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내 사명은 아름답고 원고한 촌락이 생기를 발산하게 하는 것”

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신화넷 ] 발표시간: [ 2018-11-14 20:06:38 ] 클릭: [ ]

-공무원 직 사직하고 귀향한‘80’후 수재의 목표

오무원, 30살, 사천대학 연구생 학력, 10월, 성도시정협판공청 주임과원 및 공무원 직을 사직.

오무원의 현직 : 성도시 포강현 감계진 건탑촌사회구역복무중심 향촌사업부 책임자.

오무원의 리상, 목표 : 향토사회와 향촌문화를 보호하고 향촌진흥사명을 완성하는 것

“나의 사명은 아름답고 원고한 촌락이 생기를 발산하게 하는 것이다”

사천성 포강현의 문과장원으로 기남대학 한어언어문학전업에 입학했고 졸업 후 사천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오무원은 2013년 10월 공무원시험을 거쳐 성도시 판공청 주임과원으로 일하다 사직했다. 원인은 건탑촌에서 자신이 할 일을 찾았기 때문에다.

2016년 성도시 제3륜 제2진 정밀빈곤부축간부대오에 들어 오무원은 건탑촌에 입주간부로 갔었는데  그렇게 건탑촌에 발길을 들여놓게 된 것이 오무원으로 하여금 건탑촌에 인생목표를 걸게 할 줄이야!

농사, 농촌사업에는 아는 것이 없어 ‘0’기점이여서 촌입주간부로 파견돼간 오무원의 사업, 이를테면 토지개량을 추진해가는 데 처음엔 순조롭지 않았다. 촌민들한테 도시에서 온 ‘수재’의 호소력이 약했다. 한여름 점심 후면  혼자 자전거를 타고 전간을 빙빙 돌아보며 건탑촌에 있는 고분(古坟)지에서 비문을 베껴쓰는 오문원을 촌민들은‘괴이’해하기도 했다며  건탑촌의 당지부서기 고서기는 “많은 촌민들은 오무원을 도굴군으로 보아 내가 적잖게 해석을 해주었다”고 한다.  당시 고서기도 오무원이 젊은 나이에 전혀 꺼리는 티 없이 저녁엔 비문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보고 리해가 잘 안 갔다고 한다.

촌민들이 오무원을 괄목상대하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 촌의 농업과학기술보급원으로부터 한 농가서 당금 출시할 2만근 되는 동아(冬瓜)박이 판로 없어 밭에서 썩게 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오무원이 정협위원을 련계하여 최종 촌민의 동아박을 한 남새시장에서 판로를 찾아 동아박재배농이 4000여원의 수입을 건지게 했던 것이다. 그 후 촌민들은 점차적으로 오무원을 가까이하게 되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천년의 불탑이 우뚝 솟아있고 술공방 세가의 풍상고초가 절어있는 문병(照壁)이 남겨져 있다…나의 사명은 바로 이 아름답고 원고한 촌락이 생기를 발산하게 하는 것이다”

오무원의 필끝에서 건탑촌은 시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는 자신의 필명으로 공식계정을 신청해 건탑촌에 대한 홍보대사역할을 전담하고 있다.

그는 농가에서 먹고 자면서 2년 만에 6만여자 되는 건탑촌의 력사, 전설, 방언, 풍속을 담아낸 건탑촌의 촌지를 써냈다.

곽견이라는 촌민은 오무원이 써낸 촌지를 보고 탈고전에 벌써 프린트해내 자기의 9살 나는 아들애한테 보여주었다면서 “나는 종래로 우리 촌이 이렇게 긴 력사가 있는 줄은 몰랐다.건탑촌에서 나서 자란 나보다 오무원이 건탑촌에 대해 더 꿰뚫고 있다.”고 감탄한다.

우무원이 건탑촌에 파견돼 가있던 기간에 촌도공사가 있었는데 설계 대로라면 촌도가 불탑을 10메터도 안되게 사이 뜬 거리로 지나가게 된다.

불탑 보호에 신경을 쓰고 있던 오무원은 촌의 고서기와 함게 문물보호전문가를 찾아가 견해를 들어보았다. 과연 전문가는 번번이 건재를 실은 중량 트럭들이 지날 때마다 일으키는 진동은 문물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조성된다고 했다.

오무원은 당시 촌도 대상을 보고 대뜸 속이 조여졌다고 한다. 허나 도로설계를 바꾼다는 것은 복잡한 조률사업이 따라야 하며 새롭게 증가되는 자금예산도 촌에서는 감당할 엄두도 못 내는 사정였으니 촌에서는 그 화제는 유야무야해지고 말았다. 

한달이 지나 마침 성도시정협위원이 빈곤부축사업에 관한 민주감독차 건탑촌에 왔을 때였다. 좌담석에서  오무원은 불탑을 보호하는 데서 부딪친 난제를 회보했다. 그 정협위원은 관련 론증사업을 잘하면 경비난은 절차를 거쳐 해결할 수도 있다고 했다.

조사연구, 보고쓰기 과정을 거쳐 1주 만에 새로운 촌도 설계가 시정부의 비준을 받았다.

건탑촌의 향촌관광을 발전시키기 위해 오무원은 2017년 세모에 건탑촌에서 돼지를 제물로 올리는 천제(年猪祭)행사를 기획하여  도시사람들을 요청해와 건탑촌에서 설분위기를 조성했는데  이는 촌의 신로세대 할 것 없이 모든 촌민들의 흥취를 불러일으켜 적극 참여하게 했고 건탑촌을 홍보하는 효과를 보았다.

“향촌진흥을 저애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신심과 문화...건탑촌 진흥은 바로 나의 인생가치이다”

7월로 촌입주 파견간부로서의 임무를 완성하고 기한이 차게 되면서 오무원은 주춤했다. 건탑촌을 떠나자니 자기가 건탑촌의 인정풍토에 깊이 빠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단 단위에 복귀해  출근하면서 오무원은 저녁에 의연히 3,4시간 씩 건탑촌의 일들을 처리하는데 할 일이 부단했다.

성도시 익가원사회구역의 편민중심과 건탑촌이 련결단위관계를 맺은 것도 오무원이 단위에 복귀한 후 해낸 일이였다. 그런 련결은 건탑촌의 한 판매경로로 되였다.

오무원은 건탑촌민들의 도시 ‘친척’으로 되였다. 촌의 사람들은 툭하면 오무원한테 촌의 이런 저런 “팔괘’를 알려주기도 했다.

오무원은 “이제 새롭게 선 건탑사회발전중심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가봐 근심되였다”며 이는 자기가 건탑촌으로 돌아간 원인의 하나라고 한다. 그동안 그는 건탑촌에서 촌민과 촌지도부 사이서 소통하는 ‘치륜’역할을 했다. 그는 적지 않은 문제는 소통이 원활하지 못아여 조성되는 것이라고 본다.

건탑사회구역발전중심의 40세 주의사는 오무원은 자기한테 선생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다며 자기를 사회구역발전중심의 입당적극분자로 발전시킨 사람도 오무원이라고 한다. 그는 오무원은 의견수렴을 잘하며 민주를 충분하게 행사할 줄 알며 촌민들은 그를 찾아 말하기 좋아한다고 한다.

기한이 차서 떠나가는 오무원을 촌에 1년만 더 있게 해달라고 촌서기와 촌민들이 련명하여 청원서까지 썼다. 허나 결과적으로 오무원을 건탑촌에서는 남기지 못했었다. 

오무원의 사직은 그의 부모한테 큰 충격을 안겼고 지어 실망을 느끼게 했다.오무원의 어머니는 거듭 아들을 찾아가고 친척들까지 동원하여 오무원을 말리다가 소용없자  “내가 이 아들을 안 낳은 셈 치겠다”고까지 했다. 

그는 아들의 선택은 “젊어서 머리가 뜨거워나서 그런 거”라며 아들에 대한 원망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아들이 건탑촌에 있을 때 건탑촌에 두번 다녀온 오무원의 어머니는 두번째 때 비록 처음에 갔을 때보다 촌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지만 그녀는 그러나 아들이 그 곳에서 무엇을 해내겠냐 하며 믿을 수 없다는 태도이다. 

사람들이 다 리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사직에 대해 오무원은 “건탑촌의 진흥은 바로 나의 인생가치다”고 해석한다.

귀향하느라 그의 년수입은 6만원이 줄었다.부모는 더 말할 것 없이 기분 나빠하고.이에 오무원은 “이런 것은 본능적인 불안감이다. 나는 부모를 위안하느라 평소에 일부 강습비도 있고 하니 돈이 모자라지는 않다고 했다.”고 한다.

사직한 후 그는 건탑촌의 안일사라는 사회단체조직에 가입했고 건탑촌사회구역복무센터 향촌사무부 책임을 맡았다. 제3측을 통하여 계속하여 건탑촌의 사회구역 만들기 사업을 협력하고 있으며 향촌 본지방 인재를 육성하고 심입하여 촌락문화 등을 발굴하고 있다.

건탑촌에 입주해있던 전 2년간에 오무원은 향촌진흥을 저애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신심과 문화라는 것을 심심히 느꼈다고 한다. “나는 농가들이 어떻게 하면 돈줄기를 잘 붙들고 있겠는가를 알게 할 것이다.”고 오무원은 다진다.

그동안 농가들과 교섭하면서 오무원은 농민들이 돈을 벌어서는 어떻게 그 돈을 써야 하는지 모름을 발견했다면서 그는 자신이 건탑촌에 있으면서 선생들을 끌어올 수 있기를 바란다. 농업의 전업화와 조직화를 추진하고 촌민들이 뭉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리라 결심한다.

촌민들과 같이 향촌문화를 발굴하고 향촌경제를 발전시키는 외에 오무원은 또 하나의 꿈을 키우고 있다.

“향토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여 향촌문화를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한 문인의 책임이다. 만약 내가 해내지 못한다면 다시 누가  이런 방식으로 이 일을 해내겠는가.”고 오무원은 절절한 사명감을 느낀다. 그는 이미 건탑촌의 촌지를 완성했고 아직도 더 많은 연구적인 것들을 써내고 싶어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소재로 축적될 것이다고 한다.

건탑촌에는 한나라시기의 고분과 동기, 남북조시기의 공자기(邛瓷), 당나라시기의 불탑, 송나라시기의 철로(铁炉),명나라시기의 역우물, 청나라시기의 벽돌조각과 비문이 있다. 놀라울 정도로 대오면산과 상림계하간의 탄완구역에 집결돼있다. 오무원에게 있어서 건탑촌에는 할일이 너무 많은 곳이다. 학자꿈을 이룰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향촌진흥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단다.

오무원은 부모의 심정에 대해 리해할 수 있음을 표하면서 자기가 사직하고 촌으로 가는 것은 “농사지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향촌경제를 발전시키고 향토사회와 향촌문화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자기와 같은 일을 하는 젊은이들이나  자기를 리해해줄 수 있으며 그와 같은 용기가 칭찬받을 만한 것이라고 한다.

http://www.xinhuanet.com/2018-11/12/c_1123698013.h

/출처: 신화넷, 편역 길림신문사 김영자기자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