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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또 하나의 생명과 리별하면서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5-03 11:28:49 ] 클릭: [ ]

오늘 하루도 역시 여느때와 다름 없는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속에서 나는 사색의 여운을 남겨주는 특별한 하루를 목격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계시는 간암이라는 불치의 병으로 앓고 계시던 한 아저씨가 죽음의 시공을 따라 이 세상이 아닌 저세상으로 떠나간 날이다.

또 하나의 생명이 떠나는 그 길에 나의 작은 손길 하나라도 보탬이 되였다는 것에 어느 정도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슬픈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간호학교를 졸업하면서 무한한 꿈과 희망을 안고 ‘백의천사’라는 값진 옷과 성스러운 이름을 지니고 간호를 시작한 지도 어언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일해오면서 의사나 간호원은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생명의 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스피스’를 경험하면서 나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조금씩 바뀌여졌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신성한 일이라면 인간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에 자신의 티 없는 사랑과 정성을 바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호스피스’사업은 진정 위대하고 값진 일이라고…

아저씨를 간호했었던 40일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인상 깊은 일들이 많고 많았다. 그중에서도 어느 날 저녁 아저씨와의 짧은 대화, 다정하고 행복하게 부인과 지내시던 아저씨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였다.

퇴근시간, 마지막 병동라운딩(순회)을 시작하면서 조용히 이 아저씨가 계시는 병실에 들어섰다. 난 그만 눈앞의 정경에 깜짝 놀랐다. 부인은 아저씨의 손을 꼭 잡은 채 침상에 머리를 맞대고 조용히 잠들었고 아저씨는 행복한 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뭔가를 감상하는 듯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너무도 기뻤다. 병환에 계시기 전에는 부인이 옆에 다가서기만 해도 터무니없이 화만 내고 소리를 지르셨다는 아저씨가 언제부터 이렇게 말없이 부인의 사랑과 마음을 받아들였는지… 난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두 분의 행복한 순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몇분 정도 지났을가… 내가 다시 병실에 들어갔을 때는 부인이 한참 아저씨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다가서서 아저씨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오늘 따라 나를 보시더니 전에 보지 못했던 해맑은 웃음을 지으셨다. 머리를 빡빡 깎으시고 웃으시니 천진한 어린 아이의 웃음을 상기시켰다. 아저씨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저씨, 오늘은 기분이 좋아보이십니다.”

“그래 좋지.”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이셨다. 옆에서 아저씨의 식사를 준비하던 부인이 말씀하기를 오늘 아침에 우리 간호원이 목욕도 깨끗이 시켜드리고 머리도 깎아드렸다는 것이였다.

‘아, 그러기에 이렇게 좋아하시는구나.’

나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저씨, 머리를 이렇게 깎으시니 정말 보기 좋습니다. 영화배우 같습니다. 젊었을 때 아저씨의 이런 멋진 모습에 우리 아주머니가 반했겠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정색해서 말씀하신다.

“그래, 총각때는 정말 멋있었지. 자네가 몰라서 그렇지. 따르는 녀자들이 얼마나 많았다고. 허허.”

으시대는 아저씨의 모습에 부인은 우습다고 호호 하신다. 그러면서 아주 침착하게 조심스레 아저씨에게 드릴 죽물을 입으로 후― 후― 불면서 식혔다. 정다운 부인의 모습이 돋보였다.

내가 웃으면서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아주머니가 예쁘세요?”

순간 아저씨는 웬 일인지 서글픈 표정에 슬픈 눈빛으로 부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한참 후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엄지손가락을 척― 내민다. 이윽고 부인의 눈가에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그토록 하고 싶은 말과 행동, 그리고 아저씨의 내심에 숨겨놓았던 그 크나큰 감정들을 단 한가지의 행동으로 표현했음을 부인은 잘 알고 계신다. 그 시간이 불과 몇분이나 되였을가?

아저씨가 또 부인의 옷자락을 마구 잡아당기더니 헛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아마 또 환각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요즘 환각이 자주 떠올라서 가끔씩 이러신다. 말기암환자들에게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는 증상이다. 하지만 부인은 아주 밝은 미소로 아저씨의 한마디 한마디에 또박또박 정성을 다해 대답을 해주신다.

정말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 같았다. 아니, 이건 진정 영화를 압도한 아름다운 현실이였다. 나는 갑자기 코날이 찡해지고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 모습을 뒤로 한 채 나는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병실 문을 나선 나의 마음에 말 못할 아픔이 살며시 찾아든다. 난 저도 모르게 후―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도 많은 고통과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지… 만약 이것이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내린 인생의 수업중의 한가지라면 말없이 받아들일 수는 있겠지만 왜 하필이면 이렇게도 모진 아픔을 남겨주는지…’

다시 한번 두 분의 모습을 그려본다. 사랑의 힘이 이렇게도 클가? 이때 이런 아저씨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밖에 없는 부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가? 또 최후의 순간을 맞이한 아저씨의 피타는 마음을 그 누가 다 헤아릴 수 있을가?

부인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눈시울을 적시던 아저씨의 처량한 모습, 죽음앞에서 느낀 아저씨의 절실한 감정, 늦게나마 과격했던 자신의 성격을 뉘우치고 부인과 따뜻한 의사소통을 한 아저씨… 얼마나 부인을 잘해주고 싶었을가? 하지만 이젠 죽음이라는 처참하고 지독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니 그 마음 또한 오죽 쓰리랴!…

정말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다. 때늦은 시간이나마 닫혀있었던 마음의 문을 열고 부인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써 부인의 소중함과 부부지간의 애틋한 감정을 뼈저리게 느낀 아저씨, 비록 지금은 모든 추억을 버리고 저세상으로 갔지만 다문 아저씨의 령혼이나마 인간 세상에 남아서 하루하루를 지켜보면서 부인을 따스하게 감싸안아주었으면 좋겠다. 영화처럼, 소설처럼 령혼과 인간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영원히 엮어갔으면 좋겠다.

 

                                                                            /배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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