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정신적 계보 13] 특구정신―봄날의 이야기, 불후의 전설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新华网 ] 발표시간: [ 2021-10-20 15:07:23 ] 클릭: [ ]

개혁개방은 당대 중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관건적인 한수였다. 경제특구를 설립한 것은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진행한 당과 국가의 위대한 시도였다. 당중앙의 통일적인 배치하에 1980년 8월 26일, 심수, 주해, 산두, 하문 등 4개 경제특구가 설립되였고 1988년에는 해남성경제특구가 설립되였다. 경제특구의 설립은 사책에 길이 남을 중국 속도와 중국 기적을 창조했다.

심수시 남산구 후해 구역 전경(2020년 9월 17일 찍음, 무인기 사진).

2020년 10월 14일, 심수경제특구 설립 40돐 경축대회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애국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민족정신과 개혁혁신을 핵심으로 하는 시대정신을 고양하고 과감히 부딪치고 과감히 시도하며 남들보다 한걸음 앞서고 묵묵히 일하는 특구정신을 계속 발양하여 간부, 군중들이 새시대의 ‘밭갈이소’가 되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수 남산대도의 ‘밭갈이소’ 조각상(2020년 10월 12일 찍음)

대담하게 시도―‘한갈래 혈로를 개척하다’

1978년 12월, 당중앙 11기 3차 전원회의에서는 당과 국가의 사업 중심을 경제건설에로 옮기고 개혁개방을 실행하는 력사적 결책을 내렸다. 1979년 4월, 광동성당위 책임자는 중앙 지도자동지에게 수출가공구를 설립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할 것을 건의했다. 등소평동지는 특구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면서 중앙에서 정책을 주면 직접 사업을 추진해 길을 뚫을 것을 명확히 제시했다.

1979년 7월, 당중앙, 국무원은 광동성, 복건성에서 ‘특수정책, 령활조치, 선행선시’를 실행할 것을 비준했다. 1980년 8월, 국가는 심수, 주해 , 산두, 하문 경제특구의 설립을 비준했으며 1988년 4월에는 해남경제특구의 설립을 비준하여 경제특구가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서 중요한 창구와 시범 역할을 발휘하도록 할 것을 명확히 요구했다.

젊은 시절 혁명 사업에 참가한 원경은 1978년 투자유치국 상무부리사장을 맡았다. 그의 인솔하에 중국의 첫번째 대외개방 공업단지인 사구공업단지가 1979년 향항과 린접한 보안 남두반도에서 탄생했다.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사구에서 근무했던 고립기는 사구에 금방 도착했을 때는 정말 가난했다. 저녁에 잘 때 모기장을 꼭 걸어야 했는데 모기를 막기 위한 용도가 아닌 뱀과 쥐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추억했다.

당시 사구공업단지에서 진행한 첫번째 공사인 사구항구가 착공되였다. 건설 초기, 로동자 한사람이 하루 8시간 동안 진흙 20~30포대 밖에 나르지 못해 공사 진척이 아주 더뎠다. 이에 원경은 혁신적으로 ‘큰가마밥’을 타파하고 정량 초과 생산 장려 제도를 실행했다. 즉 55포대를 하루 정량으로 정하고 포대당 2점을 장려하였으며 초과 부분은 포대당 4점을 장려했다.

이렇게 되자 로동자들의 작업 열정은 크게 높아졌는바 한사람당 진흙을 80~90포대 나를 수 있게 되였고 일부 로동자들은 지어 하루에 131포대를 날랐다. 로임과 장려금을 합하면 제일 많아 한달에 110여원이였는데 일부 로동자들의 월소득은 사구공업단지 중급 간부들의 월소득을 훨씬 넘어섰다.

사구공업단지의 개혁 탐색을 시작으로 심수경제특구가 세상에 나왔다. 40여년 동안 심수는 변경의 락후한 작은 마을에서 세계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국제화 대도시로 발전했다. 지역 총생산액은 1980년의 2억 7,000만원에서 2020년의 2조 7,700억원으로 뛰여올랐는데 이는 북경, 상해 버금에 갔으며 많은 격차가 있었던 향항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였다. 오늘날 갈수록 많은 향항인들이 심수에서 창업하고 정착하고 있는데 이 모습은 한때 일었던 ‘향항붐’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용감하게 앞장에―‘첫번째로 게를 먹다’

평균주의 ‘큰가마밥’ 로임 제도의 최초 타파, 중국 토지 경매 최초 실행, 첫번째 외화조정쎈터 설립 등 과감하게 ‘첫번째로 게를 먹는 것’은 경제특구의 선명한 특점이다.

1987년, 〈과학기술일군을 격려해 민간 과학기술 기업을 설립할 데 관한 심수시인민정부의 잠정 규정〉이 발표되였다. 이 유명한 ‘18호 문건’은 중국의 과학기술 혁신을 활성화시킨 ‘도화선’이 되였다.

“화위는 국가 정치의 큰 환경과 심수 경제의 작은 환경 변화에 힘 입어 발전하였다. 만일 개혁개방이 없었더라면 화위도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위의 창시자 임정비는 이렇게 말했다.

1988년 심수시정부는 자본시장 지도소조를 설립했는데 당시 우리 나라에서 첫 진으로 일본에 건너가 증권 관련 전문지식을 학습하고 돌아온 류학생 우국강이 전문가소조 조장을 맡았다. 그는 전문가소조 성원들을 거느리고 반년이 넘는 동안에 200여만자나 되는 외국문 자료를 번역, 참작, 보급하여 새 중국의 첫 증권거래소 ‘청서’인 《심수증권거래소 설립 준비 자료 총서》를 완수했다. 1990년 12월 1일, 심수증권거래소가 집중적인 거래를 시작하면서 중국 자본시장은 쾌속 발전의 ‘봄날’을 맞이했고 경제 비약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심수증권거래소(2020년 8월 24일 찍음)

국유 자산 관리 체제를 개혁하여 지방 국유 기업 발전에서 자랑할 만한 업적을 이루었고 특구 금융 체계를 점차 구축해 전국 최초의 중외합자은행을 설립했으며 재정세무, 가격 류통 체제 개혁이 심화되였다. 하문경제특구가 설립된 후 하문시는 시장경제 체제, 기제 개혁을 부단히 추진하였고 기업의 혁신 활력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산두시정부써비스쎈터 24시간 셀프 써비스는 1987년 산두경제특구에서 내놓은 ‘24시간 답복’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서 기업의 세무 처리 등에 많은 편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1987년, 산두에 투자하여 공장을 꾸리던 향항 판매상 진석겸은 해당 기관의 비능률 사무 처리 등 문제에 대한 의견과 건의를 특구관리위원회에 제기하였다. 관리위원회는 신속히 ‘기업에서 반영한 문제를 24시간내에 답복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때로부터 ‘24시간 답복’이 산두의 자랑스런 간판으로 되였다.

최근 해남자유무역항법이 가결되여 실시되고 있으며 57가지 성급 관리 권한을 조정하여 중점 단지 관리기구에서 실시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방 형태를 지향하는 웅위로운 목표를 향해 해남자유무역항 건설이 기세차게 일어나고 있다. “용감히 앞장 서는 경제특구의 유전자는 전반 과정에 일관되여있으며 혁신의 첫 원동력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심수)종합개발연구원 상무부원장 곽만달의 말이다.

‘봄날의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가다

40여년간 한세대 또 한세대의 특구 분투자들은 과감하게 시도하고 용감하게 앞장에 서며 묵묵히 사업에 몰두하면서 특구정신을 동력으로 분발 전진하고 난관을 타개해나갔다.

전국 로력모범이며 중국건축자재집단유한회사 화남대구 총기사인 륙건신은 1982년 심수에 온 후 국제무역청사, 지왕빌딩, 경기100, 평안국제금융쎈터 등 지표성 고층건물 건설에 참여했다. 그는 사흘에 한층씩 올라가는 ‘심수 속도’를 직접 목격했고 팀을 이끌고 중국 초고층 강철구조 시공 기술을 세계 일류 수준에 도달시킴으로써 ‘중국 건축왕’으로 불리웠다.

주해 횡금 일각(2020년 9월 13일 찍음, 무인기 사진).

“기업은 현재 전환과 승격을 추진중이며 학교, 병원, 담보 주택 등 조립식 건물과 도시 록화, 도시 재개발 등 민생 프로젝트를 대량 추진하고 있다.” 륙건신은 이렇게 말했다.

묵묵히 일하는 특구 건설자들의 정신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혁신과 발전을 추구하는 목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몇십년 동안 오직 돌파구를 향해 달려왔다.”

임정비는 화위가 발전하고 장대해진 과정을 이렇게 총화했다. 올해 상반기 화위의 판매 수입은 3,204억원을 달성했고 순리윤률은 9.8%에 달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전벽해와도 같은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하문 연무대교 연선과 고랑서(접합 사진, 2017년 8월 24일 찍음).

‘특구중의 특구’인 전해심항현대봉사업합작구의 333개 페기 컨테이너로 구성된 림시건물군이 각별히 눈에 띈다. 여기가 바로 전해관리국 사무소이다. 기업이 가까운 곳에서 일을 처리하도록 편리를 제공해주기 위해 전해관리국 전체가 전해공사장으로 이사 왔고 컨테이너로 사무소를 만들었다. 전해심항현대봉사업합작구는 2010년에 설립돼서부터 루계로 645가지 제도 혁신 성과를 내놓았는데 전국적으로 65가지가 보급되였다.

‘도전’하는 정신, ‘개척’하는 기세, ‘사업’하는 기풍을 영원토록 보전하면서 더욱 많은 ‘봄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특구정신은 한세대 또 한세대의 개혁자들이 용감히 앞으로 전진하도록 고무격려하고 있다.

산두시 야경(2020년 9월 6일 찍음, 무인기 사진).

건설중에 있는 해구 강동신구 CBD(2021년 3월 5일 찍음, 무인기 사진).

/신화사

0

관련기사 :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