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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신(鞋)의 눈물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4-18 12:25:34 ] 클릭: [ ]

신발매대를 지나는데 신발 한컬레가 내 시선을 집요하게 유혹한다. 양식이며 색조화며 굽 낮이까지 여러모로 보아도 딱 내 취향이였다. 주저없이 지갑을 열어 값을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 신발장에 얹어놓으려고 문을 열었다. 순간 내 한심함이 또 한번 자신을 실망시킨다. 차고넘쳐서 더는 들이밀 자리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50대의 이 나이에 아직도 새것에 대한 집착을 멈추지 못하는 허욕으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층마다 차고넘치는 신발들이 나를 원망하는듯 싶다. 더구나 몇년째 해빛을 보지 못한 구석 쪽 신발들이 더더욱 그러하듯 몸을 옹송그리고 싱갱이질에 시달리다 지쳐서 항의하며 질책하는 것만 같았다.

내 눈언저리가 어느덧 벌겋게 부어오른다. 신발 하나 땜에 그토록 가슴이 저미듯 아프고 눈물겹던 세월, 눈물없이 돌아볼 수 없는 나날들이 슬픈 드라마마냥 눈앞을 스치면서 아픈 기억들을 헤집는다.

결혼준비를 앞둔 첫날 색시는 이것 저것 사들일 것이 많고도 많았다. 한푼도 쪼개써야 할 그 세월에 ‘첫날비심’ 하나하나가 모두가 벅찬 것이였다. 결혼식날 첫날 색시 차림을 하고 나선 나를 보시던 어머니가 대뜸 얼굴빛을 흐리우시던 그 모습을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지울 수가 없다. 새색시가 한복차림에 하얀 코신을 신는 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민족 전통임을 모르는 내가 아니였지만 ‘첫날비심’들을 사러 갔던 날 마지막으로 코신을 사려 하니 돈이 절반 나마 모자랐다. 어머니가 또 땀 흘리며 무거운 임을 이고 힘들게 장을 봐야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어차피 한복이 내리드리우면 가려져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냥 평소에 신던 하얀 운동화를 코신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결혼식날 그것이 당장에서 어머니에게 들통이 날 줄이야. 부랴부랴 뛰여가시던 어머니는 어디에서 구했는지 하얀 코신 한컬레를 들고 나타났다.(후에야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다음달 결혼준비로 미리 사놓은 길옆집 금희언니의 코신을 외상으로 가져왔던 것이다.) 헐떡이며 달려오신 어머니의 얼굴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내 눈물도 첫날 한복에 굴러내려 하얀 코신 우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작은 쪽배모양에 동그란 코가 톡 불거져나온 하얀 코신에서 나는 하얗고 깨끗한 마음으로 열심히 뛰며 살아가길 바라는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

신이 귀했던 그 세월에 어릴 때 강변에서 놀다가 고무신 한짝을 물에 띄워버리고 고함치며 발버둥질치던 일이 떠오른다. 어머니에게 말하면 당연히 꾸중이 따를 것이고 하루밤 새로 신을 사낼 수도 만들어낼 수도 없는 일이라 나는 이튿날 아침 일찍 서둘러 몰래 언니의 한쪽 신발을 맞춰 신고 학교로 뛰여갔다. 학교에 가려고 나섰던 언니가 신발이 없다고 온 집안을 발칵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낡은 운동화슬리퍼를 신고 학교에 갔다. 온 집에 여유 신발이라고는 한짝도 없던 그 때 어머니가 그날 나 대신 맨발로 일밭으로 나갔다.

신이 그립던 그 세월에 나는 강물에 신을 띄워버리고 발버둥치며 울었고 언니는 내가 훔쳐간 신발을 찾다가 등교시간이 늦어진다고 고함치며 울었다. 언니들은 새 신 한컬레가 생기면 번갈아보다가 아쉬움에 울었고 어머니는 이러는 자식들을 지켜보며 가슴이 아파 수없이 눈물을 흘렸다. 낡은 슬리퍼마저 내여주고 맨발로 일밭으로 나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너무 아려나면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긴긴 세월 속에서 신은 이렇게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힘들고 간고한 나날들을 겪어왔다. 신 때문에 울고 웃던 그 세월을 돌이켜보노라니 저도 모르게 한생을 인류와 동행해온 신의 고달픈 삶에 동정이 간다. ‘신의 삶’은 참으로 헌신적인 삶이였다. 작은 그릇으로 주인의 육중한 몸체를 받들고 주인이 이끌면 이끄는 대로 산이면 산, 강이면 강 어디나 따라나서야 했고 새벽같이 나갔다가 달을 이고 돌아오는 농부와 같이 진종일 밭에서 헤매야 했다. 오늘은 멀리 타향에서 열심히 뛰는 겨레들과 밤낮이 따로 없이 천직을 다하고 있다. 허구한 날들에 자유란 없이 온몸이 닳아떨어질 때까지 헌신을 멈추지 않는다. 신은 인류를 위해 최후를 마치고 값없이 버려지지만 주인에게 불평 한마디도 없이 자기의 고달팠던 나날들을 조금도 들먹이지 않는다. 다만 불철주야 뛰고 뛰면서 지쳐가는 주인을 바라보며 가엾어서 눈물을 흘린다.

신이 그리워 인류가 눈물 짓던 그 세월은 어느덧 먼 과거로 흘러갔지만 신은 하냥 변함없이 자기의 천직인 ‘근면함’을 잃지 않고 있다. 오늘은 신들이 되려 인류의 자취가 그리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늘의 신발들은 비록 전문가들의 진지한 연구로 남다른 디자인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지만 수요에 넘치도록 흔한 세월이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주목을 받지 못할가 걱정이고 인류을 위한 봉사에 참여할 수 없을가 걱정이다.

오늘의 인류는 헌신과 베품으로 한생을 바치는 신의 고상함을 때론 망각한다. 삶에 게으르고 사치와 랑비를 일삼는 얄미운 주인들에게 잘못 주목된 불쌍한 신발들이 컴컴한 신발장에 사시절 갇혀서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는가 하면 한심하게도 제구실 한번 하지 못하고 무참히 버려지기도 한다.

신들이 눈물을 흘린다.

헐벗고 굶주리던 가난의 세월을 근면한 주인과 함께 쉬임없이 뛰여온 신발들이 부유의 세계로 탈바꿈한 멋진 이 세상에서 오늘도 더더욱 열심히 뛰려 한다. 하지만 인류는 신들의 간절한 그 소망을 묵과해버리고 있다. 어두운 구석에서 무료하게 자리지킴을 하고 있는 신발들이 부패와 사치를 일삼는 주인들이 역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는 다시 신발장문을 열어제꼈다.

신들을 모조리 내려놓았다. 닦고 씻고 하여 한동안 잃어버렸던 그들의 참모습을 살려주었다. 그리고 신발마다에 메모지를 붙여놓았다. 메모지에는 신발의 크기와 원단 그리고 브랜드 이름도 적어놓았다. 나는 그것들을 사람들이 많이 나드는 집 앞 네거리에 진렬해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무상으로 마음대로 골라가세요.” 라는 글을 종이에 써서 붙여놓았다. 십여쌍의 신발들이 말똥말똥 새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하여 사람들이 네거리에 몰려들었다. 신발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참다운 주인에게 지목되였다. 이틀 후 신발들이 내 시야에서 전부 사라져버렸다. 새 주인을 찾은 신발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나한테 고마움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드디여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나도 엄마의 정성이 고이 담겨있는 하얀 코신을 내려놓았다. 발을 들이미는 순간 맑고 깨끗한 눈물이 하얀 코신 우에 방울방울 떨어진다.

 

                                                                              /김명숙(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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