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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신발을 넣어줘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7-19 11:04:33 ] 클릭: [ ]

진희의 마음속에서는 안도감과 불안함이 수시로 줄다리기를 했다. 가끔 아래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눈을 감은 채 몇초씩 가만히 숨을 참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라도 인호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으로 위세를 표출하고 싶었다. 인호는 진희의 삐딱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헤벌쭉 웃기만 했다. 밤늦게 들어와서도 꼭 진희의 방문에 대고 잘 자라는 말을 던진 후 선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진희는 인호가 생각보다 붙임성이 좋고 성실한 아이라는 생각에 신경질적으로 감시의 끈을 풀 때가 있었다.

선희가 임신했다고 말했을 땐 등줄기로 차거운 것이 지나가면서 현기증이 일었다. 스물 한 살 된 딸이 임신했다고 하면 어머니나 아버지는 뭐라고 할가… 진희는 일단 그 아이부터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호는 선희네와 얘기가 잘 끝나면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손주가 생길 것 같다고 말할 예정이였다. 엄마의 반응과 표정을 떠올리려 했지만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결혼하라고 할지, 아이부터 낳으라고 할지, 헤여지라고 할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엄마 말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어떻게 생겼든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니, 얘가 인호. 우리 언니, 이름은 진희야.”

진희는 뒤늦게 카페에 들어선 인호를 올려다보고는 머리만 까딱했다. 약속시간보다는 이르지만 인호가 한발 늦은 셈이였다. 진희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에 들지 않아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빼버렸다. 인호는 진희가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나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던 탓인지, 아니면 몸에 배인 습관 탓인지 꾸벅 하고 구십도 경례를 했다.

“앉아. 내가 선희보다 아홉살 많으니 말 놓을게.”

“예!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인호가 멋쩍게 웃으면서 물었다.

호칭을 빨리 정하는 게 대화에 유리할 것이라 판단한 것 같은 수가 눈에 보여, 진희는 이마살을 찌프렸지만 이내 “응.” 했다. 인호 앞에서 눈에 힘을 주는 것으로 ‘내 동생 잘못 건드렸다간 어디 두고 보자’는 식의 견결함을 드러냈다. 부모님이 출국하면서 함께 살던 할머니가 몇년 전에 돌아가신 후로는 선희랑 둘만 살았으니 그동안 유일한 보호자로 자처해온 탓이다.

‘나에게도 이런 누나가 있었다면 좀더 사람같이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인호는 부러운 눈길로 선희를 흘낏 쳐다보았다.

“언니, 그러니까 우리…”

“누나! 죄송해요. 선희랑 저 사고 쳤습니다.”

인호는 박력 있게 나와야 된다는 생각에 선희의 말을 잘라버렸다. 진희는 “알아.” 하고 짧게 대답했다. 순간 인호는 선희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였을가 궁금했다. 고중을 중퇴하고 방황하던 인호에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선희라면 이번엔 무슨 말을 하려 했을가.

선희나 진희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결혼으로 결론지어진다면… 인호는 결혼이 낯설었다. 부모에게서 사이 좋은 부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매일 술에 취해 자식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인호에게 실망감만 안겨주었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아이에게 책임감을 느끼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마치 자신이 살아갈 리유가 아이 때문인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처럼 정체 모를 집착의 끈이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고는 있니?”

진희가 뭔가 말할 듯 말 듯 머뭇거리는 인호를 향해 차겁게 물었다.

“언니, 좀 부드럽게 말해. 인호가 난 줄 알아?”

“책임지겠습니다.”

“어떻게? 결혼? 아이는 낳을 거니? 너희 둘 아이 키울 준비는 돼있고? 동창이라지만 정식으로 사귄 것도 아니라며?”

아이를 어떻게, 누가 키울지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언뜻 선희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회피했다. 자신이 형편 없는 사람인 것 같아 부끄러웠다. 진희 앞에서 좀더 근사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남자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인호는 진희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묻는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결혼한다. 아이를 낳는다. 헤여진다. 류산한다. 인호는 진희가 원하는 대답을 몰라 선뜻 입을 열 수 없었다. 옆에서 간간이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선희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아라.”

인호는 흠칫 놀랐다. 누구도 그에게 한 적 없는 말이였다. 아버지가 차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 남았을 때 친척들은 ‘이 어린 것을 두고 어떻게…’ 하고 걱정하면서도 누구 하나 같이 살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인호와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남의 집 식구를 떠안아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는지 약속이나 한 듯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 때 인호는 열일곱살이였고 고중입시를 앞두고 있었다. 엄마는 남편이 죽었는데도 한국에서 돈만 보내왔다. 친척들은 가끔씩 들려서 랭장고에 반찬을 넣어주거나 집 청소를 해주는 것으로 책임감과 죄책감을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듯했다.

인호는 들어와서 살라는 진희의 말이 좋았다. 같이 살면서 이놈이 동생이랑 결혼해도 될지 지켜보겠다는 의도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언니! 들어와서 살라고? 내가 얘네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같이 살 거면 그렇게 해야지!”

“왜? 사귄 것도 아니라면서 시집은 가고 싶어? 일단 련애부터 해봐.”

선희와 진희가 눈싸움을 하며 자그맣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언니 성격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몰라서 그래? 날 자식처럼 굴면서… 얘한테까지 그러면 나 창피해서 못살아.”

“부모가 옆에 없으니 내가 네 보호자야. 아홉살이면 강산이 서너번은 변했을 나이 차이야. 어머니나 아버지에겐 내가 말할 테니 인호 너는 일단 우리 집에 들어오는 걸로 해. 언제 올 수 있어?”

진희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도 외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인호를 다그쳤다. 부모님이 이 소식을 안다면 당장 결혼부터 시키려 들겠지만 진희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동생이 아이 때문에 결혼에 매이는게 싫었고 제대로 된 인연을 맺어주는 것이 이십대를 바쳐 보호자 노릇을 해온 언니로서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선희가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고 무엇보다 “진희 너 때문에 한국에서 시름 놓고 일한다”고 하던 부모님의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언니! 내가 나갈 거야!”

진희가 도끼눈을 뜨고 목소리에 힘을 주는 선희를 노려보았다. 선희는 인호를 곁눈질하며 여전히 집을 나가겠다고 우겼다. 그러면서도 결혼이란 단어는 입 밖에 내지 않았는데 진희는 그것으로 언니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어 내심 흐뭇했다.

선희와 진희를 번갈아보던 인호는 아웅다웅하는 모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이상하게 울컥했다. 외동인 자신으로선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풍경이였다.

“선희야, 내가 들어갈게.”

인호의 말에 진희가 그럼 그렇지 하는 식으로 선희를 째려보았다.

“지금 하는 일은 계속할 거니?”

인호는 진희의 말뜻을 리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형의 식당에서 주방보조로 일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음식을 만드는 직업이 써비스업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좀더 근사한 직업을 구하기를 원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하고 있는 일이 즐겁기 때문에 인호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주방보조요? 재밌어요. 이제 손에도 익었고.”

진희가 갑자기 인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인호는 진희의 눈빛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져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폈다.

“… 됐어. 선희는 당분간 미용실 일을 그만두게 할 거야. 네가 이런저런 역할을 잘해줬으면 좋겠다.”

“그럼요.”

인호는 당연하다는 듯 선희에게 웃어보였다. 태여나지 말았을 걸 그랬다고 자책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듯한 설렘으로 묘한 자신감까지 생겼다. 부모가 없이도 가족을 만들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

엄마에게는 좀더 시간이 지나서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는 인호를 가슴 아프게 했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구체적인 사정에 대해서는 짐작만 했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 이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는 글렀으니 다정한 아들이라도 되고 싶었다. 고중 2학년 때, 담배 피우다가 퇴학당한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엄마가 했던 절망적인 말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선생님이 부모를 모셔오라고 했지만 인호는 친척중 그 누구에게도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만 다니는 곳이라는 느낌을 주는 학교가 지겨웠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을 만나거나 전화기를 통해 주눅이 든 엄마의 목소리가 건너올 때면 가끔 그 선택을 두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 사람을 만나는 날은 수요일이 적당했다. 가족 때문에 주말은 제외하고, 한주가 시작되거나 끝날 무렵이면 다른 약속을 미루기가 난감했다. 진희는 일주일에 한번 밖에 오지 않는 이 만남을 소중히 여겼다. 오로지 그 몇시간을 위해 새로운 옷을 준비하고 조용한 음식점을 예약하기를 반복했다.

집을 나서는데 파랑 바탕에 흰 줄이 간 아디다스운동화가 눈에 띄였다. 선희가 가끔 신고 다니던 것과 같은 신발이였다. 현관에 슬리퍼 외엔 아무 것도 두지 않는 진희는 요 며칠 인호의 신발을 발견할 때마다 집에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군 했다. 진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운동화를 신발장에 집어넣고 문을 나섰다.

오늘은 교외에 있는 한식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정갈하면서도 룸이 있는 가게에 대해 물었을 때 선배는 2년도 넘는 식당을 아직도 모르냐며 알려주었다. 진희가 련애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물증을 잡지 못해 소문을 퍼뜨리지 못하는 언니였다.

수요일이면 늘 블루나 민트색 셔츠를 입고 다니는 그 사람이 좋았다. 입고 다니는 정장은 세련돼 보여서 멋있었고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은 교양인의 표상인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타인을 배려하는 듯한 부드러운 말투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 뿌듯했다. 그러나 때로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투정 부리고 싶어져서 미안했다. 사랑한다고 고백한 순간 그 사람은 한마리의 백조가 되여 진희에게로 날아왔다. 그 사람을 내놓고 자랑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을 감추는 건 더 싫었다.

“그래서 선희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걜 집에 들어와 살라고 했지.”

“뭐야? 결혼부터 시키는 게 아니고?”

“고작 그런 사유로 결혼한다면 민정국이 폭발하지 않을가요?”

“그래도 한 짓이 있는데 동거로 해결이 되겠어? 부모님은 뭐래?”

“그 말은, 혹시 책임감? 책임질 일을 했다고 다들 결혼해요?”

진희가 눈살을 찌프리며 발끈하자 남자는 금세 말꼬리를 흐렸다.

“그래. 책임감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니…”

“그러게. 무슨 자격이 있어 그런 말을 할가? 바람이나 피는 주제에…”

“너 그 따위로 말을 할래? 오늘 좀 재미 없다?”

인호를 집에 들이고 나서 내내 찜찜했던 기분을 그 사람에게 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진희는 입을 실룩거리다 말았다. 한주에 한번 겨우 가지는 만남을 다툼으로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보다 2년 넘게 만나온 사람을 자신의 입으로 불륜남 취급을 했다는 것에 충격 받았다. 사랑을 의심해본 적 없는 진희는 불쑥 튀여나온 진심에 소스라쳤다. 그동안 교양 있는 척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척 랭소의 가면을 쓰고 산 것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아마 그 때부터가 아니였나 싶었다. 별 볼일 없는 애숭이라고 생각했던 인호가 음식 만드는 일이 재미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순간 마음속에 툭― 하고 널판자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 그 때 인호를 빤히 쳐다보면서 리유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그 전에 인호에게 집에 들어와 살라고 말해버렸기에 속물처럼 보이진 않을 것이라며 안도의 숨을 내쉬였던 것도 기억났다.

식사가 끝나고 먼저 방문을 나서는데 가지런히 놓인 신발 두쌍이 보였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진희는 오늘 따라 브라운 색상의 구두 옆에 붙어있는 자신의 신발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신상이라며 갓 보내온 구두인데도 인터넷에서 파는 몇십원 짜리처럼 보였다. 진희는 황망히 신발을 신고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얼마 후 그 사람이 계산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먼저 차 있는데 가 있기로 했다.

주차장 옆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의 실루엣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진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잠시 남자를 지켜보았다. 제발 인호가 아니길 바라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던지 남자가 누나라고 부르면서 다가왔고 선희에겐 비밀이라는 식으로 오른쪽 검지를 입에 갖다댔다.

그 사람이 뒤따라 나오다가 진희와 인호를 보았지만 말없이 운전석에 올랐다. 진희는 인호에게 머리를 끄덕여보이고는 애써 침착하며 차에 탔다. 인호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고, 맑게 웃는 인호 앞에서 진희는 별안간 수치심을 느꼈다. 스물 한살 주제에 콘돔도 없이 섹스를 했다고 경멸의 눈빛을 보내면서 도도한 척했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선희에 대한 책임감을 그런 방식으로 포장하려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현관에 들어서자 나갈 때 집어넣었던 인호의 신발이 다시 나와있었다. 이번에는 똑같이 생긴 선희의 신발까지 옆에 놓여있었다. 방에서 나오던 선희가 신발을 집어넣으려는 진희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언닌 왜 남의 신발을 자꾸 집어넣는데?”

“너 그거 몰라? 신발은 신발장에 넣어야 진정한 가족이 된다?”

“뭔 난데없는 소릴…”

부럽고 꼴 보기 싫어서 그런다는 말이 진희의 입안에서 맴돌았다.

 

                                                                            /조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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