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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별이라고 이름 지어준 그 속에 ‘나’의 무게가 있다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4-19 13:35:46 ] 클릭: [ ]

일기장 첫페지에 길 잃은 가을별빛마냥 똑똑, ‘필똥’ 두점이 찍혀있었다. 그것이 곧 오늘의 전부를 알리려는, 시작의 한점 그리고 마무리의 한점이였다. 점 뒤에 고요하게 내려앉은 것은 수많은 날들의 침묵이다. 그 침묵들은 비방울들이 방황하는 소리에 그만 해야 할 말을 잃고 말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오스카와일드식의 동화와도 같았다. 그 침묵들 속에서 놓쳐버린 한번 또 한번의 초록불, 그 맞은켠에서 나는 수많은 사연을 안고 불록보도우를 총총걸음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매일 매일.

모든 이야기속엔 주인공이 있는 것처럼 그동안 내가 담고 싶었던 이야기속엔 내가 주인공이였었다. 화려하든 초라하든 모든 나의 일부로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그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치들이 묵묵히 나를 도와 하나 또 하나의 나를 완성시켰다. 하지만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해서부터 문득 그 하나 하나의 이야기속에서 나를 지워가고 싶었다. 만약 나도 오스카와일드처럼 동화 한편을 쓸 수 있다면 나는 그 이야기속에서 하나의 단역을, 아니 단역보다도 더 보잘 것 없고 더 무의미한 장치로 태여나고 싶다. 변변치 못한 땅에 태여나 해빛마저 보살피지 않는 작은 구석에 뿌리를 내린 하나의 풀로 되여보고 싶다. 누구 하나 작은 관심 가져다주지 않아도 잘 자라날 수 있는, 봄에 태여나 봄을 쓰고 여름에 자라나 여름을 쓰고 가을에 물들어 가을을 쓰고 겨울에 잠들어 겨울을 쓰는… 나와 상관없는 나란 존재를 리탈한 채 하늘을 보고 하늘의 별을 보고 별을 숨겨놓은 구름을 보고 내가 아닌 존재들로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싶다. 내가 아닌 모든 존재를 나만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품고 싶다.

어쩌면 선생님의 말씀이 맞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름대로 진지하게 엮어간 이야기들은 단지 물우를 흐르는 잔잔한 파도와도 같다는 말씀. 선생님과의 뜻깊은 대화 뒤로 나는 몇날 며칠을 안경속에서 보냈다. 나의 이름을 탈탈 털어버리고 나의 로심초사들을 깨끗이 비워낸 그 자리엔 메말라있는 우물 한점이 보였다. 그 작은 령역에서 물이 말라있다는 리유 하나만으로도 치명적이였다. 하늘의 한구석조차 담을 수 없는 그런 메마름속에서 나는 줄곧 이야기를 써내려갔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등장하는 이야기들마다 깊지 못하고 잔잔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물속에 아직 물이 존재했을 때의 기억이였을지도 모른다. 또는 그 기억의 투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봐줄 수는 있는, 하지만 그것이 그 사람들의 깊은 뇌리속 메아리로는 남을 수 없는 그런 잔잔한 물결…

이와 같은 연유로 나는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고 뻐스를 타고 가던 길도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걸어서 갔다. 이 도시에 3년이란 시간을 머물면서 나는 처음으로 집 가던 길에는 두갈래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과 어떤 한갈래를 가더라도 3개의 신호등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밤이 조금 내린 어느 날에 아빠트 단지로 내려와 밤공기를 마실 때면 하늘에서 북두칠성이 보였고 이름 모를 많은 별자리도 보였다. 그들을 하나로 보는 데는 어떤 리유에서 또는 어떠한 공통된 부분이 있어서 묶여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들 나름대로 간격이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곳의 별들이 이토록 맑을 수 있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였다. 내가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 별들은 분명히 나에게 있어서 감동이였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간격을 두고 태여나 오랜 세월을 하나의 변하지 않는, 사연이 담긴 별자리로 사람들 눈속에 줄곧 남아있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또 엄마가 나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이건 북두칠성이야.” 이런 식으로 그 별자에 대한 기억를 이어갔을 것이다. 그 별들도 분명 인류들이 태여나서 고달파지고 죽어서는 가벼운 령혼으로 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지켜봤을 것이다. 하지만 별들에게는 인류란 그 어떤 하나의 존재만을 위한 특별한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다. 이 세상 모든 특별함은 인류가 인류에게 지어준 것이기에. 두말할 것 없이 나 역시 그들의 눈에서는 연연한 인간세상을 살다 갈 속물로 보였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태여나서부터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걸 배운다.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신을 가꾸고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역경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야기속에는 자신이 많이 담겨져있다. 자신이라는 존재속에서 자신을 조금이라도 덜어낸다면 더 많은 것을 가슴속에 담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특별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가슴속에서 놓치고 산 많은 따뜻한 것들이 나를 진정으로 특별하게 만들어줄 텐데…

우리는 너무나도 무정하게 진화되여왔다. 리기심, 무관심, 방어심 등 이런 것들이 단지 내가 본 하늘의 별자리 간격이 아닌 자신을 이 세상과 더 멀어지게 하는 소위 진정한 거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평범해지고 더 잔잔해지는 이야기로 되였을지도 모른다. 특별해지고 픈 마음속에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특별함을 이름 지어줄 수 있는 것, 내 안에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먼저 특별해지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능력이라고 본다. 또한 그것이 사랑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구석에서 자란 하나의 풀처럼, 태여나서부터 자신이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단지 풀이라는 걸 가르침 받고 이 세상을 써내려가는 연습, 더 중요한 것은 ‘풀안에 풀이 있는’ 게 아니라 더 많이는 비여있는 마음으로 이 세상의 특별함을 바라본다면 풀이라 하더라도 그 풀의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로 되지 않을가. 잡초로 뽑혀 던져진다 해도 다른 존재를 주인공으로 보아온 그 특별함의 무게가 발치에서 단단해져 물에 닿아도 녹지 않을 그 무언가가 되여 물속 깊이 가라앉아 하나의 별자리로 되지 않을가.

 

                                                                    /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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