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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교사상’ 수상자 9명 교원의 사적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9-10 11:37:51 ] 클릭: [ ]

민간에서 설립한 중국조선족 최고 교사상인 제2회 ‘설봉교사상’ 시상식이 교사절을 하루 앞둔 9월 9일,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 감동리에 펼쳐졌다. 이 학교의 9명 교사가 이번 ‘설봉교사상’ 영예를 안았다.

설봉교사상 수상자들(왼쪽으로부터 김영,리종현,최운룡,정태성,리영진,김옥봉,박미자,윤제옥,백일.)

사랑으로 인성교육, 행복학과당으로 결실 가득

리영진(설봉교사상 최우수교사상 수상자)

통화청산그룹 리청산 리사장(우)과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층총회 오장권 회장(좌)이 리영진 교사에게 시상

20여년간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교육리념으로 학생들에게 사랑을 주고 행복학과당으로 학생들의 견실한 성장을 이끌며 교육자로서의 참뜻을 진정 실천해가는 교원이 있다. 바로 심양시제1조선족중학교 리영진선생님이다.

사랑 담은 행동으로 모범역할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교육리념을 견지해온 리영진 교원은 평소 교육교수에서 학생에 대해 엄격히 요구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우러러나오는 사랑으로 매 학생을 대하군 하였다.

부모가 곁에 없는 학생이 비교적 많은 상황을 고려해 리영진 교원은 그들의 심신건강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고 있다. 말로 가르칠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며 사랑으로 학생들을 감동시키고 시종 모범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애들과의 약속은 무조건 지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부모의 리혼으로 어릴 때부터 교육에 큰 공백이 있었던 한 학생은 타인을 믿지 못하고 공격성이 아주 강하였다. 리영진 교원은 이 학생에 대한 가장 좋은 교육은 사랑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정기적인 담화를 통해 믿음을 주고 자신심을 북돋아주며 존중과 사랑을 느끼게 하였다.

어느 한번 이 학생이 너비뛰기에서 부주의로 발뒤축을 심하게 상하게 되여 모래더미에 엎드린 채 일어나지도 못한 적이 있었다. 리영진 교원은 그를 엎고 의무실로 달려가 간단한 처치를 한 후 병원으로 데리고 가 살뜰히 보살펴줬다. 그 후부터 그는 타인의 관심과 호의을 받아주면서 남한테도 사랑을 주는 학생으로 바뀌게 된다.

행복학과당을 열어가는 교수비법

교육사업에 종사한 20여년간 그는 시종 ‘인재시교, 생본교육(因材施教,生本教育)’의 원칙을 견지해왔다.

특히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유쾌하고 화목한 수업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했다. 리영진 교원은 “량호한 학급환경은 매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이 큽니다. 좋은 학습환경은 그들의 성장에 있어 아주 비옥한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충분한 양분만 준다면 아주 견실하게 성장하여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고 말한다.

리영진 교원은 교수중에서 시종 새로운 과정표준의 개혁에 발 맞추며 혁신교육을 중시해왔고 교과서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주체적 지위와 교사의 주도적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여 자주학습을 제창하고 행복학과당을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또한 그는 모듬학습 등 새로운 수업모식을 부단히 응용하면서 학생들의 학습열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료녕성우수교원이며 심양시명교사로 선정되였다.

그의 노력으로 강연, 정추월 등 4명의 성급장원이 배출되였고 북경대학 등 명문대 학생들도 수두룩 배출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학교 전반 교수수준 제고에 기여

학교 교수연구처 주임직을 맡은 리영진 교원은 “교원은 연구자가 되여야 한다”는 리념으로 학교 교수연구수준을 높이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는 교원들을 이끌어 계획을 세우고 과학적이고 규범화된 관리를 통하여 학교의 교수연구능력을 제고시키고 모든 교원들로 하여금 과제(课题)연구에 참여하도록 하여 매 교원들마다 자기 교수 과목에 관련된 교수과제를 한편씩 쓰도록 하였다.

또한 교수연구에서 ‘교원의 주도작용을 발휘하고 수업효률을 연구하며 학생의 수준에 따라 그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리념을 제창하기도 했다.

작년 료녕성에서 대학입시에 관한 새로운 정책(3+1+2)을 시행, 그가 맡은 학년이 처음으로 이 정책을 맞이하게 된다. 류동수업 위주여서 숙제효률 하강, 시험성적 분석, 관리 어려움 등 곤난에 봉착했지만 학생들의 분과수업모식에 적응하는 능력을 제고, 종합소질평가 기준 강화 등으로 학생들의 진취심과 자률성을 제고시켰고 더욱 완벽한 관리모식으로 류동수업의 효률을 보장하였다.

<고중단계 두가지 언어교육으로 민족인재를 양성할 데 관한 탐구>와 <인성미덕>은 료녕성계획판공실과 심양시교육협회 연구과제를 통과했고 론문 <근 몇년래 조선족고중입시 문과종합 성적이 비교적 낮은 원인 분석 보고서>는 료녕성교육학회1등상을 수상하는 등 영예를 안았다.

리영진 교원은 “개혁의 선행자로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너는 식입니다. 하지만 저는 굳게 믿습니다. 우리의 견지와 노력이 있다면 우리의 교육사업은 더욱 번영창성할 것입니다.”며 신심 가득히 말한다.

 

교육교수 리론과 관리의 탐구자 실천자

정태성(설봉교사상 우수관리상 수상자)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감독자문위원회 황종식 부주임(좌)과 료녕성조선족련의회 리홍광 회장(우)이 정태성 부교장에게 시상

-1991년 사업에 참가, 물리교원, 학급담임, 학년조장, 교도처 부주임, 교장조리, 교수 주관 부교장, 덕육과 교수 주관 부교장 력임.

-심양시 황고구 골간교사, 우수청년교사, 공로 인정, 5.4상장, 선진사업일군, 우수공산당원, 백명우수교사; 심양시 우수학회일군, 물리학과 선줄군, 우수학급, 우수교사, 골간교사, 골간교장; 료녕성 일반고중 학과정 개혁 선진일군, 우수교사 등 영예 수상.

28년간 당의 교육사업에 충직해온 정태성 교사는 시시각각 우수교사의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왔으며 다년간의 교육교수와 교수관리중 자신의 교수수준과 관리수준을 부단히 제고해왔다.

학급담임, 교연조 조장, 교도주임, 교장조리, 부교장 등 다직을 거쳐오면서 더우기는 1999년부터 10년간 학년조 조장을 맡은 기간에는 대학입시 성적에 새로운 돌파를 거듭했다.

교수관리사업에 종사한 후에는 새로운 형세하의 교육교수사업에 적응하고저 각급 교육부문에서 조직하는 교육과학연구리론 학습에 참가해 자신의 전문 발전에 두터운 재능과 식견을 다졌다.

새로운 대학입시 제도가가 도입된 후에는 새 정책을 깊이있게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정책과 학교 실체를 결부할 것인가를 연구함으로써 학교 새 학과정 개혁 실시에 많은 기여를 했다.

업무를 연찬하고 학과정 개혁에 적극 투신

정태성 교사는 연구에 몰두하며 시대와 함께 발전했다. 시종일관 새로운 사유, 새로운 방식으로 수업을 지도했다. 사업중 즐겨 새로운 교수방식으로 홀가분하고 활발하며 향상하는 학습분위기를 형성하고 학생들이 즐겨 접수하는 방법으로 수업함으로써 학생들이 물리학과에 지대한 취미를 갖게 했다. 물리수업과가 학생들이 기다리는 시간으로 되고 가르친 학년과 학급들은 기말 혹은 대학입시 평가에서 모두 성적이 돌출해 학교와 사회의 일치한 인정을 받았다.

정태성 교사는 늘 학과수업개혁의 앞장에 섰다. 과외시간을 리용해 다방면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신문 잡지를 열독하면서 최신 교육 정보 및 교수개혁 새 동향을 제1시간에 접했다. 다년래 변함없이 꾸준히 주동적으로 교수개혁 리론을 학습하고 ‘새 수업 표준’ 정신을 장악했다. 소질교육과 새 학과정 개혁의 리론 서적들을 대량 열독함으로써 교육교수리론 수양을 제고했으며 리론을 자신의 교육교수와 관리에 효과적으로 응용했다.

학생을 평등하게 대하고 한명도 방임하지 않아

정태성 교사는 교육사업중 늘 학생과 가정의 립장에 서서 교육하고 교수하며 매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중시해왔다.

학생들에 대한 그의 교육교수는 사랑 속에 엄격함이 있고 엄한 속에 사랑이 넘쳐났다. 우수한 학생이라고 편애하지 않고 차한 학생이라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매 학생의 건강한 성장을 관심하는 것을 기본적인 교육교수 원칙으로 삼았다.

과학적인 관리와 교육교수질 향상

정태성 교장은 학교의 교수관리자로서 개방수업, 조내 공개수업, 교내 공개수업을 조직하는 것을 플랫폼으로 여러 교연조 및 교원들과 소통 교류하고 탐구하고 학습하면서 모든 교원들의 교수 수준 진보와 발전을 힘껏 추동했다.

창의적으로 덕육관리를 진행하고 덕으로의 인재 양성을 강조하고 학생들이 덕지체미로가 전면발전하도록 격려하고 학교의 ‘미육’ 건설을 창도함으로써 아름다운 교정을 건설하고 립체적인 인재양성 실현에 많은 품을 들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젊은 교사들을 관심하고 여러모로 그들의 성장을 밀어주었다.

교수연구를 다잡고 업무수준 향상을 추진

정태성 교장은 ‘교수로 연구를 이끌고 연구로 교수를 추진’하는 길을 견지하고 교수연구 학과 개혁을 적극 조직했다. 경상적으로 교원들 수업을 참관하고 소통하면서 수업 개혁 시험에서 부닥치는 문제 및 해결방법들을 탐구했다.

‘층차를 나누어 훈련하기’, ‘분조를 나누어 훈련하기’ 등 모든 1선교사를 상대한 교수개혁 활동을 조직 전개한 데서 교사들마다 수업준비, 교수안 작성, 수업, 수업 평가 등 교수 일환에서 한차례 정규화 훈련을 거치게 되였고 또한 저마다 자기를 전시함과 동시에 서로 배우고 추진할 수 있게 되였다.

대학입시 개혁에 적극 림해 많은 교원들을 이끌고 새 학과 개혁의 조류에 합류함으로써 교원들로 하여금 ‘우리는 어디를 가야 하고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똑똑히 알도록 했다. 심양조1중의 기본 상황과 특색에 부합되는 학과를 나누고 층차를 나눈 학급 분류 모식을 사고하고 탐색함으로써 그 운행과 사회 반응에서 다 좋은 효과를 안아왔다.

지혜로운 학급담임, 전국인대 대표

윤제옥(설봉교사상 우수교사상 수상자)

윤제옥 교원은 선후로 심양시제10중학교, 심양시교육연구원,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 교육사업에 종사했다. 선후로 물리교원, 학급담임, 교육연구원, 학년조장을 맡은 그는 료녕성특급교원, 제12기전국인대 대표이기도 한다.

윤제옥 교원은 심양시제10중학교에서 8년간 학급담임 사업을 맡았으며 그사이 고중 3학년 중점반 반주임을 맡으면서 많은 공헌을 했고 좋은 성적도 거두었다. 2001년에는 심양시우수교원으로 평선되였다.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 실험반(한족학생반) 반주임을 3년간 맡았는바 그사이 <지혜로운 학급담임이 되기> 론문은 국가급 상을 수여받기도 했다.

2008년에 조선족 학생 학급을 맡기 시작한 그는 학생 자질 양성과 평생발전에 주목했으며 학생들의 종합능력 양성에 노력을 기울였다. 3년간의 노력을 거쳐 그 학급에는 대학입시에서 600점 이상의 학생 7명을 배출하게 되였다.

2013년 학년조장을 맡은 그는 결손가정 자녀가 많은 조선족중학교의 특성에 대비해 학년조의 각도에서 학생들의 숙제를 감독관리하여 좋은 효과를 보았다. 또한 기타 젊은 교원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2기 전국인대 대표인 그는 적극적으로 인민대표의 직책을 리행하고 <중소학교 교원직업기풍건설에 관한 몇가지 건의>를 제출했으며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 주변환경 정돈 문제 등 실제문제를 정부부문과 교섭하여 해결했다.

교육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시련 이겨내

백일(설봉교사상 우수교사상 수상자)

백일 선생님은 교육사업에 종사한 지 21년, 그는 시종 인민교원이라는 신성한 이름에 부끄럼이 없도록 학생들한테 모든 사랑을 몰부었다.

“선생님이라면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사랑을 몰부어야 합니다. 그 사랑은 모든 시련과 곤난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마법이지요.”

2012년 고중 3학년을 맡은 백일 교원은 학생들을 이끌고 마지막 스퍼트 단계에 들어섰다. 고중입시 한달을 남겨두고 숨쉴 틈 없이 바삐 보내는 상황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다. 백일 교원의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안해 역시 학급담임으로 사업이 바쁜 데다가 봉페식 관리를 받고 있는 학생들을 책임지다나니 아침 7시에 나갔다가 저녁 10시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였다.

수술 전후인 10일 사이 그는 아버지 간호로 밤잠도 자지 못했지만 이튿날 수업준비까지 끝마치고는 학교로 달려갔다. 학생들을 향한 사랑을 버릴 수 없었고 교육사업에 대한 충성은 투철했다. 수업을 한시간이라도 지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그는 시련을 이겨내리라 결심하고 곤난에 맞섰다.

백일 교원은 그 때를 회억하며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생활하다 보면 의외의 곤난에 부딪칠 때가 많습니다. 간혹 그 곤난은 커다란 돌처럼 우리 앞을 가로막기도 하고 컴컴한 산굴마냥 우리를 가둬놓기도 하지요. 하지만 곤난을 이겨내면 찬란한 황금빛 해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믿습니다.”

2014년 백일 교원이 맡은 학급은 시우수학급으로 표창받았으며 그가 양성한 학생중 료녕성 문과장원으로 북경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복단대학, 향항중문대학 등 명문대학에 붙은 학생들도 수두룩하다. 2019년 고중입시에서는 600점 이상을 맞은 학생이 26명이나 되는 새 기록을 쌓기도 했다.

교육교수라는 땅우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겠다는 백일 선생님은 오늘도 사랑으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선생님은 우리의 롤모델입니다

박미자(설봉교사상 우수교사상 수상자)

“선생님은 저의 롤모델입니다. 제가 제일 본받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선생님 존경합니다.” 졸업한 제자들이 박미자 교원을 찾아 속심말을 터놓는다. 그한테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한다.

1986년 대학을 졸업한 박미자 교원은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해서부터 딴눈 한번 팔지 않고 줄곧 교육교수 일선에서 뛰면서 33년 남짓한 세월을 보냈다.

박미자 교원은 “제가 교사란 직업에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만 해도 교사란 직업은 모두가 별로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였던 시대였던 만큼 달갑게 시작한 직업은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성격상 안하면 안했지 무엇을 시작하면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여서부터 학생들에게 매료되면서 아이들 앞에 서기만 하면 저에게 그 아이들은 더는 남의 아이들이 아니였습니다. 진정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였고 교사란 직업을 사랑하게 되면서 오로지 교육교수 일선에서 학생들만 생각하면서 량심적으로 그들의 옳바른 성장을 고심했고 의미 있는 성장에 동참하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박미자 교원을 무척이나 잘 따랐고 그의 매 한시간 한시간의 수업을 향수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1990년부터 2018년 사이 그는 명문대에 입학시키는 교수에 열심히 동참하면서 청화대학, 북경대학 등 명문대 학생들을 양성했고 올해는 교수개혁 첫해를 맞아 변화된 교수형식에 맞춰나가기 위해 간고한 고중 1학년 교수를 함께 고심하면서 진행해나가고 있다.

박미자 교원은 학생들을 명문대에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에도 모를 박아야 하는 교사의 초심도 잃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도 불혹을 훨씬 넘긴 졸업생들에다 서른을 갓 넘긴 졸업생들까지 해마다 설이 되면 찾아와서 회포를 풀다 가는 것을 즐기군 한다.

학부모들은 “공부도 공부겠지만 학교에서의 아이들의 표현과 활동을 통한 교육이 인상적”이라며 그한테 감사해한다.

박미자 교원은 시, 구 우수학급담임, 심양시명교원 등 영예를 안았다.

그는 “조선족교육에서의 교사란 직업을 숙명이라 생각하고 량심을 다하며 사명감을 지니고 열심히 달리겠다.”고 한다.

교장 경험으로 류학생 교육에 성과

리종현(설봉교사상 우수교사상 수상자)

리종현 교원은 1980년 사업에 참가한 이래 1999년부터 2008년 근 10년 사이 신빈현조선족중학교 교장 직을 맡는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교단을 떠난 적이 없다. 교수에 끊임없이 노력하였기에 그가 맡은 학생들의 성적은 줄곧 좋았으며 사회와 학부모, 학생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96년에는 무순시 ‘교수백화상’을 받기도 했다.

신빈현조선족중학교 교장 직을 맡는 기간 그는 시종 전심전력으로 학교 운영에 뛰여들었는바 그 때 신빈조선족중학교의 학생은 900여명에 달했고 교직원은 110여명에 달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그는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 국제부 주임 직을 맡았다. 이 사이 그는 국제부의 수요에 따라 주동적으로 일부 학과의 교수임무를 맡았으며 전공인 화학 외에도 수학, 력사, 지리, 정치 등 학과의 교수도 맡았다.

교수준비를 하는 것은 시간과 정력이 필요하고 많이 힘들었지만 그는 “학생들이 나의 노력을 통해 관련 지식을 배우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10년래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 류학생들은 우리 나라 법률을 준수하고 학교의 여러가지 제도를 잘 준수했으며 입시률, 졸업률이 줄곧 안정세를 유지했다. 10년래 류학생부에서 청화대학, 북경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30여명이 되며 올해 한 학생은 동시에 청화대학, 북경대학, 서울대학에 합격되기도 했다.

어디에서도 빛을 내는 '만능'교사

김옥봉(설봉교사상 우수교사상 수상자)

-1988년 교육사업에 참가, 정치교원, 학급담임, 학교 공청단위 부서기, 학교 공회 부주석, 퇴직로간부사업, 학교식당관리, 문과당지부 서기, 학교당총지 성원 력임.

-황고구 우수청년교사, 공로 인정, 수차 우수공청단간부, 골간교사, 정치학과골간교사, 수차 교육사업선진개인; 심양시 골간교사, 심양시교육국 우수공회적극분자, 우수공산당원 등 영예 수상.

김옥봉 교사는 31년간 교육사업에 종사해오면서 명예도 보답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학생들의 성공을 지켜보며 행복했고 “후회없는 교원의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김옥봉 교사는 과임에서 학급담임, 학교 중층 령도 직책을 떠메고 또 공청단위 부서기, 학교 공회사업 등을 맡아오면서 일터가 어떻게 바뀌든 시종 교수를 놓지 않았다. 학급담임을 하지 않아도 시시각각 학생들의 성장을 주목하면서 그들과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며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격려했다. 잘못은 제때에 지적해주고 어려움이 있으면 선뜻 나서 도와주군 했다.

김옥봉 교사가 한 ‘문제’ 학생을 전변시킨 이야기는 지금도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학급 담임도 골치아파하는 녀학생을 주동적으로 가까이하며 친구로 사귀고 경상적으로 접촉하며 료해하고 학생의 번뇌를 함께 풀어주는 등으로 감화시킨 데서 학생은 점차 제궤도에 들어섰고 졸업 후에도 찾아와 선생님에 대한 숭배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일상 수업 과정에도 강의와 함께 학생의 감정변화를 중시하는 김옥봉 교사이다. 늘 교원과 부모의 역할을 함께 하면서 학생을 관심해왔다. 하기에 많은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수시로 선생님을 찾아뵙는다.

김옥봉 교사는 교수 외에도 학교 사업의 수요로 일찍부터 학교 중층간부 사업에 종사해왔다.

학교공청단 부서기를 겸직하고 문체활동, 심리교육활동을 포함해 풍부하고 다채로운 학생활동을 전개해왔다. 국기게양식이든 학생회 활동이든 모든 경로를 리용해 학생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그들에게 바른 기풍을 수립해주면서 자아발전의 량호한 플랫폼을 만들어주었다.

공회사업을 맡은 이래로는 언제나 교직원들의 리익을 우선시하고 직원들 후근보장 사업을 참답게 해왔다. 늘 주동적으로 교직원들 뒤근심을 덜어주었고 그들의 학습과 생활, 건강, 각종 문체활동, 혼인상제 등등 모든 일에 적극 나서 조직하고 도움을 주면서 모든 교직원들의 허물없는 친구로 되였다.

로간부 사업을 겸직한 후에는 퇴직교직원들을 배려하면서 매 한차의 활동과 봄가을 야외활동, 새해 위문 등 사업을 정성껏 조직하고 로교직원들의 즐거운 만년생활에 이채를 돋구었다.

후에 겸직한 식당관리 사업은 전혀 생소한 일임에도 전력을 다해 빠른 시간내에 익숙해지고 식당의 재료구입과 출고에서부터 위생, 장부에 이르기까지 심혈을 쏟지 않은 것이 없은 데서 식당은 면모가 개변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과당총지 위원을 겸하면서는 당원 발전과 각종 학습 및 활동에서 선진 선두 작용을 발휘한 데서 지부가 시교육국 선진지부로 평의되고 본인도 시교육국 우수공산당원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31년간의 교육생애에서 김옥봉 교사는 사업과 가정의 관계처리에서도 모범을 보였다. 개인의 일로 절대 사업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8년간 한편으로는 중한 병환에 있는 년로한 어머니를 시중들고 자신도 건강문제로 입원 수술하는 등 상황에서도 마음은 한시도 학교를 떠나지 않고 무사봉헌한 데서 주위 동료들을 감화시키며 승인과 호평을 받아안았다.

학생들 건전한 인격 양성에 모를 박고

김영(설봉교사상 우수교사상 수상자)

김영교원은 31년 동안 사명감과 책임감을 안고 교육일선에서 사랑과 열정으로 교원사업에 충직해온 교원이다.

1993년에 학급담임을 맡은 학급에서는 두 학생이 대학입시에서 총점이 심양시 문과 10위권에 들었고 2006년과 2012년에 담임을 맡은 학급에서는 료녕성 문과장원이 나왔다.

학급담임을 맡는 기간 그는 학생들의 종합능력과 건전한 인격을 양성하기에 힘썼다. 그가 맡은 반급은 2009년부터 쓰레기 분류를 시작, 버린 음료병을 판 돈으로 공익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1999년 이래 학생들과 함께 빈곤학생과 빈곤가정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맡은 3기의 학급에서 애심방조활동 경험을 쌓았으며 선후로 하남성 루저시의 한 학생이 고중과정을 완성하게 도왔으며 한 백혈병 환자에게 자금원조를 주었고 모자가 다 암증에 걸린 가정을 6년 반 동안이나 도왔다. 어려운 가정을 돕는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서로 단결하고 서로 도와주는 사회적 사명감을 키워주었고 그 자신도 그 과정에 만여원을 기부했다.

2012년 이후부터 학급담임을 맡지는 않았지만 계속하여 학교 공청단위원회와 협력하여 4년간 빈곤가정을 도왔고 졸업생들을 조직하여 여러가지 애심활동을 펼쳤다.

김영교원은 학급담임과 덕육사업을 맡으면서 세차례 구(区)우수반주임, 두차례의 우수학급으로 되였고 2012년에는 료녕성우수학급담임 칭호를 수여받았다.

수학특색학과로 교육개혁의 앞장에

최운룡(설봉교사상 우수교사상 수상자)

1999년 사업에 참가, 선후로 수학 과임, 학급 담임, 수학교연조 조장, 학년조 조장 력임.

2002년부터 심양시 황고구정부로부터 공을 인정받은 뒤를 이어 선후로 황고구 우수 학급담임, 우수공청단원, 우수교사, 우수청년교사로 선정되였으며 심양시 교육과학계통 우수공산당원, 심양시 우수교사로 선정됨.

교육사업에 종사한 20년간 줄곧 교육일선에서 13년간 학급담임을 맡고 7기의 졸업생을 수송하며 드팀없이 교육사랑의 길을 걸어왔다.

덕육을 우선으로 학업을 중점으로

최운룡 교사는 “교육사업에서 학급담임 사업은 가장 신선감 있는 직종인 반면 도전성과 함께 그 중임이 무겁다.”고 말한다.

그는 새로운 학급을 맡을 때마다 학생들에게 우선 강조하는 것이 사리에 밝아야 할 뿐만 아니라 담당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였다.

하여 최운룡 교사가 담임을 맡은 학급의 학생들은 저마다 밝고 진취적이고 단결되고 례모 있어 과임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았다. 따라서 학급은 료녕성우수학급 영예칭호도 안았다.

학년조장을 맡은 뒤에는 학년조장은 도량이 넓고 조원들을 단결 합작시킴이 특히 중요함을 인식하고 상대방의 립장에서 생각하고 먼저 남을 생각하며 조원들을 이끌어 실천에 옮겨왔다.

동료 교원들과 친구로 사귀며 진심으로 대하고 문제에 부딪치면 여러 교원들의 의견을 광범히 청취하고 누가 어려움이 있으면 주동적으로 나서 해결해주며 좌절도 함께 담당해줬다.

이외에도 부단히 자신의 소질을 제고함과 동시에 처처에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이신작칙하며 단결되고 편안한 학급분위기와 학년조의 분위기를 형성함으로써 모두가 즐거운 기분으로 몸을 내번지고 일하도록 했다.

교육사업을 열애하고 교육혁신에 심혈 몰부어

최운룡 교사는 교육사업에 종사한 이래 상급 해당 부문의 교육개혁 진척에 따르고 본교 현황에 결부해 일부 교육개혁을 시도하고 실시하면서 많은 경험교훈을 귀납 총화했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교수개혁이 발등에 떨어진 불로 된 상황에서 20분간의 교실수업 리념과 분조합작 공부의 수업모식은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 줄곧 제창해온 교육로선이였다.

최운룡 교사는 학교의 호소에 응해 많은 상관 서적들을 습득하고 많은 리론 근거들을 수집한 데서 개혁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개혁은 교원 및 학교에 수업 전 교수안 설계 밀도를 정밀하게 하고 수업시간 조직은 령활하게 하고 수업 후 반성은 적시적일 것을 요구했다. 하여 과외시간을 리용해 학생들 속에 심입해 제1자료를 료해하고 수집함과 동시에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의 교육리념을 더욱 잘 리해하도록 했다.

교수모식 개혁을 통해 따분하던 수학 수업이 학생마다 참여하는 즐거운 마당으로 됨으로써 학생들의 인정을 받고 학부모들의 찬동을 얻었다.

학과정 개혁 적극 추진

2015년 심양시교육국의 해당 정신에 따라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는 수학특색학과를 신청했다.

수학조에서는 신심가득히 접수했지만 압력도 없지 않았다. 이는 심양시 교육개혁의 중대한 공사로서 학생, 학부모 그리고 사회의 기대를 한몸에 안았기 때문이다.

최운룡 교사는 수학교연조 조장으로서 우선 조원 회의를 소집하고 상급의 정신을 시달함과 동시에 사상을 통일하고 광범히 의견을 수렴하고 학과정 방안을 제정했다. 조내 모든 교원들의 공동의 노력과 학교 지도부의 아낌없는 지지와 옳바른 지도로 학과정 방안은 끝내 초보적으로 마무리되여 시교육국에 올려졌으며 상급 지도자들과 형제학교의 인정을 받았다.

/길림신문 최승호 김정함 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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