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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67]잊지 못할 생산대 총화 술심부름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12-29 14:06:58 ] 클릭: [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7)

◇리동주(연길)

당년에 술 사러 갔던 두 사람, 퇴직 후 하향지식청년으로 있던 신광촌을 찾아서 남긴 사진(왼쪽이 필자).

시장에 가면 독한 배갈이 들어있는 큼직한 술독들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과거에는 촌마다 공소합작사라고 있어 저런 큼직한 술독을 놓고 사람들에게 근들이술을 팔군 했다.

술독을 보니 지난날 있었던 웃지도 울지도 못할 추억이 떠오른다.

1968년, 그 해도 저물어가는 겨울철이였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지식청년으로 내려간 연길시 의란공사 신광대대에서도 일년 생산총화 준비로 바삐 돌아쳤다. 농촌 생산총화라고 해야 이것저것을 제하고 나면 집집이 차례지는 것은 몇푼 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집들은 오히려 적자로 빚을 지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그래도 사원들은 년말총화라 마음들이 둥둥 떠가지고 은근히 술 한잔이라도 차례지길 기다렸다. 있으나 없으나 일년에 한번 밖에 없는 큰 행사인지라 생산대에서는 개도 잡았고 녀인들은 떡가루를 빻고 채치느라 방아간 주위에서 분주히 맴돌았다.

미구하여 개고기가 가마 안에서 설설 끓어번졌고 구수한 고기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모두들 코를 벌름거리면서 목구멍에서는 목젖이 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그 때 세월에는 집집이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사는 세월이라 일년 가도 콩기름도 몇번 사먹어보지 못했다. 육붙이는 더욱더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던 때였다.

그런데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년말총화 모임인데 술이 없어서는 안될 일이였다. 공교롭게도 술을 사려고 하니 마을 상점의 술은 다 팔리고 없었다. 그 때 술공급은 연길 같은 도시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보장되여있었지만 농촌 같은 곳에서는 가끔씩 술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았다.

모두들 총화모임에는 반드시 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술 없는 총화모임이 무슨 재미냐며 다른 곳에 가서라도 꼭 술을 사와야 할 것이라고 의론이 분분했다.

한창 젊은 나이인 내가 자진하여 술 사러 가게 되였는데 집체호 친구인 광일이도 함께 따라나서게 되였다. 그 때는 지금처럼 술을 담는 비닐통도 귀한 시절이라 군용 물통 두개와 큰 술병 하나를 손에 들고 마을과 몇리 떨어진 장안공사 룡가 상점으로 술 사러 떠났다.

그런데 일이 안될라니 룡가 상점에도 술이 다 팔리고 없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짧아진 겨울 해는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생산대에서 술을 사오라고 임무를 맡겼는데 술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입맛을 다실 사원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올라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던지간에 꼭 술을 구해야 한다.’ 머리속에는 온통 어디든지 가서 술을 구해와야 한다는 생각 뿐이였다. 결국 우리는 위자구를 향해 떠나기로 했다. 그 때는 한창 열혈나이인 20대이고 젊음의 용기와 뚝심을 믿고 또 두사람이 동행한다고 생각하니 무서울 것도 못 갈 곳도 없어보였다.

그런데 위자구로 가자면 높은 산은 아니지만 구불구불 늘차게 뻗은 령마루를 넘어야 했으며 왕복 50~60리 길은 되였다. 물론 위자구로 가는 걸음은 우리에게 한번도 못 가본 초행길이였다.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고 달도 없는 밤이였는데 시골길이여서 인적도 끊기고 없었다.

길 량옆에는 충충한 어둠속의 관목림 숲이 괴괴하니 늘어서있고 당금이라도 무엇이 뛰여나올듯 조마조마한 밤길이였다. 후에 들어서 안 일이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위자구로 가는 산길에는 승냥이와 같은 무서운 산짐승들이 출몰하군 했단다.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추위 때문인지 몸도 으스스 떨려났다.

미풍에 나무잎이 바스락 소리를 내도 저도 몰래 멈춰서서 신경을 도사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소변을 볼 때도 혼자서 떨어져서는 볼 수 없었다.

겁도 없이 경솔하게 밤길을 떠난 것이 저으기 후회되였지만 지금처럼 핸드폰도 없던 때인지라 마을사람들에게 사정을 알리지도 못하고 진퇴량난으로 계속 어둠을 더듬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미 떠난 길이니 계속해서 가자. 죽지 않으면 까무라치기겠지…’

둘은 애꿎은 담배만 피워대면서 부지런히 밤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얼마를 걸었을가? 갑자기 길옆 후미진 곳에서 화다닥 소리를 내면서 무엇인가 눈앞으로 휙 하고 날아지나는 것이였다. 가뜩이나 겁 먹고 가던 걸음인지라 너무 놀라버린 광일이는 저도 몰래 술병까지 손에서 떨구었다. 술병은 땅에 떨어지면서 돌멩이에 부딪쳤는지 쨍그랑 소리를 내면서 박살이 났다.

우리는 둘 다 너무 놀라 식은땀을 쫙 흘렸고 심장이 천방지축으로 쿵쿵 걷잡을 수 없이 뛰였다.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리고 보니 우리를 놀래운 것은 꿩이란 놈이였다. 그런데 그것도 잠간, 어디선가 무엇이 타는 듯한 냄새가 풍겨왔다. 무슨 냄새일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산속의 두려움 때문에 미처 알아볼 새도 없이 우리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길을 재촉하기에 바빴다.

그러다 광일이가 “앗, 뜨거!” 하고 소리 치며 팔소매를 걷어쥐고 놀란 모습을 지었다. 살펴보니 꿩 때문에 크게 놀랐을 때 광일이가 피우던 담배불을 조심하지 않아 불길이 튀면서 솜옷 팔소매에 불씨가 들어가 속옷과 솜옷을 태워놓았던 것이였다.

산속 밤길에 정신을 팔다 보니 정작 팔소매가 불에 타는 것도 모르고 내처 허둥지둥 길을 재촉해온 것이였다. 서둘러 옷에 붙은 불을 끄고 나서 얼마를 걸었는지, 우리가 어둠과 두려움에 거의 지쳐갈 무렵, 저 멀리로부터 불빛이 반짝이는 큰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빛을 보자 저도 몰래 힘과 용기가 생겨나는 듯했다. 그런데 급한 마음이여서일가? 불빛은 보이는데 아무리 걷고 걸어도 마을과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고 우리들을 조롱이나 하는듯 길축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들의 마음이 너무 급해있었던 것이다.

광일이와 나는 땀벌창이 되여서야 가까스로 위자구 마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때는 이미 퇴근시간도 넘은 때라 위자구 상점의 대문도 굳게 닫혀있었다. 상점 문을 두손으로 마구 두드렸다. 상점에서 점원인 듯한 사람이 문을 열고 우리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가 먼길을 걸어 술 사러 왔다는 것을 알고 그는 두말없이 큰 오지독을 열고 술을 떠주는 것이였다. “휴, 살았구나.” 고대하던 술을 살 수 있게 된 기쁨에 우리는 막혔던 숨이 활 하고 나오는 것 같았다.

허기진 두 사람은 과자 몇쪼각에 시장기를 달랬다. 목이 마른지라 술도 한모금씩 마셨다. 입에 들어간 독한 술은 목구멍을 태우는 듯했으며 미구하여 빈속에 들어간 독한 술 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해나고 눈앞이 흐릿하게 보이면서 당금 쓰러질듯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그냥 술심부름이고 뭐고 그 자리에 드러누워 푹 자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이젠 술은 샀는데 돌아갈 일이 아득했다. 밤도 이젠 꽤 깊어졌고 산길을 되돌아가기는 겁도 나고 힘도 부쳤다. 우리 두 사람이 술을 사가지고 돌아올 것을 사원들은 얼마나 학수고대하고 있을지… 그러나 그 때 그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밤길을 걸어 마을로 돌아갈 힘과 용기가 없었다.

생각던 끝에 우리 두 사람은 위자구 기차역에서 장춘행 밤기차를 타고 연길로 돌아왔다. 꾀죄죄한 몰골로 오밤중에 집에 들어서니 부모님들은 두눈이 화등잔이 되여 놀라셨다.

이튿날 뻐스를 타고 점심무렵에야 우리는 마을로 돌아왔다. 술 사러 갔다가 꼬박 하루 만에 다시 마을로 돌아온 셈이다. 우리 두 집체호 젊은이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본 사원들은 술심부름보다는 우리가 별탈 없이 무사히 돌아온 일이 더 다행이라면서 즐거워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생산대에서는 술 사러 갔던 젊은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사람이 잃어졌다면서 밤새 우리들을 찾아헤맸다고 한다. 그동안 삶은 개고기는 술도 없이 이미 다 먹어버렸고 우리가 산 몇근의 술은 위자구로부터 연길로, 연길에서 다시 신광으로 근 100여리 길을 에돌아 려행한 셈이 됐다.

지금은 어디 가나 술이 흔해빠진 좋은 세월이 되였고 그런 술심부름은 다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였지만 그 해 생산대 총화 술심부름은 영원히 우리 세대들의 기억 속에 남아 과거를 반추할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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