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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우리들의 앞뒤방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12-20 11:17:54 ] 클릭: [ ]

그녀를 찾아야 된다는 결단을 내리기에는 장장 3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열몇살의 철부지 나이에 그녀에게 가져다준 불행이 얼마나 컸겠느냐는 오랜 세월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때는 왜 그랬을가? 형님을 위해서였던지 형수님을 위해서였던지 아니면 그녀를 위해서였던지 수십년이 지나간 지금도 나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요즘 직장에서 밀려나온 후 심신이 자유로워지고 시간상의 여유가 생겼다. 가정과 직장의 자질구레한 일상, 경제상 넉넉치 못함으로 선뜻이 결심을 내릴 수가 없었다. 마음 뿐이였다.

그녀를 찾아야 했다. 이제는 행동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 그녀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녀를 찾아야 가슴 속의 죄의식, 량심의 가책과 후회를 토로할 수 있다. 그녀를 찾지 못하면 영원히 불안 속에서 허덕일 것이다. 평생 회한 속에서 살 수는 없었다.

직장에서 나온 후 너무 한가하고 따분하여 술상과 마작,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

밤이면 짜증 나는 드라마 가운데의 광고에 욕을 퍼부으면서도 40회, 60회 질질 끌고 나가는 것이 무미건조하지만 계속 텔레비죤과 마주했다.

어느 날 나는 한국행의 행장을 갖추었다.

서울의 친척과 친구들이 며칠 동안 술상을 함께 해주었다. 그들은 또다시 자기들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낯선 거리, 생소한 얼굴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승용차들…

자그마한 안로인이 마분지 뭉테기를 질질 끌고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였다. 선진국의 수도에서 그 풍경이 그 어떤 실망인지 환멸인지 착잡했다. 그 안로인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거의 본능적으로 그 안로인을 따라 움직이였다.

고독한 안로인일가? 심심풀이로 하는 소일거리일가? 나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영등포역 정문 앞의 로타리에서 그 안로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 ※ ※ ※

흑룡강의 오상현, 내몽골의 훅호트, 료녕성의 신빈, 심양의 소가툰, 산동의 위해와 청도… 나는 그녀를 찾아다녔다. 허나 실망 뿐이였다. 혹시 그녀가 살아있다면 어쩌면 서울이 아닐가? 중국에서 수십년 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서울에서 만날 수가 있다는데…

교통사고와 암이란 무서운 병마와 멀리한다면 그녀는 응당 살아있어야 할 나이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족들은 벌써 저마다의 일터로 가버리고 텅 빈 세집에는 적막 뿐이였다. 영등포역 정문 옆의 로타리, 내가 왜 이곳으로 나왔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길게 늘어진 승용차와 뻐스, 무표정한 얼굴들과 바쁜 걸음걸이…

그 자그마한 몸이였다. 또 마분지와 함께였다. 서서히 움직이였다. 무엇에 걸렸는지 활처럼 굽어진 몸과 마분지 뭉테기가 움직이지 않았다. 숱한 남녀로소가 그녀의 신변을 스쳐지나간다. 시간은 얼마나 흘렀는지…

볕에 타고 바람에 거칠어진 그녀의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가쁜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마분지 뭉테기를 번쩍 들어 옮겨놓았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별말씀…”

그녀가 그처럼 송구해하면서 연신 허리를 굽혔다. 가무잡잡한 얼굴과 너무 대조되는 것은 그녀의 하얀 이발이였다. 어쩌면 저 나이에 이발보양을 저렇게 잘했을가.

그녀는 허리 굽혀 답례하고는 인츰 몸을 돌렸다. 한 일보다 너무 도에 넘친 감격에 나는 무참했다. 누군가 장미를 남의 손에 안겨주면 자기의 손에 꽃의 향이 남는다던데. 이것도 남을 도와준 셈인가?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발걸음을 다그치면서도 그 하얀 이발이 너무 인상적이였다. 나의 기억 속에 이런 깨끗한 이발의 주인은 누구였던가… 순간 나는 발걸음을 뚝 멈추었다.

우리들의 앞뒤방이 시야에 안겨왔다.

※ ※ ※ ※ ※ ※ ※

머나먼 강건너에서 휘남현 평안천 마가툰이라는 동네로 우리 가정의 아홉식구가 세집을 잡았다. 그 때는 온 집식구가 한 이불로 긴긴밤을 보내야 했다. 앞방에는 산동사람, 뒤방에는 우리 가정이였다. 반듯이 누우면 모로 누울 수가 없었고 모로 누우면 다시는 자세를 바꿀 수가 없었다. 새벽까지 꼼짝 못하고 그 자세로 있어야 했다. 결국 제일 어린 내가 집안의 종친네 뒤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앞방에는 금방 결혼한 내외가 있었고 뒤방에는 내가 자리를 잡았다. 일년 사시장철 들에서 돌아치는 녀인들의 피부는 말이 아니였다. 살색이 검었고 거칠어 사나이들과 별로 다름이 없었다. 그녀만은 시내사람이여서인지 피부가 깨끗하고 희였다. 키는 작았으나 동그스름한 얼굴에 하얗고 가쯘한 이발, 촌에서는 보기 드문 미인이였다.

나는 그녀를 “아즈매” 라고 불렀고 그녀는 나를 “적은이”라 칭했다. 맨발로 뛰여다니다가 돌부리를 차고 넘어지면서 발톱이 떨어져나가고 피투성이가 되였다. 그 날 따라 집식구들은 누구도 없었고 그녀만이 집에 있었다. 피를 닦아주고 깨끗한 천으로 상처를 칭칭 감아줄 때 그녀의 따뜻한 손이 그리고 매끈한 손의 쓰다듬으로 나는 아픔을 잊었다. 어머니와 누나들의 손길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했다. 그만큼 잊을 수 없는 손맛이였다.

여름방학 때 고기잡이로 해가 지는 줄 모르고 헤매다가 날이 어둑스레해지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콩밭에 숨겨놓은 옷을 찾았다. 분명 옷을 숨겨놓은 곳인데 아무리 찾아도 푸른 콩잎만이 눈에 안겨왔다. 나는 벌거숭이 하신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무리 올리뛰고 내리뛰여도 런닝그와 반바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울면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이슬이 내리면서 추위에 벌벌 떨면서 콩밭에 주저앉아있었다. 어둑어둑해지자 동네 근처로 다가왔다. 이제 물도랑만 건느면 동네로 들어가는 길이였다.

“싱겁쟁이 아이 난 싫어.”

도랑가에서 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다시 콩밭에 엎드렸다. 그녀의 목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무엇을 하는지…

살금살금 기여서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작은 가슴이 콩콩 뛰였다.

그녀와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였다.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지만 상현달의 어렴풋한 빛 속에 그녀의 하얀 몸뚱이가 보였다. 숨이 쿡― 넘어가는 듯했다. 지척에 나타난 그녀의 알몸은 선녀처럼 보였다. 그처럼 황홀하고 신비하여 나의 어린 가슴을 활랑이게 했다. 그녀는 이 세상이 아닌 전설 속의 선녀처럼 보였다. 그렇게 우러러보였고 영원한 혼자만의 비밀로 가슴이 뛰였다.

※ ※ ※ ※ ※ ※ ※

두 누나가 선후로 사망했다. 둘째누나는 페결핵으로 앓다가 25세의 꽃나이에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셋째누나는 리상은 컸지만 실현할 수가 없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어머니의 눈물은 샘물처럼 끝이 없었다. 어머니의 슬픔과 고통이 어떠했을가…

밖에서는 비가 쏟아졌다. 그 때 나는 고금중외의 명작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설음을 알 것 같았다. 시뿌연 하늘을 보면서 비감해지고 슬퍼지는 순간이였다.

바람은 비를 얹고/ 저 먼곳에서/ 달려온다/ 끝도 없이/ 흘러내리는 비물은/ 누나들의 눈물인가/ 어머니의 눈물인지/ 아니면 온 세상의/ 불행을 안아주는/ 바다의 눈물인가/ 비가 그치고/ 날이 개이면/ 저 하늘의/ 누나들은/ 보라색의 꿈을/ 나에게 안겨나 줄가//

순간 누나들과 함께 있는듯 착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어린 나이에 두 누나의 죽음을 보면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고 그 세상이 미웠다. 누나들이 불쌍했고 어머니의 슬픔과 비통에 가슴이 아팠다. 인기척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적은이, 정말 쎄다야! 금방 읊은 시가 누구의 시인지 정말 멋지다야.”

나는 얼굴을 붉혔다. 허나 마음은 무등 기뻤다.

“아즈매, 아무렇게나 지어본 건데…”

“그래, 적은이 문학가네. 우리 적은이 어디 좀 안아보자.”

순간 그녀의 뭉클한 가슴이 따뜻한 온기와 함께 전률을 주었다.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감격스러웠고 가슴이 뿌듯했다.

※ ※ ※ ※ ※ ※ ※

그녀의 남편은 언제부터인지 ‘민공판’으로 다녔다. 결혼한 남자들은 ‘민공판’으로 다니는 사람이 적었지만 그 남자는 끊임없이 다녔다. 생산대의 일보다 수입이 많단다. 하루에 몇십전씩 보조비를 탈 수가 있단다. 그 때는 ‘민공판’도 많았다. 저수지땜이요, 과수원이요… 그렇게 끝이 없었다.

형님이 이 핑게 저 핑게로 우리들의 뒤방으로 찾아올 때가 있었다. 분명 집에서도 나에게 할 수 있는 말들이였고 사소한 일들이였다. 찾아와서는 서성거리며 떠나지 않았다. 형님은 사나이였다. 그 때 산동사람에게서 3년 동안 무술을 배웠다고 했다. 마을에서 모두들 형님을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법은 멀구 주먹은 가까운 거야!”

형님은 그랬다. 그 때는 지식청년들이 동네에서 말썽이 많았다. 닭을 훔치고 움의 김치를 후무려가고 과수나무의 과일을 뜯어가고… 분명 그들이 한 짓인줄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의 흐느낌소리에 아침에 눈을 떴다.

“아즈매, 왜 그러는데?”

“닭이 많이 없어졌어. 내가 어떻게 키운 닭인데…”

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를 손바닥에 놓고 놀았는데 벌써 잡아먹을 때가 되였는지… 나는 벌떡 일어나 집으로 뛰여갔다. 분명 지식청년들이 한 짓이였다. 형님은 삽자루를 들고 집체호로 달려갔다.

“뒈질놈들, 다 기여나오라.”

순간 지식청년들이 우르르 달려나왔다. 남자들은 식칼이며 도끼 등을 들고 녀자들은 노기등등하여 눈을 부라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형님의 삽자루가 휙휙 날더니 서너명이 너부러졌다. 20여명과 상대한 형님을 보면서 나는 벌벌 떨었다. 그 시대는 지식청년은 정부의 ‘중점보호대상’이였다. 광활한 천지에 많은 일을 하러 왔다고,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으러 왔다고 공사에서나 대대에서도 어쩌지 못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러다가는 살인이라도 생길 것 같았다. 형님이 옥살이를 할 것만 같았다.

“형, 제발 그만해. 큰일이 나겠어. 병신 되면 어쩔래?”

나는 형님의 팔을 꽉 잡았다. 그제야 형님은 진정이 되였다.

“자식들, 죽고 싶으면 어디 앞에 나서거라!”

집체호의 ‘호장’이 덜썩 무릎을 꿇었다.

“형님, 저희들이 잘못했어요.”

결국 그들이 ‘아즈매’에게 닭값을 배상하고야 말았다. 형님은 그 때부터 마을부근에 널리 알려졌다. 그 날 저녁 그녀는 남은 닭 한마리를 잡아 형님을 초대했다. 언제부터인지 소년의 교활함으로 나는 형님과 그녀의 눈길이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녀와 형님이 가까와지는 것이 싫었다. 왜 싫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불안해졌고 두 사람의 사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때 형님은 이미 결혼한 몸이였다.

※ ※ ※ ※ ※ ※ ※

내가 다시 영등포역 정문과 뒤문으로 련 며칠 돌아다녔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세월의 흔적으로 무자비하게 변한 그녀의 모습이였지만 단 그 이발만은 그대로였다. 분명 그녀일 것이다. 오래동안 잊을 수가 없었고 찾아다녔던 그녀였다. 회한 속에서 가슴 앓던 수십년이였다.

나는 그녀라고 생각했다. 허나 아닐 수도 있었다. 착각일 수도 있었다. 서울에서의 3개월, 그 작은 몸뚱이와 마분지 뭉테기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 잠적해버린 것일가? 그럴 수도 있었다. 그녀가 나를 알아보았을가?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 때는 소년이였던 나― 지금은 직장에서 밀려난 대머리가 되여버린 ‘적은이’인데 알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알아보아도 그녀는 ‘원쑤’인 나를 상대해줄 것인지. 내가 본의가 아니게 그녀에게 그런 불행을 가져다준 것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몇십년을 지내왔는지.

※ ※ ※ ※ ※ ※ ※

우리 집은 나의 상장으로 한쪽 벽을 장식했다. ‘3호학생’, ‘5호전사’ 등으로 울긋불긋 종이장들로 가관이였다.

그녀는 나를 보면 반겼다. 잔치 때 대반으로 앉으면 꼭 무엇인가 가져다주었다. 곶감, 대추, 순대, 찰떡들을… 나는 그녀와의 만남이 좋았다. 그녀와의 대화가 즐거웠다. 그녀의 이쁜 이발을 보는 것이 제일 즐거웠다.

그녀는 ‘조개기름’을 손에 바를 때면 꼭 나의 손에도 발라주었다. 후에는 ‘향지(香脂)’를 발라주었다. 고기잡이할 때 가시에 긁히여 볼모양이 없는 나의 손을 만져주었다. 그런 날이면 하루종일 그 냄새가 없어질가봐 손을 씻지 않았다.

다른 애들은 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나는 빈손으로 돌아올 때가 없었다. 해가 지기전에 깊은 곳에다 굴을 판다. 이튿날 날이 밝으면 큰 도랑의 입구를 풀과 흙으로 막아버렸다. 굴 속에 손을 넣으면 그 속의 메기는 잡히고 만다. 붕어와 메기를 버드나무가지에 주렁주렁 꿰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군 했다. 해가 뜨면 생산대의 ‘보초병’들이 나온다. 그들에게 잡히면 곤욕을 치른다.

“이 놈들아, 밥을 먹을라나 죽을 먹을라나!”

물론 한시간 정도의 물을 막는다고 그 해의 농사가 페농일 수는 없지만 한창 벼꽃이 피는 계절에 시간이 길어지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내가 매일 고기를 잡아온다고 성화였다. 고기밸 따기 싫다고 손질하기 싫다고 비린내가 싫어 진저리가 난다고…

그러면 나는 물도랑에서 깨끗이 손질하여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허기진 세월, 고기 한점 구경하기 어렵던 그 세월에 물고기는 얼마나 좋은 ‘영양제’였는데.

※ ※ ※ ※ ※ ※ ※

그녀의 남편이 ‘민공판’으로 몇년 나가있다가 결국 채석장에서 사고를 쳤다. 망짝 같은 돌덩이가 그 남자를 깔았다. 두 다리를 크게 다쳤다. 그 때가 바로 여름방학 때였다. 그녀는 낮에는 생산대의 일을 하고 밤에는 남편을 보살폈다. 그녀가 없는 낮이면 나는 꼼짝하지 않고 그녀 대신 남자의 대소변시중을 했다.

“셋째야, 너 그 집에서 몇년 잤는데 그거 다 신세다. 그 신세를 갚는다고 생각해라.”

어머니가 그랬다. 그 해 여름은 고기잡이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비가 오는 날에 생산대의 일이 없어서 그녀가 집에 있을 때면 비를 쫄딱 맞으면서 고기잡이를 했다.

“우리 적은이 신세 언제 다 갚나.”

그녀는 눈물이 글썽하여 나를 내려다본다. 코가 찡해났다. 그녀가 불쌍했다. 고아인 그녀는 통화철도에서 렬차원으로 있다가 쌀밥을 먹을 수 있고 살기 좋다는 우리 동네로 시집왔다. 그녀는 혈육이라곤 없었다.

“아즈매, 울지 마!”

순간 그녀는 나를 와락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그녀의 설음과 고통을 나는 다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심신의 피곤만은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었지만…

나는 어머니의 아픔을 생각하면서, 누나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그녀를 동정하며 함께 울고 또 울었다.

※ ※ ※ ※ ※ ※ ※

어느 해 겨울, 탈곡장에서 숨박곡질하면서 나는 어둠 속에서 형님과 그녀가 꼭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슴이 무섭게 쾅쾅 뛰였다.

그 날 저녁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후부터 나는 그녀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형님과 그녀가 친해진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그녀에게 행복인지 불행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순간 형수님이 떠올랐다. 무던한 형수였다. 말수가 적고 그저 일 뿐이였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길고 얼굴이 길고…

어린 가슴에 불안으로 밤이면 잠을 설쳤다. 한편 거친 봄바람에도 여름의 땡볕에도 한겨울의 설한풍에도 변함없이 피부가 깨끗한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녀자였다. 그 가쯘하고 깨끗한 이발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고 어른들이 입을 모았다. 또 그녀의 남편이 떠올랐다. 거적눈에 언제나 고추가루를 이발에 끼우고 다니는 그 남자를 나는 존경하지 않았다. 그 남자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남자의 성기가 소년의 남근과 비슷하여 깜짝 놀랐다.

거의 반달 동안 고통 속에서 모대기다가 결국 나는 그 일을 어머니에게 알려주고야 말았다. 며칠이 지난 후 나는 그녀의 머리가 마구 뜯어놓은 풀밭 모양으로 된 것을 발견했다.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일이 터졌다. 어머니와 큰누나가 한 짓이였다. 그 날부터 나는 제 집으로 돌아왔다. 몇년 동안 자던 우리들의 앞뒤방을 떠났다. 정든 뒤방을 떠나야 했다. 다정한 아즈매와 멀리해야 했다.

현성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다가 방학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반년 후였다. 그녀는 남편과 리혼하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내가 그녀를 해치고 그녀를 망쳐버렸다고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하면서 가슴을 마구 쳤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세상의 많은 일들을 겪은 지금도 내가 왜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죄의식과 회한만 하루하루 더해갔다.

※ ※ ※ ※ ※ ※ ※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 만남을 피한 것인지 무서운 병마에 걸린 것인지 점점 불안했다. 이제 다시 출국한다고 해도 그녀와의 만남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귀국전 열흘을 기한으로 나는 그녀를 찾기로 했다. 꼭 찾아야 했다. 영등포역의 근처에 나타났다면 분명 그녀의 거소가 멀지 않을 것이였다. 나는 단층집들을 누비였다. 그렇다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릴 수는 없었다.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순간 ‘부동산’이라는 간판이 시야에 안겨왔다. 나는 이마를 탁 치면서 달려갔다. 결국 그녀의 집을 찾았다. 찾고야 말았다. 허나 그녀의 집문은 잠겨있었다. 일주일 동안 그녀는 집에 오지 않았다.

“후― 지성이면 감천이란데.”

그녀가 피하면 어쩔 수가 없었다. 맥없이 세집의 올리막길을 톺아오를 때 어린이 놀이터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자그마한 덩치였다. 심장이 세차게 뛰였다. 그녀였다. 아즈매였다. 마분지도 없었고 옷도 깨끗했다. 머리도 반지르르하게 빗어넘겼다.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즈매,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아즈매는 나를 피한 거지. 더러운 놈이구 죽일 놈이라고…”

이처럼 세상은 참 넓고 좁은 것일가.

나는 형님을 해치려고 그런 것이 아니였다. 그녀를 해치려는 생각은 꼬물 만큼도 없었다. 그녀에게 그런 아픔을 가져다줄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그녀 앞에 고개를 숙이였다. 그 어떤 말로서 수십년간의 가슴 깊이의 죄의식을 표달할 수가 없었다.

“적은이, 나를 찾는 줄 알았어. 안 만나려구 했는데… 매일 찾아다니는 적은이가 측은해서…”

나는 그녀의 수십년을 묻지 않았다. 그녀도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사이가 멀어졌고 서먹서먹해졌다. 그 어떤 장벽이 우리들의 중간에 있었다.

“형님은 작년에 돌아갔어. 당뇨로…”

형님과 그녀는 진정 사랑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귀국 전날 나는 앞에서 하지 못했던 가슴 속의 모든 것을 종이에 적어 그녀 집의 문틈에 끼워놓았다. 그 속에는 한화 백만원, 나의 집주소와 전화번호 등이 있었다.

귀국한 후 어느 날인가 그녀가 보내온 소포를 받았다. 그 속에는 정교한 피리 하나와 어린애의 사진 한장이 들어있었다. 피리는 소년시절 내가 좋아하던 그런 피리였다. 허나 그 어린이의 사진은 누구였던지… 얼굴 모습은 익숙한 듯했으나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꿈이였다.

그녀에 대하여 나는 모르는 것이 아직도 너무너무 많았다.

 

                                                                       /김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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