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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전문가, 일본군 ‘위안부’ 명부 공동 발표

편집/기자: [ 리미연 ] 원고래원: [ 신화사 ] 발표시간: [ 2017-07-07 14:46:41 ] 클릭: [ ]

7월 5일, 한 참관자가 〈금화계림회 회칙 및 명부〉 서류포토를 보고 있다.

5일, 일본군 ‘위안부’문제학술세미나가 남경 리제골목 위안부 옛터 진렬관에서 개막되였다. 중한 쌍방은 135명 ‘위안부’자료가 적힌 명부인 절강성 금화시서류관에서 수장한 〈금화계림회 회칙 및 명부〉를 함께 공포했다. 중한 전문가들은 공동연구를 통해, 2차 세계대전 기간 중국에서 종사한 이 조선국적 ‘위안부’ 력사자료의 발견은 일본군이 ‘위안부’ 제도를 실시한 확실한 증거라고 인정했다.

〈금화계림회 회칙 및 명부〉는 조선인향우회 회칙 및 명부로 ‘소화 19년 4월’ 즉 1944년 4월에 쓴 것이다. ‘계림’은 고대 신라의 국호로 조선반도를 일컫는 뜻이 있다. 금화시 서류국(관)장 진염염은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지난 세기 80년대 말 90년대 초, 금화시 서류관이 이 명부를 발견했다. 명부에는 도합 210명의 이름이 기록되여 있었는데 모두 재중 조선인으로 성명, 년령, 관적, 주소, 직업 등 정보가 있었지만 줄곧 연구를 전개하지 않았다.

중국‘위안부’문제연구쎈터 주임이며 상해사범대학 교수인 소지량은 이 명부에 기록된 금화의 조선인 직업은 촬영, 상사, 음식, 양행, 회사 등이 있었고 또한 직접 일본군을 위해 봉사한 것도 있었지만 다만 년령이 20∼30세이고 이름 특점이 명확하게 녀성인 100여명은 직업이 등록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명부를 대조해보면 이런 녀성들은 기본상 ‘현재주소’ 항목에 따라 대량으로 기록되여 있는데 거주지는 위안소 주소와 똑같아 뚜렷한 종속관계를 보여주는바 위안소의 ‘위안부’로 추정할 수 있다. 소지량은 조선민족의 정조 관념으로 볼 때 강제로 일본군의 ‘위안부’가 된 것은 입에 담기가 어려운 일이기에 향우회 명부에서 그들의 직업을 감추었다고 인정했다.

소지량은 “명부 중 위안소와 관계되는 인원이 도합 147명으로 명부 총 인원수의 70%를 차지한다. 그중 위안소 주인 7명, 관리인원 5명, 위안부 135명이다. 금화지역 10개 위안소와 관계되는데 이로부터  2차대전 기간 일본군이 군대를 위해 봉사하는 위안소를 설립한 밀집정도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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