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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비누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5-17 12:23:35 ] 클릭: [ ]

렬차가 움직이였다. 50대 초반의 녀인이 내가 앉아있는 침대차 맞은편에 가방을 털렁 놓으면서 한숨을 톺았다. 그러더니 커다란 트렁크를 렬차의 시렁에 얹으려고 안깐힘을 썼다. 나는 인츰 일어나서 트렁크를 시렁에 얹는 것을 거들어주었다.

녀인은 고맙다면서 목례로 인사했다. 그리고는 하마트면 차를 놓칠 번했다면서 가쁜숨을 몰아쉬였다. 시내에서 혼자 사는 아들 때문에 일년에 한두번씩 귀국하는데 그동안 쌓인 집안일이 너무 많아서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을 보내다 부랴부랴 외국으로 떠난다는 것이였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묻지도 않은 사정을 중얼중얼 털어놓는 녀인은 분명 돈벌이를 위해 외국으로 오가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게 했다.

렬차는 이미 역을 떠나 도시를 멀리하고 있었다. 급하게 차에 오른 녀인도 안정되였는지 가방에서 포도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꺼내 탁자에 꺼내놓으면서 한알을 집어 입에 넣으며 입가를 살짝 치켜올렸다. 나는 그 미소가 몸에 배인 자연스러운 비굴함이라고 인정했다. 사실 나는 그런 웃음을 조금 두려워하는 사람이였다. 녀인은 포도와 나를 번갈아보더니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구, 너무 짓뭉개져서 드리고 싶어도 못 드리겠네요. 아들이 먹지 않아서 며칠 랭장고에서 묵었던 거라 버리자니 아까와서 이렇게 갖고 왔습니다. 트렁크 올리는 것도 도와줬는데 이거 미안해서…”

“괜찮습니다. 편하게 드세요.”

나는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며 시선을 차창밖으로 돌렸다. 그녀가 진짜 편하게 포도씨까지 와작와작 씹는 소리가 내 귀청을 어지럽혔다. 얼마 후 포도씨를 씹는 소리가 멈춰지더니 녀인이 물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대련으로 갑니다.”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녀인의 입술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자기도 대련으로 가는데 래일 저녁에 비행기로 외국에 도착한다면서 나에게 자기처럼 대련을 거쳐 외국으로 가냐고 물었다. 나는 여름 한철만 대련에서 피서 삼아 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에이구, 부자인가 봐요. 도시마다 다 집이 있구. 에이구, 정말 부럽네요.”

나는 “에이구”를 달며 말하는 그녀가 좀 짜증스러웠다. 그래서인지 녀인의 표정에는 내가 허풍을 친다는 기색이 담겨져있는것 같았다. 같은 녀인의 립장에서 그녀는 내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모양이였다.

“남편이 돈을 잘 버는가 봐요. 아니면 아줌마가 돈을 버는 재주가 많은지…”

그녀는 은근슬쩍 경박하게 반말까지 던졌다. 나는 렬차안에서 맺은 잠간의 인연이라 참았다. 그러면서 등을 침대 안쪽으로 찰싹 붙이고 렬차가 빨리 달리기를 바라면서 대련 해변가에 위치한 별장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내 앞으로 그녀가 하얀 비닐봉지에 있는 뭔가를 꺼내며 말했다.

“이걸 받아요. 아까 도와준 것도 있고 아줌마에게는 별로 좋은 것이 아니겠지만. 내가 직접 만든 비누랍니다. 천연재료로 만들어서 피부에 좋습니다. 머리를 감아도 때가 쭉 빠져요. 써보시면 알 겁니다.”

나는 주춤하다가 받았다.

“뭐, 이렇게까지… 아, 예,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별로 귀해보이지 않는 수제비누였다. 나는 차에서 내릴 때 슬쩍 버릴 생각을 하면서 귀찮은 기색으로 그 비누를 가방틈새에 집어넣었다.

“에이구, 대련은 집값이 비싸겠죠? 나도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대련의 해변가에 집을 살지 누가 압니까? 아줌마의 집은 얼마를 주고 샀어요? 에이구, 부럽다. 정말 부럽다.”

망쳐버린 렬차려행을 돌이킬 수 없는 터라 나는 존대말 반말을 섞어서 서슴없이 지껄이는 그녀의 질문에 그냥 응답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만큼 대련의 부동산시세에 대해 설명했다. 대련의 집값이 자기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에이구, 요즘은 시골집도 도시에 있는 집들처럼 꾸며놓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엄마네 집도 그렇게 꾸미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엄마가 나에게 물려준 집인데 내 이름으로 만들자니 형제들이 동의한다는 싸인을 받아야 한대요. 에이구, 그런데 조카놈(큰오빠 대신 조카놈이 싸인하게 돼서), 그놈한테서만 싸인을 못 받았어요. 돈을 내라는 거지요. 그래서 달라는 대로 줬지 뭐얘요. 에이구, 지금도 진짜 그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쳐요.”

그녀는 별안간 입을 쩍 벌리고 긴 하품을 하더니 눈을 조금 붙여야겠다면서 머리를 베개에 얹었다.

기차가 간이역에 멈춰섰다. 나도 신발을 벗고 자리에 누웠다. 나는 이층침대천장을 쳐다보면서 명상에 잠겼다. 리혼한 후 홀로 된 삶이 따분해질 무렵에야 비로소 남편이 훌륭한 남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였다. 남편에게 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온갖 독한 수단을 다 써서 남편을 빈몸으로 집에서 쫓아냈다. 남편은 심성이 어질고 하나뿐인 아들 사랑도 극진했다. 그런 걸 리용해서 남편을 골탕 먹이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반면 나는 사실 좋은 안해가 아니였다.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결혼생활의 무력감을 핑게로 안해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 밤이면 애틋하게 다가오는 남편이 역겹기까지 했다. 짐승, 나에게는 남자들이란 짐승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극단적인 거부감에 사로잡혀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남편이 다른 녀자에게 눈을 돌리게끔 절대적인 기회를 제공해준 셈이였다.

남편은 이미 단란한 가정을 꾸려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거짓 축복은 내려놓고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갑자기 녀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녀는 렬차를 하마트면 놓칠 번한 일부터 시작해 밥을 잘 챙겨먹으라는 당부까지 구구하게 늘여놓으며 한참을 떠들어댔다. 마치 이 세상에 아들을 둔 사람은 자기 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먼 산언저리에 비낀 노을이 서서히 차창 밖으로 사라진다. 녀인은 아들과의 통화를 멈추면서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에이구, 왜 하필 또다시 외국 가서 고생하겠어요. 다 아들 때문이지. 벌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일년만 더 고생해서 아들에게 공장 하나를 차려줄 거얘요.”

아들한테 공장을 차려준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두눈이 휘둥그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집에 바퀴가 있습니까?”

생뚱같은 물음에 나는 종아리가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그렇잖아도 어디서 왔는지 요즘 바퀴를 몇번 본 적이 있었다. 시장에 가서 약을 사다 놓았는데도 또 보였다.

“없는데요. 그런 건 집이 어지럽거나 잘 거두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지요.”

“아니요. 옆집에서 생겨도 인차 건너와요. 사우나에서 옷에 묻어올 때도 있고요. 한집에서 생기면 온 아빠트에 퍼져요. 우리 엄마 집, 그 시골에 있는 엄마네 집 말이죠. 이번에 완전히 내걸 만든 그 집을 허물고 2층 집을 다시 지은 후 ‘바퀴약공장’을 세울려구요. 이번에 오니 시내에 바퀴가 우글우글하더군요. 지금 시장에서 파는 것은 다 가짜예요. 효과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 집의 바퀴도 없어지지 않는가봐.’

순간 나는 온몸이 근질거렸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집에 바퀴가 있지요?”

“아니, 우리 집에는 바퀴가 없습니다.”

나는 바퀴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 딱 짤라 대답했다. 그런데 그녀는 마치 바퀴전문가처럼 바퀴에 관한 것들을 장황하게 늘여놓으며 엄마가 물려준 집에 ‘바퀴약공장’을 세워야겠다고 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바퀴약을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은 적이 있다면서 몇번 만들어봤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외국에서 일했던 식당에서 손수 만든 약을 실험해본 결과 그 후 식당에서 바퀴벌레를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바퀴약공장’ 하나 세우면 돈을 많이 벌 것 같아요.”

그녀는 중얼중얼 바퀴약 생산부터 판매까지의 리윤관계를 계산하면서 ‘바퀴약경영박사’로 변신해갔다.

“내가 일하던 외국 식당의 사장이 바퀴약을 만드는 비법을 나한테서 알려고 월급까지 올리면서 얼마나 애를 썼다구요. 그게 어떤 비법인데 맘대로 알려줘요. 절대 알려줄 수 없지요. 그 식당의 주인이 지금도 비법을 알려고 전화를 해요. 이번에 외국에 가면 감주공장에서 일할려고 해요. 공장에서 감주 만드는 게 우리 집에서 만드는 것과는 다를 겁니다. 공장을 운영하는 것도 좀 배우고…”

그녀의 두서 없는 말을 뒤로 하고 나는 이제 그녀와 말을 섞지 않으려고 리안 모리아치의 소설 《허즈번드 시크릿》을 펼쳐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지적인 허영심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녀도 낡은 책 한권을 가방속에서 꺼내들었다. 그녀의 책뚜껑에는 《일본청주제조기술(日本淸酒製造技術)》이라는 글자가 씌여져있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퀴약과 일본 청주의 관계는 어떤 조화일가? 하나는 살생에 쓰는 물건이고 하나는 인간의 정신을 흥분시키는 물건이고. 모름지기 인간은 망상덩어리일 뿐이다.’

기차가 또 하나의 역을 지나갈 때 차창 밖이 어둑어둑해졌다. 그녀는 따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책을 탁자에 올려놓고 서슴없이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며 나에게 감주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얼버무렸다.

“감주요? 아니 아, 네.”

그 사이 그녀는 가방에 손을 집어넣더니 터전에서 직접 가꾼 오이와 고추 그리고 직접 만든 감주라면서 함께 먹자고 했다. 나도 준비해온 먹을거리를 꺼내놓았다. 나는 못이기는 척하면서 종이컵에 따라놓은 감주 한잔을 마셨다. 나는 사실 감주 애호가였다. 그녀의 감주맛은 제법이였다. 내가 어디서 샀냐고 물으니 그녀는 이런 감주맛을 낼 줄 아는 사람은 아마 자기 밖에 없을 거라고 허풍을 떨었다. 제법 괜찮은 감주맛 때문에 나는 그녀의 허풍치기에 응하는 척했다.

“에이구, 시장이나 상점에서 파는 대부분 감주는 누룩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백국을 넣어서 만든 거지요.”

이번엔 그녀는 ‘감주전문가’로 변신했다. 백국은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기에 균이 한종류 밖에 안 들어있어서 단맛만 난다느니 누룩으로 만들어야 제맛이 난다느니 했다. 이번에 외국에서 직접 밟아 만든 누룩 한덩이를 갖고 왔는데 이것이 그 누룩으로 만든 감주라고 했다. 이 감주는 아무리 마셔도 머리가 아프지 않고 효소가 많이 들어있어서 몸에 좋은 것은 두말이면 잔소리라며 떠들어댔다. 감주가 익은 다음 친구들을 청해 감주추렴을 했는데 이튿날 머리 아프다는 친구가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파는 감주는 이젠 못 먹겠다고 다들 야단이죠. 호호호…”

감주 두세잔을 마시자 그녀는 느닷없이 나에게 신세타령했다.

“에이구, 애비 노릇 에미 노릇 다하면서 여태 혼자 살았지요. 지지리 복이 없지요. 내가 외국에 간 사이 못된 놈이 다른 녀자랑 붙었어요. 나는 그저 돈을 버는 기계가 되여 어찌됐든 남들처럼 좋은 집을 사서 잘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처음에는 원통했지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잘됐어요. 나에게는 아들이 있으니 됐지 뭐얘요. 아닌가요? 사실 남자만 욕할 게 아니지요. 내 친구는 외국에서 바람이 났는데 귀국하니 남편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더래요. 에이구, 꼬박 십년이나 한눈 팔지 않고 녀편네를 기다리던 남자였지. 친구의 사정을 알아버린 남편이 5층 건물에서 뛰여내려 자살했지요. 외국바람이 불면서 많은 가족이 박살이 났지. 에이구, 에이구…”

그녀는 련달아 “에이구”를 반복했다.

“에이구, 모르겠어요. 나는 그저 돈이나 더 벌어서 엄마가 물려준 집을 허물고 2층 집을 지은 다음 아래층에는 ‘감주공장’을 차리고 웃층에는 ‘바퀴약공장’을 차릴려구요. 리혼하니 다른 건 모르겠구 자유로워서 좋아요. 기분이 내키는 대로 살 수 있으니깐요. 남자든 돈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죠. 에이구, 졸리니 이젠 좀 자야겠어요. 아줌마도 자요.”

‘한때는 내 남편이였던 그 남자도 지금 쯤은 후처와 함께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자잘한 행복을 누리며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겠지? 남편의 녀인이 길러준 내 아들 기림이는 대학시험을 잘 치렀겠지?’

렬차는 덜커덩거리며 새벽녘을 스쳐지나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대련의 별장에서 혼자 지낼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컴컴한 동굴 같은 고독감에 젖어들었다. 갑자기 코를 드렁드렁 골며 깊은 잠에 빠진 저 녀인의 행복지수가 나보다 현저히 높다는 생각이 들자 감주속에 푹 빠진 바퀴가 된 기분이였다. 나는 퀭한 눈으로 밝아오는 아침을 맞았다.

대련역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까무라친 듯이 자던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두 팔을 쭉 뻗으며 나에게 위챗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에이구, 아줌마 덕분에 대련까지 재미 있게 잘 왔어요. 에이구, 나는 또 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를 기다려야 하니 에이구.”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위챗주소를 알려줬다.

“나중에 ‘감주공장’을 차리면 련락할 테니 감주 마시러 와요.”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머리만 끄덕이였다. 렬차에서 내린 후 목적지가 완전히 다르기에 그녀는 동쪽 출구로 나는 서쪽 출구로 향했다.

이튿날 한참 청소를 하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감주를 즐겨 마시는 것 같으니 나중에 감주를 함께 즐기는 친구가 되자는 내용이였다. 그제야 나는 그녀의 이름이며 외국 어디서 일하는지를 하나도 묻지 않았고 나의 이름이며 신상도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했다. 우리는 서로 누구인지를 잘 모른다. 구태여 말하면 그냥 렬차에서 하루밤 실속 없는 말들을 주고받았던 사이라고나 할가.

청소를 마친 나는 가방에서 그녀가 선물한 비누를 집어들고 샤워실로 향했다. 수제비누의 은은한 향이 온몸을 감쌌다. 비누는 너무 좋았다. 감은 머리가 매끌매끌했다. “에이구, 에이구” 하면서 ‘바퀴약’이요 ‘감주공장’이요 하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순간 그녀 앞에서 제법 고상한 척했던 내가 어쩐지 부끄러워났다.

(이 무더운 날씨에 그녀는 뭘할가? 그런데 고생을 사서 하는 그녀가 왜 은근히 부러운 걸가?)

내 몸에서 흘러내린 거품이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불현듯 가슴 밑바닥에서 울컥 하고 뭔가 치밀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샤워기에서 뿜어나오는 물소리에 맞춰 소리내여 울었다. 내 인생도 저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는 거품과 몹시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슬피 울었다.

 

                                                                           /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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