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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모곡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9-20 10:23:22 ] 클릭: [ ]

어머님,

어머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신지도 벌써 1년이 되여옵니다. 그 날은 눈도 참 많이 내리고 있었지요. 오늘도 그 날처럼 눈이 내립니다. 바람도 세차게 불어칩니다. 눈보라도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나는 버릇처럼 어머님이 마지막으로 가시던 언덕길을 걷습니다.

(땅)

저 앞에는 어머님의 땅이 있습니다. 아니! 어머님을 닮은 땅이 있습니다. 회오리가 채찍을 갈겨 살가죽이 갈기갈기 찢겨진 헐벗은 가슴, 가슴은 온통 멍든 자국입니다. 겨울발길에 채워져 딱지가 더덕더덕 앉아 짓물러진 옆구리, 옆구리는 온통 욕창구뎅이입니다. 저 멍든 자국은 무엇이며 저 욕창구뎅이는 무엇입니까?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못하고 가려워도 긁지를 못하고 해동의 차거움에 묶이운 손, 일어서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하고 지옥의 감발에 묶이운 발, 눈보라가 휘날려옵니다.

흉부과 의사의 눈을 빌려 엑스레이 같은 저 차거운 운무 속을 찬히 들여다보면 쇠잔한 어머님의 하아얀 등뼈, 아, 눈시울이 시려옵니다.

(집)

새벽, 아버지의 한숨소리와 막내동생의 투정과 땀냄새를 한광주리 잔뜩 이고 장거리 한구석에 가서 쫑그리고 앉아 간난을 벌려놓으셨습니다. 끓어번지는 태양이 어머님의 정수리를 지져대는 정오 쯤이면 지난밤 셋째(필자는 둘째임)가 잡은 모래무치는 새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눈굽이 곪습니다. 약삭바른 쉬파리떼 윙윙 모여들어 어머님의 살점이 될 돈푼 오십전, 꽁다리연필, 정통편들을 죄다 삼켜버립니다. 해 저문 노을바다 속에 물고기 몸뚱이로 썩고 있는 어머님의 텅 빈 고기 배, 오늘 가면 물고기 배때기 먼저 어머님의 가슴이 다 짓물러집니다. 그런 어머님이셨지만 철부지 우리들은 새끼돼지들이 어미 젖을 찾듯 무작정 장 보고 간신히 돌아오신 어머님의 몸에 매달려 호주머니만 들추어댔습니다.

한배에 새끼 열마리씩 낳는 ‘굴암퇘지’, 가로등 같은 젖꼭지들이 량켠에 불빛을 환히 켜던 날이면 큰애의 고중등록금이며 넷째놈의 페결핵 약이며 막내놈의 운동화들이 불빛처럼 쏟아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가로등은 밤처럼 하나 둘 꺼져갔습니다. 어머님은 돼지의 배란이 없어져 생육기능을 잃은 줄도 모르시고 한밤 내내 끌신을 끌고 우리에 나가 훌쭉한 돼지배때기만 바라보셨습니다. 그런 어머님이셨지만 우리들은 남들이 신는 운동화를 사내라고 막무가내로 졸라댔습니다. 그 때 어머님은 무엇이나 다할 수 있는 줄로 알아버린 저희들이였습니다.

처녀였을 어머님의 가리마를 타고 올라앉은 배부른 동이에서 샘물이 찰랑찰랑이였습니다. 내 아버지의 안해로 되여서는 옹기종기 올감자들 호강시키고 배추 떡호박이 풍선같이 부풀어서 산새들 콩콩콩 널뛰기를 했습니다. 다섯 아들의 어머니여서는 돌종개가 하늘 날고 미꾸라지가 구름 안고 징글거렸습니다. 때론 배가 되고 때론 차가 되고 때론 비행기가 된 어머님의 발바닥 굳은살은 백초구 언덕길만이 압니다.

(갈대)

어머님,

저 갈대밭은 왜 흐느낍니까?

언제 한번 허리를 꿋꿋이 펴지도 못하고 질곡의 굴레에 발 묶여 골수마저 모조리 진창에 이식해준 가녀린 갈대, 바람에 할퀴고 잡풀에 휘감겨 마른 뼈마디로 겨우내 지탱하여 오매불망 그 누구의 기다림만 빈 가슴에 가득 채워넣고 밤이나 낮이나 소리쳐부르다 찬바람에 허리 꺾인 갈대, 누워서도 얇은 손 헤적이다 부풀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내내 자식만을 부르던 갈대, 그대는 상기도 누굴 위해 피리를 부시는 겁니까?

(침대)

어머님,

죽음을 베고 누운 생령들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망을 덮고 누운 생령들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누구도 모릅니다. 거미줄 같은 시간 한오리를 힘없는 손에 헐렁하니 쥐고는 죽을 맥도 없는 거미 껍데기 한무더기, 빈 우물 같이 말라버린 동공에 파리새끼 앉아 똥 싸도 말릴 수 없는 마른 가랑잎 한지게, 아픔은 너무 일찍 다 아파했고 울음 또한 너무 길게 울어버린 어머님, 날숨 한줌에 생을 통채로 맡겨버린, 미라 같은 가는 입 쯤새로 새여나오는 최후의 말씀은 나는 차마 들을 수 없었습니다. 꽃잎이 내 살즙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눈길을 보면서도 그저 바라만 볼 뿐 어찌할 수 없는 자식이 되여버린 나는 뭘 어찌해야 합니까?

아, 어머님!

이제 아픔과 눈물은 나의 몫입니다. 세상이 굴러떨어졌는데 눈물 한방울 떨구지 못하는 자식은 당신 먼저 죽은 몸이옵니다.

(하늘)

어머님,

지금 쯤은 어느 별이 어머님의 별이십니까?

나는 매일 아침 일찍 화장터 굴뚝 근처 가로등 밑에서 아침운동을 합니다. 나는 머리를 젖히면서 하늘을 봅니다. 나의 머리 우에는 아직 가로등이 환히 켜져있습니다. 나는 가로등을 헤여봅니다. 하나, 둘, 셋!

문득 가로등이 꺼집니다. 그래도 나는 계속 헤여봅니다. 하나, 그런데 그것은 달이였습니다. 나는 또 헤여봅니다. 하나, 둘! 그것은 별이였습니다.

아니! 그것은 어머님의 슬픈 눈동자였습니다.

                                                              /김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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