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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통 온도 42도”를 고집하는 양봉 전문가의 일가견

편집/기자: [ 김가혜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9-29 18:41:34 ] 클릭: [ ]

화룡시 숭선진의 조선족마을인 죽림촌에서는 빈곤퇴치 대상인 양봉 대상을 적극 발전시켜 수익 창출을 이끌고 있다. 그 중심엔 촌의 양봉대호(大户) 어성도 양봉 전문가가 있다. 2013년부터는 촌주임 직도 맡아하면서 어주임은 촌의 ‘치부 선줄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내 나이 54세에 양봉만 38년 해왔다”고 밝힌 어성도 주임을 지난 21일에 만났다.

꿀에 대해 물으니 제일 첫마디가 “벌통 온도를 42도 정도로 유지”해야 된다는 게 어주임이 밝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뭐든 ‘빨리빨리’라는 생각을 접고 좋은 꿀을 내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환절은 꼭 지킨다고,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좋은 꿀을 낼 수 있다는 뚝심으로 닷새에서 일주일이 돼야 벌통에서 꿀을 떠낸다며 좋은 꿀에 대한 일가견을 밝히기도 했다.

“거의 뭐 양봉 전문가라고 봐도 무방하네요?” 넌지시 건넨 질문에 “누구나 오래하면 다 그렇게 되죠 뭐…”라며 멋적게 웃었지만 전문가의 솜씨가 력력했다.

화룡시장애인련합회 박창범 리사장(오른쪽)에게 죽림촌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어성도 촌주임.(2019년)

1982년부터 양봉업에 종사하면서 지금까지 꿀벌과 씨름한지도 38년 세월, 부친 때부터 양봉을 해 어릴적부터 어깨 넘어로 보며 배운 게 평생에 걸친 ‘직업’이 되였다.

고향은 팔가자지만 양봉을 잘해보려는 생각을 안고 1990년에 온가족이 그때의 죽림툰(지금은 통털어 죽림촌이라고 함)으로 이사와 정착했다.

죽림촌과 더불어 30년, 마을의 변화를 돌아보면 항상 감개가 무량하다.

“그 옛날에 부락이 이렇게 깨끗했나 뭐. 2016년부터는 나라에서 보조해주어 마을길이 좋아졌지, 집도 다시 지었지… 정말 살기 좋아졌소. 지금 농촌에 로령화가 심하지 않소? 그래도 국가정책 덕분에 로인들이 만년에 걱정 없이 살지 뭐요. 이전에는 80살이라도 일했다니까?”

마을이 180도의 전변을 가져오는 동안 어성도 주임의 양봉업도 규모가 점점 커졌다. 처음의 벌통 40상자에서 올해의 79상자(봄철)~104상자까지 늘어났다. 올 일년 꿀 산량이 1만 2,000근가량에 도달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2016년에는 연변주장애인련합회의 빈곤부축자금을 쟁취해 규모도 키워 지금은 촌의 양봉 대상으로 되였다. 전 촌의 장애인들에게 수익 배당금을 지급한다. 27명에서 현재 52명에게 해마다 배당금을 나누어 준다.

“빈곤호들도 다 같이 잘 살면 좋죠.” 특히 자신도 몸이 성치 않다보니 장애인들을 위한 일에 더 앞장서게 되는지도 모른다.

1994년 그해 꿀팔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는 바람에 2년 동안이나 병원 신세를 지면서 그때 다리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상해를 입었다고 했다.

다리가 불편하여 다닐 땐 오토바이에 많이 의지한다고 했다.

양봉업도 규모가 커지면서 혼자 하기 쉽지 만은 않다. 양봉철이 돌아와 일이 딸릴 때면 친구들도 돕고 나서고 마을의 일손도 빌린다. 하지만 “일하는 만큼 결과가 좋게 돌아오는 세월이잖수. 열심히 하지 않을 리유가 없지.”라며 미래에 대한 동경도 내비쳤다. 부지런해질 수 밖에 없다.

양봉은 7월이면 다 끝나는 일이기에 그 전에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쁠 때도 많다. 그러나 꿀을 사먹어 봤던 고객들이 꿀맛을 인정해 재구매를 해오거나 크게 홍보를 못하는 데도 전화로, 위챗으로 주문이 들어올 때면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 죽림촌의 담보부축단위인 길림성장애인련합회에서도 같이 홍보해주고 도움을 보내주어 판로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좋은 꿀을 만들겠다”는 신용이 수입으로 보답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작년에는 양봉으로 15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올해는 아직 팔지 못한 3,000근이 남아있는데 모두 팔게 되면 금년 수입을 20만원 웃돌게 내다봤다.

“이번해가 전체적으로 특수시기잖습니까? 그래도 뭐 하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죠.”

지금까지는 2015년에 설립한 ‘밀강원합작사’라는 이름을 내걸고 피나무꿀을 팔아왔다. 양봉에만 매달려온 30여년 세월을 거치면서 점점 욕심도 생겨난다. 본인 특색의 꿀을 상품화해볼 수는 없을가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아 있다. 그만큼 좋은 꿀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 아닐가 싶었다. 38년 양봉 전문가의 자신감이자 자존심이기도 하다.

/길림신문 홍길남 김룡 김파 김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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