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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황’이 ‘북대곡창’으로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新华网 ] 발표시간: [ 2021-10-19 15:36:18 ] 클릭: [ ]

 

‘북대황, 하늘이 창창하고 땅이 망망한데 온통 삭풀과 갈대라네

북대황으로 불리우는 흑룡강농업개간구의 면적은 해남도의 1.5배이다. 궁벽하고 황량하며 추운 것은 일찍 개간지구의 대명사였다. 70여년 동안 몇세대의 중국인들이 이곳에서 청춘의 땀방울을 뿌리고 눈물 겨운 개척의 장편서사시를 엮었다.

개척자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떤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었는가? 오래 묵여뒀던 황무지는 어떻게 ‘북대곡창’으로 탈바꿈했는가? 이번 기의‘습근평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북대황 정신을 떠올려본다.

1947년에 ‘공고한 동북근거지를 세울 데 관한’당중앙의 중요한 지시에 따라 많은 해방군 전사들이 깊이 잠든 이 황무지에 가서 첫번째 농장을 세워 해방전쟁의 전선 작전을 유력하게 지원했다.

새중국 창립 초기에 모든 업종이 발전하지 못했고 식량이 엄중하게 부족하여 북대황은 알곡생산을 발전시키는 중심 중의 중심으로 되였다. 1955년 1월에 철도병부대의 첫번째 농장인 850농장이 설립되였다. 처음에 농기구가 없다보니 제대전업군인들은 일본 침략군이 남겨둔 지하공사에 가서 포탄피, 페동, 페철 등을 주어다가 농기구를 만들었다.

장병들은 첫해에 14만 4,500무의 황무지를 개간했고 ‘그 해에 황무지를 개간하고 그 해에 생산하여 그 해에 수익을 올렸다’. 850농장의 건설은 장병들의 북대황 개발에 경험을 제공했다. 1958년에 10만명의 제대전업군인들이 북대황에 가서 북대황 대규모 개발건설의 붐을 일으켰다.

지난 세기 80년대에 흑룡강농업개간구에서는 가정농장 시험운영의 기회를 빌어 원래 ‘큰가마밥’을 먹는 데 익숙했던 북대황인들은 선뜻이 창업의 길에 나섰다. 갈백림 부부가 바로 북대황 제2세대의 전형이다. 그들처럼 하나둘 독립한 가족농장들이 개혁의 물결 속에서 쏟아져나와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했다.

70여년 동안, 사면팔방에서 온 제대전업군인, 변강 지원 청년, 대학 졸업생과 도시 지식청년들이 이곳으로 달려가 하나 또 하나의 기적을 창조했다. 2021년에 북대황농업개간그룹유한회사의 알곡 파종면적은 4457.8만무이며 2020년의 알곡 소출량은 405.5억근으로 전국의 20%를 차지해 북대황은 명실상부한‘북대곡창’으로 되였다.

현재 북대황은 ‘농업 항공모함’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업 생산에서의 경작, 재배, 관리, 수확에 이르는 전과정 기계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했다. 이 동시에 농장은 위성 위치추적,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 등을 활용하여 만무 옥답에 대한 준확한 관리를 실현했다. 생기 넘치는 땅에서 80후, 90후들이 북대황 정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백성은 나라의 기반이고 알곡은 백성의 생명이다. 10여억 인구의 먹는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은 시종 우리 당이 국정을 다스리는 첫째로 가는 대사이다. 국가의 알곡안전을 확보하려면 반드시 국정과 농업 상황에 착안하고 과학기술 발전에 의존하여 알곡안전 보장의 기반을 끊임없이 구축하고 중국인의 밥그릇을 자신의 손에 단단히 들어야 한다!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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