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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솔솔 동시향기 꽃 되여 흩날리네―강려가 흔들어주는 동시묶음에 취하여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06-03 14:06:57 ] 클릭: [ ]

꽃가루에 이슬 섞어 꽃떡 빚으면 이보다 향기로울가

흰구름에 꿀꿈 얹어 희망 싹트면 이보다 아름다울가

요즘 우리 문단에는 그야말로 티없이 맑은 동심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며 졸졸졸 흐르는 시내물마냥, 돌돌돌 구르는 조약돌마냥 아름다운 동시를 바람결에 흩날려 그 상큼한 향을 솔솔솔 피워올리는 동시인이 있다. 누구보다 어려운 여건임에도 누구보다 맑은 심성으로 동시를 폭폭 퍼올리는이가 바로 강려 동시인이다.

나는 강려를 모른다. 《중국조선족열린문인회》라는 카페에서 카페지기를 맡고있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두루 만나 인사를 나누듯이 그렇게 강려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어느날 그녀가 큐큐를 추가해와서 그것으로 몇마디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그게 전부다.

그뒤 어느날인가 나는 강려가 보내준 그녀의 처녀동시집 《또르르 뱅뱅》을 받아보게 되였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동시집에 빠져버리고말았다.

이미지시들은, 시라는 렌즈를 통해 시적대상이 독자들의 시망막에 뛰여든다. 좋은 렌즈일수록 투명도가 높아서 시적대상이 눈앞에 보이는듯 생동할것이고 훌륭한 렌즈일수록 시적대상의 다양한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진풍경을 연출해보일것이다. 이때 렌즈(시)는 전혀 시인의 재간에 따라 좋은 렌즈가 될수도 있고 훌륭한 렌즈가 될수도 있는것이다.

강려는 세상 색색의 이미지들을 독자들한테 보다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 늘 렌즈를 갈고 닦기에 게으르지 않으며 렌즈의 변형(오목렌즈, 볼록렌즈, 프리즘 등)을 통해 평범한 이미지들을 밝고, 맑고, 깨끗하고, 향기나게 독자들앞에 펼쳐보이고있다.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강려의 렌즈(동시다발)는 과연 어떤 이미지들을 우리앞에 펼쳐보일것인가. 하나씩 만나보기로 하자.

《함박꽃》에서 시인은 함박꽃을 하얀 이남박이라고 이름지어주고는 해님의 노란쌀에 구름의 샘물로 나비가 팔랑팔랑 쌀 인다고 표현하고있다. 너무 아름답다. 한수의 짧은 동시인데 신비한 동화세계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동시속에 온전히 빠진 동시인만이 이런 아름다운 경지에 이를수 있는것이리라.

《별》에서 시인은 하늘을 호수로, 별을 꽃붕어로 보고있다. 아이들의 시각에 알맞는 비유이다. 그런 동시적발견은 달님이 지나가며 하얀 밥알 뿌리고 꽃붕어들이 그걸 받아먹는것으로 승화되고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동시가 이렇게 살아날수도 있다는게 마냥 신기하다.

《달빛1》에서 시인은 달빛살을 창문발로 보고있다. 그걸 귀뚜라미가 자꾸 풀어내리고있다. 달빛 고요로운 밤, 온 대지에 하얗게 실실이 드리우는 달의 빛살들, 그리고 귀뚤귀뚤 울어대는 귀뚜라미소리… 고즈넉한 밤에 연출되는 풍경화이다. 게다가 정적인 사물(달빛)이 동적인 의미(귀뚜라미에 의해 풀리는)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달팽이2》에서 시인은 간결미의 극치를 보여주고있다. 《딱/ 고기 한점 넣은/ 항아리 지고/ 엉금엉금》 자고로 달팽이를 묘사한 시들은 엄청 많다. 그러나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일목료연하게 보여준 시는 흔치 않다. 이는 시인이 평소 많이 관찰하고 많이 사색하면서 시어를 끊임없이 다듬어온 노력의 결정체이리라.

그럼 《얼음장》은 또 어떤가. 나는 겨울이 잉태한 하얀 곰이다. 풀리는 강물에 찰싹찰싹 엉뎅이를 얻어맞는 하얀 곰이다. 그래서 화가 나서 퉁방울눈 부릅뜨고 봄물 쫓아가다가 그만 녹아흐르며 나를 잃고만다. 형상적이면서도 동시적인 모습을 잃지 않고있다.

《진달래1》에서는 진달래가 분홍빛 봄을 토하고있다. 개구장이 구름이 물총을 쏘아대도 꽃잎은 젖지 않고 오히려 은구슬 금구슬을 굴린다. 그 어떤 진달래보다 형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생활의 론리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생활에서 껑충 뛰여올라있다.

시인의 눈에 《토끼》는 어느 아이가 굴려놓은 눈덩이다. 그래서 그 눈덩이는 넘넘 부드럽고 살살 녹기도 한다. 그러나 토끼에는 분명 생명이 깃들어있었으니 퐁퐁 뛰기도 한다. 재치의 극치라 해야겠다.

《봄은야1》은 봄을 강물로 보고 거기에서 풀, 꽃, 잎들이 방게가 되여 나오는것으로 묘사되고있다. 봄을 맞아 온통 햇순들이 고개 쏘옥쏘옥 내미는 모습들을 굉장히 멋진 이미지로 형상화하고있다.

《연필》이 이번에는 딱따구리로 변한다. 딱따구리가 되여 글나무를 키운다. 이 정도라 해도 동시로는 훌륭하다. 그러나 시인은 한차례 비약을 더해본다. 그래서 나는 방아공이 되여 콩콩 글콩 찧는다. 콩콩이라는 의성어에 글콩이라는 새뜻한 낱말을 만들어내 조합시킴으로써 시의 형상화가 재미스럽게 된다.

《이슬》에서는 이슬이 은빛공기돌이 된다. 바람이 다가와 통통 튕기며 혼자 놀고있다.

그랬다. 강려는 동시라는 렌즈를 들이대고 시적대상물들을 가지고 놀고있었다. 그 모습은 어린 소녀가 강가에 앉아 혹은 풀 푸르고 꽃 고운 들녘에 앉아 물과 돌과 꽃과 풀과 새와 바람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지극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것으로 덜어도 더해도 안되는, 꼭 알맞는것들이다.

강려의 눈에 비친 시적대상들은 일제히 어린이들의 시각에서 동화적색채가 다분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뒤 우리앞에 나타난다. 강려가 들이댄 렌즈(동시)를 통해 우리는 지극히 평범하고 그래서 우리가 평소 쉽게 스쳐버렸던 모든 주변 사물들이 사실은 그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있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며 그런 아름다움의 세례를 받고난 뒤 우리는 일상에서 얼룩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풀이 피여나고 꽃이 미소 짓고 나비가 한들거리고 구름이 낮잠 자고 물이 흐르고 달빛이 부서지는 등 이 모든 자연의 이야기들은 강려의 동시를 통해 새록새록 새롭게 되살아나고 살아나서는 신기한 모습으로 우리앞에 다가오며 다가와서는 우리의 얼룩을 닦아준다. 동시를 읽는 대상인 어린이들은 강려의 동시를 보면서 동심을 더욱 보듬게 될것이며 맑은 심성을 키우게 될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열 사람의 어른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강려는 동시 한수로 거뜬히 해내고있다는 말이다.

동시는 환히 피여난 꽃속을 팔랑이는 나비처럼 예쁜 존재이다.

동시는 아슴한 밤하늘 수줍게 미소 짓는 별들처럼 맑은 존재이다.

티없이 맑고 깨끗한것만이 통하는 동심세계, 동심세계에서만이 통하는 동시, 동시는 동심을 보듬어키우는 요람과도 같은 존재이다.

동시는 아이들이 눈물방울을 단채 웃으며 읽을수 있는 문학이다.

동시는 슬프거나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엄마와도 같은 존재이다.

동시를 모르고 성장한 아이는 얼마나 슬플가?

그런 동시를 강려는 너무 멋지게 아름답게 펼쳐보이고있는것이다.

어른들이 읽으면 반성을, 아이들이 읽으면 찬탄을 하게 만드는 강려의 동시들은 무궁한 매력으로 우리 조선족동시단에 이채로운 빛을 더해주고있다. 강려의 동시탐구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우리 모두 지켜볼 일이다.

 

                                                                                         /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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