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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관(棺) 속의 집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3-07 11:03:59 ] 클릭: [ ]

녀자는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몇개 계단을 넘어야 했다. 녀자가 아래집을 지나쳐 계단을 오르려 할 때 반 쯤 열린 문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상했다. 한동안 빈집이였다가 누군가 이사 온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아래집은 한동안 반 쯤 문이 열려져있었다.

녀자는 몇번인가 문을 밀고 들어갈가 말가 고민하면서 문 앞에서 서성이였다. 한번은 헛기침소리가 들려 흠칫 놀라며 곧바로 웃층으로 쫓기듯 올라갔다.

소나기가 퍼붓는 어느 퇴근길, 녀자는 드디여 용기를 내서 힘껏 문을 밀고 들어섰다. 구조는 녀자의 집과 흡사했다. 거실이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같은 구조의 집인지라 조금 착란세계에 들어선 것 같았다. 거실 쏘파 우에는 기하학적인 그림이 우두커니 걸려있었다.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미국에 간 남편의 전화였다.

녀자는 계단을 밟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녀자의 집은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현관에는 3년전 찍은 결혼사진이 걸려있었다. 사진 속의 다정한 모습은 이제 녀자 홀로 늘 마주하는 풍경이 되고 말았다. 오른편으로 신혼방은 아늑했으나 녀자는 가운데서 잠을 자는 일이 많아졌다. 그 옆으로 화장실이 붙어있었다. 세면대 면도기 칼날은 시누런 녹을 머금고 있었다. 녀자는 가급적 채광이 잘되는 쏘파 가장자리에 누워 책을 보면서 긴 밤을 보냈다. 녀자 집은 낮과 밤을 분간키 어려울 정도로 조용했다. 녀자는 벽면을 책꽂이로 두르는 바람에 책과 공존하게 되였다.

3년간 열심히 돈을 벌고 오겠다던 남편의 구체적 계획은 점점 거짓말로 변하고 있었다. 남편은 이제 녀자에게 돈 한푼 보내오지 않았고 옷장 속 남편의 옷에는 먼지만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함께 미국으로 가자는 남편의 제의를 받았을 때 녀자는 정규직 직장에서 한창 촉망을 받고 있었기에 중도에서 포기하고 외국으로 가기에는 잃는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녀자는 아래집 중앙에서 울려퍼지는 뚝딱이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새로운 존재를 느끼면서 빈집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녀자는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새삼스러울 정도로 내가 이토록 무관한 일에 관심을 가지다니.’

십년전에 지은 아빠트는 부실공사인 탓에 얇은 벽이 녀자의 도청에 편리를 도모해주었다. 아래집에서는 길게 한숨이 이어졌다. 점점 한숨을 쉬는 차수가 길어졌다. 한번 한숨을 쉬면 오래도록 이어갔는데 혹시 우울증환자가 이사를 온 것이 아닐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땅이 꺼질 듯한 깊은 한숨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녀 역시 가슴이 침침하고 머리가 어지러워났다. 이제는 아래집 객실에서 들려오는 그 한숨소리가 마치 녀자 집에서 나는 소리처럼 가까이 들려왔다.

한가한 주말의 오후, 녀자는 할 일 없이 산책하고 돌아오다가 아래집 문 앞에 놓여진 커다란 편지봉투를 목격했다. 그 날 이후로 그 커다란 편지봉투는 이튿날, 다음날이고 계속 원모양 그대로 문 앞에 놓여졌다. 엿새 되는 날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녀자는 매번 지나칠 때마다 서류존재여부를 꼭꼭 확인했다. 계단을 오르는 발길은 언제나 호기심으로 가득찼고 어느새 일과로 되여버렸다. 아침에 아래집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녀자는 집바닥에 누워 소음을 견디고 있었다.

녀자는 아래집 주인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끈질기게 기다렸다가 아래집 문 앞으로 재빨리 내려가 서류를 확인했다. 우편번호와 주소가 적힌 큰 봉투에는 받는 사람 성함까지 반듯하게 적혀있었다. 편지를 보낸 곳은 한국이였다.

그러나 그다지 두텁지 않은 걸 봐서는 중요한 문서 따위는 아닌듯 싶었다. 이윽고 녀자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 옆구리를 조심스레 뜯으려다가 ‘아차, 개인정보를 침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만 멈추었다.

녀자의 메일함으로 남편의 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에는 남편의 장황한 사업확장 계획이였고 돌아올 날은 점점 아득해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처음의 약속을 기억했다. 어렴풋한 기억 속으로 기대에 부푼 남편의 눈빛이 떠올랐다. 지친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녀자는 서서히 자신이 바라던 행복에 의문을 품는 순간이였다.

녀자의 주방은 점점 간소해졌다. 알콩달콩 커플세트 커피잔도 그들의 손길을 기다리며 누렇게 탈색되여가고 있었다.

아래집 문 앞에는 여전히 그 편지봉투가 놓여있었다. 며칠사이 그 우로 비슷한 크기의 편지들이 약간의 높이로 쌓여져있었다. 좁은 복도를 더욱 좁게 하는 것은 편지묶음들 뿐만이 아니였다. 톱밥이 수북이 쌓여져있었는데 바람에 실려 기분 좋은 나무냄새가 풍겼다. 한켠으로 무질서하게 조그마한 나무막대기들이 조잡하게 너부러져있었고 날이 무뎌진 톱날도 보였다. 목공인듯 짐작이 갔다. 그 옆에는 허름한 신발이 놓여있었다. 주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낸 신발이였다. 뒤축이 반쯤 구겨진 구두는 낡아 먼지가 뿌옇게 쌓여있었다. 녀자는 자신의 발치에 놓인 그 구두에 자신의 하이힐을 가만히 대보았다. 옆집 사람의 발은 의외로 컸다. 이 세상을 하직한 아버지의 신발이 떠오르는 순간이였다. 녀자는 살며시 구두의 앞부분을 손으로 닦았다. 먼지가 밀리며 신발이 조금 밝은 광채를 띠고 있었다.

처음에는 몇번 삐걱거리던 문이 갑자기 강바람이 불면서 활짝 열려졌다. 어두운 현관 앞에 한동안 서있었던 탓인지 내부가 더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현관을 따라 이어진 긴 복도에는 놀랍게도 큰 장방형 모양의 널판자가 놓여있었다. 새로운 변화였다. 각종 기계들의 배치가 안방으로까지 련결되였다. 알 수 없는 기계들로 가득 세팅이 되여있었고 그 밑에 작업대도 정비되였다. 하나의 작업실을 방불케 했다. 그 광경을 녀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남자는 전자레인지에 인스텐드 음식을 데워 대충 한끼를 해결하거나 참치캔을 뜯어 끼니를 에때우는 것 같았다.

정확히 주말 저녁이였다. 녀자는 시장에 들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한 남자와 마주쳤다. 처음에는 그냥 스쳐지나려다가 고개를 숙인 한 남자가 길게 한숨을 쉬는 바람에 다시금 쳐다보았다. ‘혹시 아래집 남자가 아닐가.’ 얼핏 보아 50대 아저씨 같았다. 걸어가는 방향은 그녀와 같은 집 방향이였다. 녀자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걸음을 재촉하며 그 남자의 뒤를 바짝 따라 걸었다. 남자는 무슨 용도가 있을지 모르는 공구가방을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부터 이어진 소음 때문에 짜증이 몰려왔다. 아래집 사람이 크게 시끄러운 사람이라기보다 집과 집 사이의 벽이 얇은 게 문제였고 아래집 사람은 벽이 얇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생리 탓인지 녀자의 신경은 소음의 크기에 따라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런 시도에도 아래집 사람은 방음이 잘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른 채 계속 기계음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남자는 조심스러울 필요조차 없다는듯 소음이 넘어가는 것을 망각한 채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그 날 만큼 녀자는 손톱을 세워 바닥을 긁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아래집 사람은 아침이면 오랜 한숨을 반복해가며 깨여난다. 삐걱 창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이어 화장실에서 가래를 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담배를 지독하게 피우는 것으로 짐작되기도 했다. 아침을 알리는 가장 큰소리였다. 녀자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주말 녀자는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딱히 뭔가 할 일이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했다. 하루종일 누워 책을 보는 것 그리고 물을 끓여 커피를 마시거나 그 다음 손톱을 칠하는 것이 녀자의 주된 일과였다. 그것만으로도 녀자는 일상이 벅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녀자가 그나마 집착하는 것은 오로지 술 뿐이였다. 몇병인가 련속 들이켠 후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혀바닥에 바늘이 돋아나는 기분이 들 때면 녀자는 생각했다. ‘우아하게 숙면하는 방법을 찾았군.’ 모든 기다림들은 문밖에서 한동안 서성이다 빙빙 겉돌고 있었다.

평소에 녀자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녀자는 더욱 상념에 빠져들군 했다. 오래도록 누워 천정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런 날일수록 다양한 망상들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다. 녀자는 천장에서 무너지는 결연한 의지들을 그저 묵묵히 바라볼 뿐이였다.

탕탕탕 망치소리가 울려퍼지고 사락사락 뭔가 긁는 소리가 나면서 아래집 사람의 존재를 알리는 하루가 시작되였다. 아래집 사람이 구경 무슨 물체를 만들고 있을가? 그 정체를 무척 알고 싶었다. 어디까지 만들어졌는지 어떤 륜곽으로 되여있는지 어떤 용도를 간직하고 있는지에 대해… 그럴 때면 녀자는 박물관에 진렬된 기상천외한 화석들을 떠올려본다. 갑자기 흰색 말 화석이 날개를 펴면서 녀자에게로 질주해오고 있었다. 녀자가 살며시 눈을 감자 눈앞엔 온통 검은색 장막이 펼쳐졌다.

저녁에는 밥 대신 견과류를 곁들인 와인이 유일한 녀자의 먹거리였다. 녀자의 위가 가장 반기는 액체였다. 열시 후면 아래집은 조용해졌다. 간간이 한숨소리가 들리고 투박투박 발걸음소리가 반복되는외에 별다른 인기척이 없었다. 차분하게 가라앉는 밤이 깊어지면 아래집 소리마저 모두 끊기면서 녀자의 귀는 그제야 바닥에서 떨어졌다. 다시 가운데 방으로 들어가 쏘파 속에 몸을 가누고 어둠 속에 잠겨버린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과는 규칙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계절이 여러번 바뀌였다. 어느 날 빛이 강렬하게 눈으로 비집고 들어오자 녀자는 실눈을 뜨며 눈부신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더 희게 빛나는 복도 벽면은 빛의 굴절 속에서 다른 차원의 세계를 드러냈다. 총총 발걸음이 어느새 자연스레 아래집 문 앞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아무도 만지지 않는 봉투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고스란히 낡아지고 있었다.

녀자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히고 봉투를 손에 쥐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중히 봉투 맨 끝을 일자로 찢어 안에 손가락을 넣었다. 안에는 리혼협의서가 들어있었다. 맨 아래에는 녀자 이름과 함께 도장이 쿡 찍혀져있었다. 인연이 도장과 함께 끊겨지는 순간이였다. 녀자는 반사적으로 문을 열었고 어느새 현관에 서있었다.

녀자가 이번에 마주한 것은 륜곽이 드러난 관 같은 형태였다. 아니 관이였다. 한사람이 누을 수 있을 만큼의 빈 공간이 아구리를 벌리고 반듯하게 현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죽음은 인간이 치러내는 마지막 축제였으므로 관은 조용히 송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은 주인공의 신분을 막론하고 그 무거운 입을 한번 열었다 닫으면 그만이였다.

녀자는 천천히 관에 발을 들여놓고는 살며시 누워보았다. 아늑했다. 이 공간은 텅 빈 듯한 자신의 집보다 더 안온하게 녀자를 감싸고 있었다. 녀자는 자신의 집 하얀 천정과 똑같은 천정을 바라보며 구름에 누워 하늘을 날고 있었다. 녀자는 남자가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죽음이란 그다지 근심스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잘 아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죽음은 빛에 쪼들려 살던 삶을 삼켜버리는 컴컴한 무대라면 삶은 무거운 짐이거나 혹은 아름다운 려행일 것이다. 녀자는 송장이 된듯 관속에 누워 눈을 감아보았다. 녀자는 이 색다른 시도를 좀더 누리고 싶어졌다.

순간 책상 우로 한장의 종이가 흘러내렸다. 종이는 한장의 진단서였다. 진단서 내용은 간암말기였다. 벽에 걸린 시계를 들여다보니 아래집 사람이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녀자는 선택해야 했다. 정중히 문을 닫으며 이 집을 떠날 것인가 아니면 가려던 공원으로 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멀리서 한숨소리가 나는 인기척소리를 느끼며 집에서 마주할 것인지 녀자는 망설이였다. 녀자는 어느 선택이든 가능하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선택들이 존재한다는 만족감에 사로잡혀 녀자는 지금이 무척 두근거리고 설레이였다. 어느 선택도 근사했고 어느 쪽이든 신선한 결과로 이어질 것 같았다. 기대감은 때론 망상을 야기했다. 어쩌면 아래집 사람은 멋진 양복을 입고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간혹 남자가 피기 없는 얼굴로 앞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녀자는 남자를 향해 상냥하게 웃어줄 것이다.       /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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