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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춘 ]생일파티의 곤혹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8-21 12:17:08 ] 클릭: [ ]

연변사람들 술판이 많기로 평판이 나있는 실정이지만 그 와중에도 생일파티는 주변에 소문이 자자하다. 어린애든 성인이든 생일을 서로 다투어 쇠는데 일가친척에 친구들까지 빙 둘러앉으면 웬간한 결혼상을 넘본다.

옛날 가족의 축수를 받으며 조용히 쇠던 로인들의 생일파티가 언제부터인가 돌림식으로 변형되여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면서 명절분위기를 방불케 한다. 어떤 이들은 숱한 손님을 청해놓고 다음 날부터 부조받은 그 ‘ 빚’을 갚느라 때론 하루에 생일집이 두집, 세집 겹쳐 밤중까지 팽이처럼 돌아치며 분주히 보낸다.

생일축하의 말은 둬마디 건성해놓고 사촌 기와집 지어주 듯 한바탕 큰소리 탕탕 치는 대포쟁이들의 잡담이 또한 억이 막힌다. 서로 멋들어지게 살았노라 꼬챙이에 꿰여들고 겨끔내기로 목청을 돋구는 판국이라 말주변이 없고 고지식한 축들은 곁에 앉아 그저 술이나 따라올리는 들러리 신세가 되고 만다.

옛날 범을 때려잡은 무송이 혀를 끌끌 찰 지경이라 사물에 해박한 이들은 입이 쓰거워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끓어번지던 술판이 스산하게 깨지는 일이 비일비재다. 생일파티를 굉장히 차려 인격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요, 간소해서 랑패 보는 일도 별로 없다.

지난날 우리 선조들은 생일이란 개념을 모른 채 세파에 부대끼며 힘들게 살았어도 가정을 책임지는 버팀목의 역할만은 굳건히 지키며 살았다. 생일날자 기억하기 앞서 자신의 신성한 소명을 명기하는 것, 항상 겸손하고 흐틀어지지 않는 자세를 지키는 타입이라면 구태여 생일파티를 위해 여기저기에 구걸하다 싶이 초청장을 보낼 리유가 없을 줄로 안다.

연길에 사는 한 녀인은 일전 남편의 환갑생일날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 갖가지 화초들을 사서 창턱 우에 올려놓고 이 꽃은 남편 꽃이요, 저 꽃은 안해 꽃이요, 파릇한 윤기가 흐르는 애나무는 연해도시에 있는 아들며느리 것이요 하며 재미있게 이름까지 붙여놓고 희망을 부풀렸다. 저녁에는 아들며느리 부쳐온 선물과 료리 두 접시를 차려놓고 케익에 꽂힌 초불을 밝혔다. 그리고 30여년전 처녀총각시절 서로 주고 받던 색바랜 편지들을 펼쳐보며 추억의 기쁨을 나눴다. 아픈 기억이 많을 수록 오늘의 생활이 더없이 소중해 보이는 법이다.

석전갱우 같이 부지런히 억세게 살아온 사람이 고진감래의 느낌과 희열을 숨기고 이슬 맺힌 눈만 슴벅이는 순박한 마음과는 달리 해놓은 일이 별로 없이 소금알을 좀 먹은 것이 큰 자본인양 어깨를 들썩이는 모양새가 어쩐지 어설프게 왜소해 보일 때가 많다.

신비한 판도라 상자마냥 한해에 한번씩 열어보는 생일상자 속에 한쪽은 맨날 빈둥거리며 질탕 먹고 마시며 놀았다는 원성이 가득차 있고 다른 한쪽은 로동의 탐스런운 결실을 칭찬하는 메시지가 듬뿍 차 있다면 제우스의 천평은 과연 어느 쪽에 넉넉한 량심의 무게를 실려줄가.

멋진 삶에는 생일날이 따로 없다. 서로 더 가까이 마주보며 미움을 용서로 바꿔주고 오해를 리해로 풀어주며 우정의 따뜻한 손목을 잡는 날이 진짜 생일날과 같은 기쁨일 진대 정해진 시간에 임무적으로 쇠는 생일은 어쩐지 곤혹스럽다.

하지만 평소 즐거운 일감에 올인하다가 며칠 후 잊혀진 생일날이 깜짝 떠오르는 순간 절로 생기는 말 못할 흐뭇함과 행복감이 이웃에 찐한 향기를 선사한다. / 최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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