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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74]선생님의 ‘욕’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4-20 11:58:05 ] 클릭: [ ]

30여년의 교직생활을 하면서 나는 수많은 제자들을 졸업시켰다. 제자들과 떨어진 후 련락이 있든 없든 때로는 기억의 편린들이 떠올라 그들의 삶이 궁금할 때가 있다. 나의 이런 부질없는 로파심을 덜어주기라도 하듯 문뜩문뜩 제자들이 나의 위챗을 노크한다.

며칠전 늦은 저녁, 딩동- 메세지가 도착했다. 상해에 있는 제자 연화의 문안메세지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지금 연길에 있는데 이번 주말 시간 되세요? 선생님 뵈러 가볼려구요...”

“바쁘겠는데 오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20년이 지나도록 못 본 제자라 은근히 기다려졌다.

연화네 학급 담임을 갓 맡았을 때, 30대 초반에 들어선 나는 담임교원 경험도 없었거니와 젊음의 열기가 충천해서 애들과도 곧잘 마찰의 불꽃이 튕기였다. 스스로는 잘한답시고 학생들을 엄하게 대하고 잘 웃지도 않고 눈꼽만한 잘못에도 용서보다 꾸짖음과 훈시로 닥달하였다. 2학년으로 진급할 때, 문과, 리과 학과를 선택하면서 학급편입을 다시 하게 되였다. 조선어문 교원이지만 리과반 담임을 맡게 되였는데 많은 애들이 그냥 나의 학급에 남았다. 그러자 나는 어쩌다 우스개 소리를 하였다. “참, 너희들이 문과반으로 가면 더는 나한테 욕도 안 먹고 얼마나 좋니. 왜 그냥 리과반에 남아있는 거냐?” 그러자 애들은 넉살좋게 대답하는 것이였다. “우리 모두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만 애 먹이려고요, 선생님이 문과반 담임을 맡으면 우리는 쪼르르 따라 가겠습니다. 히히...”

오늘은 상해에서 온 연화를 배동하여 여섯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나를 찾아왔다. 20년만에 보는 얼굴들이지만 여전히 기억 속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정말 꿈 속에서도 보고 싶었던 제자들이였다. 제자들도 어느새 직장을 다니면서 한창 애를 키우느라고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는 워킹맘들이였다. 너무도 반가와 한사람, 한사람 포옹하면서 나는 대뜸 제자들의 뜨거운 분위기 속에 빠져들었다.

잠간 사이에 타임머신을 타고 20년전으로 돌아가서 추억에 잠겼다.

선생님은 그때 나이가 지금의 자기들보다 어렸을 거라고, 그런데도 로련해 보였단다. 그러면서 ‘12.9'활동기념문예경연이 끝나 은밀히 뒤풀이를 가졌다가 혼났던 일, 수업시간에 만화책을 봤던 일, 누구누구는 몰래 련애를 했는데 선생님이 몰랐다는 둥, 야간자습을 땡땡이 치고 몇몇이 생일쇠러 양꼬치집에 가서 술까지 마셨다는 둥 ... 내가 모르던 별의별 ‘비밀' 보따리들을 마음껏 헤쳐보였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지금 마주 앉아있는 명희를 건너다 보면서 뒤늦은 사과를 하였다. 그 때 한창 예민할 나이였을 너희들에게, 특히 명희에게 선생님이 너무 막 대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텐데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괄괄한 성격의 명희는 자유분방한 애였다. 그래서 나한테 누구보다 욕을 많이 먹었고 쩍하면 꾸지람을 들었다. 뒤끝이 없는 애라 나도 막말을 하고는 그 뒤를 풀어주지 않고 무심하게 지나갔다. 하지만 쾌활한 명희는 내 말을 듣고는 “그 때 선생님의 따끔한 ‘교육'이 있었기에 제가 조금이나마 스스로 단속을 잘할 수 있게 되였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인차 뒤를 풀어줬더라면 저 버릇 못 고쳤을 겁니다.” 하고 생긋 웃는 것이였다.

그러면서 내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졸업학년 때, 너무 공부가 머리에 들어가지 않으니 청가도 맡지 않고 기숙사에 가서 이불을 쓰고 만화책을 보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쫓아와서는 마음대로 조퇴를 했다고 한바탕 ‘줄욕'을 하고 그럴바에는 이불짐을 싸들고 집에 가라고, 한두번도 아니니까 퇴학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란다. 변명 한마디도 못하고 욕만 먹고 하는 수 없이 주섬주섬 옷을 입고 다시 교실로 가겠다고 선생님을 뒤따라 나서는데 이미 화가 난 선생님은 문을 탕 닫고 나가시더란다. 공교롭게도 그 때 비가 퍼부었는데 그대로 비를 맞으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시는 선생님의 왜소한 뒤모습에서 축 처진 두 어깨가 유난히 눈에 들어 오더란다. 우산을 쓰고 같이 가려고 뛰여가면서 불러도 선생님은 못들은 척 그냥 종종걸음을 치더라는 것이였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그날 비 속에서 선생님의 가냘픈 어깨를 보는 순간, 웬지 저도 모르게 자책감에 모대기였습니다. 그 때부터 저희들을 위한 선생님의 마음이 리해되였습니다. 미움이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지금도 그 날의 선생님의 뒤모습이 우련히 안겨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모두들 덩달아 한마디씩 하였다. 네가 선생님의 ‘욕'을 남보다 많이 먹은 것은 그만큼 관심을 한없이 받았다는 거다, 우리에게는 그런 ‘배려'가 차려지지 않았는데, 너 선생님께서 자기를 주목해달라고 일부러 그런 거지? 하면서 명희를 놀려댔다.

돌이켜보면 오늘 만난 제자들은 나의 특혜를 받은 것도 아니였다. 연화는 그의 오빠도 내가 가르쳤던 제자라는 인연으로 조금 배려를 해주었던 기억이 어슴푸레 있을 뿐이다. 홍이는 학생시절 무엇이나 알아서 척척 하는 학생이였다. 지금 박사까지 마치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데 고중 때 공부도 잘하고 학급 공청단 지부서기 역할도 착실히 잘하였기에 욕 먹을 일도 없었고 나도 별로 신경을 써서 따뜻한 말을 해준 적이 있은 것 같지 않았다. 차분한 성격의 옥이도, 란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애들이 오늘,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이구동성으로 선생님의 ‘욕'을 충분히 리해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기들도 애를 키우면서 선생님들의 마음을 더욱 리해하고 존경심을 잃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리해가 오가는 마음에는 앙금이 생기지 않는다. 폭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리해하니 정은 오히려 더욱 도탑게 쌓였다. 리해의 감정 속에서 불유쾌한 기억들을 거를 줄 아는 깜냥을 갖춘 제자들을 보면서 나는 사제간의 정이 버긋이 갈라지지 않는 것이 나의 지난날 ‘공로' 때문이 아니라 제자들의 속깊은 료량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최소천 도문시제1고급중학교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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