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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한송이 들꽃으로 피여나리라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2-07 12:34:39 ] 클릭: [ ]

약 받으러 병원으로 갔다 돌아오던중 무심결에 돌틈 사이를 비집고 꽃이 핀 한송이의 들꽃에 발목을 잡혔다. 꽃은 너무 예뻤다.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그 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가느다란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노오란 꽃을 피워낸 꽃 앞에서 어쩐지 마음이 뭉클했다. 구석진 쪽에 홀로 피여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들꽃이지만 나름대로 자신만의 남다른 생명력으로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가. 나는 오후의 해빛에 유난히 찬란한 빛을 뿌리는 노오란 꽃을 보고 또 보았다. 이름도 없는 보잘 것 없는 한송이 들꽃 앞에서 경이로운 감정과 함께 새삼 생명의 완강함과 신비함에 마음끝자락까지 경건해진다.

드디여 여섯차례의 고통스럽고 힘든 항암치료를 끝마쳤다. 치료가 끝나 두달이 지날 무렵부터 ‘민둥산’으로 되였던 내 머리에서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부턴가 머리통을 만지니 까칠까칠한 기운이 손끝에서 감지되였다. 아, 그 순간의 놀라움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내 작은 가슴은 선 보러 가는 숫처녀의 마음처럼 세차게 높뛰였다. 잔뜩 설레고 흥분된 그 심정이야말로 어찌 한입으로 표현할 수 있으랴? 항암주사의 독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내 몸 속의 세포들이 드디여 생명을 찾고 숨을 쉬고 약동하기 시작했다. 솜털 같은 머리카락들이 세상을 향해 빠금히 고개를 내밀며 나를 향해 방긋 웃었다. 물론 새로 나온 머리카락들은 절반이 흰머리였지만 그래도 너무 행복했다. 나는 머리를 만지고 또 만졌다. 이름할 수 없는 감동,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울림이였다. 살면서 이보다 더 큰 울림이 있었던가? 내 머리털은 마치 새봄을 맞아 뾰족뽀족 돋아나는 잔디처럼 너무 부드러웠다. 그 때부터 나의 매일매일은 생명의 신비가 몸안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눈물겹게 지켜보는 행복한 나날들이였다.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내내 나의 머리통은 솜털조차 찾아볼 수 없는 하얀 속살인 채로 마치 참기름을 쪽 발라놓은 것처럼 빤질거렸다. 그래서 한껏 멋을 내야 하는 봄, 여름, 가을 내내 모자를 쓰고 다녔고 어느덧 가을의 끝자락까지 왔다. 지금도 모자를 벗지 못하고 있지만 빤질거리던 속살은 이제 더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너무도 놀랍고 신기하여 하루에도 몇번씩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머리카락이 얼마나 자랐는가 확인하면서 모멘트에 올려 자랑하고 싶은 심정을 까까스로 참는다.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면 명주실 같기도 하고 비단술 같기도 한 머리카락은 내 마음에 새로운 생명과 그 어떤 희망을 가득 불어넣어주었다. 보들보들한 그 감촉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쿡 솟는다. 뭉텅뭉텅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빠지던 비참한 그 때가 떠올랐을가? 아니면 ‘삭발’하던 가슴 저린 추억이 떠올랐을가? 모진 아픔을 견뎌내고 다시 자라는 머리카락 앞에서 지난 생활의 편린들이 하나하나 눈앞에 떠오른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나를 보면서 눈굽이 촉촉히 젖어들던 남편의 안타까운 모습, 한쪽 켠에서 말없이 눈물을 훔치던 언니의 초조한 모습, 차거운 수술대에 오를 때 공포감이 몰려와 두려움에 떨던 나, 수술 후 사흘을 꼼짝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아픔과 사투를 벌이던 슬픈 현실, 첫 항암주사를 맞고 온몸이 산산쪼각이 나는 것 같은 말 못할 괴로움에 모대기던 내 생활의 편린들이 하나하나의 퍼즐이 되여 완전한 그림으로 맞춰지면서 눈앞에 슬픈 정경을 펼쳐놓는다.

인생에서 가장 아픈 시간들을 용케도 이겨내고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고 생기와 활기를 다시 찾은 나는 새삼 생명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에 그저 감탄이 나간다.

한차례 아픔과 시련과 고통을 겪고 나서 내 삶은 더 단단해졌고 생명에 대한 애착은 더 강해졌다. 눈에 안겨오는 모든 것이 그렇듯 아름답다. 풀이나 꽃이나 나무와 같은 생물은 자신의 생명으로 대지에 생기와 활력을 부여해주고 돌멩이나 흙이나 산이나 강물과 같은 대자연도 엄연히 생명이 있고 살아숨쉬고 있다. 돌멩이는 말없이 이끼를 포근히 품어주고 흙은 모든 식물이 우썩우썩 자라도록 비옥한 자양분을 공급해주며 강물은 모든 물고기를 키우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내 귀가를 살살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의 촉감도 그처럼 부드럽고 매일 보는 파아란 하늘도 그처럼 눈부시다. 길가에서 제멋대로 나뒹굴고 사람들의 발길에 이리저리 채이는 돌멩이 그리고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피여나 생명력을 과시하는 들꽃…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아름답다. 그러니 우주의 모든 것은 다 살아있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름다운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가?

자연도 이럴진대 인간의 삶이야말로 더 말해 무엇하랴. 다시 한번 들꽃을 본다. 들꽃은 활짝 웃으며 나에게 정다운 키스를 보낸다. 마음이 찡해오고 눈물이 쿡 솟구치면서 목이 멘다. 그동안 심리적 고통과 육체적 아픔을 인내하면서 끈질기게 버텨온 내 모습이 정말 한송이 들꽃과 흡사한 것 같다. 살아있는 내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애틋하여 눈물겹다. 지금 이 시각도 컴퓨터 앞에 마주앉아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정말 대견스럽다.

다시 찾은 생명 앞에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더없이 고마워하며 서서히 지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보면서 웃음 짓는 한송이 들꽃으로 피여나리라!

 

                                                                                  /류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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