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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릴레이, 일본침략군 남경대학살 죄증자료 중국에 실어왔다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 발표시간: [ 2021-09-06 11:16:23 ] 클릭: [ ]

9월 3일발 도꾜 신화통신: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인 9월 3일과 밀접히 련관되는 인연들로 국계도, 전염병의 장애도 뛰여넘은 정의의 릴레이가 이루어져 일본의 정의적인 인사가 수집한 일본침략군의 철같은 범죄증거를 중국으로 보내 왔다.

“이 속에는 일본군이 직접 기록한 남경대학살과 관련한 《전투상보》(战斗详报)며 남경침략과 관련하여 련속 7개 월간 지속적으로 씌여진 《진중일지》(阵中日志)가 있습니다. 둘도 없는 귀중한 이 자료를 꼭 일본침략군 남경대학살 재난동포기념관에 전해주십시오. ” 이 자료를 수집한 일본인 다이토진(大东仁)은 신화통신사 기자에게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8월 20일 일본 아이치현 엔코사 주지 다이토진은 사찰에서 기자의 취재를 접수하였다.

(신화사 기자 초문 촬영)

다이토진은 일본 아이치현 엔코사원의 주지 원장이다. 2005년부터 그는 일본에서 일본군의 중국침략과 관련한 력사사료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지난 16년 동안 그는 수집한 자료를 남경에 보내오거나 무료기증한 것 만도 이미 3000 여부에 달한다.

그가 이번에 보내려고 한 자료들은 일본 침략군 남경대학살 재난동포기념관의 의뢰를 받고 구해들인 일본에서 경매된 《전투상보》와 《진중일지》와 같은 자료들이다.

“일본의 일부분 사람들은 남경대학살과 같은 사실을 승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 귀중한 자료들은 철같은 증거로 그 사실을 증명할 것입니다.” 다이토진이 기자에게 밝힌 내용이다.

그는 “《전투상보》는 일본군의 관방기록일 뿐더러 당시 당일에 기록한 일지로서 아주 명확한 기록물입니다. 그 속에는 포로 살해 기록도 있고 남경 방화 기록도 있습니다. 아주 명백하게 일본군이 남경에서 저지른 대학살 력사를 적고 있습니다.”

그때 나는 아주 작심을 했다. 반드시 뭔가를 해야 한다고! ”

그는 왜 일본인으로서 이렇듯 끈질기에 일본침략자들의 범죄증거자료를 수집했을가?

다이토진은 1965년 일본의 아이치현에서 태여나 나라대학문학부 력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나는 대학에서 력사공부를 하면서 전쟁의 진실, 즉 일본군의 중국침략 진실을 너무 알고 싶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스무살 나는 해 그는 중국 동북에서 1개 월 간 조사연구를 진행하였다. 그가 방문한 곳은 료녕성영구호석구 만인갱기념관, 료녕무순평정산참안기념관, 흑룡강성 할빈의 중국침략 일본군 제 731부대 옛터, 길림풍만 만인갱 옛터 등지이다.

“당시 중국에 갔을 때 여느 곳에서나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가장 끔찍했던 곳이 바로 평정산참안기념관이였습니다. 그곳의 마을 사람들 전체가 몰살당했는데 로인의 유해가 있는가 하면 어린 아기의 유해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전쟁은 참혹했던 것입니다! 그때 받은 충격은 오늘까지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나는 무엇인가를 꼭 해야겠다고 작심을 한 것입니다. ” 다이토진은 추억을 떠올리며 말하였다.

중국에서 돌아오는 걸음에 그는 일본군의 중국침략 증거를 수집하고 전쟁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면서 일본침략자들의 죄행을 폭로비판하기 시작하였다.

다이토진은 수년간 해마다 봄이면 평화전시회를 개최하군 하였다. 그때마다 일본의 일부 우익들은 “남경대학살은 없는 일이다!”고 고래고래 웨치면서 그와 거칠게 시비를 걸어오군 하였다.이럴 때면 다이토진은 회피하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고 침착하게 증거들을 제시했다. 그는 이런 대화를 자신의 작업의 일부분으로 여겼다.

“그들이 오기 전에 나는 다시 한번 남경대학살 관련 자료들을 읽으면서 그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더 정확하게 답할 수 있기를 바랐고 또한 내가 더 깊은 지식을 갖고 력사적 사실에 대해 전면적이고 정확하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고 하였다.

다이토진은 강연이나 교수를 하는 기회를 빌어 력사적 진실을 더 널리 전파하고 있다.“비록 나 한사람의 힘만으로는 미약할지라도 계속 강의를 하면서 보다 많은 일본인들에게 진실한 력사를 들려주고 그들더러 전쟁과 멀리 하도록 할 것입니다. ”

기자수기: 정의의 릴레이

5월의 어느 하루, 나는 일본침략군 남경대학살재난동포기념관으로부터 보내온 전보를 받았다. “우리는 일본에서 수집한 중국 침략 일본군 관련 자료들을 중국으로 실어오려고 하는데 전염병이 지연되고 있어 많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방도를 생각해 주시겠습니까? ”

2019년 9월 3일, 일본의 력사연구학자 마쯔노시로(松野城)는 그가 쓴 《제5대대 독가스전 관련 자료》를 남경대학살재난동포기념관과 민간항일전쟁박물관에 기증한 적 있었다.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나는 기념관 관계자들을 만난 적 있다.

일본의 코로나사태는 여전히 심각하여 그 어떤 왕래나 운수는 모두 쉽지 않았다. 나는 지난해 재 일본 화교 한분이 국내에 방역물자를 기증한 사실을 취재하면서 춘추항공회사 일본분공사를 찾은 적 있어 지원을 바라는 내용을 위챗으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회사의 회장인 왕위로부터 통쾌한 답장이 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꼭 운송해 드리겠습니다. 력사를 존중하는 일에 저희들도 응당 협력해야지요!”

8월 5일 일본 아이치현 엔코사 주지 원장은 몸소 일본침략군 관련 력사자료를 동경으로 보내왔다. ( 신화사 기자 곽단 찍음)

한동안 서로 련락하면서 조정하고 준비를 마치고 나서 다이토진은 8월에 일부러 나고야로부터 도꾜로 자료들을 갖고 왔다. 이 사료들은 너무 귀중하기에 우편이라든가 하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시름을 놓지 못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그날 따라 동경의 날씨는 아주 덥고 습했다. 차에서 내린 그는 무거운 려행가방을 끌고 몇 키로메터 되는 울퉁불퉁한 길을 다그쳐 왔는데 그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숨 돌릴 사이도 없이 그는 조심스럽게 자료를 꺼내들고 일일이 소개를 하였다. 나는 누렇게 색이 바랜 자료봉투에 찍혀 있는 ‘극비'라는 봉인에 눈길이 쏠렸다.

“보세요. 이 아홉 권이나 되는 《진중일지》 에서 일곱 권은 1937년부터 1938년 4월 사이에 한 부대에서 7개월 동안 련속하여 쓴 기록입니다. 이건 유일무이한 자료입니다. 내가 자료수집을 여러 해 해왔지만 처음으로 이렇게 여러 권으로 된 책을 보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격동으로 들떠있었다.

이렇듯 귀중한 자료들로 가득 찬 가방을 마주하고 나는 존경과 감동으로 그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감히 손을 내밀어 번져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 오랜 세월속에 흔적을 남긴 자료들을 무심결에라도 다칠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후 여러 단위들에서 ‘사료운송릴레이위챗군’이 무어졌다. 이렇게 일본침략군의 죄증을 기록한 력사자료는 항공회사 전문일군의 호송하에 안전하게 중국에 운송되였다. 이 소식을 접한 다이토진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는 나에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계속 해 나갈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다시 9월 3일이 왔다. 우리는 승리를 기념하고 력사를 기억하며 정의를 웨치고 평화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 사명감을 지니고 력사의 진실을 전해준 모든 정의의 인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신화통사 국제부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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