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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옥]용서의 매력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5-15 14:40:24 ] 클릭: [ ]

‘용서’란 단어를 뜻풀이 하면 ‘대방의 잘못이나 죄를 꾸짖거나 벌 주지 않고 덮어 줌’을 말한다. 이 두 글자를 읽거나 말하기는 쉬우나 막상 그대로 행한다는 건 쉽지 않다.

내심으로부터 우러 나와 대방의 잘못을 용서해 준다면 아마도 금전을 받는 것보다 더 좋아할 것이며 칭찬 또한 뒤따른다. 그만큼 용서란 너그럽고 고상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용서가 너무 린색하다. 그래서 마구 헐뜯고 서로 저주하고 또는 질투, 미워하는 현상이 수두룩하다. 그 누가 잘못하면 가슴에 새겨넣고는 두고두고 증오하며 싸우면서도 서로 용서함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는 상처입고 병원가고 지어 법 놀음까지 한다. 기실 한걸음만 뒤로 물러서서 용서해 준다면 이런 일은 피면할수 있다.

15년전에 나는 이런 감명적인 일을 목격했다. 최모란 사람이 리모의 일곱살 나는 아들애를 데리고 들놀이를 가는 도중에 차사고로 애가 죽게 되였다.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키우던 아들애를 잃은 리모의 가슴은 란도질 당한듯 아팠다.

비록 고의는 아니지만 자기의 차실로 남의 집 자식을 잘 못 되게 하였으니 최모는 이제 대방의 욕과 저주를 받을 것은 물론 옥살이도 면치 못할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리모는 욕 한마디 없이 되려 그를 위안해 주었다.

“심리부담 갖지 마오. 고의가 아닌데...”

“난 죄를 지었으니 어떻게 처벌해도 할 말이 없소. 속 시원하게 마음대로 하오”

최모의 말에 리모는 그의 어깨를 부여잡고 이렇게 대답했다.

“허참, 내가 당신을 어떻게 처벌해도 애는 다시 살아날수 없지 않소? 아이는 이제 또 낳으면 되는 거니까 싹 잊으라구...”

이렇게 말하는 리모의 눈시울이 푹 젖어있었다. 아들을 잃은 비통의 눈물이다.

그때 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리모의 넓은 흉금과 처사에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웬간한 마음으로는 할수 없는 일이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한 녀인은 남편이 외도를 한다는 것을 알고 조용히 리혼을 제기했다. 그녀는 옷 가게 3개를 경영하는데 자기는 하나만 가졌다. 친구들이 그런 남편이라면 하나도 안 줘도 무방하다고 하면서 왜서 그렇게 바보짓을 하는 가고 물었다.

“난 딸애 하나여서 식구 둘이지만 애 아버지는 이제 그 녀자와 또 아이를 낳을 것이니, 그러면 식구 셋이 되겠으니 가게 두개는 있어야 살아 갈수 있지요. 애 아버지가 잘 살지 못하면 저희 딸애가 속상해 할것이고 또 딸애의 애탐이 저의 애탐이기도 하지요.”

그후 전 남편이 몇번이나 좋아하는 녀자를 데리고 그녀 가게에 와서 거들먹 거릴때도 그녀는 돌아서서 못 본척 했다. 눈으로 안 보니 마음도 편안하단다. 소문나게 싸우지 않고 묵묵히, 조용히 자기 갈 길을 가는 그녀의 행동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 가고 반문해 보기도 했다.

어찌보면 전설이 같지만 우리신변에는 확실히 이런 녀자가 있다.

‘용서’란 자존심을 잔뜩 높이는 사람, 리기적인 사람, 흉금이 좁은 사람과는 담을 쌓는다. 또한 용서를 모르는 사람은 늘 신경이 팽팽해 져 저도 모르게 육체를 해치며 즐거움을 모르고 편안히 보낼수 없다. 당연히 사는 자체가 얼마나 힘이 들도 지치겠는가?

매일 모순과 갈등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는 용서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부부간 서로 용서를 앞세운다면 사랑이 영원할 것이고 형제, 친척사이에서도 서로 용서한다면 화목한 기상이 보일 것이고 남남사이에 서로 용서한다면 사이좋은 관계를 이루게 된다.

그러니 나 잔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모두 유리한 용서를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수 있는 것이 아닐가.

/ 박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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