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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계보(4)연안정신 - 보탑의 휘황 앞날을 밝혀

편집/기자: [ 정현관 ] 원고래원: [ 新华网 ] 발표시간: [ 2021-08-06 11:07:51 ] 클릭: [ ]

“몇번이고 꿈속에서 연안으로 돌아가 두손으로 보탑산을 감싸 안았다.”

연안, 중국 혁명의 성지.

1935년부터 1948년까지, 이 붉고 광활한 땅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소재지로 되였다. 파란만장한 세월, 우리 당은 작던데로부터 큰데로, 약한데로부터 강한데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중국의 혁명사업을 저조에서 고조에로, 승리에서 새로운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지도하면서 확고하고 정확한 정치방향과 사상을 해방하고 실사구적인 사상로선, 일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근본 취지,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창업정신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연안정신을 육성시켰다.

“연안정신은 한세대 한세대의 중국공산당인을 양성했다. 이는 우리 당의 보귀한 정식적 재부이다.”

2020년 4월, 습근평 총서기는 섬서성에서 고찰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끝까지 연안정신으로 광범한 당원들과 간부들을 교육하고 초심을 키우고 령혼을 단련하고 신앙의 힘을 얻으며 당성의 차이를 찾고 전진 방향을 교정해야 한다.

 

 
위사진은 1938년의 연안 모습, 아래사진은 2021년 4월 22에 찍은 연안시.

1. 신앙의 위대한

연안혁명기념관에는 혁명 청년들이 연안에 도착하는 모습을 담은 오래된 사진들이 있다. 그들은 람루한 옷차림에 더벅머리, 그러나 눈빛은 확고하고 표정은 밝다.

사진 뒤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1937년 11월, 상해가 함락되면서 일부 애국 청년들은 구망단체의 명의로 13개월에 걸쳐 1만여리를 걸어 연안에 도착했다.

“뼈를 부러뜨려도 살은 붙어있고, 살갗을 벗겨내도 심장은 뛰고 있다. 숨이 붙어있는 한 기어서라도 연안성으로 간다.”항일전쟁시기에 연안은 등대마냥 4만여명의 지식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달려간 혁명의 성지로 되였다. 

“연안으로 가다”가 중국 대지에 울려퍼진 까닭은 중국공산당이 국내의 모든 정당 단체에서 항일구국의 큰 기치를 높이 들었고 수많은 애국지사들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 빛을 볼 수 있게 선뜻이 나섰기 때문이다. 바로 연안의 토굴에서는 중화민족의 전진 방향을 대표하는 맑스주의가 빛을 뿌렸다.

1935년 10월, 중앙홍군의 장정부대는 섬북에 도착했다. 와요보회의에서 당중앙은 항일민족통일전선을 세우는 책략과 방침을 확정했다.

1945년 연안 양가령, 제7차 당대회는 모택동사상을 당의 지도사상으로 확립하고 사상적, 정치적, 조직적으로 당이 인민을 지도하여 항일전쟁의 승리와 신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이룩하는 데 굳건한 보장을 제공했다.

연안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우리 당은 인민을 령도하여 혁명, 건설, 개혁 등 하나 또 하나의 위대한 승리를 쟁취했다. 이는 정확한 정치방향을 견지하고 당중앙의 권위를 견결히 수호하며 전당의 명령과 금지령을 보장하는 것은 당과 국가의 앞날과 운명에 달려 있고 전국 여러민족 인민의 근본리익과 관계된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세월은 흐르고 신앙은 영원하다

새시대 빈곤퇴치 난관공략의 싸움, 농촌진흥의 길, 전염병 퇴치의 제1선…… 공산당인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앞장서 싸우고 있다. 당중앙의 강력한 지도하에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을 인도로 우리 나라는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실현했고 절대 빈곤을 력사적으로 해결했으며 자신감에 가득차 두번째 100년의 분투목표를 향하여 진군하고 있다.

정확한 정치방향을 견지하는 것은 연안정신의 혼이다. 신앙의 힘은 큰 강과 같으며 암초의 소용돌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광활한 바다를 향해 쉬지 않고 세차게 뻗어나가고 있으며 그 힘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2.실사구시

연안 봉황산기슭의 작은 등불 아래서 모택동은 유명한 《지구전을 론함》이라는 글을 써내여 항일초기부터 의론이 분분했던 《망국론》,《속승론》을 론박했고 당의 항일 지구전 방침을 체계적으로 천명함으로써 항일전쟁의 승리를 쟁취할 국민들의 결심과 신심을 확고히 하였다.

등불은 작지만 위대한 사상의 탄생을 목격했다.

《모택동 선집》14권에 159편의 문장이 수록되여 있다. 그중 112편은 연안시기에 집필된 것으로 맑스주의 중국화의 빛나는 문헌으로서 연안정신의 중요한 리론적 토대를 닦아놓았다.

우리 당은 맑스주의를 기치에 기록했고 더우기 혁명의 토양에 뿌리를 내렸으며 맑스주의 중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부단히 개척하였다.

1938년, 연안에서 소집된 당중앙 6기 6중 전원회의에서 모택동은 전당을 상대로 맑스주의 중국화 라는 호소를 제기하면서 처음으로‘실사구시'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1941년, 모택동은 《우리의 학습을 개조하자》중에서 처음으로 실사구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였다. 7차 당대회에서 또‘실사구시'를 당의 사상로선으로 확정하였다.

신민주주의혁명의 총로선을 제정하고 통일 전선, 무장 투쟁, 당의 건설 등 3대 법보를 제기했으며 연안정풍운동과 대생산운동을 지도하고 리론을 실제와 련계시키고 군중들과 밀접히 련계하며 비판과 자기비판 등 3대 우량작풍을 형성하고…

연안시기, 여러 복잡한 국면에 직면하여 우리 당은 정확한 국정방침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상을 해방하고 실사구시에 의거한 것이다.

민족 부흥의 그 길은 멀고 험난하며 실사구시는 무한하다.

모택동 사상, 등소평 리론,‘세가지 대표’중요 사상, 과학적 발전관,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상——당의 100년 력사에는 항상 선택을 해야 하는 관건적인 시기에 실천을 통한 사상적 비약이 동반되였다.

18차 당대회이래 새로운 형세에 직면하여 중국경제 발전의 대론리를 새롭게 구축하던 데로부터 공급책 구조성 개혁을 확고하게 추진하는 데 이르기까지, 새로운 발전리념 관철로부터 고품질의 발전을 주제로하는...실사구시를 견지하는 것은 우리 당이 경제발전의 인식에 대한 부단한 심입이자 중국 경제를 이끌고 부단히 창조하는 새로운 발전기적이다.

오늘날, 중앙당학교 광장에는 여전히 모택동이 쓴 교훈 ‘실사구시’라는 문구가 안겨온다. 그 함의에 대해서는 말치않아도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위사진은 7차 당대회 회장, 아래사진은 2021년 3월 31일 찍은 옛터사진.

3. 인민강산

“우리 이 대오는 완전히 인민의 해방을 위하는 것이고 철저히 인민의 리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1944년 9월 8일 연안 조원광장, 모택동동지는 전사 장사덕의 추모회에서 유명한 《인민을 위해 봉사하자》라는 연설을 했다. 이어 7차 당대회에서‘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봉사’가 당장에 수록되였고 정식으로 중국공산당의 근본 취지로 되였다.

행복의 물길에는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초심이 흐르고 있다. 오래된 토굴에는 지금까지도 ‘벼슬은 없고 공복만 보인다’는 미담이 전해지고 있다....... 서방세계는 연안에서 처음으로 중국공산당의 진실한 모습을 알았다. 이것은 민심을 깊이 얻고 활력이 춤추며 전망이 무한한 정당이다.

오늘날, 북경 중남해 신화문의 조벽에는 모택동의 필기체를 모아서 새긴 ‘인민을 위해 봉사하자(为人民服务)’라는 문구가 그대로 있다. 중국공산당의 변함없는 취지를 장엄하게 보여준다.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인민들의 지향은 우리의 분투목표이다.’

18차 당대회이래, 습근평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은 일련의 고차원적인 설계도를 설계했다. 여기에는 모두 ‘인민’이라는 두글자가 내포되여 있다.

빈곤퇴치——“혁명 로구역의 인민들도 전국 인민들과 함께 초요사회의 전면적인 실현의 성과를 향수받게 해야 한다.

개혁심화——“백성들이 관심하고 바라는 바를 이루려면 개혁은 그것을 틀어쥐고 추진해야 한다.”

법치추진——“인민대중들이 모든 사법 사건에서 공평과 정의를 느낄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예사업——“인민을 중심으로 하는 창작방향을 견지하여 시대에 부끄럽지 않은 우수한 작품을 더 많이 창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엄격하게 당을 다스리다——“백성에게 리로운 일이면 아무리 작아도 해야 하고 백성을 해치는 일은 아무리 작아도 없애야 한다.”

당중앙 19기 5차 전원회의에서는 처음으로 전체 인민들의 공동한 부유는 더욱 뚜렷하고 실질적 진전을 가져왔다 ”,  <14.5계획과 2035년 전망목표 요강>은 가장 광범한 인민의 근복 리익을 잘 실현하고, 잘 수호하고, 잘 발전시키는 것을 발전의 출발점과 착안점으로 한다. ”고 제기했다.  

강산은 인민이고 인민은 강산이다.

열매는 덩굴과 련결되고 덩굴은 뿌리와 련결된다. 백성은 공산당과 련결되고 공산당은 인민과 련결된다.   연안시기에 전해진 이 명구는 지금까지도 력사의 창공에서 메아리친다.

 
양가령 혁명옛터.

4. 간고창업

남니만개발구, 남니만대생산기념관과 남니만개발구계획관은 100메터를 사이두고 있다. 하나는 창업사를 기억하고 하나는 실천발전관을 기억하고 있다.

력사를 돌이켜 보면 그것은 전례 없던 어려운 시기였다. 일본군의 대규모 소탕, 국민당의 군사 포위와 경제 봉쇄…존망의 선택에 즈음하여 모택동동지는 그 해결책을 내놓았다——‘스스로 시작하고 먹고 입는 것이 풍요롭다.’

 
양가령 혁명옛터 중앙대강당.

 
당원간부들이 연안시 보탑산에서 입당 선서를 되새기다.

기세찬 대생산 운동은 황페하고 풀이 무성했던‘진흙만'을 오곡이 풍성한 ‘훌륭한 강남'으로 변화시켰고 농업, 공업, 운수업과 상업 등 일련의 비교적 구전한 기업을 설립하여 ‘완전 자급에 도달할 수 있는 경제 토대를 닦았다.’

오늘날의 남니만은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지 않다.’ 논과 호수에 향기가 피여나고 국가습지공원은 철새들의 천국으로 되였으며 록색농촌과 홍색관광이 서로 어울리고, 생물육종, 디지털농업, 생태농장...생태환경보호와 경제발전 공영공생의 발전 청사진이 남니만에서 서서히 펼쳐지고 있다.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창업정신은 연안정신의 현저한 특징으로 세대를 이어 중화의 아들딸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분발하여 강해지도록 격려한다.

상아 4호 탐사선이‘달 뒤면을 정복'에서 ‘곤룡'호 해상 최초 비행, 천문 1호의 화성 상륙, 신주 12호 우주인‘우주 산책'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바다를 탐험하는 힘찬 발걸음이 바로 중국이 독립자주를 견지하고 자력갱생으로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 축소판이다.

오늘날, 우리는 력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목표 가까이에 서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전략의 전반 국면과  세계적으로 100년동안 있어본적 없는 대변화에 직면하여 통일적으로 계획하고 승리가 다가울수록 더욱 간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조건이 어떻게 변하든 자력갱생, 간고분투하는 패기를 잃어서는 안된다.”,“우리는 더 높은 수준의 자력갱생의 길로 나아가야 하며 더 높은 수준의 개혁개방을 실시하고 국내 대순환을 주체로 국내와 국제 이중순환을 상호 추진하는 새로운 발전구도를 다그쳐 구축해야 한다.” 습근평 총서기는 이렇게 강조했다.

연안정신에서 마르지 않는 동력을 섭취하고 력사를 거울로 삼고 력사를 명지로 삼으면 우리들은 더욱 앙양된 자세로 새로운 장정에 오르게 될 것이고 빛나는 미래를 향하여 용감하게 전진하도록 격려할 것이다.

 
전국 각지의 애국지사와 항일청년들은 생명을 무릅쓰고 적들의 봉쇄를 돌파하면서 연안에 가서 구국진리와 도로를 탐구.

 
남니만국가습지공원.

 
연안시 보탑구 남니만구.

 
만니만대생산기념관내 조각 작품.

만니만대생산기념관.

 
당원간부들이 연안시 장사덕광장에서 학습교양 전개.

출처: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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