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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계보 10] 초유록정신―마음속에 백성을 품고 모든 것은 인민을 위하여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新华网 ] 발표시간: [ 2021-09-27 09:22:01 ] 클릭: [ ]

1966년 2월 장편통신 〈현당위 서기의 본보기—초유록〉이 방송되면서 초유록의 이름은 가가호호에 알려지고 공산주의자들의 빛나는 본보기와 전체 당원간부들이 숭배하는 본보기로 전국적으로 회자되였다.

란고에서 사업하는 475일 동안 초유록은 란고 인민들을 거느리고 모래바람, 침수로 인한 재해, 알카리성 토지 ‘3해’를 제거하고 오동나무를 심어 생명으로 공산주의자들의 우뚝 솟은 금자탑을 세웠으며 반짝반짝 빛나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위대한 정신인 친민애민, 간고분투, 과학적으로 실제를 추구하고 어려움을 맞받아나가며 사심없이 기여하는 초유록정신을 구축했다.

2014년 3월 17일, 하남성 란고현에서 당의 군중로선 교양 실천 활동을 조사 연구하고 지도할 때 습근평 총서기는 재차 초유록동지기념관을 찾아 초유록 생애 사적을 참관했다. 그는 초유록정신은 정강산정신, 연안정신, 뢰봉정신 등 혁명전통 및 위대한 정신과 마찬가지로 지난날 뿐만 아니라 현재와 향후에도 여전히 우리 당의 귀중한 정신적 재부라면서 우리는 영원히 그를 따라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유록(자료사진)

“목숨을 걸고 한번 크게 해내여 란고의 면모를 개변시킬 것을 결심한다”

란고현 초유록동지기념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인심을 격동시키는 초유록의 분투 맹세와 림종의 유언들이다—

“목숨을 걸고 한번 크게 해내여 란고의 면모를 개변시킬 것을 결심한다.”

“살아서 모래밭을 다스리지 못했으니 죽어서라도 모래밭을 다스리는 것을 볼 것이다.”

1962년 겨울, 란고현은 한창 심각한 모래바람, 침수로 인한 재해, 알칼리성 토지 ‘3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 초유록은 명령을 받고 간부, 군중들을 거느리고 홍수와 싸우고 바람받이를 찾아나섰으며 류사를 탐지하여 ‘3해’를 다스리는 구체적 책략을 총화하고 오동나무를 대규모로 심는 방법을 탐색해냈다. 그는 직접 대오를 이끌고 조사에 나섰다. ‘쪼그리고 앉아야 개미를 볼 수 있기’ 때문이였다. 3개월 동안 초유록은 전 현의 간부들을 거느리고 120개 대대에 5,000여리의 로정을 뛰여다니며 ‘3해’를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자료를 장악했다.

초유록은 오래동안 간질환을 앓았는데 참기 힘들 때면 만년필, 차주전자 뚜껑, 닭털먼지떨이로 간부위를 떠받쳤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앉았던 등나무 의자에는 큰 구멍이 났다.

초유록은 시종 간고소박했다.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솜이불에는 42곳의 기운 자리가 있었고 담요에는 36곳의 기운 자리가 있었다. 한번은 그가 자기의 아이가 연극을 공짜로 구경했다는 말을 듣고 즉각 아이에게 돈을 주어 극장에 가서 관람표 가격을 보충하도록 했다.

……

50여년전 초유록은 란고 인민들을 거느리고 ‘3해’와 항쟁하고 오동나무를 널리 심어 란고의 척박한 땅에 ‘맑고 푸른’ 희망을 뿌려주었다.

50여년간 한세대 또 한세대의 공산주의자들은 란고 대지에서 지속적으로 분투해왔다. 2017년 3월 란고는 하남성에서 맨 먼저 빈곤모자를 벗어던진 빈곤현으로 되였다. 초유록이 당년에 대중들을 거느리고 심은 오동나무는 오늘날 하나 또 하나의 아름다운 악기와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가구로 제작되여 란고 인민들이 치부하고 초요사회를 향해 내달리는 중요한 산업으로 되였다.

 
초유록동지기념관(7월 1일 찍음)

“마음속에 전체 인민들을 품고 있었으나 유독 그 자신만은 없었다”

국방대학 맑스주의연구소 연구원 안효봉은 초유록정신은 풍부하고 심오하며 그 핵심은 “마음속에 전체 인민들을 품고 있었으나 유독 그 자신만은 없는” 공복의 정감이라고 인정했다.

당년 란고의 군중들이 현당위 서기가 새로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초유록은 이미 하향한 지 사흘이나 되였다. 군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그는 군중과 함께 식사하고 함께 류숙하며 함께 로동하는 ‘세가지 함께’ 사업법을 제기했다.

큰 눈에 문이 막혀버린 밤에도 그는 눈보라를 무릅쓰고 가난한 집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고충을 알아보았다. “당신은 누구인가”는 농민들의 물음에 “나는 당신의 아들”이라는 그 대답 한마디는 듣는 이로 하여금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했다.

란고에서 초유록은 4장의 사진만 남겼을 뿐인데 그중 3장은 다른 사람이 그 몰래 찍어둔 것이다. 그는 늘 “렌즈를 많이는 대중들에게 돌리고 그들을 많이 찍어주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나를 찍으면 뭐하냐?”고 말했다.

그는 란고의 인민들을 더 잘살게 하는 것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히 여겼다. 림종전 초유록은 여전히 장씨 마을의 모래언덕은 막았는지, 조가루의 농작물이 물에 잠기지는 않았는지, 진채의 알카리성 밭에서 보리는 잘 자라고 있는지, 한씨가 릉지에 오동나무를 얼마 심었는지를 념려하고 있었다…

초유록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나 ‘초유록오동나무’(焦桐, 이하 ‘초동’)은 유정하다.

79세 나는 란고 농민 위선민에게는 50년간 유지해온 습관이 있는데 다름 아닌 매일 아침 일찍 비자루와 키를 들고 집에서 1키로메터 떨어진 한 나무 아래에 가서 나무잎들을 쓸어내고 물을 주며 시비하는 것이다.

이 나무는 1963년 초유록이 직접 심은 것인데 지금은 이미 굵기가 5메터, 높이가 26메터로 하늘을 찌를 듯한 큰 나무로 자랐다. 린근의 오동나무는 3, 4대나 갱신되였으나 이 오동나무만은 여전히 꿋꿋하게 서있다. 현지의 백성들은 이 나무를 ‘초동’이라고 친절히 부른다.

초유록은 제일 가난한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며 백성들의 실정을 료해하였고 딸애를 힘들고 고된 장아찌단지에 보내 일하게 했다…무릇 ‘초동’ 아래서 휴식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초유록의 이야기 한단락은 들려줄 수 있다.

안효봉은 “이는 바로 초유록이 인민들을 마음속 가장 높은 위치에 놓고 자기의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리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생각해주었으며 인민들도 그를 마음속의 가장 존경하는 자리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말다.

 
6월 18일, 하남성 란고현 황하만풍경구에서 찍은 황하(드론 사진).

“훌륭한 간부를 좋아하지 않을 백성이 어디 있으랴”—인민들은 초유록을 부른다

“훌륭한 간부를 좋아하지 않을 백성이 어디 있으랴? 눈물이 비 되여 초동에 내린다. 살아도 사구(沙丘), 죽어도 사구,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야설이 서리를 맞아도 영웅의 의지는 변하지 않는다!…”

1990년 7월, 당시 복주시당위 서기직을 맡고 있던 습근평은 초유록정신에 감명을 받고 〈념노교·초유록을 추모하며〉란 한수의 시사를 썼다.

습근평 총서기는 란고현에서 조사 연구를 진행하고 당의 군중로선 교양 실천 활동을 지도할 때 초유록동지의 “마음속에 전체 인민들을 품고 있으면서 유독 그 자신만은 없는” 공복의 정감, 무슨 일에서든 그 내막을 깊이 탐구하고 “다른 사람이 씹었던 찐방은 맛이 없다”는 실무적인 사업작풍, “일월을 휘여잡아 새 세상을 맞고” “혁명자는 곤난 앞에서 영웅처럼 나서야 한다”는 분투정신, 간고소박하고 렴결봉공하며 “언제나 특수화를 부리지 않는” 도덕지조를 학습하고 고양해야 한다고 강조해 지적했다.

초유록동지를 따라 1년 4개월 동안 원 란고현당위 판공실에서 통신간사로 사업한 적 있는 류준생은 생전에 “인민이 초유록을 부르는 것은 일관적으로 대중들과 친혈육처럼 친밀한 우리 당의 훌륭한 전통을 부르는 것이고 모든 것은 인민을 위하고 모든 것은 인민에 의거하는 훌륭한 작풍을 부르는 것이며 우리 당의 숭고한 리상을 부르는 것이다.”라고 감명깊게 말했다.

 
6월 23일 찍은 란고현 현성(무인기 사진)

사람들을 흐뭇하게 하는 것은 초유록정신이 대대손손 공산주의자들의 혈맥 속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50년간 향진에 뿌리 내린 ‘향진당위 서기의 본보기’ 오금인, ‘가슴 속 가득찬 끓는 피를 고원에 뿌린’ 개혁 선봉 공번삼, 마음에 군중 뿐이고 사심없이 기여한 ‘전국 우수 현당위 서기’ 료준파…

초유록동지기념관에서 이미 28년간 해설 사업에 종사해온 동아나는 련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해설하다 보면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군 한다.

동아나는 초유록정신은 얘기할수록 그 위대함을 더 느낄 수 있다며 “초유록 서기는 영원히 다 읽을 수 없는 한권의 책과도 같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력사는 끊임없이 흘러 흐르고 초유록정신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더욱 새로와지고 그 가치 또한 영원하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새로운 로정에서 초유록정신을 따라배우고 고양하는 것은 초심과 사명을 더욱 깊이 아로새기고 포부를 지니고 분투 전진하면서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의 중국꿈을 실현하는 드높은 힘을 결집하도록 전당의 간부, 군중들을 격려할 것이다. /신화사

 
하남 란고 농민 위선민은 1971년부터 장장 50년간 ‘초동(焦桐)’을 보살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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