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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정률성금자탑―《정률성평전》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0 12:17:18 ] 클릭: [ ]

중국조선족은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예술민족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연변을 《가무의 고향》이라 부르는가부다. 2009년 9월, 새 중국 창건 60주년에 즈음하여 중앙선전부, 중앙조직부 등 중앙의 11개 부서에서 공동으로 조직하고 1억명이 투표한 《쌍백인물(双百人物)》평의에서 《새 중국 창건 특수기여 영웅모범인물》 100명에 조선족 음악가 정률성이 선정된다. 정률성은 섭이, 선성해와 더불어 새 중국의 3대 악성으로 공인된다. 정률성, 그 이름이 시사해주듯 그는 음률로 대성을 했다! 그는 일찍 《연안송》, 《연수요》 등 혁명명곡을 창작하여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붉은 피를 끓게 했으며 혁명의 성지―연안으로 달려가게 했던가. 또한 그가 작곡한 《팔로군행진곡》은 얼마나 많은 혁명군인들로 하여금 적의 포화를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여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게 했던가. 그는 갔으나 그의 노래는 불멸의 명곡이 되여 드넓은 중국대지, 더 나아가 전 지구촌에 울려퍼지고있다. 그의 《팔로군행진곡》은 해방전쟁시기 《인민해방군행진곡》으로 제정되였다가 1951년 《인민해방군군가》로, 그뒤 다시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으로 되였다가 1988년 다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소평의 명령에 의해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거듭난다. 어디 이뿐인가. 그는 조선에 있을 때 또 《조선인민군 군가》도 창작했다. 이렇게 그는 일약 두 나라의 군가를 창작한 세계에 류례가 없는 기적을 창조했다.

한마디로 정률성은 전기나 평전에 값하고도 남을 조선족의 위인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관적욕망과는 달리 이때까지 그의 전기나 평전을 내지 못했다. 나는 이 아쉬움을 객관적원인에 돌리는것으로 일말의 마음의 안위를 얻으려 했다. 그런데 어쩐지 수시로 갈마드는 허전함은 떨쳐버릴수 없었다. 일종 못난 후예로서 책임감과 의무감을 회피하는듯한 그런 죄책감이 동반되면서 말이다. 그런데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아있지만 이번 리혜선의 《정률성평전》(민족출판사, 연변인민출판사, 2013년)이 선보여 소원성취의 희열을 맛보게 되였다. 사실 나만이 아니고 적어도 조선족이면 누구나 이 《정률성평전》은 하나의 《성서》가 될것이다. 조선족은 민족의 구심점을 이루는 그 어떤 《특정종교》도 없다. 그렇다 하여 그 어떤 전통적인 별다른 정신적 지주나 지향점이 있는것도 아니다. 조선족의 이주정착사는 이제 한 150여년의 력사. 그리 길지 않은 력사이지만 조선족은 천지자연과 싸우고 사회악세력과 싸우면서 휘황찬란한 력사를 엮어왔다. 이 과정에 많은 영걸들이 나타났다. 이 영걸들이야말로 조선족의 사표이고 정신적 지주나 지향점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조선족의 구심점은 바로 이런 영걸들에 있다. 그들의 혼과 정신에 있다.

현재 시장경제, 글로벌화의 세계적흐름에 조선족은 많이 흔들리고 갈팡질팡한다. 이런 위기적상황에서 《중국조선족명인평전시리즈》는 정말 시기적절한 급시우와 다름없다. 사실 한 민족이 정신적으로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이런 명인이나 위인들의 전기나 평전들이 많이 쏟아져나온다. 조선이 근대 식민지위기에 처했을 때 많은 《위인전》이 나온것은 그 한 보기가 되겠다. 현재 이 거창하고 뜻깊은 사업에 민족의 지성들이 참여하고 민족출판사나 연변인민출판사와 같은 대표적인 조선족 관련 출판사들이 발 벗고 나서 보기에 너무 좋다! 《정률성평전》은 이 시리즈의 대표적평전의 하나이다. 《정률성평전》으로 다시 살아난 조선족의 악성―정률성, 우리는 그대가 있어 가슴 벅차고 뿌듯하다. 《정률성평전》의 1차적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는줄로 안다.

그 어떤 전기나 평전은 말이 쉽지 정작 쓰자면 그리 쉬운것이 아니다. 논픽션인만큼 자료수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픽션의 소설처럼 꾸며서는 안된다. 그렇다 하여 시처럼 상상이나 환상을 날려도 안된다. 무엇보다고 객관적자료가 필요하다. 《정률성평전》을 보면 국내외로 두발로 뛰며 자료를 수집하고 인터뷰를 하는 등 저자의 로고가 돋보인다. 《이 책의 출판에 부친》 저자의 토로를 한번 들어보자. 《나는 정률성의 고향인 한국 광주를 2차 방문했고 그의 항일발자취가 남아있는 상해, 남경, 서안, 연안, 태항산을 답사했다. 그의 가족, 음악동료들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북경, 할빈, 심양 등지를 방문하고 인터뷰를 했다. 내가 만난 인물들중에는 1930년대 항일구국가영운동의 앞장에 섰던 전임 중앙선전부 부부장 주위치와 전임 중국음악가협회 부주석 손신, 연안시기 정률성의 제자였고 전임 중앙가무단 부단장이였던 맹우, 정률성의 동료였고 전임 중앙악단 단장이며 중국 최고의 지휘가인 엄량곤, 전임 중국가극무극원 원장이고 가사계 태두로 불리우는 교우, 중앙음악학원의 교수 량무춘 등이 있다. 그리고 정률성의 부인이고 주은래의 비서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첫 녀대사였던 정설송, 정률성의 딸이고 바로크합창단 단장인 정소제, 그외 한국에 사는 정률성 누님의 딸, 형님의 손자들 등 가족이 있다.》 정률성 관련 직간접 단서를 하나도 놓치지 않는 그녀다. 실로 《장도의 취재길》에 얼마나 《혼자서 하나하나의 낯선 도시와 깊은 산골짜기들을 다니고 밤의 역에서 시간을 기다리거나 밤기차를 타고 새벽택시를 탔》던가. 작자의 로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한마디로 그것은 《2008년부터 준비하기 시작해 기나긴 취재와 집필을 통해 탈고하기까지 장장 4년이 걸린》 피타는 노력의 결정체이다. 그녀가 이렇게 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정률성에 대한 사랑 및 민족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에 기인하는줄로 안다.

《정률성평전》의 짜임새는 허술하지 않고 빈틈이 없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긴 턴넬의 끝머리에서》와 《6.에필로그》는 시작과 끝머리에서 《요상호응(遙相呼應)》―서로 멀리 떨어져있지만 긴밀히 맞물리면서 일종 액자형 구조를 이루고있다. 그것은 《악성운락(樂聖殞落)》―정률성의 서거에 대한 애틋한 서정적 추모곡으로서 일맥상통한다.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그 무드분위기에 녹아들게 한다. 바로 음률로 대성한 정률성에게 경의를 보내게 한다. 《정률성평전》은 이 시작과 끝머리 사이에 정률성의 한생을 차분한 객관적필치로 서술해나간다. 그러나 그것은 빈틈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노라마처럼 줄기차게 펼쳐지는 장대한 행진곡이다. 거의 장장 60만자에 가까운 글자들의 행진곡이다. 《제1부 양림산언덕에서(1914년 8월―1933년 5월), 제2부 불평과 희망의 노래(1933년 5월―1937년 10월), 제3부 자유의 기발 휘날리다(1937년 10월―1941년 8월), 제4부 태항산으로 가다(1941년 8월―1945년 12월), 제5부 조선에서(1945년 12월―1951년 4월), 제6부 행복한 농장(1951년 4월―1956년 12월), 제7부 자유에로의 모험(1957년1월―1965년 5월), 제8부 고난의 강을 건너다(1966년 5월―1976년 10월), 제9부 대지의 깊은 고요속으로(1976년 10월―12월 그리고 더 많은 세월)》.

어쩌면 정률성의 생이 이토록 치밀하게 펼쳐질수 있었겠는가! 나는 이것을 전적으로 저자의 녀성작가적인, 너무도 녀성작가적인 섬세함과 꼼꼼함에 기인하는줄로 안다. 한뜸 한뜸 누비옷을 지어나갈 때의 그 섬세함과 꼼꼼함 말이다. 바로 여기에 녀성작가의 우세와 강세가 있으리라.

제목에서도 보다싶이 《정률성평전》은 단순히 전기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을 앞세운 전기이다. 작가의 사고나 가치판단을 충분히 요하는 글쓰기다. 그리고 이런 사고나 가치판단을 하는데는 학문적바탕이 마련되여야 할줄로 안다. 《정률성평전》을 보면 일단 취사선택이 잘된것 같다. 저자의 섬세함과 꼼꼼함이 자료에 매몰되지 않고 료량껏 주체적능동성을 발휘하면서도 나름대로 균형감각을 잡아갔다는 말이 되겠다. 례를 들면 《제5부 조선에서(1945년 12월―1951년 4월)》의 경우 취사선택을 잘했고 형평성도 잘 살린것 같다. 다음 《정률성평전》을 보면서 나는 저자의 학자연한 자세에 그만 기가 죽어버렸다. 《행진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가운데 저자의 학자다운 랭철한 분석종합에 절로 감복하게 된다. 그리고 저서, 간행물, 취재, 인터넷 등 139부/편/건에 달하는 방대한 《참고자료》는 실로 박사론문 참고자료에 맞먹는다. 나는 이때까지 박사론문만 어렵고 대단하다고 생각해왔는데 《평전》도 이렇게 어렵고 대단한것임을 알게 되였다. 그다음 전에 대인물은 보통 위대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다. 그런만큼 객관성을 요하고 력사적진실을 요하는 전기건만 저자의 감정적 개입이나 평가가 자기도 모르게 가미될수 있다. 사실 아무리 객관적인 전기라 해도 저자의 주관적인 사상감정이 개입되지 않을수 없다. 그래서 주인공을 《천사화》하거나 《악마화》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있다. 때문에 평전에서 객관성이나 력사적진실을 확보하기란 진실로 쉽지 않음을 알수 있다. 그런데 《정률성평전》은 바로 이 점에서 돋보인다. 저자는 《일가독명(一家獨鳴)》―자기의 주의주장만 내세우는것이 아니라 《방증박인(傍證博引)》―여러 자료를 폭넓게 섭렵하고 리용하여 최대한 객관성을 확보한다. 저자의 《방증박인(傍證博引)》을 보면 한 문제에 있어서 여러 관점의 관련 자료를 인용한다. 례컨대 정률성이 《〈문화대혁명〉이 폭발하고 창작권리를 박탈당한후 〈모택동시사〉밖에는 〈창작할수 있는 작품〉이 없는 상황에 대해 〈당영매의 아들이고 중국예술연구원 음악연구원인 향연성은 이렇게 증언한다〉로 향연성과의 인터뷰 자료를 인용하고 이어서 이와 비슷한 증언을 한 사람이 또 있는데 그는 작가출판사 전임 부총편 석만(石灣)이다》고 하면서 석만의 회억을 인용한것은 한 보기가 되겠다. 그리고 같은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부동한 관점을 인용하면서 객관성을 확보하기에 노력했다. 례컨대 우의 《창작할수 있는 작품》이 없는 상황에 대해 당영매와 향연성의 관점을 인용하고는 《전임 중앙악단 지휘가이며 정률성의 음악지기인 엄량곤의 견해는 조금 달랐다》고 하면서 엄량곤과의 인터뷰를 인용한것도 그 한 보기가 되겠다. 그리고 자료를 인용하되 맹신하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랭철한 비평과 판단을 보류한다. 지적인 리성의 빛이 번뜩인다. 례컨대 정률성이 로신예술학원 음악학부 교사로 전근한 시간을 놓고 〔156)주석으로〕 《〈나의 정치생활경력서〉(정소제 제공)에서는 〈1939년 12월에 항일군정대학이 전방으로 이동할 때에 나도 로신예술학원에 소환되였다.󰡑라고 썼으나 󰡐항일군정대학의 전방이동시기가 1939년 7월이기에 정률성도 이때에 로신예술학원󰡑에 전근된것으로 추정된다》고 썼다.

그리고 살아숨쉬는 풍부한 인간쪽이다. 인간은 하나의 세계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 사람의 주도적인 면만 보는 경우가 많다. 《정률성평전》은 우리에게 인간 정률성을 보여준다. 정률성, 우리는 이때까지 그의 음악천재성만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예술가적인 유연함과 깔끔함이 많이 각인되였다. 그런데 사실 그에게는 사나이다운 날파람과 빛나는 예지가 있었다. 자기의 잔치를 위해 주덕부총사령이 준 총으로 사냥하는 장면은 너무 멋있다. 그는 원래 명사수, 명포수였던것이다. 그리고 세살적 버릇 여든 간다고 그의 천렵기술은 어부들을 뺨 칠 정도이다. 그리고 그는 너무나도 인간적이였다. 항일전쟁시기의 연안은 물질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매번 그의 사냥감은 동지들의 좋은 회식감으로 되였다. 그리고 어려운 3년 자연재해시기 및 문화대혁명시기 그 천렵감은 동료들이 항상 기대하는 일품이였다. 그리고 대자연속에서, 천인합일의 경지에서 심신을 치유하고 창작의 령감을 얻는 그는 분명 자연의 아들이였다. 그리고 또 정설송과의 련애과정을 보면 그는 사랑밖에 모르는 사나이임에 틀림없다. 또 좌경사조의 핍박속에서도 잃지 않는 그 정직성, 정의감 및 사그라들지 않는 그 패기, 꿋꿋함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보다싶이 정률성은 이렇게 다면체다. 이런 다면체의 인물형상추구는 기존에 나온 《항일전사 정률성평전》(지식산업사 2007년)과의 변별성을 추구하는데서도 효과적임은 더 말할것도 없다.

서뿌른 판단이나 평가는 자제했다. 인간은 모르는것이 없는듯이 똑똑하다. 그러나 실은 아직도 모르는것이 많다. 력사적 사건이나 문제에 있어서도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는 경우가 비일비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적어도 력사에 대해 겸손해지고 허심탄회해질수 밖에 없다. 《정률성평전》의 저자는 바로 이런 마음과 자세를 취했다. 《박건웅은 당시 주은래 등 중국공산당 고위층과의 관계를 통해 비밀리에 연안에 다녀간것일가? 정률성은 자형 박건웅을 만났던것일가? 알수가 없다.》 《정률성평전》에는 이런 《알수가 없다》는 식의 《?》로 끝나는 문장이나 표현들이 많다. 아리숭하거나 미스터리 같은 문제에 대해 이런 《?》식으로 독자의 사색을 자극하되 굳이 저자가 상상을 동원하여 추측하거나 주관적인 명확한 해답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아는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것을 모른다고 하는 실사구시적인 《평전》의 정신을 엿볼수 있다.

일반 전기도 좋고 평전도 좋고 사실 이것은 력사서술에 있어서 기전체의 한 종류로 볼수 있다. 본기나 렬전 같은것 말이다. 이를테면 인물에 대한 서술이나 평을 진행하면서 해당 시기 력사를 이끌어내는 방식을 말한다. 인간은 특정력사에 속하고 력사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만큼 전기나 평전은 인간으로 력사를 보여줄수 밖에 없다. 사실 이렇게 될 때만이 그 전기나 평전은 내실을 기하고 제값을 하게 된다.

《정률성평전》을 보면 정률성이라는 주인공은 조선, 중국의 현대사 및 당대사를 투시하는 하나의 프리즘이 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정률성을 통해 그에 얽힌 수많은 력사사연이나 사항들을 건져낼수 있다. 이를테면 일제식민지하에서의 조선인들의 비참한 생활 및 독립에로의 의지와 투쟁 그리고 《중국의 광활한 대지우에서》의 《조선민족혁명당―의렬단》, 《조선의용군발자취》를 확인할수 있다. 그리고 해방공간에 있어서의 조선의 상황과 건국후 중국에서의 반우파투쟁 및 문화대혁명 등 주요 정치적사변들을 알수 있다. 한마디로 《정률성평전》은 인간으로 력사를 보여주는 평전적특색을 잘 살려 백과전서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있다. 여기에 저자의 소설가적인 필치로 평전은 형상적이고 생생하여 볼거리가 많다.

《정률성평전》은 일부 아쉬움도 남는다. 례컨대 정률성의 대표작인 《연안송》이나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와 《조선인민군 군가》를 둘러싸고 좀더 밀도를 기하고 박력 있게 전개했더라면 더욱 좋았겠다. 여기서 조선적인것과 중국적인것을 모두 아우르는 디아스포라적인 혼종성차원에서 창작의 메커니즘에 대해 좀더 전개했으면 좋았겠다. 그리고 《중국사람들은 나를 조선사람이라 하고 조선사람들은 나를 중국사람》이라고 하는(제524페지) 《어느쪽도 아닌》 부평초같은 디아스포라적인 비극적처지를 좀더 발굴해서 전개했으면 좋았겠다. 필자는 어디까지나 완전무결의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좀더… 좋았겠다》를 외워볼뿐이다.

 

                                                             /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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