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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쑥꽃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5-03 11:23:18 ] 클릭: [ ]

청명에 산소로 갈 때면 반드시 지참해야 할 게 있다. 꽃씨다.

30년 전, 성묘하러 떠나는 나의 호주머니에 꽃씨가 들어있는 봉투를 넣어주면서 할머니는 기어코 지난해와 꼭 같은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가토는 주변이 깨끗해야 하니라. 대충 얼렁뚱땅 해서는 아니된다. 무덤이야 어련하랴만은 주변까지 깨끗이 하기는 공을 들여야 하느니라. 주변을 보면 그 집 정성이 보이는 법, 꽃씨는 무덤보다는 주변에 뿌리거라. 꽃은 모름지기 주변에 피여야 하느니, 혹여 꽃씨가 무덤꼭대기에까지 날아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거라. 무덤우의 꽃처럼 꼴불견도 없거니와 그처럼 결례도 없느니라.”

할아버지의 무덤을 일컫는 말이다. 할아버지는 내 나이 아홉살에 세상떴으니 15년째 들어온 말이다. 할아버지는 이민 1세요, 할머니는 후처다. 나이차는 저그만치 16살.

할머니의 말을 빌려보면, 로할아버지의 제자였던 할아버지는 당시 알아주는 수재였고 별명이 옥편(玉篇)이였단다. 전처하고 어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날 할아버지는 갑자기 할머니를 꿰차고 두만강을 건너버렸다. 처음에 몸을 푼 곳이 달라재(다라즈-지금의 지신향)였고 이듬해 민부툰(지금은 화룡시 룡문향 연풍촌)에 이르러 정착을 했다. 거기서 8남매를 낳아서 6남매를 키웠다. 이민 3세인 나는 그래서 할아버지를 일컬어 화룡(和龍)량씨의 시조라고 부른다.

성묘객중에 나처럼 무덤주변을 깨끗이 하는 사람은 없다. 풀뿌리는 물론 전해에 피였던 꽃그루터기까지 죄다 걷어낸다. 그리고 한바퀴 빙 돌며 갖고 간 꽃씨를 조심스레 뿌린다. 무덤우로 올라가는 결례라도 범할가봐. 이제 추석에 벌초하러 왔을 때 만개한 꽃에 둘러싸인 무덤을 상상하며 흐뭇하게 웃는다.

후처여서일가. 할머니는 한번도 할아버지 무덤을 찾지 않으셨다. 할아버지의 씨를 받아 6남매나 키워내셨지만 정실이 아니였다는 그 리유 하나만으로 할머니는 할아버지 아래자리에 묻히기마저 거부했다. 대신 제사음식과 꽃에는 엄청난 정성을 기울이셨다.

할아버지가 꽃을 좋아하셨는지는 모르겠다. 긴 장죽에 담배를 재고 부시를 치면서 한시를 읊던 할아버지의 기억이 어슴푸레하다. 할아버지의 갓끈너머로 쑥꽃이 피였던지 말았던지… 향기 따라 우왕좌왕하는 벌나비가 있는 곳에는 항상 빛이 모여들었고 지묵이 펼쳐진 퇴마루엔 늘 술이 익는 냄새로 간지러웠다.

꽃을 향한 할머니의 열정은 가히 국보급이라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께 바치는 할머니의 마음이여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당신 마음. 그 마음을 할머니는 가을날 맨 마지막까지 피는 쑥꽃에 담아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 주변에서 웃고 싶은 것이다.

쑥꽃이 질 때면 할머니는 꽤 여러 날을 분주히 보낸다. 꽃씨를 받기 위해서다. 온 동네를 주름 잡으며 잘 영근 걸로 받는다. 받아서는 습기라도 찰세라 종이봉투에 고이 모셨다. 알알이 잘 영근 까만 꽃씨들. 그랬던 것을 이듬해 성묘날이면 다시 내놓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꽃씨 한톨이라도 잘 피여날 수 있도록 곱게 손질된 흙우에 정성스레 뿌리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렇게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청명날 꽃씨 되여 찾아가서 한가위날 쑥꽃으로 곱게 피여난다. 할머니는 그렇게 할아버지와 못다한 얘기들을 수줍게 나눈다. 비록 아래자리에 묻히기를 거부하는 할머니지만 꽃이 되여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여드리고 이승에서의 마지막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쑥꽃은 풀꽃중에서 맨 마지막까지 피는 꽃이다. 할머니는 그렇게 할아버지의 맨 마지막 꽃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꽃이 된 할머니는 혹시라도 꽃씨가 할아버지의 꼭뒤를 밟고 올라가는 ‘우’를 범할가봐 그렇듯 이 손주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하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발밑에, 주변에 웃는 꽃만으로 만족코저 하신 할머니.

미욱한 손주는 당신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푸른지, 애틋하고 치런치런한지 결코 모른다. 아는 건 단 하나,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사랑에 둘러싸여 외무덤이여도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에게 수많은 꽃들을 가르쳤다. 봄에 피는 참꽃으로부터 백합에 작약, 울밑에 선 봉선화에 접시꽃 당신…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아프게 각인시켜준 꽃이 바로 꽃중에서도 가장 가냘픈 꽃인 쑥꽃이다.

쑥꽃을 보면 할머니를 보는 듯하여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연해지고 꽃이 질 때 쯤이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어느새 꽃씨를 받아드는 것이다.

쑥꽃의 다른 이름은 ‘코스모스’요 또 다른 이름은 ‘살사리꽃’이다. 나는 이 ‘살사리꽃’을 소설제목으로 써서 당시 최고의 상이였던 문학상을 한영남작가와 함께 받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정작 내 할머니 당신만은 여직 글에 담아내지 못했다.

그 할머니가 세상을 뜬 지도 어언 30년이 되여온다.

2017년 4월 4일 새벽 3시 반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청명절은 다가오고 할아버지의 무덤주변에는 예의제없이 꽃씨가 가득 뿌려질 것이다.

그러나 정작 꽃의 임자 할머니는 무덤마저도 없다.

 

                                                                  /량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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