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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개 켜는 가게들]활짝 웃는 그 날이 꼭 올 것입니다

편집/기자: [ 김룡,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4-07 10:08:57 ] 클릭: [ ]

주방에서 얼음사발랭면을 만들고 있는 김학선 사장.

금삼각의 해바라기는 태양을 따르고

훈춘시 연하서가 430호에 자리잡은 해바라기식당은 훈춘사람들은 물론 훈춘을 찾는 유람객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자자한 음식점이다.

“저는 음식과 씨름한지 벌써 55년이 되였습니다. 1966년 공농병식당에서 일을 시작하여 오늘까지 줄곧 음식을 만드는 일만 하였으니 말입니다.” 장인정신으로 꾸준히 한 우물만 팠다는 김학선(74세)녀성은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보이는 자상하면서도 걸걸한 성격의 녀장부였다.

19살 때부터 랭면, 무침 등 전통음식은 물론 중화료리와 면식 료리법까지 익힌 그녀는 개혁개방이후 첫 패로 개인음식점을 오픈했다. 그때 식당이름을 두고 고심하다가 로씨야사람들이 해바라기를 좋아하는데 <해바라기>로 하면 어떻겠는가고 남편한테 물었더니 남편이 흔쾌히 동의하더란다. 그로부터 32년간 <해바라기>는 수도공사 부근의 자그마한 음식점으로부터 현재의 시병원 서쪽 맞은켠에 자리를 옮기면서 훈춘시 각 민족 인민들이 즐겨 찾는 믿음직한 음식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직원과 함께 물만두를 빚고 있는 김학선 사장(좌).

전염병발생 상황으로 영업이 영향을 받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에 김학선녀성은 “훈춘에 확진자가 한사람도 나오지 않았지만 음식업종에 대한 영향은 매우 컸다.”면서 그렇지만 당과 정부에서 통일적으로 코로나19와 싸우는데 거기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더 없이 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표시하였다. 동북아의 금삼각으로 불리는 훈춘에서는 1월 29일부터 음식점문을 닫았는데 2월 17일에 배달음식 영업을 시작하고 3월 12일부터 정식 영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사이 그녀는 훈춘시병원과 경로원, 가두 등 전염병 예방통제 제1선에서 수고하는 분들에게 입살밴새 천여개, 순대 백여근, 곽밥과 채소 등 5천여원어치의 음식을 손수 장만하여 지원하였다고 하면서 “그분들의 노력으로 우리 훈춘시가 코로나19가 없는 청정지역으로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지요.”라고 말한다.

“해마다 이맘 때면 훈춘에는 철새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로 넘쳤어요. 당지사람들보다 관광객들이 많아서 호황을 누렸던 음식업체들이 울상을 짓는 것은 바로 그때문이지요.” 김학선녀성은 개혁개방이후의 훈춘의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지켜본 지성인답게 훈춘의 관광사업에도 무척 관심이 큰 분이였다.

“처음 훈춘에 온 관광객들은 조선족전통음식인 랭면과 김치를 많이 찾습니다. 고속철이 개통되던 날, 훈춘시안의 모든 식당은 만원이였고 호텔방이 없어 학교와 유치원 지어는 사회구역 활동실까지 빼주던 기억이 어제 같습니다.” 김사장은 그때 얼음사발랭면을 보고 북극의 음식이 아닌가고 묻던 손님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북경에서 온 손님이였는데 얼음으로 된 사발에 담긴 랭면을 다 먹고 얼음이 녹은 물까지 마시고 엄지손가락을 내 흔들더란다.

그녀는 개혁개방이후 한눈에 중, 로, 조 3국을 바라볼 수 있는 천혜의 명소 방천을 찾는 관광객들이 훈춘에 많이 왔는데 고속철역이 들어선 후부터는 더욱 많은 관광객들이 밀려왔으며 해마다 3월초와 11월경에는 철새구경을 오는 사람들도 엄청 많았다고 자랑하다가 이번 코로나19사태로 비록 영업액이 엄청 떨어졌지만 꼭 모두가 활짝 웃는 좋은 날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훈춘의 미미사에는 투도온면이 있었다

훈춘시중의원의 맞은켠의 훈춘서가 639호에 자리잡은 미미사민속음식점은 2011년에 개업한 민속음식점으로서 훈춘은 물론 전 연변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미미사로 소문이 높다.

“음력설부터 보름까지는 일년 치고 영업이 가장 잘 되는 기간에 속한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올해는 그 시기를 대비해 미리 준비했던 음식재까지 버려야 했어요.” 이렇게 긴 시간을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는 박홍매(42세)씨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시집식구들과 함께 이 음식점을 이끌어온 주인공이다.

“시내 중심지대라 출근족과 학생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주고객군이였지요. 그리고 이곳에서 십여년 하다보니 단골도 많구요.” 이렇게 말하는 박홍매씨의 얼굴에는 무가내한 표정이 력력하다.

“어느 개개인의 욕심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전반 사회가 한사람같이 움직여야 하는 관건적인 시기를 다함께 이겨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는 인차 밝은 모습으로 살짝 웃는다.

컴퓨터로 주문단을 확인하는 박홍매 사장.

8개의 독칸에 4, 5명씩 앉을 수 있는 대중음식상만 해도 28개인 미미사에는 16명이 직원이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시의 5분의 1정도의 손님들을 접대하는 요즘은 직원들의 임금만 해결해도 만족이라고 말한다.

전통음식에 비해 한식이 위주라고 보아야 하는 미미사의 음식메뉴에서 눈에 뜨이는 음식이름이 있었다.‘투도온면’이였다.

“저는 투도태생이랍니다.”박홍매씨는 고객들가운데 투도온면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려서부터 즐겨먹었던 투도온면을 훈춘사람들에게 내놓기위하여 연길,투도로 다니면서 열심히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고객의 체온을 확인하는 박홍매 사장(우).

“결국 고객들의 입맛을 맞추어 조금씩 달라져가는 것이 음식이 아닐가요?” 문뜩 박홍매씨는 한식이 위주였던 미미사의 음식이 점점 훈춘의 입맛을 따라간다고 말한다. 사실 연길에 있던 미미사계렬점들이 영업을 접은데는 역시 이와 같은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이 아니면서도 한국인 것처럼 한국음식맛만 고집한다면 연변에서 발 붙이기가 힘들어요.”의미심장한 말이다.

코로나19사태에 대해서도 박홍매씨는 나름 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나 혼자가 힘든 것이 아니라 이 큰 나라 전체가 힘들기 때문에 내 직원 한사람을 사랑하고 함께 이겨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그는 직원들을 한 가족처럼 아끼고 배려해주는 것이 요즘 경영난을 겪는 모든 음식점들의 옳바른 선택이라고 하면서 어려운 시기에도 믿어주고 선뜻 음식점을 찾아주는 모든 고객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길림신문 김룡, 김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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