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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에 돌아가  전병 팔아  월 영업액 13만원 올리는 대학생 창업마니아

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본지종합 ] 발표시간: [ 2018-04-23 11:57:51 ] 클릭: [ ]

인기검색어 순위에 오른 남경림업대학 졸업생 위붕도

 
창업마니아 위붕도/ 자료
 

대학가마다에 전병가게‘전병련맹’꿈

남경림업대학에서 갓 졸업한 ‘위붕도(魏鹏涛)’가 4개월전 모교 대학가에서 60평방메터 되나마나한 전병가게를 오픈해 하루 매상고를 수천원씩, 한달 영업액을 13만원까지 올리고 있는 ‘대학생 전병 판매 ’가 요즘 창업가, 대학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비전에 대해 묻는 기자의 말에 위붕도는 “시작할 때부터 전병가게 하나를 목적한 것이 아니다. 남경 각 대학가마다에 나의 전병가게가 뿌리 내리게 할 타산이며 나중에‘전병련맹’을 이루게 할 것이다.”고 한다.

학교시절부터 위붕도는 아르바이트를 자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아리를 무어 여러가지 상업활동을 맡아와서는 동학들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의 동아리 회원은 800명 규모에까지 컸었고 업무는 본교를 벗어나 남경항천항공대학, 남경농업대학에까지 연장해갔다. 나중에는 또 동교학생 7명과 함께 소포물 수취, 일용품 배달, 세탁방 심부름 등 심부름쎈터를 운영해 년 영업액을 700만원까지 올린 경험을 쌓았다.

졸업 후 위붕도는 교내의 심부름쎈터운영 경험을 고향 련운항에 가서 사회구역마다에 펼치기 시작했다. 택배를 매개로 가전,수도 수리, 슈퍼, 주택관리 등 봉사를 일체화해 사회구역 주민들을 위해 여러가지 필요한 봉사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의 심부름쎈터는 2년이 지난 오늘날 이미 28개의 사회구역을 공략해냈다.

지금 그는 택배가 끌어오고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대학생들의 수요와 결부시켜 대학가에서 소형 상업권을 조성할 타산이라고 한다.

‘대학생 전병 판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교에 돌아가 전병가게를 운영하는 위붕도에 대해 네티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젊은이한테는 이런 창업이 적절하지 않다. 전망성이 없는 업종이다. ”

“대학을 나와 전병을 판다면 공부는 공한 것이 아닌가?”

“누가 대학을 나오면 책상머리에 앉아야만 한다고 규정했는가? 공부한 것은 아무 때든 쓸 데 없는 것이 아니다.”

“대졸생이 수지 맞고 안맞고 론할 여지가 있는가? 이것이 대졸생의 능력이다!” 

“출세가 별게냐? 돈을 잘 벌 수만 있다면 성공한 것이다.”

@HJE시광이란 네티즌은 이렇게 평가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것이 바로 교육의 힘이 아닐가?

같은 전병을 왜 어떤이는 늘 한곳에서만 팔고 대졸생 전병가게는 부동한 안광과 차원이 있을가? 공부한 것은 그 어느 때에도 무용하게 되지 않는다. 어느 업종에 있든지간에 교육이 가져다주는 넓은 시야와 견해는 비교될 것이 없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직업은 생계를 만족해주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희열이 있다. 한사람의 인생은 대학생이란 라벨에 제한을 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 누구나의 사명은 생명을 최대화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생이 전병장사를 하는 것이 ‘수지가 안맞다 ’고 생각할 때 이런 점은 왜 생각 못했을가? 대학생의 가입, 참여로 하여 각 업종의 문화와 국민의 자질이 제고되고 있음을? 문화정도의 보급에 따라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전병 파는 대학생’은 한사람 뿐이 아니다

“창업은 쉽지 않다. 업종은 귀천이 없다. 자신이 어떻게 하는가가 관건이다.”

위붕도는 그 쉽지 않음을 언녕 체득한 창업인으로서 강력히 말한다. 로숙도 해보았고 련속 58시간을 눈 못 붙이고 버틴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목표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내 자신이 업종사회에 대해 료해한 전제하에서 사회를 위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한다.

‘전병 파는 대학생’은 위붕도 한사람 뿐이 아니다. 길림대학 졸업생 29살 림효욱은 지난해 국영기업 일자리를 그만두고 모교에 가서 전병점을 오픈했다. 그는 개학철이면 장사하고 방학철이면 관광을 떠난다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좋고 내가 하는 일에서 많은 사림들이 행복해 하니 나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북경체육학원 무술계를 나온 26살 적일반은 부모를 가까이서 모시고 싶어 월급 만원짜리 회사직을 물리고 고향 하남성에 돌아가 야시장 로점에서 특색 간식메뉴‘돼지뇌찌개(烤脑花)’장사를 시작했는데 매일 18시20시 사이만 하는 장사로 월 순수입을 1만 5000원은 땡 잡고 있다.

2년전 산서성 태원리공대학을 나온 촌천기는 농촌 택배 물류가 공백인 것을 보고 졸업 취직 후 몇개월만에 사직하고 농촌물류회사를 설립했다. 소포를 밭머리에까지 배송하기가 일수인데 봉사가 좋으니 고객들이 그의 물류통로를 애용하고 있어 지역 농촌택배업무가 확대되고 있다. 그는 “전업의 국한성을 벗어나 용기를 내서 자신에 적합한 일을 찾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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