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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춘] 광고전단지의 곤혹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7-28 14:52:02 ] 클릭: [ ]

 요즘 도시사람들은 광고전단지란 말 만 나와도 송충이 보듯 몸을 으스스 떤다. 천여년전 애급의 어느 농장주가 실종된 노예를 찾느라 써 붙인 광고문이 오늘의 상품광고로 탈바꿈하여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는 초점이 되였다.

워낙 광고의 출발점은 좋았다. 정보비대칭으로 소비시장에서 야기 된 울퉁불퉁한 비정상 가격을 한껏 투명하게 조절해 주어 사람마다 인력, 자원의 흐름추이를 일목료연하게 장악하고 리용할 수 있는 공유마당이 생겨 자못 편리했다. 헌데 거리마다 골목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발처럼 날리는 광고전단지에 사람들 거개가 정보과잉 섭취로 소화불량에 걸린 증상이 비슷한 거부감, 염오감이 생겼다. 참살구 있으면 개살구 있듯이 좋은 정보광장에 저질 상품광고가 틈사이에 끼여 들기 마련이다.

한때는 금융투자, 부동산을 미끼로 비게덩어리를 노리는 얼렁뚱당 전단지가 기승을 부리더니 근간엔 보건품의 효능을 굉장히 부풀려서 유혹하는 바람이 세차다. 얼핏 보매 솜씨 한수 높아진 것 같아도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에 불과한 소인배들의 장난질이다. 문제는 생선을 즐기는 사람이 있어 낚시군이 생겨난 것처럼 감언리설에 귀 무른 사람들이 있어 불법장사의 마수거리가 항상 짭짤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어느 로파가 전단지에 실린 약 소개를 곧이곧대로 믿고 사서 복용해 보았더니 효력이 빵점이였다. 화가 치밀어 약방을 찾아 따졌다. “ 왜 근치률이 98% 라는 약이 아무런 효과가 없는가?’ 로파의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이 더 가관이다. “환자분께서 차도가 없는 2%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런 연고로 전단지를 밤새도록 찍어내는 사람이 있고 그 전단지를 아무곳에나 척척 붙이는 사람이 있다.

오죽하면 “도시소버짐증”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였겠는가. 정부차원에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들였다. 외지에서 청결장비들을 사들여 인력을 동원해 가끔씩 사회적 캠페인을 벌렸다. 하지만 가로수, 전선주, 건물벽체가 며칠 동안은 깨끗해 보인듯 하다가 다시 불법상인들의 범람으로 볼썽 사납게 된다.

정부대책에는 우회전을 펼치고 언론의 질타는 듣는체 만체하는 개별적 상인에게 확실히 그 어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도시 공중도덕적 의식을 키워주는데 모를 박아야 한다. 의학적으로 소버짐증은 피속의 독성에 의해 외관상 피부에 돋힌 질병이라고 할 때 ‘도시소버짐증’은 평소 시민들중에서 공중도덕의식이 낮은데서 초래한 심리의 내재적 ‘질병’이다.

치유방법은 질병을 유발한 ‘독소’를 제거하는 일이라고 해야 겠다. 거리의 질서를 무시하고 불법 전단지를 아무렇게나 내돌리는 앙큼한 속궁냥부터 핀센트로 하나하나 집어내여 주는 것이 사회의무가 아닐가, 판촉에 붙이는 물건은 결국 장사군의 마음이다.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량심을 길손들 손에 억지로 쥐여주는 자체가 도덕을 팔아먹는 행각과 차별없다.

쪽제비도 낯짝이 있다했거늘 인간이 체신을 지키지 않고 오장륙부를 적라라하게 내놓고 다닌다면 얼마나 흉측스럽겠는가, 그래서 사람은 치장을 한다. 마음을 숨기려는 것이 아니라 진솔한 빛갈을 오색령롱한 패션을 통해 보다 풍부하게 표현할 따름이다.

장사의 품격은 인격에서 비롯된다. 환경에 먹칠하면서까지 자신의 수판알을 튕기려 든다면 그 이상 무지몽매한 일이 없을 것이다. 더불어 숨쉬며 사는 도시란 이 거대한 정장차림의 ‘신사’한테 손수 넥타이도 매여주고 달라붙은 먼지도 털어주면서 정성을 쏟느라면 신기루 같은 화려한 도시풍경이 꿈 아닌 현실로 성큼 다가서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 최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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