부축을 펼치라고 요구했다. 빈곤 해탈, 난관 공략 기간 그는 전국의 14개 특별 빈곤 지역을 돌아보았다. 빈곤 해탈, 난관 공략의 난이도는 한차례 전쟁과도 같았는데 1,800여명의 빈곤 부축 간부 혹은 일군들이 희생했다.

2018년, 습근평은 처음으로 헌법 선서를 한 중국 지도자도 되였다. 선서 장면은 전 과정 텔레비죤 생방송을 했다.

습근평은 의식형태사업을 전면 강화하여 문학예술, 철학사회과학, 신문 출판, 라지오 영화 텔레비죤, 정보네트워크의 번영 발전을 촉진시켰다. 그는 ‘문화 자신감’을 명확히 제출한 첫 중국공산당 지도자이다. 그는 중공 18차 대회 보고 초안 작성조 조장을 맡고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제정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정신을 주조’했다.

습근평은 국방과 군대에 대한 혁명적인 변혁을 내놓았다. 그는 모택동이 확립한 “당이 무장을 지휘한다”는 원칙을 거듭 천명하고 군대에 대한 당의 속성 및 중앙군위 주석 책임제를 더 한층 명확히 했다. 군대 지도 체제 개혁, 군대 규모 구조와 력량 편성 개혁 등 일련의 중대한 개혁 조치들이 출범되면서 국방과 군대건설을 장기적으로 제약하던 체제적 장애, 구조적 모순과 정책적 문제들이 점차적으로 해결을 가져오면서 중국 군대의 현대화 수준이 현저하게 향상되였다.

그는 군대는 전투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일선 부대를 자주 시찰했다. 그는 해발 1,000여메터의 초소를 가보았고 첫 국산 항공모함과 신형 원자력 잠수함에도 올랐다. “싸울 수 있어야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고 싸울 준비가 되여야 싸울 필요가 없게 되고 싸우지 못할 수록 매맞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2019년 12월 17일, 우리 나라 첫 국산 항공모함 산동함이 해남 삼아 모 군항에서 해군에 교부되였다. 습근평은 교부 인계식에 참석하였고 항공모함에 올라 시찰했다. 이는 의식이 끝난 뒤 습근평이 산동함에 올라 의장대를 검열하는 장면이다.

오지리 법률학자이며 한학자인 골드•카밍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공 18차 대회이후, 습근평의 지도하에서 집정 리념 뿐만 아니라 중국 발전의 모든 중대한 문제에서 중국 특색은 이미 더욱 선명한 지도 원칙으로 되였다.

이 과정에서 습근평 새 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은 실천 검증을 거치면서 설득력 있는 진리의 빛을 뿌렸다. “이는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의 력사 과정을 효과적으로 이끌었고 전반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한경상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마음속에 품은 대국의 령수

토이기 학자 알타이•애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습근평의 인솔하에 중국은 세계적인 대국으로 되였고 중국은, 전세계적인 참여–경제참여나 외교 참여를 막론-모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우리는 지금 전세계적인 대국의 형성을 목격하고 있다.”

습근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공산당이 하고 있는 모든 것은 중국 인민을 위해 행복을 도모하는 것이고 중화 민족을 위해 부흥을 도모하는 것이며 인류를 위해 평화와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습근평은 9년 동안 41차례 출국하면서 69개 국가를 방문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더욱 많은 방문을 했을 것이다. 그는 매번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리용하여 출국방문하는 것은 아주 ‘사치’스러운 것이지만 아주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충분하게 시간을 리용하기 위해 그의 방문 활동은 때때로 자정까지도 계속되였다. 그는 외국 방문의 길에서 자신의 생일을 보내기도 했다.

2018년 중국-아프리카협력포럼 북경정상회의가 소집되였을 때 정상회의에 참석하거나 주재하는 것을 제외하고 습근평은 근 70차나 되는 량자 다자 활동에 참석하여 중국 지도자의 홈장 외교에서 외국측 지도자를 만난 기록을 세웠다.

이런 활동과 그후의 ‘클라우드’활동을 통해 그는 전세계를 향해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중국공산당은 한창 “인류를 위해 새로운 더욱 큰 공헌을 하는” 사명을 리행하고 있다. “세계는 넓고 문제는 많다. 국제사회가 중국의 목소리를 듣고 중국의 방안을 보길 기대하기에 중국은 결석할수 없다.” 습근평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보기에는 세계의 다극화, 경제의 글로벌화, 사회 정보화로부터 문화의 다양화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나라 인민들의 운명은 이토록 긴밀하게 련결된 적은 없었다. 아울러 인류사회는 관리의 적자, 신임의 적자, 발전의 적자, 평화의 적자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있다.

2017년 5월 15일, 북경 안서호에서 펼쳐진 ‘일대일로’국제협력고위층포럼 제 1단계회의가 끝난 뒤 습근평과 회의 참가 지도자들, 국제조직 책임자들이 안서호 국제회의센터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 ‘인류운명공동체구축’을 촉진시켜야 한다. 습근평이 2013년에 제기한 이 리념은 중국공산당이 당전 세계에 대한 관점, 립장과 추구를 반영했다.

“국제사회는 동반자 관계, 안전구조, 경제발전, 문명교류, 생태건설 등 방면에서 노력을 해야 한다.” 습근평은 세계는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리익을 셈할 때 응당 천하의 리익을 먼저 셈해야 한다.”는 명언을 인용했다.

당내 권위 인사는 인류운명공동체 리념은 맑스주의 ‘자유인련합체’ 리상을 계승하고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중의 ‘화합’사상을 섭취하고 전 인류의 행복을 실현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리념은 모택동의 ‘제3세계’ 리론, 등소평의 ‘평화와 발전’이라는 당전 세계의 2대 주제의 제기 뒤를 이어 중국공산당이 다시 한번 제기한 중대한 영향력이 있는 국제적 주장으로 전 인류가 손잡고 함께 진보하고 함께 발전을 도모하고 함께 진흥하는 것을 제창하여 더욱 많은 나라의 호응과 지지를 얻었다.

‘인류운명공동체구축’ 리념이 제기되여서부터 지금까지 국제 주요 매체 및 싱크탱크 언론을 총화 분석하여 발견한 데 따르면 미국 등 서방 여론을 포함하여 국제 사회는 이미 보편적으로 이 리념이 새로운 지도적 의의와 적용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2017년1월, 습근평은 스위스 제네바 만국궁에서 <인류운명공동체 공동 구축>이라는 주제 연설을 발표했다. 47분간의 연설에서 30여차례 박수를 받았으며 관건적인 부분에서는 마디마다 박수를 받았다.

프랑스 학자 피에르•필카는 인류운명공동체구축을 촉진하는 것은 인류 사상 가장 중요한 철학 사상의 하나라고 말했다.

습근평은 협력 상생을 핵심 리념으로 하는 신형의 국제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제기했고 새로운 글로벌 관리관을 제창했는바 바로 공동 상의, 공동 건설, 공동향유이다. “어떠한 국제질서와 글로벌 관리체계가 세계에 좋고 세계 각국 인민에게 좋은지는 여러 나라 인민들이 상의해야지 한쪽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소수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습근평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안정되고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대국 관계의 틀을 구축하는 것을 촉진하면서 교류를 견지하고 진정으로 지내기만 한다면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피면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습근평과 뿌찐 대통령은 중로관계를 새 시대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시켰다. 그는 올해 새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 바이든과 두차례 통화를 하면서 중국과 미국은 충돌과 대항을 하지 않는다고 일치하게 밝혔다. 그는 중국과 유럽은 호혜 협력 동반자이고 제로섬경쟁(零和竞争)의 적수가 아니라고 제기했다.

그는 중국과 발전도상국가들의 단결 협력의 심화를 촉진시키면서 손잡고 병진하고 공동 발전하는 새로운 국면을 형성시켰다. 2013년 국가주석을 맡은 뒤 첫 출국 방문과 2018년 국가주석을 련임한 뒤 첫 출국 방문에서 습근평은 모두 아프리카대륙에로 향했다.

지난 세기 50년대, 서방국가의 봉쇄 포위로 중국과 수교한 국가는 단 십여개뿐이였다. 2019년말까지 이 수자는 180개에 달했다. 최근년간 5개 중아메리카와 태평양지역 국가들이 중국과 수교 혹은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우리의 친구들은 천하에 널려 있다!” 습근평은 이렇게 말했다.

메르켈이 곧 독일 총리직을 사임하게 될 때 습근평은 그와 영상 회담을 하면서 그를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라고 부르면서 사천 마라탕에 대한 그의 관심도 기억해내며 “중국 사람은 인정과 의리를 중시한다. 우리는 옛 친구를 잊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대문은 늘 당신을 향해 열려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습근평은 ‘일대일로’창의를 제출했다. 2021년 8월까지 172개 국가와 국제 조직이 중국과 200여건의 관련 협력 문서를 체결했다. 세계 은행연구 보고서에 따르 면 ‘일대일로’를 함께 건설하면 해당 국가 760만명이 극도 빈곤에서 벗어나고 3천 200만명이 중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습근평은 중국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정점, 2060년까지 탄소중립의 목표를 달성해 기후 변화에 대응하겠다고 선포했다. 이는 많은 서방인사들을 놀라게 했다. 왜냐면 이 목표는 그들 자신의 나라에서는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기후 변화 대응에 대한 중국의 기여에 감사해야 한다.” 오스트랄리아 전임 총리 케빈 러드는 4년 전에도 습근평은 《빠리협정》에 대한 중국의 지지에 대해 가장 강한 목소리를 냈다고 했다. 중국의 이런 확고한 립장이 없었다면 《빠리협정》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였을 것이라고 한다.

습근평은 다자주의와 경제글로벌화의 수호자, 추동자, 인솔자로 확고하게 나섰다. 9년간 그는 세차례나 유엔 총회 일반 변론에서 중요한 연설을 하였으며 다보스포럼 에 참석한 첫 중국 국가원수이기도 하다. 습근평은 “보호주의를 하는 것은 마치 자신을 어두운 방에 가두는 것과 같다. 비바람을 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빛과 공기를 차단했다. 무역전쟁의 결과는 둘 다 다칠 수밖에 없다.”며 “손을 잡아야지, 손을 놓아서는 안되며”, “벽을 허물어야지, 벽을 쌓아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전세계, 지역의 일부 핫이슈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힘이 되였 는바 여기에는 기후 변화 대응, 반테러, 핵확산 방지, 빈부차이 축소, 공정한 무역 추진, 평화 유지 행동 실시 등이 포함된다. 얼마전 미국이 아프간으로부터 황급히 철군했는데 이는 현지 안전상황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습근평은 로씨야 대통령과의 통화, 상해협력기구 회원국 정상들과의 영상회견을 통해 아프간의 혼란을 안정시키 고 아프간에서 평화 재건의 길을 조속히 걷도록 추진했다.

코로나19 발생 후 습근평은 국제사회가 단결협력할 것을 제출했다. 또한 150여개 국가와 14개 국제 기구에 방역 물자를 지원하였고 도움이 필요한 34개 국가에 37 차의 의료전문가팀을 파견했다. 습근평은 중국이 자체로 연구 개발한 백신을 공공 제품으로 국제 사회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한해 동안 중국은 전세계에 20억도스의 백신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중국은 또 ‘코로나 백신 실시 계획’에 1억딸라를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습근평의 지도하에 중국은 세계무대에서 독특한 작용을 발휘하고 있다.”라고 파키스탄 대통령 알비가 말한다.

그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중국은 평화를 수요한다. 마치 사람이 공기를 필요로 하고 만물이 자라려면 해빛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과거에 없었고 앞으로도 침략하지 않을 것이고 남을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며 패권을 부르짖지도 않을 것이다.”라며 동시에 “중국 인민들도 우리에 대한 그 어떠한 외세 세력의 억압, 노예화를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습근평은 10월에 열린 〈생물다양성공약〉 제15차 당사국 총회 정상회의에서 ‘지구 생명 공동체’ 구축을 제안해 국제 사회의 광범한 공감과 적극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경험이 풍부한 선장이다.” 제73기유엔대회 주석 에스피노사는 습근평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말한다. ‘일대일로’ 창의에서부터 인류 운명공동체 구축까지 그리고 다변주리념으로 국제문제 해결 제창에 이르기까지 습근평의 공헌은 아주 크다.

지난날의 사업을 계승하여 앞길을 개척하는 안내자

중국공산당은 국가의 발전 목표를 두개의 ‘100년’으로 계획했다. 습근평은 두번째 백년 분투 목표에 대해 상세한 방안을 계획했다. 즉 중국이 2035년까지 사회주의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포함하여 본 세기 중엽 즉 새 중국 설립 100주년이 되였을 때 부강하고 민주적이고 문명하고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는 방대한 계획이다.

2020년, 습근평은 중공중앙의 ‘14•5’계획과 2035년 전망 목표 제정에 관한 건의를 지도 작성했다. 이 리정표적인 발전로선도는 중공 19회 5중 전원회의에서 통과되였다.

습근평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중공은 100년사이 중화민족 발전사, 인류 사회 진보사에서 괄목할 만한 기적을 창조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서광이 앞에 있고 앞날이 밝다. 이 관건적인 대목에서 어떠한 멈춤, 망설임, 관망도 용납하지 않는다.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명심하며 계속 분투해야 한다.

습근평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결코 홀가분한 것이 아니고 징을 치고 북을 치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타일렀다. 전진하는 길에서 직면하는 위험과 시련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상상하기 어려운 거친 파도를 만날 수도 있다. “위대한 꿈을 이루려면 반드시 위대한 투쟁을 해야 한다”, 습근평은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으면서 모든 위험 도전을 용감하게 이겨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때문에 중국공산당 19회 6중전회는 특별한 계승과 발전 의미를 가진다. 한경상은 “백년 대당의 분투사는 많은 경험을 쌓았고 중요한 규칙도 제시했으며 국정을 다스리는 철학적 지혜도 담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이를 총화, 정련하는 것은 금후 중국공산당이 국정을 더 잘 다스리는데 중요한 계시를 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중앙당사와 문헌연구원 왕균위 연구원은 “당의 과거 두 력사 결의는 사상을 통일하고 힘을 모아 새로운 력사임무를 완수하는 데 깊은 영향을 미쳤다.”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19기 6 중전회에 대한 기대이다.”라고 했다.

개혁개방 40주년 경축대회에서 습근평은 모택동의 한 구절을 인용해 “몇십년이 지난 후 중국인민민주혁명의 승리를 되돌아볼 때 사람들은 이를 마치 긴 극의 짧은 서막인 것처럼 느낄 것이다. 극은 반드시 서막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서막은 고조가 아니다.”고 말했다.

“력사는 종결이 없고 종결되지 않는다……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은 인류가 더 좋은 사회제도를 탐색하는 데 중국 방안을 제공할 자신이 있다.” 습근평은 말한다.

고도 북경은 세계에서 박물관과 전람관이 가장 많은 도시 중의 하나이다. 중국공산당 력사전람관도 올해 준공되였다. 6월, 습근평과 그의 동료들이 이곳을 참관하였다. 그들은 청정부가 《마관조약》 거액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발행한 차입 채권, 맑스의 필기장 친필 원본, 중국공산당 설립 당시 전국 58명 당원의 명단, 신 중국 초기 제작된 승용차와 재봉틀, 오성붉은기가 그려진 화성차모형…… 등을 살펴봤다.

전시 마지막 부분은 ‘시공 터널’로 설계되였고 대형 영상막에는 1921년부터 시작된 일련의 의미심장한 시간 노드가 펼쳐지면서 관중들의 시선을 빛나는 미래로 이끌었다.

습근평은 그의 동료들을 이끌고 당기 앞에서 선서했다: “공산주의를 위해 평생 분투할 것이다!”

/출처: 신화사, 편역: 김정함 리철수 정현관 최승호 최화

0

관련기사 :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